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Author: 비담
강루인의 순종적인 모습에 익숙해진 주영도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항이 썩 달갑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괜한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뻔히 알면서도 굳이 모욕을 자초했다.

사람은 허약할 때 쉽게 서러움을 느끼는 법이다. 그동안 꾹 참았던 감정들이 터져 나와 주영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 5주년 결혼기념일이야.”

그 말에 주영도가 흠칫했다. 정말로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그녀 혼자 결혼식을 올렸으니까.

주영도의 말투가 조금 차분해졌다.

“나중에 보상해줄게.”

그 대답에 강루인의 마음은 더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젠 그와 다투고도 싶지 않아 강루인이 먼저 대화를 끝냈다.

“내일 법원 가서 서류 정리하자.”

강루인이 또다시 이혼 얘기를 꺼내자 주영도가 불쾌함을 드러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해. 그 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

평소였더라면 강루인은 그의 뜻에 따랐겠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농담 아니야.”

실내 공기가 모두 빠져나간 듯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가 퍼져 나갔다.

바로 그때 주영도의 휴대폰이 울렸다. 하도 조용해서 구아정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오빠, 나 욕실에서 넘어졌는데 발목을 삐끗한 것 같아...”

주영도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지금 바로 갈게.”

그러고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영도는 더 이상 강루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늘 밤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당분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나가려 하자 강루인은 무의식적으로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만 살짝 까딱였다가 끝내 참았다.

아래층에서 엔진 소리가 들렸고 주영도는 그대로 가버렸다.

강루인은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

...

다음 날 아침 7시 30분, 강루인이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주영도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이젠 5년 동안 이어온 습관을 바꿔야 했다.

그녀는 캐리어를 꺼내 값비싼 물건들을 챙겼다. 보석 액세서리들 모두 주영도가 선물한 것들이었다.

결혼 5년 동안 주영도의 사랑은 얻지 못해도 물질적인 면에서는 그녀를 섭섭지 않게 해줬다.

만약 구아정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강루인은 결혼 생활을 계속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결혼에 사랑도 없고 충성도 없다면 무엇을 믿고 버티면서 자기기만을 해야 한단 말인가?

캐리어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강루인을 보며 진경자가 물었다.

“사모님, 출장 가세요?”

강루인은 짐짓 그런 척하며 집을 나간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말하자마자 바로 시어머니의 귀에 들어갈 게 뻔했으니까.

시어머니가 알게 되면 분명히 나서서 막을 것이다. 강루인을 끔찍이 아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가 ‘복’이 많아서 복덩이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선샤인 빌리지를 나온 그녀는 혼수로 장만했던 집으로 가서 짐을 정리한 후 절친 함지율을 만났다.

“정말 이혼하려고?”

강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산을 더 많이 나눠 가질 수 있게 도와줘.”

주영도의 재산을 절반 나눠 가지는 건 기대하지 않았다. 5분의 1만 받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돈이 필요 없었지만 병원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필요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함지율은 찬성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주영도의 집안 배경이나 외모를 보면 최고의 결혼 상대였으니까.

하지만 감정적으로 봤을 땐 무조건 지지할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누가 먼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다.

과부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심지어 평생 주씨 가문에 갇혀 허울뿐인 인생을 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좋아한다는 이유로 강루인은 망설임 없이 액땜 신부가 되었다. 그녀가 주영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함지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강루인이 이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함지율이 침을 퉤 하고 내뱉었다.

“빌어먹을 것들!”

주영도가 빌어먹을 인간이든 인간쓰레기든 강루인은 더는 그들 사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 가진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마음먹었다.

함지율과 얘기를 끝낸 후 강루인은 회사로 돌아갔다.

현재 그녀는 주선 그룹 홍보팀에서 일했고 주선 그룹은 주씨 가문의 기업이었다.

시어머니는 원래 그녀를 주영도의 비서 자리에 앉혀 그녀의 복을 가까이에서 받게 하려 했지만 주영도가 원하지 않은 바람에 결국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혼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더는 이곳에서 일할 필요가 없었다.

강루인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사직서를 작성했다. 그만두겠다는 그녀의 말에 상사는 무척이나 의아해했다.

“갑자기 그만두려는 이유가 뭐야?”

그녀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씀드릴 수 없어요.”

“신중하게 생각했어?”

“네.”

강루인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 이대로 보내는 건 아쉬웠지만 잡아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상사는 더는 묻지 않았다.

퇴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강루인은 마무리해야 할 업무를 처리했다.

점심 구내식당.

강루인이 밥을 먹고 있는데 귓가에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이 왜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시죠? 옆에 있는 젊은 여자는 누구예요?”

그 말에 강루인은 무의식적으로 쳐다봤다. 사람들 속에 있는 주영도와 구아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표님이 새로 뽑은 비서라고 들었어요.”

“그런 것 같지 않은데요?”

구아정이 무슨 말을 했는지 주영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걸 보면 단순한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 같지 않았다.

“대표님 결혼했잖아요. 사모님이 아닐까요?”

강루인은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입사 첫날 주영도는 신분을 드러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고 강루인은 그의 뜻을 고분고분 따랐다.

하여 오늘날까지 그녀가 주영도의 아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맞는 것 같아요. 대표님이 여자랑 저렇게 가깝게 지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때 비서 노윤환이 음식을 가져왔고 주영도는 구아정에게 젓가락을 건넸다. 구아정이 자연스럽게 그의 챙김을 누리는 것만 봐도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루인이 젓가락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였다.

결혼 5년 동안 챙겨주는 쪽은 늘 강루인이었고 주영도는 그녀를 챙겨준 적이라곤 없었다.

챙겨줄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강루인이 그의 챙김을 받을 자격이 없었던 것이었다.

“루인 씨, 괜찮아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강루인은 고개를 숙여 눈물을 감췄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난 다 먹었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그러고는 식판을 들고 식당을 나갔다.

마침 출구 쪽으로 시선이 향했던 주영도는 허둥지둥 걸어 나가는 강루인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구아정도 알아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강루인을 본 순간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이내 우쭐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주영도가 노윤환에게 물었다.

“어제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노윤환이 답했다.

“사모님께서 감기에 걸리셨어요.”

이건 강루인의 대답이었다.

주영도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납득했다.

‘어쩐지 어젯밤에 엄청 예민하더라니.’

“tiii에서 핑크 다이아몬드를 새로 들여왔대. 목걸이를 하나 골라서 보내줘.”

그러고는 노윤환이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일단 나한테 먼저 보내.”

구아정의 눈이 반짝이더니 적절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오빠를 불러내서 루인 언니가 화 많이 났지? 오해했다면 내가 가서 설명할게.”

주영도가 말했다.

“괜찮아.”

그 순간 구아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퇴근 후 강루인은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오늘 밤에는 샤부샤부를 해먹을 생각이었다.

결혼 후 주영도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샤부샤부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30평 정도 되는 집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실내는 향기로 가득했다. 강루인은 홀로 식탁에 앉았다.

모든 것이 익숙했지만 오랫동안 오지 않아 조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테니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28화

    한편 구아정의 상태가 안정되었다.의사가 말했다.“환자분은 안정이 필요합니다. 흥분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주영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병실 안.구아정이 눈을 떴다. 안색이 창백했고 몹시 쇠약해 보였다.“오빠한테 또 신세를 졌네.”주영도가 침대 앞에 서서 말했다.“내 명의로 된 섬이 하나 있는데 사계절 내내 날씨가 온화해서 휴양하기 딱이야. 몇 달 가서 쉬다 오는 게 어때?”그 말에 구아정의 안색이 확 변했다.“무슨 뜻이야? 날 가두기라도 하겠단 말이야?”주영도가 돌려서 말했다.“기사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잖아. 한동안 멀리 가 있으면 사람들도 널 잊을 거야.”그러고는 그녀의 가슴팍으로 시선을 옮겼다.“의사 선생님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 네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해.”구아정이 거절했다.“싫어. 안 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숨어 지내야 해? 그리고 그 기사 누가 터뜨렸는지 조사해봤어? 날 무너뜨리려고 작정했단 말이야.”“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신경 쓰지 마.”주영도는 한번 결정한 일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전용기 준비해줄게. 거기 부족한 게 없을 거고 네가 준비해야 하는 것도 없어.”“안 갈래, 나. 여긴 언니가 머물렀던 곳이야. 떠나고 싶지 않아.”그녀는 주영도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격렬하게 저항했다.이럴 때일수록 떠나면 더욱 안 되었다. 떠난다면 강루인에게 지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주영도는 한없이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면서 거절을 용납할 수 없는 듯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구아정, 난 지금 너랑 상의하는 게 아니야. 연정이 심장을 네가 잘 지켜야지 않겠어?”그의 차가운 시선에 구아정은 보이지 않는 손에 목이 졸린 듯 더 이상 반항할 수가 없었다. 결국 누그러진 태도로 물었다.“그럼 날 보러 올 거야?”주영도는 약속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시간 되면 갈게.”“나 언제쯤 다시 돌아올 수 있어?”“때가 되면.”그는 정확한 기한을 알려주지 않았다.이번만큼은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27화

    박정금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강루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강루인의 휴대폰은 물론이고 가방까지 모두 주영도의 차 안에 있었다.강루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곧장 주영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느리와 아들 모두 전화를 받지 않으니 박정금은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선샤인 빌리지에서 나온 강루인은 차를 그녀의 아파트 단지 밑에 버려두고 택시를 잡아 함지율을 찾아갔다. 혹시라도 최지호에게 들킬까 봐 함지율이 일하는 로펌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불러냈다.강루인을 본 함지율이 물었다.“아니. 꼴이 왜 또 이래? 이혼하겠다고 하니까 시댁에서 뭐래?”그녀는 종업원에게 물 한잔을 부탁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서야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손으로 입가에 묻은 물을 닦고 말했다.“영도 씨는 죽어도 이혼 안 하겠대. 아까 날 방에 가둬두기까지 했어.”함지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야? 이젠 감금이라도 하겠다는 거야?”“지금 그 사람 얼굴도 보기 싫어. 나 호텔 방 하나만 잡아줘.”강루인이 목적을 얘기했다. 주영도가 선샤인 빌리지로 돌아왔을 때 강루인이 없는 걸 보면 집으로 찾아올 게 뻔했다.쉬운 부탁이라 함지율은 흔쾌히 들어주었다.강루인은 함지율의 휴대폰으로 차성열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한 다음 사과했다.차성열이 물었다.“내가 도울 일은 없어?”강루인은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연락할게요.”...강루인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주영도가 알게 된 건 두 시간 뒤였다. 박정금의 연락을 받고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박정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루인 걔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더라? 날 밀쳐버린 바람에 하마터면 허리를 삐끗할 뻔했어. 내가 부르는데도 듣는 척도 안 하고 가버리는 거 있지?”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화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 치솟았다. 평생 귀하게 대접받던 사람이 언제 이런 모욕을 당해봤겠는가.주영도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돌아가기 전까지 문을 열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26화

    구아정은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주영도가 잠깐 넋을 놓은 틈에 강루인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 차 문을 박차고 내렸다.주영도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구아정은 강루인을 독기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구아정이 차에서 내리는 주영도를 붙잡았다.“오빠, 나 악플 때문에 너무 힘들어.”그는 그녀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 시선이 줄곧 강루인에게만 향해 있었다.“노 비서, 아정이를 집까지 데려다줘.”버려진 구아정은 주영도가 강루인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았다.강루인이 거의 뛰다시피 빨리 도망쳤지만 그래도 주영도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가 뒤에서 그녀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집에 안 가고 어디 가?”강루인이 몸부림쳤다.“놔. 여긴 내 집이 아니야. 이 손 놓으라고.”주영도가 허리를 숙이더니 그대로 그녀를 어깨에 들어 올렸다. 그녀는 발로 차고 때리면서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내려놔.”그녀의 주먹질에 얼굴이 다 일그러졌는데도 내려놓지 않았다.거꾸로 매달린 바람에 피가 머리로 쏠려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영도 오빠...”구아정은 주영도를 다시 한번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 철저히 버려진 쪽은 그녀였다.강루인은 그렇게 거꾸로 매달린 채로 집으로 들어와 침실 침대에 내던져졌다. 나가려고 벌떡 일어나자 주영도는 다시 그녀의 발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그녀가 발길질해도 주영도에게 쉽게 제압당하고 말았다.전투 장소가 차에서 침대로 옮겨갔다. 그런데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구아정이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숨을 헐떡이던 주영도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강루인의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고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다.주영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가 결국 침대에서 내려왔다.이 결과는 강루인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가 가버리면 그녀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됐다.그는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침실을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25화

    박정금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실랑이 끝에 주영도는 겨우 강루인을 차에 태웠다.“나 내릴래.”주영도가 명령했다.“출발해.”노윤환은 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앞뒤 좌석을 분리하는 칸막이를 올렸다.“내리겠다고!”강루인이 칸막이를 힘껏 두드렸다. 하지만 노윤환은 못 들은 척했다.‘난 청각 장애인이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주영도는 그녀의 손목을 잡자마자 확 잡아당겼다.“조용히 해.”그녀는 손목을 비틀며 뿌리치려 애썼다.“이혼 서류에 도장 찍어. 그럼 조용히 할게.”말하면서 다른 손으로 주영도의 어깨를 밀쳐냈다.“이거 놔.”그녀가 저항하며 주영도의 등 상처를 건드린 바람에 주영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핏기가 가셨다.“놓으라고!”주영도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그녀를 세게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은 다음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막아버렸다.“읍...”몸부림치자 그는 움직이지 못하게 뒤통수를 꽉 잡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거친 말을 집어삼키려는 듯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아챈 강루인은 그의 입술을 세게 물어버렸다.고통스러운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주영도가 경고의 눈빛을 보내도 강루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세게 깨물었다.곧이어 피비린내가 입안 가득 퍼졌다. 주영도는 결국 강루인의 매정함을 이기지 못하고 놓아주었다.자유를 얻은 순간 강루인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소리가 아주 찰지고 쩌렁쩌렁했다.운전석의 노윤환도 정확하게 들었다. 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볼이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뒷좌석.주영도는 고개를 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붉어진 볼과 피가 맺힌 입술이 오히려 더 요염해 보였다.강루인은 손등으로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 눈시울이 붉어졌고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주영도, 대체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자기가 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자도 되는 여자라 생각해?’주영도가 고개를 돌렸는데 눈빛이 여전히 어두웠다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24화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주승우였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건들거리며 걸어왔다.그를 본 주세웅이 미간을 찌푸렸다.“여긴 왜 왔어?”주승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영도 형 때문에 밖이 엄청 시끄럽더라고요. 걱정돼서 한번 와봤죠.”입으로는 걱정한다고 했지만 표정을 보면 누가 봐도 구경하러 온 사람이었다. 그의 속셈을 주세웅이 모를 리 없었다.“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그냥 돌아가.”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주승우가 아니었다. 시선을 주영도에게로 돌리고 말했다.“영도 형, 언제부터 이렇게 강압적인 사람이 됐어? 형수님이 이혼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오는데도 안 하겠다고 버텨? 너무 비겁한 거 아니야?”주승우가 옆에서 부추겼다.“형수님,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그러자 주영도가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봤다.“네까짓 게 뭔데 우리 부부 일에 끼어들어?”주승우가 짐짓 심각한 척했다.“이게 어떻게 둘만의 문제야? 우리 주씨 가문의 일이지. 그것도 엄청나게 큰일. 형 결혼도 온 식구가 같이 결정했으니까 이혼도 당연히 다 같이 결정해야지.”그러고는 김옥순을 돌아봤다.“제 말이 맞죠? 할머니?”괜한 일을 만들기 좋아하는 주승우라 김옥순 역시 달리 방법이 없었다.주세웅이 그를 노려봤다.“무슨 일만 생기면 참견질이라니까.”그의 시선이 강루인에게 향했다.“정말 이혼할 생각이야?”주세웅은 강루인에 대한 인상이 꽤 좋았다. 비록 그녀의 집안 배경이 평범했으나 그렇다고 고리타분하게 배경만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이 떠났다면 화목한 가정을 위해 이혼을 허락할 수도 있었다.강루인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영도가 끼어들었다.“그건 어림도 없어. 내가 원하지 않는 한 누가 허락하든 소용없다고.”그러고는 강루인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끌고 나갔다.“집에 가자.”두 사람이 떠난 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 침묵을 깬 건 주승우였다.“할아버지, 우리 조상님 중에 혹시 산적이 있으셨어요? 그렇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23화

    거실이 숨 막힐 듯한 정적에 휩싸였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루인에게 향했다.강루인이 말을 이었다.“더는 이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박정금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강루인,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아버님이 일을 잠재우자마자 또 일을 벌여?’주세웅이 말했다.“루인아, 영도도 말했잖아. 구아정이랑 아무 사이 아니라고. 내가 멀리 보내버릴게. 다신 나타나지 않게. 이혼 얘기를 그렇게 쉽게 꺼내면 안 돼.”“할아버지, 영도 씨가 구아정 씨랑은 아무 사이가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아정 씨의 언니를 마음에 품고 있어요. 영도 씨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망가뜨렸더니 절 죽이려 했고요. 다음번에 제가 또 영도 씨를 자극한다면 그땐 정말 절 죽여버릴지도 몰라요.”박정금이 아들을 옹호했다.“헛소리하지 마. 영도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네가 영도를 자극하지 않으면 되잖아.”“어머님, 만약 아버님이 죽은 옛사랑을 잊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신다면 어머님은 어떨 것 같으세요?”박정금이 반박했다.“네 시아버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강루인이 씁쓸하게 웃었다.“맞아요. 아버님은 그러지 않으시겠지만 어머님 아들은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어요. 어머님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왜 저더러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죠? 영도 씨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참아왔어요. 그런데 5년을 함께 산 아내가 죽은 사람보다도 못하다는 게 말이 돼요? 심지어 저랑 아이를 낳으려는 것도 그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더라고요.”박정금이 경악한 표정으로 주영도를 쳐다봤다. 주영도의 눈빛이 어두웠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강루인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그동안 제가 애쓴 것들이 뭐가 되나요? 전 주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집안 배경이 보잘것없긴 해도 누군가한테는 소중한 사람이라고요. 저희 할머니가 만약 제가 손주 사위한테 목 졸려서 죽을 뻔했단 걸 아시면 엄청 마음 아파하실 거예요.”강루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