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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비담
강루인의 순종적인 모습에 익숙해진 주영도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항이 썩 달갑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괜한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뻔히 알면서도 굳이 모욕을 자초했다.

사람은 허약할 때 쉽게 서러움을 느끼는 법이다. 그동안 꾹 참았던 감정들이 터져 나와 주영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 5주년 결혼기념일이야.”

그 말에 주영도가 흠칫했다. 정말로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그녀 혼자 결혼식을 올렸으니까.

주영도의 말투가 조금 차분해졌다.

“나중에 보상해줄게.”

그 대답에 강루인의 마음은 더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젠 그와 다투고도 싶지 않아 강루인이 먼저 대화를 끝냈다.

“내일 법원 가서 서류 정리하자.”

강루인이 또다시 이혼 얘기를 꺼내자 주영도가 불쾌함을 드러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해. 그 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

평소였더라면 강루인은 그의 뜻에 따랐겠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농담 아니야.”

실내 공기가 모두 빠져나간 듯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가 퍼져 나갔다.

바로 그때 주영도의 휴대폰이 울렸다. 하도 조용해서 구아정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오빠, 나 욕실에서 넘어졌는데 발목을 삐끗한 것 같아...”

주영도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지금 바로 갈게.”

그러고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영도는 더 이상 강루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늘 밤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당분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나가려 하자 강루인은 무의식적으로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만 살짝 까딱였다가 끝내 참았다.

아래층에서 엔진 소리가 들렸고 주영도는 그대로 가버렸다.

강루인은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

...

다음 날 아침 7시 30분, 강루인이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주영도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이젠 5년 동안 이어온 습관을 바꿔야 했다.

그녀는 캐리어를 꺼내 값비싼 물건들을 챙겼다. 보석 액세서리들 모두 주영도가 선물한 것들이었다.

결혼 5년 동안 주영도의 사랑은 얻지 못해도 물질적인 면에서는 그녀를 섭섭지 않게 해줬다.

만약 구아정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강루인은 결혼 생활을 계속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결혼에 사랑도 없고 충성도 없다면 무엇을 믿고 버티면서 자기기만을 해야 한단 말인가?

캐리어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강루인을 보며 진경자가 물었다.

“사모님, 출장 가세요?”

강루인은 짐짓 그런 척하며 집을 나간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말하자마자 바로 시어머니의 귀에 들어갈 게 뻔했으니까.

시어머니가 알게 되면 분명히 나서서 막을 것이다. 강루인을 끔찍이 아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가 ‘복’이 많아서 복덩이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선샤인 빌리지를 나온 그녀는 혼수로 장만했던 집으로 가서 짐을 정리한 후 절친 함지율을 만났다.

“정말 이혼하려고?”

강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산을 더 많이 나눠 가질 수 있게 도와줘.”

주영도의 재산을 절반 나눠 가지는 건 기대하지 않았다. 5분의 1만 받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돈이 필요 없었지만 병원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필요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함지율은 찬성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주영도의 집안 배경이나 외모를 보면 최고의 결혼 상대였으니까.

하지만 감정적으로 봤을 땐 무조건 지지할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누가 먼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다.

과부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심지어 평생 주씨 가문에 갇혀 허울뿐인 인생을 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좋아한다는 이유로 강루인은 망설임 없이 액땜 신부가 되었다. 그녀가 주영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함지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강루인이 이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함지율이 침을 퉤 하고 내뱉었다.

“빌어먹을 것들!”

주영도가 빌어먹을 인간이든 인간쓰레기든 강루인은 더는 그들 사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 가진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마음먹었다.

함지율과 얘기를 끝낸 후 강루인은 회사로 돌아갔다.

현재 그녀는 주선 그룹 홍보팀에서 일했고 주선 그룹은 주씨 가문의 기업이었다.

시어머니는 원래 그녀를 주영도의 비서 자리에 앉혀 그녀의 복을 가까이에서 받게 하려 했지만 주영도가 원하지 않은 바람에 결국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혼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더는 이곳에서 일할 필요가 없었다.

강루인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사직서를 작성했다. 그만두겠다는 그녀의 말에 상사는 무척이나 의아해했다.

“갑자기 그만두려는 이유가 뭐야?”

그녀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씀드릴 수 없어요.”

“신중하게 생각했어?”

“네.”

강루인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 이대로 보내는 건 아쉬웠지만 잡아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상사는 더는 묻지 않았다.

퇴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강루인은 마무리해야 할 업무를 처리했다.

점심 구내식당.

강루인이 밥을 먹고 있는데 귓가에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이 왜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시죠? 옆에 있는 젊은 여자는 누구예요?”

그 말에 강루인은 무의식적으로 쳐다봤다. 사람들 속에 있는 주영도와 구아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표님이 새로 뽑은 비서라고 들었어요.”

“그런 것 같지 않은데요?”

구아정이 무슨 말을 했는지 주영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걸 보면 단순한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 같지 않았다.

“대표님 결혼했잖아요. 사모님이 아닐까요?”

강루인은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입사 첫날 주영도는 신분을 드러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고 강루인은 그의 뜻을 고분고분 따랐다.

하여 오늘날까지 그녀가 주영도의 아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맞는 것 같아요. 대표님이 여자랑 저렇게 가깝게 지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때 비서 노윤환이 음식을 가져왔고 주영도는 구아정에게 젓가락을 건넸다. 구아정이 자연스럽게 그의 챙김을 누리는 것만 봐도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루인이 젓가락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였다.

결혼 5년 동안 챙겨주는 쪽은 늘 강루인이었고 주영도는 그녀를 챙겨준 적이라곤 없었다.

챙겨줄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강루인이 그의 챙김을 받을 자격이 없었던 것이었다.

“루인 씨, 괜찮아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강루인은 고개를 숙여 눈물을 감췄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난 다 먹었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그러고는 식판을 들고 식당을 나갔다.

마침 출구 쪽으로 시선이 향했던 주영도는 허둥지둥 걸어 나가는 강루인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구아정도 알아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강루인을 본 순간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이내 우쭐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주영도가 노윤환에게 물었다.

“어제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노윤환이 답했다.

“사모님께서 감기에 걸리셨어요.”

이건 강루인의 대답이었다.

주영도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납득했다.

‘어쩐지 어젯밤에 엄청 예민하더라니.’

“tiii에서 핑크 다이아몬드를 새로 들여왔대. 목걸이를 하나 골라서 보내줘.”

그러고는 노윤환이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일단 나한테 먼저 보내.”

구아정의 눈이 반짝이더니 적절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오빠를 불러내서 루인 언니가 화 많이 났지? 오해했다면 내가 가서 설명할게.”

주영도가 말했다.

“괜찮아.”

그 순간 구아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퇴근 후 강루인은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오늘 밤에는 샤부샤부를 해먹을 생각이었다.

결혼 후 주영도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샤부샤부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30평 정도 되는 집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실내는 향기로 가득했다. 강루인은 홀로 식탁에 앉았다.

모든 것이 익숙했지만 오랫동안 오지 않아 조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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