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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Autor: 높은 하늘

1장

Autor: 높은 하늘
“다른 남자를 찾아서 아이를 가져, 지아.”

그날 아침, 수현이 내뱉은 한마디는 거대한 쇠망치가 지아의 가슴을 정통으로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아직 순결을 지키고 있던 그녀는 순간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자신의 남편이 이렇게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지… 진심이야... 오빠?”

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목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 목소리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농담하는 거지? 왜 내가 다른 남자랑 아이를 가져야 하는데?”

수현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눌렀다.

“나도 이제 지긋지긋해. 엄마가 계속 후계자 이야기를 꺼내면서 압박하는 것도, 네가 언제 임신할 거냐고 묻는 것도 전부 지겨워 죽겠다고.”

지아는 간신히 침을 삼켰다.

“그럼... 오빠랑 가지면 되잖아. 나한테는 남편이 있는데, 왜 다른 남자랑 아이를 가져야 하는 건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그녀를 향해 수현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 웃기지 마. 내가 너랑 밤을 보내면서까지 그럴 생각은 없어.”

그 한마디는 이번에야말로 지아의 심장을 깊숙이 후벼 팠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목 끝까지 차오른 충격 때문에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가능하면 품위 있는 남자를 찾아. 못 찾겠으면 내가 직접 찾아주고.”

수현의 목소리는 끝까지 차갑기만 했다. 이미 결론이 내려진 일을 통보하는 사람처럼 단호했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난 협상하는 게 아니야.”

지아는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답답함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쥐고 천천히 비틀어대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양손은 옆구리에서 꽉 쥐어져 있었고, 손마디는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지아는 입을 열어 항의하려 했지만 수현이 먼저 말을 이어갔다.

“넌 무조건 임신해야 해. 방법은 상관 안 할 테니까.”

“너랑 결혼한 것만으로도 이미 형들 앞에서 충분히 창피했는데, 이제는 자식도 못 낳아서 나를 더 망신시키겠다는 거야?”

수현은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겉보기에는 담담한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압박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아니면 네 할아버지 병원비 지원 당장 끊어버릴 테니까.”

지아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오빠! 제발 할아버지한테는 그러지 마. 완치될 때까지 병원비가 많이 필요하단 말이야.”

수현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은 망설임 때문이 아니라, 그저 대화를 끝내기 위한 행동에 가까웠다.

“그럼 오늘 안에 결정해. 내가 할아버지 병원비를 끊지 않게 말이지.”

예, 또는 아니오.

그것은 지아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선택지였다. 무엇보다도 그 선택의 끝에는 할아버지의 목숨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이제 겨우 1년. 그리고 그 1년 동안 지아는 남편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강요된 결혼.

그렇다. 수현은 할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결혼했다.

수현의 할아버지와 지아의 할아버지는 오랜 친구 사이였고, 두 사람은 생전에 손주들을 서로 혼인시키기로 약속했었다.

만약 지아가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았다면, 무엇을 걸고 맹세하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수현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려고 노력해 왔다. 언젠가는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단 한 번도 그녀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수현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채 아내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아는 무겁게 침을 삼킨 뒤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는...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 오빠.”

수현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좋아. 지금부터 사흘 줄게.”

그 말을 남긴 채 그는 미련 없이 침실을 떠나버렸다.

지아는 방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다.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 탓인지 다리에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의 말도 안 되는 요구까지 더해지자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지아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서 품위 있는 남자를 찾으라는 거야...? 게다가 그 아이는 결국 진씨 가문의 후계자가 될 텐데...”

혼란과 절망이 뒤섞인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러다 벽시계로 시선이 향한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오전 6시 30분.

아침 식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세상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아는 황급히 방을 뛰쳐나와 거의 달리다시피 부엌으로 향했다.

남편과의 충격적인 대화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일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형님들, 그리고 조카들까지, 진씨 일가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진씨 가문은 가부장적인 혈통 중심 전통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재벌 가문이었다.

시부모와 자식들, 며느리들까지 모두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언제나 사람을 짓누르는 서열이 존재하는 집안이었다.

그리고 다른 두 며느리와 달리 직업이 없는 막내 며느리 지아는 자연스럽게 집안일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집안의 모든 일이 완벽하게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몫이었다.

물론 그녀 혼자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하인들이 함께 일을 도왔고, 이처럼 넓고 화려한 저택을 관리하는 일도 그들과 함께라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위치에 있는 지아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방들과 넓은 공간들.

그리고 그 모든 구석구석은 언제나 완벽함을 요구하고 있었다.

약 30분 뒤.

지아는 다른 하녀 두 명과 함께 아침 식사 준비를 모두 마쳤다.

이제 그녀의 역할은 시어머니와 남편 수현을 직접 시중드는 것이었다.

“어머니, 녹차 나왔어요.”

지아는 따뜻한 녹차를 시어머니 명희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고맙구나.”

명희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제 남편을 챙길 차례였다.

하지만 그녀가 수현 앞에 토스트를 놓아주려는 순간, 그는 곧바로 접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난 혼자 할 수 있어. 그냥 앉아.”

차갑고 냉담한 목소리였다.

지아는 애써 작은 미소를 지은 뒤 남편의 왼쪽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막 손을 뻗어 토스트를 집으려던 순간,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식탁 위의 정적을 산산조각 내며 울려 퍼졌다.

“1년이다!”

명희가 입을 열었다.

“지아가 진씨 가문의 며느리가 된 지도 벌써 정확히 1년이 지났어.”

명희는 고개를 돌려 막내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임신을 못 했구나.”

허공에 머물러 있던 지아의 손이 천천히 무릎 위로 내려왔다.

그녀는 깊게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꼭 맞잡았다.

아무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특히 시어머니의 얼굴은 더더욱 마주할 수 없었다.

양쪽에서 꽂혀오는 형님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이 느껴져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들었다.

창피하냐고?

물론 창피했다.

남편의 집안은 상류층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였다.

순수한 혈통을 이어받은 진정한 상류층 가문.

명희는 명문가 차씨 가문의 혈통이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의 남편인 석범은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재벌이었다.

그는 국내외를 무대로 사업을 펼치는 그랜드 진 그룹의 소유주였으며, 산업 기업부터 호텔, 병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그룹의 수장이었다.

그리고 그 막대한 재산과 영향력은 세 아들에게 이어졌다.

장남 준현.

차남 도현.

그리고 막내 수현.

“내가 부인과 최고 전문의 진료 예약을 잡아놨다.”

명희는 자신의 왼편에 앉아 있는 수현에게 명함을 밀어주며 지아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

수현은 귀찮다는 듯 그것을 집어 들더니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아내에게 내밀었다. 조금의 관심도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태도였다.

명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난 핑계는 듣고 싶지 않다. 당장 검사를 받아.”

“막내 올케가 불임인 거 아닐까요, 어머니?”

장남 준현의 아내인 서영이 끼어들자 식탁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정작 남편인 준현은 힐끗 한 번 쳐다봤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형님. 사실은 불임인데 일부러 어머니랑 서방님에게 말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죠. 이혼당하기 싫어서요.”

이번에는 차남 도현의 아내인 지호가 말을 보태며 분위기를 더욱 부추겼다.

두 며느리는 늘 지아를 깔보고 무시했다.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신분 차이 때문이었다.

서영은 미국 명문대에서 디자인 석사 학위를 취득한 부유한 사업가의 딸이었고, 현재는 대형 부티크를 운영하고 있었다.

지호는 법학 석사 출신의 변호사였으며, 국내 최대 로펌 대표의 딸이었다.

반면 지아는 달랐다.

그저 그녀의 할아버지가 수현의 할아버지와 오랜 친구였다는 이유로 이 집안의 며느리 후보가 된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약 1년 전, 두 집안의 어른이 남긴 유언에 따라 그녀와 수현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불임’.

그 한 단어는 지아의 뺨을 세게 후려치는 따귀처럼 느껴졌다. 한 번도 자신을 안아주지 않은 남편 때문에 이미 산산이 부서진 자존심을 더욱 깊게 찔러대는 말이었다.

지아는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린 채, 옆에 앉은 수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접시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수도 없이 반복된 연설을 또 듣고 있는 사람처럼 무관심한 모습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수현은 시어머니 앞에서 그녀를 변호한 적이 없었다. 가족들 앞에서 지아가 모욕당하고 비난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없이 방관할 뿐이었다.

지아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저는... 제 몸에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자신을 변호했다.

쾅!

명희는 손에 들고 있던 버터 나이프로 식탁을 세게 내리쳤다.

식탁에 앉아 있던 모두가 놀라 몸을 움찔했지만, 그녀의 시선만큼은 여전히 차갑고 날카로웠다.

“아무 문제 없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지아! 내가 시킨 대로 하고 결과를 가져와. 내가 직접 확인할 테니까!”

“그냥 하라는 대로 해, 지아. 어머니 말씀대로.”

한참 동안 침묵하고 있던 수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감싸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압박하는 데 동참했다.

지아는 무겁게 침을 삼켰다.

자신을 지켜줘야 할 남자가 오히려 그녀를 몰아세우자, 이미 붉어진 눈가에는 끝내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현은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가 있는 건 너라고 확신해. 병원 가서 검사 한번 받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야 네가 정말 불임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잖아.”

지아는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감정을 억누르느라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지고 손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떻게 자신의 남편이 가족들 앞에서, 그것도 식탁 한가운데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잘 들어라.”

명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명령을 내리듯 단호한 목소리였다.

“지금부터 3개월이다. 그 안에 무조건 임신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숨이 막힐 정도의 압박으로 지아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명희는 차갑게 덧붙였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내가 직접 수현이에게 너와 이혼하라고 말할 테니까.”

그 목소리는 잔인할 만큼 냉혹했다.

“그 후에는 네 허름한 판잣집으로 돌아가서 병든 네 할아버지나 평생 돌보면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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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30장

    지아의 완벽한 신체 치수가 적힌 기록장을 든 채, 준현이 막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섰다.그의 걸음걸이는 느긋했으나 범접할 수 없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책상 위에 기록장을 내려놓은 그는 곧바로 자신의 아이패드를 켜 들었다.화면 위로 저택 곳곳을 비추는 CCTV 어플이 구동되었다. 조금 전 지아와 함께 숨 막히는 열기를 나눴던 그 방의 카메라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그 방에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났던 일련의 흔적들을 완벽하게 지워버리는 것이었다.사실 이 저택에서 CCTV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오직 준현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준현 본인을 포함해 평소 CCTV 기록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저 도둑이 들거나, 혹은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나 열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가 카메라를 켰던 이유는 오직 지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붙잡아 두기 위함이었다.띠리리링.그때, 준현의 휴대폰이 정적을 깨고 요란하게 울려 댔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매끄러운 기기를 꺼내 들었다. 액정 화면 위로 ‘서은아’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남자는 지체 없이 초록색 통화 아이콘을 밀어 올린 뒤, 휴대폰을 귀가에 가져다 대었다.“방금 나한테 보낸 게 대체 뭐야, 준현?” 수화기 너머에서 은아의 황당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글씨 못 읽나?” 준현의 대답은 차가웠다. 마치 상대의 심장을 단번에 꿰뚫을 듯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어조였다.하지만 은아는 이 남자의 악명 높은 냉혈한 같은 태도에 이미 뼈저리게 익숙해진 터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받아쳤다.“아니,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네 와이프가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부티크 직원들이 단체로 사표라도 냈대?”“내가 시킨 대로 처리하기나 해, 은아. 공짜로 해달라는 거 아니야, 정당한 대가는 지불할 테니까.”은아가 채 반박하기도 전에, 준현은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집무실

  •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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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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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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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26장

    “왜...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 대표님?”지아는 입고 있던 스커트 자락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그냥 물어본 거야.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준현은 시선을 다시 도로 전방으로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지아는 고개를 숙였다.이 상황에서 아주버니의 질문을 모른 척 넘겨버린다면 오히려 나중에 더 큰 오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답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처음에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그녀는 떨리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이 결혼은 제 의지가 아니라 정략결혼이었고, 할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맺어진 관계였으니까요.”준현은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마침 전방의 신호등이 붉게 바뀌자 그는 차를 부드럽게 멈춰 세웠고, 지아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신호는 여전히 붉은빛을 내뿜고 있었다.“그럼 지금은?”준현이 물었다.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이 정면만 바라보며 굳어 있는 지아에게 머물렀다.“수현 오빠의 아내가 된 순간부터 전 제 남편을 사랑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 감정이 제 안에서 온전히 자라날 때까지 계속 노력했고요.”지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심지어는 오빠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상상까지 했었어요.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잘생기고 예쁠지, 혼자서 수없이 그려 보기도 했고요.”운전대를 쥔 준현의 손끝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졌고,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그런데 2주 전쯤에...”지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갑자기 저더러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라고 하더라고요.”그녀는 시선을 내렸다.“그때는 정말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수현 오빠가 저와 억지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고요.”그녀는 가슴을 짓누르는 비참함과 숨 막히는 답답함을 애써 삼키려는 사람처럼 고개를

  •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25장

    그날 아침 식사 자리 역시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사방은 고요했고, 공기는 불편할 정도로 팽팽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긴 식탁 위에는 이 집안의 둘째 아들인 도현의 자리만이 유일하게 비어 있었다. “어젯밤에는 몇 시에 들어왔니?”명희가 맏아들인 준현을 바라보며 물었다.“밤 10시였습니다.”준현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짧게 답했다.명희의 시선이 이번에는 지아에게로 향했다.“너도 그렇고, 지아?”지아는 나지막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어머니.”그 순간, 수현과 지호의 시선이 동시에 지아에게 꽂혔다.그렇다는 건, 어젯밤 자신들이 방 안에서 격렬하게 몸을 섞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지아는 이미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의 밀회가 처음도 아니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다음 달에 집안의 큰 행사가 있으니, 너희 모두 힘을 합쳐 준비하도록 해라.”명희가 자식들과 며느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늘 그랬듯 의상 콘셉트에 맞춰 옷도 한 벌씩 맞춰 입고.”그리고 그녀는 시선을 서영에게 돌렸다.“의상은 서영, 네 부티크에서 제작하도록 해.”서영은 순간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가 곧 시어머니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 어머니. 조만간 치수를 잴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 두겠습니다.”그때 지호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어머니, 이번에는 그냥 자유롭게 입으면 안 될까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가끔은 각자 자기 파트너와 의상 분위기만 맞춰서 커플룩으로 입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그럼 이 어미는 누구랑 커플룩을 맞춰 입으란 말이냐?”명희가 냉소적으로 되받았다.“내가 네 시아비더러 무덤에서 기어 나와 달라고 해야겠구나?”지호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괜한 말을 꺼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사실 그녀는 매년 온 가족이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모이는 광경이 촌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졌다.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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