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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방패에서 진심으로

Penulis: 데이지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4-09 11:07:05

“시아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지킨다고요? 누굴?”

“백시아요. 당신이 지금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는, 그 사람.”

도윤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남자는 미소도, 적대감도 없이 마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태연했다.

“그녀가 도윤 씨에게 돌아가길 원했다면 지금쯤 당신 앞에 있었겠죠.”

“…그럼 지금은?”

“숨고 싶어 했어요.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지 않게.”

“그럼 당신은 지금 그녀를 감금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요?”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나는 단지, 그녀가 스스로를 지키게 해준 것뿐입니다.

당신이 다가가면 그녀는 다시 모든 걸 잃게 돼요.”

도윤은 참았던 분노를 삼켰다.

“그녀는… 도망친 게 아니에요. 살고 싶었어요. 그게…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었어요.”

남자는 도윤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래서…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나요?”

“…네.”

“그럼 지켜보는 것도 사랑이라는 걸 이제부터 배우셔야 할 겁니다.”

그 말만 남기고, 남자는 조용히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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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대행   32. 유리창에 비친 과거

    “…도윤 씨.”“응.”“정말로… 다 괜찮을까요?”“당신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계속 옆에 있을게요.”“…고마워요. 이 말은 언젠가, 내가 더 크게 갚을게요.”“지금처럼, 이렇게만 있어줘도 충분해요.”도윤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 엇갈린 마음과 마음이 비로소 하나의 온기를 나눴다.이른 아침이었다. 바닷바람이 유난히 잔잔했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했다.도윤은 먼저 깨어 있었고, 백시아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잠든 얼굴은 무방비했고, 오래 숨어 지내며 조심스럽게 단련된 긴장감이 사라져 있었다.도윤은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의 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그녀는 미세한 움직임에 눈을 떴고, 잠시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입가에 작게 웃음을 그렸다.“…이상하다. 이렇게 평화롭게 눈을 떠본 게 언제였더라.”“매일 이렇게 일어났으면 좋겠어요.”“그건… 과분한 소원 같아요.”“아니요. 당신도 이런 걸 누릴 자격 있어요.”시아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그 짧은 찰나에 무언가 감정을 삼킨 듯, 미세하게 숨을 내쉬었다.“잠깐 나갔다 올게요. 아침에 필요한 게 좀 있어서.”“혼자 가요?”“응. 마을 슈퍼 바로 근처니까 금방 다녀올게.”시아는 수건을 머리에 감고 나갔다.도윤은 혼잣말처럼 중얼였다.“한 걸음도… 혼자 두고 싶지 않은데.”마을의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고, 바닷물에 젖은 모래는 찰흙처럼 단단했다.시아는 익숙하게 슈퍼로 향하다가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걸음을 멈췄다.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감각.발소리는 조용했지만, 일정하게 그녀를 뒤따르고 있었다.그녀는 순간, 발을 멈추고 상점 유리창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반사된 유리에, 모자에 마스크를 쓴 한 남자의 형체가 아른거렸다.마을에서 본 적 없는 사람. 눈에 익지 않은 실루엣.시아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상점 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고르는 척했다.손끝이 떨리고 있었다.‘벌써 찾은 건가… 아니면, 그냥 우연

  • 아내 대행   31. 다시, 너의 그림자 앞에서

    기차가 멈춘 건 오후 세 시 무렵이었다.창밖엔 조용한 바다와, 늘어진 횟집 간판,그리고 비현실적으로 고요한 골목들이 이어지고 있었다.도윤은 스쳐 가는 마을의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 작게 숨을 내쉬었다.“여기에… 진짜 있는 걸까.”손에 쥔 쪽지는 이미 구겨지고 있었다.윤태섭이 준 그것엔 단 하나의 주소가 적혀 있었고,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더 이상 그 안에서 새로운 정보를 주지는 않았다.그럼에도 그는 왔다.왜냐면 그곳은 그녀의 마지막 ‘의지’가 닿은 곳이었으니까.버스도 다니지 않는 바닷가 마을.도윤은 트렁크가방도 없이,오직 어깨에 메신저백 하나만 멘 채로 하얀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바다 냄새. 햇빛에 그을린 나무 담장.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모든 것이 평화롭고, 그래서 더 불안했다.‘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그녀가… 나를 잊고 살고 있는 걸까.’아니, 잊기 위해 숨어 있는 걸까.주소가 가리키는 집은 해변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하얀 집이었다.오래된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고, 유리창엔 하얀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도윤은 골목 입구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그 집을 올려다보며 가슴이 조여 왔다.걸음을 내딛는 순간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만약, 그녀가 거기 없다면. 아니, 있다 해도 더는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그는 그 순간, 그녀의 얼굴보다 그녀의 무반응을 더 두려워했다.현관 앞으로 다가갔다. 초인종은 없었다.대신 낡은 종을 당기자, 작은 방울 소리가 울렸다.문 안에서 발소리가 났다.그리고 곧 문이 천천히 열렸다.햇빛에 반사돼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 실루엣, 가늘고도 낯익은 체구,말없이 문을 여는 손의 떨림.도윤은 그대로 굳어 섰다.“…시아.”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그 눈빛에는 놀라움도, 슬픔도, 기쁨도 있었다.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고, 그중 어느 것도 말로 표현되지 못한 채 눈빛에 고여 있었다.“…어떻게…”“이제 그만 숨지

  • 아내 대행   30. 방패에서 진심으로

    “시아를… 지키는 사람입니다.”“…지킨다고요? 누굴?”“백시아요. 당신이 지금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는, 그 사람.”도윤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남자는 미소도, 적대감도 없이 마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태연했다.“그녀가 도윤 씨에게 돌아가길 원했다면 지금쯤 당신 앞에 있었겠죠.”“…그럼 지금은?”“숨고 싶어 했어요.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지 않게.”“그럼 당신은 지금 그녀를 감금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요?”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나는 단지, 그녀가 스스로를 지키게 해준 것뿐입니다.당신이 다가가면 그녀는 다시 모든 걸 잃게 돼요.”도윤은 참았던 분노를 삼켰다.“그녀는… 도망친 게 아니에요. 살고 싶었어요. 그게…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었어요.”남자는 도윤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래서…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나요?”“…네.”“그럼 지켜보는 것도 사랑이라는 걸 이제부터 배우셔야 할 겁니다.”그 말만 남기고, 남자는 조용히 사라졌다.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펜션 거실엔 여전히 정적만이 가득했다.그러나 도윤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그리고 그 남자의 말처럼, 나를 떠올리기만 하면서 살아 있는 걸까.’도윤의 손엔 여전히 시아의 손글씨가 담긴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그 문장을 다시 읽는 순간, 마치 그녀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기억해. 진짜 위험은 너를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라, 너를 계속 못 본 척하는 사람이야.”그녀는 지금도 그 '위험'을 견디며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지켜보는 것도 사랑이라…”펜션을 떠나는 길목, 도윤은 스스로 되뇌었다.그 말은 얼핏 들으면 낭만처럼 들렸지만, 실상은 방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백시아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 있었고,그녀를 ‘지킨다’는 자는 결국 그녀를 감시하고,어딘가에 가두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정말… 널 지킨다는 게 그녀를 외롭게 만든 건

  • 아내 대행    29. 그녀를 숨긴 방

    폐쇄된 모텔이었다.서울 외곽, 지하철에서도 두 번 갈아타야 닿을 수 있는 오래된 주택가 뒷골목. 밤이면 불도 거의 켜지지 않는,이름조차 바랜 간판 위에 페인트 자국만이 누군가의 손길을 증명하고 있었다.도윤은 허리를 숙여 간신히 닫힌 철문을 밀었다.낡은 문짝은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그가 들고 온 건 작은 LED 손전등, 레코더에 저장된 GPS 로그 좌표, 그리고 백시아의 흔적을 기록한 노트.그는 203호 앞에 멈췄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방은 작았다. 오래된 침대와 벽걸이 거울, TV는 전원이 끊긴 지 오래였다.창문은 테이프와 검은 천으로 덧대져 있었고,공기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서랍엔 아직 종이컵과 녹차 티백이 있었고, 욕실에는 사용 흔적이 남은 칫솔,그리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가닥.시아의 것이 분명했다.도윤은 손전등으로 방을 샅샅이 훑었다.그리고 침대 프레임 밑, 낡은 신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그 안에는 종이 몇 장, 소형 MP3 하나,그리고 손목에 차는 의료용 경보 밴드가 있었다.그는 조심스럽게 MP3의 전원을 켰다.작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짧은 숨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오늘도… 여전히 밖에선 발소리가 들려요.”“누군가 나를 계속 찾고 있어요. 하지만 도윤… 그건 당신이 아니겠죠.당신이 내게 닿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나는 괜찮아요. 지금은 그냥, 조용히… 살아 있기만 하고 싶어요.”말이 끝날 즈음, MP3는 삐걱거리며 꺼졌다.그 순간이었다. 문 밖에서 아주 작게, 철계단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도윤은 순간 몸을 움츠리고, 숨을 죽였다.들고 있던 손전등의 불빛을 껐고, 방 안은 캄캄한 어둠에 휩싸였다.누군가… 이곳이 비워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잠시 후, 문 손잡이가 조용히 움직였다.‘따르륵’잠금장치는 걸려 있었지만, 그 움직임은 분명히 의도적이었다.도윤은 가방을

  • 아내 대행   28. 그림자 속의 타자

    “그럼… 나도 여기 있어요. 기다릴게요.”도윤이 마지막으로 남긴 그 문장은 채팅방 위에 조용히 떠 있었고,그날 이후로도 그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로그인했다.그리고 사흘 뒤, 마침내 채팅창 위에 다시 깜빡이는 문구가 떴다.[상대방이 입력 중입니다...]한 줄. 두 줄. 그리고 잠시 멈춤.도윤은 숨도 쉬지 못하고 그 문장을 기다렸다.화면 위, 단어들이 한 글자씩 타닥타닥 올라왔다.“오래 기다렸죠?”단 세 글자. 그런데 그 안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익숙했다.시아의 말투, 문장의 길이, 끝에 붙이지 않는 마침표. 모든 게 그녀 같았다.그러나 동시에, 낯설었다.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타자를 쳤다.“시아예요?”잠시의 정적. 그리고 이어진 대답.“...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 이름으로 살지 않아요.”“왜 돌아왔어요?”“그냥… 당신이 아직 거기 있나 보고 싶었어요.”도윤은 목이 말랐다.손바닥엔 식은 땀이 들러붙었고, 심장은 말도 안 되게 뛰고 있었다.“만날 수 있을까요?”이번엔 대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입력 중이라는 표시만 몇 번 깜빡이다가, 이내 꺼졌다.그 순간 그는 직감했다.화면 너머에서, 누군가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그 망설임은 백시아 특유의 것이 아니었다.몇 시간 뒤, 도윤은 채팅방 서버 로그를 추적했다.그리고 예상과 달리 IP는 예상보다 복잡하게 세탁되어 있었다.그건 백시아가 쓸 법한 흔적이 아니었다.너무 프로페셔널했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게 들었다.도윤은 노트를 펼쳐 이전까지 자신이 정리했던 모든 계정, 로그인 기록, 접속 시간대, 메모의 필체, 사진의 프레임을 다시 검토했다.모든 퍼즐 조각은 하나의 진실을 향해 가고 있었다.‘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존재가… 진짜 그녀일 리가 없다.’그날 밤, 도윤은 단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5월 5일. 그날 우리가 했던 약속, 기억해요?”그건 시아만이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단순한 날짜나

  • 아내 대행   27. 풍경 너머, 숨겨진 체온

    도윤은 새벽이 다 가기 전에 집을 나섰다.커피를 마시지도 못했고, 양말도 짝이 맞지 않았다.손엔 폰 하나만 들려 있었다.목적지는 단 하나였다.‘서울 종로구 모처’그녀의 마지막 접속이 찍힌 위치.IP가 허술하게 남긴 흔적 하나로 도윤은 그 좌표를 좁혔다.실제로 그가 갈 수 있는 건 좁디좁은 반경 수백 미터 정도였지만,그걸로 충분했다.그 정도 거리만 있어도, 그는 백 번이고 걸을 수 있었다.해가 막 떠오르던 시각,그는 오래된 한옥이 점점 사라져가는 동네의 골목 끝에 서 있었다.햇살은 건물 사이로 낡은 간판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대림문방구’, ‘순대국밥’, ‘세탁소’모두 20년은 되어 보이는 간판들.도윤은 그런 가게들 사이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그의 눈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뒷모습의 잔상, 그녀의 향기, 혹은 그가 만든 게임에 나왔던 배경과 닮은 벽지 무늬.무언가 하나만이라도 그녀와 닮았다면 멈춰 서서 오래 바라봤다.그리고 그 순간 그는 발견했다.‘사진 속 풍경.’그녀가 프로필 이미지로 등록했던, 흐릿한 사진 속 골목. 기울어진 벽, 녹슨 철문, 빨간 소화전.그 모든 게 지금 눈앞에 그대로였다.그는 마치 숨이라도 멎을 것처럼 천천히 다가갔다.골목 끝에 오래된 벤치가 있었고, 그 벤치 위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작은 종이컵. 절반쯤 식은 듯한 커피.그리고 컵 옆에, 누군가의 손글씨가 적힌 메모지 하나.‘잘 있죠?’흔들리는 손으로 도윤은 종이컵을 들었다.아직 따뜻했다.그는 주변을 재빨리 둘러봤다.사람 그림자도,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분명 방금 전까지 누군가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그녀였을까. 진짜로. 바로 이 자리에서, 그는 그녀의 체온을 느낀 것이다.그날 밤, 도윤은 그 종이 메모를 자신의 방 벽에 붙여두었다.창가 쪽,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위치.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자리.그 글씨를, 도윤은 수백 번쯤 읽었다.‘잘 있죠?’짧은 문장이었다.그런데 그 안에는 수백 가

  • 아내 대행   26. 그녀가 사라진 방

    도윤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현관의 잠금장치가 덜컥, 소리를 내며 닫히는 소음이 낯설게 들렸다.집 안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했다.마치 이 공간이 애초에 두 사람의 삶을 품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시아가 떠난 자리. 그녀의 신발이 사라졌고, 화장대 위에 늘 가지런히 놓여 있던 립스틱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욕실 선반에 걸려 있던 칫솔도 없었다.심지어 세탁기에 돌려놓은 속옷조차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정말, 다 가져갔네.”도윤은 멍하니 거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그녀의 체취는 아직 집안 곳곳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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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대행   25. 이름 없는 여자

    서울 시립병원 중환자실.흰 커튼 너머, 폐소독기의 알람이 조용히 울렸다 꺼졌다.의사와 간호사 몇 명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그 누구도 다급하지 않았다.이미 알고 있는 싸움의 끝이었기에.백시아. 호흡기와 링거에 의지해 겨우 생명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상태는‘회복 불가’.의학적으로 더는 시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그 곁에, 도윤이 앉아 있었다.하루 전까지 그를 감시하던 경찰은 모두 물러났다.그는 참고인에서 ‘무관한 일반인’으로 변경되었고, 어떠한 진술도, 증언도 거부했다.“그 여자를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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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대행   24. 이송차 안에서

    새벽 4시 10분.철문이 두 번 열리고, 경비 조명이 천천히 꺼졌다.백시아는 수갑과 족쇄를 찬 채, 검은색 호송복을 입고 교도소 밖으로 걸어나왔다.숨이 흰 안개처럼 입 밖으로 터졌다.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그녀의 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주차장엔 군용 트럭에 개조한 호송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조수석 쪽 문이 열리고 검은 재킷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처음 보는 인물. 하지만… 시선을 마주한 순간, 백시아는 알아차렸다.“조직이 보낸 놈이네.”남자는 대꾸 없이 뒷문을 열어 시아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하지 마. 어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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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대행    23. 증거 없는 고백

    서울중앙지법 사무국.경수 변호사는 묘한 웃음을 띠며 서류 한 장을 넘겼다.“사형 일정 재검토 신청서입니다.단, 피고인 측 변호인 사임 이후 공식적인 변론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건 이례적이지만 배경은 충분하죠.”그의 책상 위엔 두꺼운 서류철.그 안엔 정리된 피고인 백시아의 정신 감정 결과와 5건의 살인사건, 그리고 그녀가 저지른 범행 장면을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스틸 컷들이 담겨 있었다.이 모든 걸 정리해 넘긴 사람,권재석.그는 백시아의 사형 집행을 앞당기기 위해 로비와 여론전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었다.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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