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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음 창고에 갇혔다

나는 얼음 창고에 갇혔다

Por:  고래Completado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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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을 뿐인데, 그 일로 남편의 소꿉친구가 감기에 걸렸다. 분노한 남편은 사람을 시켜서 임신한 나를 그대로 얼음 창고에 가둬 버렸다. “네가 내 아이를 가졌다고 해서 아연이한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 “아연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리면, 네가 백 배로 갚게 만들 거야!” 추위에 온몸을 떨던 나는 울면서 남편에게 머리를 조아려 잘못을 빌었다. 앞으로는 반드시 손아연을 잘 보살피며 속죄하겠다고, 다시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남편은 차가운 얼굴로 사람들에게 얼음 창고의 문을 닫으라고 명령했다. 이 정도로 혹독한 벌을 줘야 내가 뼈저리게 잘못을 깨달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남편의 소꿉친구 손아연의 감기가 다 낫고 나서야, 비로소 얼음 창고에 가둬 둔 나를 떠올렸다. “여희진, 이제 정말 잘못을 뉘우쳤어? 당장 아연이한테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하겠다고 약속하면 널 풀어줄게.” 하지만 남편은 몰랐다. 얼음 창고에 갇힌 나는 이미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는 것을. 남편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아이 역시 이미 숨이 끊어져서, 생명의 기운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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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여희진은 대체 무슨 속셈인 거야? 아연이가 몸이 약한 걸 뻔히 알면서 창문을 열어 감기까지 걸리게 만들다니, 분명 아연이를 해치려고 작정한 거야!”육승훈은 체온계를 값비싼 캐시미어 카펫 위에 내던졌다.체온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육승훈의 눈에 서린 살기가 거실 전체를 짓눌렀다.곁에 있던 가사도우미들은 겁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벽 쪽에 웅크리고 있었다.집사 강철수가 용기를 내 한 걸음 나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사모님은 그저 방이 답답해서 창문을 열어 환기하신 것뿐입니다.” “그날 바람도 그렇게 세지 않았고, 아연 씨가 밤에 이불을 제대로 안 덮으셔서 그랬을 수도...”“닥쳐!”육승훈이 강철수의 말을 매섭게 끊었다.육승훈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너도 그 여자를 편드는 거야? 아연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바람을 쐬면 안 되는데, 여희진이 시집온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모를 리가 없어!”“그 여자는 내 마음속에서 아연이가 차지한 자리를 질투해서 일부러 이런 짓을 벌인 거라고!”육승훈이 말하는 ‘아연이’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 손아연이었다.육승훈의 마음속에서 손아연은 다정하고 선량하며, 나약해서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존재였다.평생 육승훈이 지켜줘야 할 보석 같은 사람이었다.그리고 나는 그저 가문 간의 정략결혼으로 육승훈에게 억지로 떠맡겨진 아내일 뿐, 그저 사모님이라는 이름만 차지한 불필요한 여자였다.“그 여자를 데려와!”육승훈의 목소리에는 한 점 온기도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경호원 두 명에게 끌려와서 거실로 들어왔다.임신 5개월이라 배도 제법 불러 있었다.헐렁한 임부복으로도 볼록하게 나온 배를 감출 수는 없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해명했다.“승훈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정말 그냥 방이 답답해서 창문을 좀 열었을 뿐이야. 아연이가 감기에 걸릴 줄은 몰랐어...”“몰랐다고?”육승훈이 비웃으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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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차가운 쇠사슬이 내 손목과 발목을 옭아맸다.나는 얼음 창고 한가운데 있는 돌기둥에 묶여 있었다.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발바닥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면서, 얇은 임부복을 뚫고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얼음 창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얼음이 녹아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이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고요한 공간을 채웠다.나는 몸을 웅크린 채 배를 꼭 감싼 채, 내 체온으로 뱃속의 아이를 따뜻하게 해주려고 애썼다.“아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너를 이렇게 고생하게 만들다니.”나는 목이 메어 울었다.눈물이 차가운 바닥에 떨어지자 순식간에 작은 얼음 구슬로 얼어붙었다.“너는 꼭 버텨야 해. 엄마가 지켜줄게. 우리 꼭 여기서 나갈 수 있어...”하지만 추위는 탐욕스러운 야수처럼 내 남은 체온을 조금씩 집어삼켰다.손발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의식도 점점 흐려졌다.그 순간, 육승훈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그때의 육승훈은 비록 내게 차갑기는 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잔인하지는 않았다.우리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다.육씨 가문은 여씨 가문의 지원이 필요했고, 나는 어릴 적부터 육승훈을 짝사랑했다.육승훈과 결혼하면 행복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악몽의 시작이었다.손아연의 존재는 우리 사이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손아연은 늘 육승훈 앞에서 은근히 약한 척하면서 내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그러면 육승훈은 매번 내게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무조건 나를 비난했다.지난번에는 손아연이 육승훈의 어머니가 남긴 골동품 화병을 깨뜨리고는 울면서 내가 밀어서 그랬다고 했다.육승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뺨을 때린 뒤, 이틀 동안 방에 가두고 굶겼다.이번에는 그저 창문을 열어 환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아이를 죽이려고 하다니.얼마나 지났을까, 얼음 창고 문이 살짝 열리며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나는 육승훈이 마음을 돌린 줄 알고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두꺼운 패딩을 입은 손아연이 나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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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육승훈은 손아연의 침대 곁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이불을 여며주었다.손아연은 육승훈의 품에 기대어 창백한 얼굴로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승훈 오빠, 나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그러니까 더 이상 화내지 마.”손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희진 언니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풀어줘.” “얼음 창고 안이 그렇게 춥다는데, 언니는 아직 아이도 가지고 있잖아.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안 되잖아.”“풀어주라고?”육승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 여자가 너를 이렇게 고생시켰는데 어떻게 쉽게 풀어줘? 제대로 반성해야 다음에 감히 너를 괴롭히지 않지.”손아연의 눈에 기쁨이 스쳤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척했다.“하지만 난 정말 괜찮아. 그리고 희진 언니가 임신한 건 오빠 아이잖아.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 생기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후회?”육승훈이 비웃었다.“내가 아이를 원하면 얼마든지 낳아줄 여자는 있어. 너만 괜찮다면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손아연은 속으로는 기뻐 죽겠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사양하는 척했다.“승훈 오빠,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완전히 나으면 희진 언니를 풀어주고,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해. 그러면 이 일은 없던 걸로 할게.”육승훈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 말대로 하지. 네가 다 나으면 데려와서 사과하게 할게.”육승훈은 이때까지도 얼음 창고 안의 내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배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마치 수많은 칼이 오장육부를 휘젓는 듯했다.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의식도 점점 흐려졌다.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그분들이 지금 내 처지를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처음에 내가 육승훈과 결혼하겠다고 고집했을 때, 부모님은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결국 내 선택을 존중해주셨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육승훈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아가, 미안해. 엄마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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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일주일 후, 손아연의 감기는 완전히 나았다.손아연은 한껏 치장을 한 뒤 육승훈의 팔짱을 끼고 뒷산의 얼음 창고로 향했다.“승훈 오빠, 이제 희진 언니를 내보내 주자.”손아연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눈빛에는 기대감이 역력했다.육승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호원에게 얼음 창고 문을 열라고 했다.문이 열리는 순간,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와 함께 희미한 피 냄새가 밀려왔다.육승훈은 미간을 찌푸렸다.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올랐다.육승훈이 얼음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돌기둥에 쇠사슬로 묶인 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얇은 임부복을 입은 채 온몸이 얇은 서리로 덮여 있었고, 백지처럼 창백해진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눈은 굳게 감긴 채, 미동도 없이 차가운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여희진!”육승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채 급히 다가갔다.육승훈은 손을 뻗어 내 코끝의 숨을 확인하려 했지만, 내 몸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손을 움찔하며 거두고 말았다.그제야 육승훈은 내 몸이 이미 굳어버렸으며, 한 점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죽은 척하지 마!”육승훈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육승훈은 내 몸을 흔들며 소리쳤다.“일부러 이러는 거 다 알아. 벌을 피하려는 거잖아? 얼른 일어나! 아연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해!”하지만 아무리 흔들어도 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손아연도 얼음 창고 안으로 들어와 내 모습을 보더니, 놀란 척 입을 틀어막았다.“희진 언니가... 언니가 왜 이렇게 된 거야?”육승훈은 손아연을 상대하지 않았다.육승훈은 다시 손을 뻗어 떨리는 손끝으로 내 코끝을 살폈다.숨을 쉬지 않았다.정말 아무런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육승훈은 다시 내 배를 바라보았다.살짝 불러 있던 배는 이제 평평하게 꺼져 있었다.육승훈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그곳에는 굳어버린 핏자국과 이미 차갑게 식은 작은 몸이 놓여 있었다.우리 아이였다.순간, 육승훈은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서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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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육승훈은 사람을 시켜 내 시신과 아이의 시신을 함께 육씨 가문 저택으로 옮겼다.육승훈은 거실 소파에 앉은 채 텅 빈 눈으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강철수는 그런 육승훈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웠다.한참을 망설이다가 강철수는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사모님은 줄곧 대표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결혼하신 뒤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대표님 아침을 준비하셨고, 밤에 아무리 늦게 들어오셔도 기다리셨습니다.”“대표님께서 편찮으실 때는 밤새 곁을 지키며 간호하셨습니다.”“사모님은 대표님 마음속에 아연 씨가 있다는 걸 아셨지만,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그저 묵묵히 아내로서 할 일을 다하셨습니다.”“임신하신 뒤에는 더욱 행복해하셨습니다. 매일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이야기도 해주면서 아이가 태어나기를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그날 창문을 연 것도 방이 너무 답답해서 아이에게 안 좋을까 봐 잠깐 환기한 것뿐이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겁니다.”강철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육승훈의 가슴을 찔렀다.육승훈의 머릿속에 내가 그를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떠올랐다.임신 후 행복하게 웃던 내 모습과, 육승훈이 나를 가둘 때 애원하던 모습까지.후회가 파도처럼 육승훈을 삼켰다.그제야 육승훈은 자신이 줄곧 손아연의 겉모습에 속아왔고, 내 진심을 외면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내가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았을까...”육승훈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목 놓아 울었다.“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돌아와 줘. 내가 잘할게. 우리 아이도 잘 돌볼게...”하지만 아무리 울부짖어도 내 목숨도,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목숨도 되돌릴 수는 없었다.그때 손아연이 물 한 잔을 들고 다가와서 육승훈을 위로하려고 했다.하지만 손아연을 본 순간, 육승훈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었다.“꺼져! 네 얼굴 보기 싫어!”손아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얼굴에 떠 있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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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육승훈은 손아연을 미친 듯이 조사하기 시작했다.육승훈은 손아연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왜 번번이 나를 모함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조사 결과는 육승훈을 충격에 빠뜨렸다.알고 보니 손아연은 결코 나약하고 선량한 소꿉친구가 아니었다.손아연은 어릴 때부터 나를 질투했다.내가 집안도 좋고 예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게다가 육승훈의 부모님이 나와 육승훈을 정략결혼을 시키려고 했다는 것도 손아연의 질투를 키웠다.손아연은 줄곧 육승훈을 좋아했고, 그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손아연은 일부러 육승훈 앞에서 나약하고 불쌍한 척하면서, 그의 동정과 보호를 받아냈다.손아연은 계속해서 나를 모함하고 육승훈이 나를 미워하고 버리게 만들려고 했다.그리고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해서 육씨 집안의 사모님이 되려고 했다.지난번 골동품 화병을 깨뜨린 것도 손아연이 일부러 꾸민 일이었다.이번 감기 역시 손아연이 꾸며낸 일이었다.손아연은 자신이 몸이 약해 조금만 바람을 쐬어도 감기에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내가 창문을 연 뒤에 창가로 가서 바람을 쐬었다. 육승훈에게 자신이 감기에 걸린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고, 내가 자신을 일부러 해쳤다고 믿게 만든 것이었다.육승훈은 조사 결과를 보며 분노에 온몸이 떨렸다.자신이 줄곧 아끼고 보호해 왔던 사람이 이토록 악독한 여자였다니,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손아연, 이 악독한 년!”육승훈이 이를 갈며 말했다.육승훈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육승훈은 내가 얼음 창고에서 겪었던 고통과 우리 아이가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모습이 떠올랐다.후회와 분노가 점점 커져갔다.육승훈은 반드시 손아연에게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맹세했다.육승훈은 사람을 시켜 손아연을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게 했다.손아연은 육승훈의 차가운 눈빛에 속으로 겁을 먹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승훈 오빠, 무슨 일로 불렀어?”“무슨 일?”육승훈이 비웃으며 조사 결과를 손아연 앞에 던졌다.“네가 무슨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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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육승훈은 내 묘소를 찾아왔다.묘비에 새겨진 사진 속 나는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하지만 그 미소는 칼날처럼 육승훈의 가슴을 찔렀다.육승훈은 아이의 작은 시신도 나와 함께 묻었다.아이는 아직 이름조차 얻지 못했고, 이 세상의 따스함도 느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결국 자신의 아이였다.“미안해.”육승훈은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지금 무슨 말을 해도 늦었다는 거 알아. 내가 손아연한테 속아서 눈이 멀었어.”“너한테 그렇게 잔인하게 굴어서도 안 됐고, 우리 아이를 죽게 만들어서도 안 됐어.”“손아연은 얼음 창고에 가둬뒀어. 너와 아이의 목숨값을 치르게 하려고.”“네게 입힌 상처를 이것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네가 하늘에서 이 모든 걸 알고 있다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정말 후회하고 있어. 너와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육승훈은 그렇게 무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끊임없이 참회했다.하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다시는 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그때 강철수가 다가와 육승훈에게 일기장 하나를 건넸다.“이건 사모님의 일기장입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했습니다.”육승훈은 일기장을 받아 들고서 떨리는 손으로 펼쳤다.그 안에는 육승훈과 결혼한 뒤의 일들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었다.육승훈을 향한 나의 사랑과 임신 후의 기쁨, 그리고 그에게 상처받은 뒤의 고통과 절망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오늘도 승훈이 손아연 때문에 나한테 화를 냈다. 정말 억울하다. 나는 아연이를 괴롭힌 적이 없는데, 승훈이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아가, 오늘 엄마가 너한테 음악을 들려줬어. 들었어? 엄마는 정말 네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승훈이 나를 방에 가뒀다. 너무 배고프고 무서워. 아가, 너는 꼭 버텨야 해. 엄마가 너를 지켜줄게.][나는 얼음 창고에 갇혔다. 너무 추워. 아가, 엄마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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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손아연은 얼음 창고에 갇힌 채 온갖 고초를 겪었다.추위와 굶주림, 공포가 조금씩 손아연의 의지를 갉아먹었다.그제서야 손아연은 내가 그때 얼음 창고에서 겪었던 고통을 뼈저리게 깨달았다.손아연은 후회하기 시작했다.자신이 나를 질투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번번이 모함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꼴이 되지 않았을 텐데.하지만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육승훈은 손아연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매일 가사도우미를 시켜서 음식과 물을 조금씩만 보내며, 얼음 창고에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게 만들었다.손아연은 육승훈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육승훈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육승훈의 마음속에는 나에 대한 죄책감과 손아연에 대한 증오만이 가득했다.며칠 후, 가사도우미는 손아연이 이미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얼어붙은 손아연의 몸은 굳어 있었고, 얼굴에는 공포의 표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육승훈은 그 소식을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손아연의 죽음은 그의 마음속 증오를 조금 덜어줄 뿐, 나에게 입힌 상처를 메워주지는 못했다.육승훈은 여전히 매일 내 무덤 앞을 지켰다.하루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도.육승훈이 오랫동안 회사를 돌보지 않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주주들은 육승훈에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고, 육씨 가문의 사업은 빠르게 쇠락했다.하지만 육승훈은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재산과 지위는 이미 육승훈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육승훈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은 나와 아이였지만, 우리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육승훈은 자주 꿈에서 나와 아이를 만났다.꿈속에서 나는 웃으며 육승훈에게 다가갔고, 품에는 우리 아이를 안고 있었다.하지만 손을 뻗어서 우리를 안으려고 하면, 우리는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남자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육승훈은 이것이 모두 환상일 뿐이며, 다시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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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가을바람이 누렇게 마른 낙엽을 휘몰아 묘비 앞에서 한 바퀴 돌리더니, 다시 육승훈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육승훈은 닳아서 맨들맨들해진 복숭아나무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지팡이 머리에 새겨진 연꽃덩굴 무늬는 이미 오랜 세월에 빛을 잃었다. 그 자신도 세월에 깎이고 닳아서 늙고 쇠약해져 있었다.몇 년 동안 육승훈은 거의 무덤 앞에서 살다시피 했다.빛 바랜 양모 담요 한 장을 묘비 옆에 깔고, 그 위에는 내가 살아생전 가장 좋아하던 재스민 향을 피우는 향로를 놓았다.하지만 지금 향로 속 향재는 오래전에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따금 육승훈이 뭔가 떠올릴 때면 떨리는 손으로 성냥을 그어 값싼 향 하나를 피웠다. 그리고 가느다란 연기가 바람 속에 허무하게 흩어지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육승훈의 머리카락은 전부 하얗게 세었고, 드문드문 두피에 달라붙어 거무틱틱한 두피를 드러냈다.눈가의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게 패었고, 한때 날카롭던 두 눈마저 탁하게 만들었다.앉을 때마다 육승훈은 묘비를 붙잡고 한참을 쉬어야 했다.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침 소리는 낡은 풀무를 잡아당기는 듯했고, 그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따라왔다.강철수가 수없이 별장으로 돌아가 살고 간병인도 구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매번 고개만 저었다.야윈 손가락으로 묘비에 새겨진 내 이름을 거듭 어루만지며,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만지는 듯했다.“희진이는 별장의 쓸쓸함을 싫어해.”육승훈은 늘 그렇게 중얼거렸다.“여기엔 희진이가 좋아하던 오동나무도 있고, 아이도 함께 있어. 희진이는 외롭지 않아.”사실 육승훈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날 새벽,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육승훈은 빛바랜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임시로 지은 판잣집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걸어 나왔다.판잣집은 강철수가 사람을 시켜 지은 것으로, 무덤 옆에 세워졌다.안에는 허름한 나무 침대 하나와 석탄을 때는 작은 난로 하나뿐이었다. 겨울에는 얼음 창고처럼 추웠고, 여름에는 찜통처럼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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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나는 허공에 떠서 육승훈의 시신이 실려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마음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미움도 원망도 없이, 그저 낯선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한때 나는 육승훈을 평생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다.얼음 창고에서 내게 보였던 육승훈의 냉담함을 미워했고, 우리 아이를 죽게 만든 것을 미워했다. 또 손아연에게 눈이 멀어서 번번이 내게 상처 입힌 것을 미워했다.하지만 영혼이 되어 이곳에서 육승훈이 평생 속죄하며 살아온 모습을 지켜보았다.한때 의기양양하던 육 대표가 늙고 초췌한 노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미움은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서서히 사라져갔다.용서한 게 아니라, 더는 미워할 가치도 없어서였다.나는 한때 육승훈을 그토록 뜨겁게 사랑했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하지만 그 남자는 내 사랑을 발밑에 짓밟았고, 내 존엄마저 산산조각으로 냈다.그 사랑은 이미 얼음 창고의 추위와 절망 속에서 얼어붙어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렸다.바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와 아빠였다.두 분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의 옷차림을 하고 계셨다.엄마는 짙은 남색 니트, 아빠는 회색 옷을 입고 계셨다.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걸어오셨다.두 사람 곁에는 아이 하나도 함께 있었다.하얀 우주복을 입은 동그란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커다란 두 눈은 나를 쏙 빼닮았다.바로 우리의 아이였다.아이는 아주 건강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더 이상 얼음 창고 속에서 차갑게 굳어 있던 작은 시신이 아니었다.“희진아, 우리가 데리러 왔어.”엄마가 손을 내밀었다.엄마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내 어릴 적 기억 속과 똑같았다.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나는 세 사람에게 달려가서 엄마의 품에 안겼다.엄마는 어릴 때 내가 속상한 일을 겪었을 때처럼 다정하게 내 등을 토닥이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이제 울지 마. 우리 희진이 고생 많았지. 이제 다시는 네가 고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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