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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성탄 모임

Autor: Jino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22 18:00:00

『오늘 일정: 12월 24일 화요일 저녁, 서진 본가 성탄 모임』

커튼이 다 내려간 뒤에도 나는 2층 창을 올려다봤다. 이헌이 현관문을 연 채 기다렸다. 그날은 안에서 손만 녹이고 바로 나왔다. 경란에게서는 6일 동안 아무 연락이 없었다.

12월 24일 저녁, 나는 같은 현관 앞에 다시 섰다. 2층 창가의 커튼은 걷혀 있었다. 가방 손잡이를 고쳐 잡는데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구두 밑창에 붙은 눈이 매트에 떨어졌다.

“나경 씨, 손 시려?”

주원이 내 뒤에서 문을 닫았다. 짙은 향수 냄새가 났다.

“괜찮아요.”

“장갑 좀 끼고 다녀. 오늘 사진도 찍을 건데 손 빨갛겠다.”

주원은 내 가방을 받아 들려다 안에서 종이봉투가 나오자 웃었다.

“내 선물?”

“회장님 드릴 거예요.”

“나는 빈손으로 들어왔는데. 옆에 서 있어야겠다.”

거실에서는 접시 놓는 소리가 났다. 경란은 식탁 끝에서 냅킨을 펴고 있었다. 진주 귀걸이 아래로 머리카락 한 올이 붙어 있었다.

“늦지는 않았네. 외투 벗고 앉아.”

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렸을 때 이헌이 보였다. 식탁 건너 창문 옆이었다. 소매를 두 번 접은 손에 물잔을 들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네, 삼촌.”

입안에 남은 호칭을 삼켰다. 이헌은 물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사이에는 의자가 여섯 개 놓여 있었다.

주원이 내 옆 의자를 빼 주었다.

“자기, 오늘은 일 얘기 금지야. 아버지도 약속하셨고.”

석진이 금색 시계를 보고 웃었다.

“아직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시기 전에 막아야죠.”

나는 웃는 대신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 가방 안에는 수선이 끝난 회장의 수첩이 있었다. 오늘 들고 온 선물은 그것 하나였다. 장부에 끼어 있던 승인서 사진은 휴대폰에서 별도 폴더로 옮겨 두었다.

경란이 내 앞에 놓인 빈 잔을 치웠다.

“술은?”

“오늘은 안 마시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들어오는 얼굴이 차더라.”

그때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걸 먼저 잡고 있어요.”

집안일을 돕는 할머니가 뚜껑 있는 찻잔을 내밀었다. 양손으로 받자 손바닥이 따뜻해졌다. 수정과에 잣이 떠 있었다.

“뜨거울 때 넘기지 말고. 손부터 녹여.”

“감사합니다.”

“목도리도 너무 일찍 풀었어.”

할머니는 내 의자에 걸친 목도리를 반으로 접어 등받이 안쪽에 넣었다. 바닥에 끌리지 않게 끝을 한 번 더 올렸다.

나는 잔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는 내 손을 확인하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식탁 건너에서 이헌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잔을 조금 들어 보였다. 이헌의 입가가 잠깐 움직였다.

“둘이 뭘 봐?”

주원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는 뚜껑을 열었다.

“수정과요. 주원 씨 것도 부탁드릴까요?”

“난 찬물. 뜨거운 건 잘 못 먹어.”

주원이 잔을 가져가는 동안 나는 수정과를 한 모금 마셨다.

◈

식사 뒤에는 거실 탁자에 선물을 모았다.

경란이 준비한 상자에는 사람마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원은 자기 몫을 먼저 흔들었다가 경란에게 손등을 맞았다.

“열어 보고 흔들어.”

“소리로 맞히려는 거죠.”

“네가 고른 것도 아니면서.”

상자 안에는 넥타이가 들어 있었다. 주원은 목에 대 보더니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어때, 자기?”

“지금 셔츠에는 다른 색이 낫겠어요.”

“이런 건 좀 좋다고 해 줘.”

경란이 처음으로 짧게 웃었다.

나는 회장 앞에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회장은 소파 팔걸이에 얹었던 손을 들었다. 손끝이 떨려 봉투 입구를 벌리기 어려워 보였다.

“제가 꺼내 드릴까요?”

“두게.”

나는 손을 거뒀다.

회장은 봉투를 눕혀 수첩을 빼냈다. 닳은 표지를 펴고 가운데를 눌러 보았다.

“잘 펴지는군.”

“등 안쪽의 풀을 조금 덜어 냈습니다. 실은 끊어진 곳만 이었고요.”

“새것으로 만들진 않았어.”

“쓰시던 흔적까지 없애면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회장은 마지막 장까지 넘긴 뒤 수첩을 무릎에 놓았다.

“얼마인가.”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자네 일인데.”

“그럼 다음 의뢰에서 받겠습니다.”

회장이 나를 보았다. 나는 봉투를 접어 탁자 아래에 내려놓았다. 잠시 뒤 회장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주원이 소파 뒤로 팔을 뻗었다.

“내년부터 선물은 자기한테 맡겨야겠네.”

“직접 고르세요.”

“협조가 안 되네, 그치?”

맞은편에서 이헌이 상자 하나를 집었다. 다른 것보다 길고 얇았다. 포장지 위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헌은 곧바로 내밀지 않고 경란 쪽을 봤다.

“신부 쪽 선물은 제가 준비했습니다.”

경란이 포장을 확인했다.

“일할 때 쓰는 거라며.”

“네.”

이헌이 탁자 위로 상자를 밀었다. 나는 두 손으로 받았다. 포장지 모서리가 정확히 접혀 있었다. 테이프를 떼어 내는 동안 주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뭔데 이렇게 얇아?”

뚜껑 안에 흰 접지칼이 놓여 있었다. 가운데가 들어가고 양 끝이 둥글게 벌어진, 뼈 모양이었다.

나는 천 받침에서 칼을 꺼냈다. 손잡이 아래를 엄지로 눌렀다. 끝은 매끈했고 종이에 닿을 면에는 흠집이 없었다.

“칼이라고 하지 않았어?”

경란이 물었다.

“날이 선 칼은 아니에요. 종이를 접거나 눌러 붙일 때 씁니다.”

나는 안에 든 종이를 꺼내 반으로 접었다. 접지칼을 눕혀 접힌 곳을 밀자 종이가 반듯하게 눌렸다.

주원이 손을 내밀다가 멈췄다.

“내가 만져도 되는 거야?”

“새것이라 괜찮아요.”

“쓰던 건 안 되고?”

“손에 묻은 게 종이에 옮을 수 있어서요.”

주원은 방금 먹던 귤을 내려다보고 손을 거뒀다.

“그럼 안 만질게.”

나는 칼을 상자 안에 도로 넣었다. 이헌은 설명하는 동안에도 나를 보채지 않았다. 좋으냐고 묻지도 않았다.

“감사합니다, 삼촌.”

이헌의 시선이 내 손에서 올라왔다.

“손에 맞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쓴 접지칼은 끝이 닳아 얇은 종이를 누를 때마다 힘을 덜어야 했다. 작업대에서 내가 손목을 바꿔 쥐던 것을 이헌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상자를 닫기 전에 칼을 한 번 더 살폈다.

경란이 포장지를 거두다가 물었다.

“같은 게 있는데 굳이 필요한 거니?”

“하나만 쓰지는 않아요. 종이 두께에 따라 바꿔 쓰고요.”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가 보네.”

나는 풀어 놓은 끈을 접었다. 이헌이 다른 물건을 권했어도 이렇게 오래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뚜껑을 덮으려는데 이헌이 말했다.

“받침 아래에 닦는 천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받침을 들어 확인했다. 천이 손잡이 길이에 맞춰 접혀 있었다.

“잘 쓰겠습니다.”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말했다. 이헌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이 찻잔을 받침에 놓았다.

“집안 행사에 이런 것도 좋군. 쓸모가 있으니.”

나는 상자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손끝에는 매끄러운 손잡이를 쥐었던 감촉이 남아 있었다. 이헌과 눈이 마주친 것은 2초가 되지 않았다. 먼저 탁자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

주원의 휴대폰이 울린 것은 과일 접시가 들어왔을 때였다.

검정 휴대폰이었다. 주원은 화면을 보고 옆면을 눌렀다. 말하던 석진의 목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다시 진동이 울렸다.

주원은 무릎 위로 휴대폰을 내렸다. 엄지로 화면을 빠르게 누르더니 뒤집어 놓았다.

나는 귤의 흰 줄기를 떼었다. 주원이 벗겨 둔 껍질이 내 접시까지 넘어와 있었다.

“받아도 돼요.”

작게 말하자 주원이 입술을 붙인 채 웃었다.

“별거 아니야.”

거실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경란이 시계를 봤다.

“이 시간에 누가 와?”

주원이 먼저 일어났다.

“제가 볼게요.”

너무 빨리 일어나 무릎에 걸친 냅킨이 떨어졌다. 나는 냅킨을 주워 의자에 놓았다.

현관 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곧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는 왜 안 받아?”

경란의 손이 과일 집게 위에서 멎었다.

주원이 무어라고 답했지만 거실까지 들리지 않았다. 여자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들어오라는 게 아니잖아. 잠깐 나오면 되잖아.”

나는 접시에 귤을 내려놓았다.

석진은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 유리를 엄지로 한 번 닦았다.

“주원이 불러.”

경란이 일어나려 하자 현관문이 닫혔다. 주원이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문 너머 목소리가 낮아졌다.

경란은 거실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나경아, 앉아 있어.”

내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네.”

회장이 찻잔을 밀어 놓았다.

“추운데 안으로 들이지.”

“아버님.”

경란이 짧게 불렀다. 회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주원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잠깐만. 내가 정리할게.』

답장을 쓰지 않고 화면을 껐다.

탁자 건너 이헌의 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을 한 번 접었다 펴더니 그대로 멈췄다. 나는 이헌 쪽을 더 보지 않았다.

경란이 내 앞에 과일 접시를 놓았다.

“밖에서까지 저러는 애가 있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주원 씨가 나갔으니까요.”

“그래. 들어오면 내가 얘기할게.”

나는 접시를 조금 옆으로 밀었다. 경란이 바로잡으려 하기에 손을 뗐다. 포크 끝이 접시에 부딪쳤다.

현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자가 있었다. 거실에서는 내가 주원의 약혼자로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무릎 위 상자의 모서리를 눌렀다.

석진이 나를 불렀다.

“많이 불편하겠구나.”

“기다리겠습니다.”

“주원이가 철이 덜 들어서 그래. 결혼하면 달라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듣고 있니?”

경란이 물었다.

“네. 다만 그건 주원 씨가 말씀하시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경란은 집게를 내려놓았다. 석진은 나를 잠시 보더니 회장에게 말을 돌렸다.

그때 할머니가 빈 찻주전자를 들고 왔다.

“수정과 조금 더 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부탁드릴게요.”

할머니는 탁자에 주전자를 놓고 내 잔부터 채웠다. 나는 무릎에 올려 두었던 상자를 옆으로 옮겼다.

“양손으로 잡아요. 아직 따뜻해.”

잔을 쥐자 굳어 있던 손가락이 조금 펴졌다. 할머니는 현관 쪽을 보지 않고 빈 접시를 포갰다.

현관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주원이었다.

코트도 입지 않고 나갔는지 셔츠 어깨에 눈이 묻어 있었다.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죄송해요. 먼저 보냈어요.”

석진이 턱을 들었다.

“내일 아침에 보자.”

“네.”

주원은 내 옆에 앉지 않았다. 의자 뒤에 서서 내가 올려 둔 냅킨을 집었다. 구겨진 곳을 편 다음 다시 접었다.

“나경 씨, 미안해.”

남들 앞에서 부르던 자기라는 말이 없었다.

“추운데 겉옷은 입고 나가시지 그랬어요.”

내가 말하자 주원이 자기 어깨를 봤다. 손으로 눈을 털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을 구두 끝으로 문질렀다.

이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 젖습니다. 수건 가져오겠습니다.”

“내가 할게, 삼촌.”

주원이 말했다.

둘 사이에 의자 하나가 있었다. 이헌은 잠시 멈췄다가 옆으로 비켜섰다. 주원은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접지칼 상자를 가방 안에 세워 넣었다. 포장지 끝이 밖으로 나와 다시 꺼냈다. 끈을 풀어 따로 넣는 편이 나았다.

경란은 주원이 사라진 복도를 보고 있었다.

그때 이헌의 구두가 탁자 옆에서 멈췄다. 빈 잔을 모아 주방 쪽으로 옮기는 길이었다. 내 상자에서 풀린 끈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이헌은 잔을 한 손에 모아 들고 몸을 숙였다. 끈 끝을 집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손이 닿지 않도록 내 손 옆을 비워 두었다.

“밟으실 뻔했습니다.”

“감사해요.”

말끝을 낮췄지만 바로 앞의 경란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나는 끈을 감아 상자 안에 넣었다. 경란이 이헌을 보다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반쯤 열린 가방을 무릎으로 당겼다. 경란은 내 앞에서 멈췄다. 손에 든 상자가 아직 밖에 있었다.

“이헌이한테 받은 거, 그거 뭐야?”

(3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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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일정: 12월 24일 화요일 저녁, 서진 본가 성탄 모임』“접지칼이에요. 아까 보셨던 거요.”나는 상자를 가방에 넣지 않고 뚜껑을 열었다. 경란의 시선이 흰 손잡이에서 받침 아래로 내려갔다.“밑에는?”“닦는 천이 들어 있어요.”천을 꺼내 펼쳤다. 아무 무늬도 없는 천이었다. 경란은 한쪽 끝을 잡았다가 놓았다.“저런 것까지 챙겨 줬네.”나는 천을 접어 받침 아래에 넣었다.“도구에 묻은 풀을 그대로 두면 다음 종이에 옮거든요. 쓰고 나면 닦아 둬야 해요.”“네가 뭘 쓰는지 이헌이가 어떻게 알았을까.”뚜껑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상자 모서리를 맞춰 닫았다.“복원 맡기신 책 때문에 작업실에 오신 적이 있어요. 그때 보셨나 봐요.”“의뢰인한테 그런 것도 보여 줘?”“작업하는 걸 궁금해하시면요.”경란은 내 가방 안을 잠깐 보았다. 선물 포장지 옆으로 평소 쓰던 도구집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지퍼를 조금 열었다. 닳은 접지칼 끝이 보였다.“이건 오래 써서 끝이 얇아졌어요. 오늘 받은 건 두꺼운 종이에도 쓸 수 있겠어요.”경란은 도구집을 들여다보다 몸을 바로 세웠다.“그래. 일에 쓰는 거면 잘 써야지.”“네. 잘 쓰겠습니다.”나는 도구집과 상자를 차례로 넣었다. 경란은 내가 가방을 닫는 것까지 보고 돌아섰다.거실 입구에서 주원이 수건을 들고 나왔다. 바닥의 물기를 닦으려 하자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 약혼자의 삼촌   31화. 성탄 모임

    『오늘 일정: 12월 24일 화요일 저녁, 서진 본가 성탄 모임』커튼이 다 내려간 뒤에도 나는 2층 창을 올려다봤다. 이헌이 현관문을 연 채 기다렸다. 그날은 안에서 손만 녹이고 바로 나왔다. 경란에게서는 6일 동안 아무 연락이 없었다.12월 24일 저녁, 나는 같은 현관 앞에 다시 섰다. 2층 창가의 커튼은 걷혀 있었다. 가방 손잡이를 고쳐 잡는데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구두 밑창에 붙은 눈이 매트에 떨어졌다.“나경 씨, 손 시려?”주원이 내 뒤에서 문을 닫았다. 짙은 향수 냄새가 났다.“괜찮아요.”“장갑 좀 끼고 다녀. 오늘 사진도 찍을 건데 손 빨갛겠다.”주원은 내 가방을 받아 들려다 안에서 종이봉투가 나오자 웃었다.“내 선물?”“회장님 드릴 거예요.”“나는 빈손으로 들어왔는데. 옆에 서 있어야겠다.”거실에서는 접시 놓는 소리가 났다. 경란은 식탁 끝에서 냅킨을 펴고 있었다. 진주 귀걸이 아래로 머리카락 한 올이 붙어 있었다.“늦지는 않았네. 외투 벗고 앉아.”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렸을 때 이헌이 보였다. 식탁 건너 창문 옆이었다. 소매를 두 번 접은 손에 물잔을 들고 있었다.“오셨습니까.”“네, 삼촌.”입안에 남은 호칭을 삼켰다. 이헌은 물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사이에는 의자가 여섯 개 놓여 있었다.주원이 내 옆 의자를 빼 주었다.“자기, 오늘은 일 얘기 금지야. 아버지도 약속하셨고.”석진이 금색 시계를 보고 웃었다.“아직 내가 아무 말도 안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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