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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아정이는 고수파
순간 거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고, 조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송경태가 내 어깨를 짓누르듯 잡고 목소리를 낮췄다.

“라희가 버렸어. 오래 두면 김치도 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너 생각해서 그런 거야.”

나를 생각해서라는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송경태를 바라봤다.

“당신도 알잖아. 이건 엄마가 남긴 마지막 음식이야. 내가 먹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윤라희 씨한테 먹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대체 누구 건강을 생각해서 버렸다는 거야? 왜 남의 물건에 마음대로 손대?”

생각해 보면 송경태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나를 꾸짖고 가르치려 들면서도 정작 아내로서 받아야 할 최소한의 존중조차 해 주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송경태는 당황한 듯 잠시 굳어 있다가 내 얼굴로 손을 뻗었다.

나는 있는 힘껏 그 손을 쳐 냈다.

“소이 씨!”

갑자기 윤라희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윤라희는 송경태를 보호하기라도 하듯 앞을 가로막더니 화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김치는 내가 버렸어요. 화가 나면 나한테 화내요. 왜 경태한테 그래요?”

안준호도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고작 김치 한 통 가지고 이럴 일이에요? 소이 씨가 이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불편해지잖아요.”

류시우는 아예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라희는 생물학 전공자예요. 그러니 소이 씨보다 훨씬 잘 알겠죠. 소이 씨를 생각해서 버려 줬더니, 고마운 줄을 모르네.”

누구 하나 내 입장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윤라희의 편을 들었고, 오히려 나를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는 사람처럼 몰아갔다.

게다가 사람들은 동정 섞인 눈빛으로 송경태를 바라봤다. 마치 어쩌다 저런 여자와 결혼했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송경태의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말을 하든 이제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단 하나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버린 엄마의 마지막 김치를 다시 담아 ‘살려’ 내는 것.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쓰레기통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김치를 하나씩 건져 내기 시작했다.

송경태가 다급하게 내 팔을 잡았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임신한 사람이 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어!”

그때 윤라희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윤라희도 곧장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쓰레기통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같이 꺼내 드릴게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와는 달리, 쓰레기통 안으로 손을 뻗은 윤라희는 내 손등을 세게 꼬집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아...”

갑작스러운 통증에 몸이 움찔하자,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윤라희를 밀어냈다.

윤라희는 힘없이 밀려나 바닥에 쓰러졌다. 고개를 들었을 때, 얼굴은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윤라희에게 달려갔다.

윤라희를 감싸듯 앞을 막아선 뒤, 하나같이 나를 적대적으로 노려봤다.

송경태가 떨리는 목소리로 버럭 화를 냈다.

“임소이! 너 지금 제정신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쓰레기통에 버려진 김치를 하나라도 더 건져 내는 데만 집중했다.

송경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곧이어 송경태가 내 팔을 거칠게 붙잡아 일으켰다.

윤라희가 당한 만큼 반드시 받아 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임소이, 당장 사과해.”

나는 송경태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송경태가 앞뒤 사정을 무시하고 윤라희 편을 든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내가 너무 무르고 순진했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웬만한 일은 참고 넘겼다.

하지만 이제 내 곁에는 나를 걱정해 줄 가족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 더 이상 참을 이유도 없었다.

“우리 이혼하자.”

말이 떨어지는 순간 송경태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결혼한 지 2년. 그동안 수도 없이 다투고 서로 언성을 높인 적도 많았지만, 내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송경태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윤라희가 불쑥 끼어들었다.

“소이 씨, 같은 여자로서 하는 말인데 이런 식으로 경태 마음 떠보지 마세요. 배가 벌써 이렇게나 불렀는데, 정말 이혼할 수 있겠어요?”

윤라희가 내 배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아이까지 지울 것도 아니면서...”

그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송경태는 누군가 자신을 협박하거나 조건을 내세워 뜻대로 움직이려 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송경태는 한동안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윽고 실망이 가득 밴 목소리로 말했다.

“임소이, 내가 그동안 너를 너무 제멋대로 굴게 내버려뒀지? 집에 틀어박혀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똑똑히 반성해.”

그 말을 끝으로 송경태는 윤라희의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섰다.

나머지 사람들도 곧바로 뒤따라 나갔다.

순식간에 소란스럽던 집 안에는 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건져 낸 김치를 깨끗한 용기에 옮겨 담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병원에서 온 문자였다.

[임소이 님, 예약하신 수술 일정 안내해 드립니다.]

수술까지 닷새 남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방으로 들어가 신분증과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챙겨 두고 조용히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친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소이야, 빨리 뉴스 봐.”

전화를 끊고 곧바로 포털을 열었더니, 메인 화면 가장 위에 송경태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속에서 송경태와 윤라희는 손을 맞잡은 채 해변을 걷고 있었다.

윤라희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사진을 확대한 뒤, 내 시선은 윤라희의 허리춤에 멈췄다. 드러난 맨살 위에는 송경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론은 송경태가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빼지 않았던 결혼반지까지 빼 버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송경태와 내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을 쏟아 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부터 서로 사랑해 온 송경태와 윤라희가 오랜 이별 끝에 다시 만나 서로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며 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던 팬들마저 각성한 듯 내 개인 계정으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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