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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낮의 뱀파이어 생활상

Author: 초록 개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8 12:36:41

모든 뱀파이어들이 그렇듯 밤에 힘이나고 낮에는 힘이 없다.

하은재 역시 항상 밤에 힘이 났고, 밤이 깊어질수록 집중력은 날카로워지고, 모니터의 빛은 마치 달빛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책상에 놓여있는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잔 속의 붉은 루비 블렌드가 마지막 남은 카페인처럼 은은히 흔들렸다.

“역시 밤이 최고야. 피 대신 혈청커피, 사냥 대신 코딩.”

그가 루비 블렌드를 한 모금 마실 때, 창문 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비쳤다.

하늘이 점점 푸르스름하게 물들고 있었다.

“자~! 여러분, 벌써 해가 뜨고 있네요. 퇴근합시다.”

하은재가 손을 들어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피로 대신 묘한 뿌듯함이 섞여 있었다.

팀원들은 각자의 모니터에 떠 있는 코드를 저장하고, ‘업무 종료’ 버튼을 누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마우스 클릭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사무실의 불빛이 하나씩 꺼져갔다.

누군가는 혈청 팩을 정리했고, 누군가는 머그잔을 씻으며 하품을 했다.

“오늘도 순조로웠네요.”

“버그 한 마리 안 물리고 끝났네.”

짧은 농담이 오갔고, 모두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들이 사무실을 나서자, 복도 끝 창문 밖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 빛이 천천히 비쳤지만, 그들에게 그건 따뜻함이 아니라 퇴근 신호등이었다.

하은재는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중얼거렸다.

“해가 뜨면 인간들이 시작하고, 해가 지면 우리가 이어간다. 이게 진짜 24시간 근무지.”

그는 웃으며 모니터를 껐다. 그리고 문을 나서며 덧붙였다.

“오늘도 잘 버텼다, 나 자신.”

은재는 오늘 밤도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짧은 칭찬을 건네며 가방을 챙겼다.

팀원들 모두 힘들었던 밤을 보낸 후 비척이며 짐을 챙겨 서로에게 간단한 인사만 남긴 후 사무실을 급하게 떠나기 시작했다.

은재 역시 어서 집으로 가서 쉬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고, 회사 밖으로 나와 새벽의 첫 햇살이 번지는 거리를 걸으며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인간들은 모른다.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가는 뱀파이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다.

뱀파이어 사회와 인간 사회는 서로의 구역을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침범하면 안되기때문이었다.

뱀파이어들이 낯 시간에도 인간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들은 더 이상 해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에도, 환한 햇빛 아래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들 곁을 지나간다.

밤을 살아가는 뱀파이어라도 낮에는 인간처럼 잠이 필요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뿐, 피로는 피로였다.

은재의 하루는 단순했다.

회사에서 밤을 꼬박 새운 다음 날엔 재택 근무를 하고, 재택 근무 후 다음날은 회사에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일했으니 낯에 잠깐 쉬고 저녁에 바로 루비 아워로 가면 되겠다...’

길을 걸으며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은재의 표정은 피로한 직장인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재택 근무를 하는 하루는 은재에게 아주 좋은 날이었다.

혈청커피도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었고, 사무실에서는 알 수 없는 다양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택 근무의 대부분은 루비 아워에서 이뤄졌다.

지율이 운영하는 그 카페는, 뱀파이어들에게는 안식처이자 은재에게는 두 번째 작업실이었다.

“집에 가서 쉬자...”

은재는 중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걸어서 출퇴근을 해야했다.

아무리 사냥 본능을 누르고 있다고 해도 인간들 옆에 오래 있으면 피 냄새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뱀파이어 특성상 몸은 피곤한 것을 못 느끼지만 정신적 피곤함은 어쩔 수 없다고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루비 아워 근처에 다다르자, 유리창 너머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은재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안을 들여다봤다. 지율은 인간 매니저인 이솔과 함께 매출 정산표와 재고 물품 등을 확인하며 인수인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은재는 익숙한 듯 미소를 지으며 문을 밀었다.

문 위의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형, 일은 끝난 거야?”

그의 말에 지율이 고개를 들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은재 왔어? 나 잠깐 인수인계만 하고 퇴근할 거니까 잠깐만 기다릴 수 있어? 같이 가자.”

지율은 김매니저에게 인수인계를 하며 은재를 잠시 바라보았다.

다크서클이 광대를 넘어 턱까지 내려오기 직전이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단정하고 잘생겼다.

지율은 그런 은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은재야, 얼굴 상태 심각한데?”

은재는 그 말에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찡그렸다.

“왜, 내 얼굴이 그렇게 쓰레기 같아?”

그의 인상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자신의 외모에는 꽤 자신이 있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지율과 옆에서 인수인계를 받고 있던 이솔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쓰레기 같다고 표현한 은재의 얼굴은 웬만한 아이돌 보다 더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잘생기셨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솔의 말에 은재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미간의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그 모습에 지율은 더 크게 웃었다.

“됐어, 됐어. 그런 표정이 더 웃기다니까.”

“왜!! 지금 내 표정이 어떤데!! 김매니져 나 그렇게 웃겨?”

은재의 다그침에 이솔이 난처한 듯 표정을 굳히자 지율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때, 카페 문이 ‘딸랑’ 소리와 함께 열렸다.

“여기 다 모여 있었네? 김매니저~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아?”

익숙한 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해일이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이솔은 해일의 인사에 반갑게 화답하며 그녀의 시선이 은재와 지율, 그리고 해일을 오갔다.

매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세 남자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다들 잘 생겼단 말이지.... 이 뱀파이어들은 하나같이 다 사기급들이야.’

이솔은 속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보통의 인간들 중 뱀파이어들이 인간 사회 속에 섞여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인간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뱀파이어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자신처럼 안전 구역에서 거주하며 뱀파이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밀을 공유할 수 밖에 없었다.

이솔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지율이 그녀의 어깨를 ‘톡톡’하고 건드렸다.

“아! 네.. 사장님!!”

“이솔씨, 지난 저녁에 대한 인수인계는 끝났어요. 오늘 잘 부탁해요.”

“네! 사장님!”

지율과 이솔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거울 앞에서 은재가 진지하게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해일이 그 모습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야, 하은재. 지금 뭐하냐?”

“형, 내 얼굴 좀 봐봐. 이상해?”

“이상하지. 아주~ 아주~ 이상해....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는데? 거의 좀비야.”

“뭐라고?! 좀비??? 어디서 그런 것들과 날 비교해??!!!”

은재가 인상을 구기자, 해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이제 언데드야, 언데드.”

지율은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카페 안 공기가 한층 가벼워졌다.

지율은 김매니저와의 인수인계를 마무리한 뒤, 거울 앞에서 투닥거리고 있는 두 뱀파이어에게 다가갔다.

“이봐, 두 분. 뱀파이어님들~ 이제 퇴근하실까요?”

그의 말투에는 피곤함보다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은재와 해일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지율을 바라봤다.

“그래~ 가자! 형!!”

“야, 지율아 너도 이녀석 얼굴 좀 봐봐. 진짜 웃기지 않냐? 나 이녀석 좀 더 놀리고 가면 안되냐?”

해일의 말에 은재가 즉시 인상을 구겼다.

“해일 형..... 내 얼굴 평가할 여유가 많은가보지?”

지율은 한숨을 쉬며 웃었다.

“아직 해 뜨기 전인데, 벌써 피 터지게 싸울 기세네.”

지율은 두 뱀파이어의 등을 가볍게 밀며 문 밖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안쪽의 이솔을 향해 머쓱하게 웃었다.

“이솔씨,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요. 오늘 수고하고~ 저녁 여덟 시에 봅시다!”

이솔을 향해 친절한 미소로 대답한 지율은 다시 은재와 해일을 향해 외쳤다.

“이봐들, 거기서 밍기적거리지 말고 빨리 가서 쉬자! 좀!!”

은재가 투덜거리며 뒤돌아봤다.

“형이 밀어놓고 뭐래....”

해일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지율아. 너 괜찮냐? 너는 꼭 피곤하면 말이 거칠어진다니까.”

지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형 때문에 더 피곤해. 얼른 집으로 가자. 계속 이러면 진짜 쫓아낼 거야. 나 건물주야, 형~”

그 말에 해일은 ‘쳇’ 하고 혀를 찼다.

“건물주면 다냐....”

그러면서도 결국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지율은 그 뒷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들이 함께 사는 그 집— 지율이 몇 세기 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오래된 건물이었다.

재개발과 리모델링을 거쳐 항상 트랜디한 외관과 집안 인테리어며.... 지율의 손길이 많이 묻어있었다.

루비 아워를 중심으로 하는 안전 구역은 지율이 일본으로부터 해방 이후 매입한 땅이었고, 인간 정부의 도움으로 뱀파이어들이 모여 거주할 수 있도록 개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율이 가지고 있던 많은 땅들은 개발지역으로 승인이 나면서 엄청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고, 안전 구역을 개발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을은 서울의 외딴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자연스럽게 인간들과 안전 구역의 뱀파이어들은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부는 이 마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상할 만큼 간섭하지 않았다.

이곳의 뱀파이어들은 인간을 해치지 않았고, 뱀파이어 헌터들조차 이 구역만큼은 조용히 지나쳤다.

그곳은 일종의 중립지대, 밤과 낮이 공존하는 작은 평화였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뱀파이어가 존재했다. 자신의 사냥 본능을 억누르고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자들, 그리고 본능을 제어하지 못한 채 인간을 사냥하는 자들.

후자의 존재는 곧 헌터들의 출현을 불러왔다.

헌터들은 인간 사회를 지키기 위해 룰을 어기고 인간을 사냥하는 뱀파이어들을 사냥했고, 그들에게 붙잡힌 뱀파이어들은 결국 동족의 손에 의해 소멸되었다.

이렇게 룰을 어기고 헌터들에게 붙잡힌 뱀파이어들은 심판자라는 동족 뱀파이어들에 의해 소멸이 되는데 그것은 평화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사회를 공포로 물들이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안전 구역에 거주하는 뱀파이어들은 모두 평화를 선택한 뱀파이어들이었고 이들의 피 속에 흐르는 사냥 본능은 각자의 위치에서 다스리는 방법을 몇 백년 동안 다스리고 잠재우고 있었다.

지율은 루비 아워라는 카페에서 커피 향을 느끼고 친절한 사장님으로 칭찬을 받는 것으로, 해일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자유를 만끽하거나 심판자로서 일을 하고 은재는 오류가 난 코드들을 수정하고 개발하며 사냥 본능을 해소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해일과 지율, 은재는 이미 떠오는 해를 보며 정말 수고했다고 서로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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