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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응급실

作者: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4 17:00:00

『오늘 일정: 1월 3일 금요일, 오후 책 납품 포장』

나는 휴대폰을 내리고 이헌을 보았다.

“옆에 있는데 문자로 해요?”

“말로 하면 대답 안 할까 봐요.”

식당 뒷문이 열렸다. 우리는 동시에 공장 쪽을 돌아보았다. 염 반장이 문을 잠그는 동안 나는 휴대폰에 답을 썼다.

『오늘 의자 나른 값으로 해 둘게요.』

이헌이 화면을 확인하고 입술을 다물었다. 나는 먼저 주차장으로 걸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가 조금 늦었다.

◈

새해 첫 금요일 오후, 제본소에서 책을 포장하고 있을 때 염 반장에게 전화가 왔다.

풀칠한 덧종이가 마르지 않아 나는 휴대폰을 어깨에 끼웠다.

“반장님, 아버지 점심 드셨어요?”

“나경아. 지금 병원으로 와.”

종이를 누르던 손을 뗐다.

“누가 다쳤어요?”

“네 아버지. 사무실에서 쓰러지셨어. 구급차 타고 가시는 중이야.”

“어느 병원이요?”

반장이 이름을 말했다. 나는 작업대에 놓인 종이 뒷면에 받아 적었다.

“의식은요?”

“눈 뜨셨어. 대답도 하시고. 내가 뒤따라갈 테니까 넌 바로 와.”

전화를 끊고 앞치마 끈을 풀었다. 매듭이 손톱에 걸려 한 번 더 당겼다.

다은이 내 손에서 끈을 받아 풀어 줬다.

“가방 챙겨. 여긴 내가 할게.”

“창가 책은 누르지 마. 아직 젖었어.”

“알아. 택시도 불렀어. 아래에 곧 온대.”

나는 갈색 가방을 들었다가 작업대 쪽으로 돌아섰다. 무엇을 챙기려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다은이 외투를 내 어깨에 걸쳐 줬다.

“전화하고 싶으면 해. 안 해도 되고.”

계단을 내려가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이어졌다. 끊고 염 반장이 말한 병원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이헌의 이름이 통화 목록에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누르지 않고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급실 출입문 앞에서 주원이 손을 들었다.

코트 단추가 풀려 있었고 한 손에는 종이컵이 있었다. 나는 택시 문을 닫자마자 주원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요?”

“검사 중이야. 의식 있고, 말씀도 하셔. 염 반장님은 안에 계시고.”

“어떻게 벌써 왔어요?”

“호텔에서 여기 가까워. 일단 들어가요.”

주원이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마시지 않은 물이 컵 안에서 흔들렸다.

출입문 안쪽에서 직원이 보호자인지 물었다.

“딸이에요.”

“환자분 성함이요?”

“윤기환이요.”

직원이 화면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접수는 했어. 신분증만 확인해 드려요.”

주원은 기다렸다가 직원에게 길을 물었다.

아버지는 커튼이 반쯤 열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작업복 윗도리가 풀려 있었고 팔에는 수액 줄이 연결돼 있었다. 신발은 침대 아래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쪽 끈이 풀려 바닥에 닿아 있었다.

나는 그 끈부터 신발 안에 넣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눈을 돌렸다.

“왔어?”

“어디가 아프세요?”

“지금은 괜찮아.”

“그 말씀 말고요. 어디가 아프셨냐고요.”

아버지는 입술에 붙은 침을 삼켰다.

“어지러웠어. 일어나려는데 다리에 힘이 없어서.”

염 반장이 침대 발치에서 비켜섰다.

“점심 드시라고 갔더니 의자 옆에 주저앉아 계셨어. 머리는 안 부딪치셨고.”

나는 아버지 손을 잡았다.

아버지가 내 손가락을 잡았다.

“일하다 왔지.”

“그건 다은이가 해요.”

“손에 풀이 묻었네.”

오른손 엄지에 말라붙은 풀을 아버지가 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뒤집었다.

“아침은 드셨어요?”

대답이 없었다. 염 반장이 대신 입을 열었다.

“새벽부터 나오셨어. 죽 한 통 갖다 놨는데 그대로더라.”

“왜요?”

아버지는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침대 난간을 잡았다가 놓았다. 여기서 서류 얘기를 꺼내면 아버지는 다시 괜찮다는 말부터 할 게 뻔했다.

“선생님 설명부터 들을게요. 공장에는 오늘 안 돌아가세요.”

주원이 커튼 밖에서 다가왔다.

“추가 검사 끝나면 설명해 주신대요. 오늘은 입원해서 보시는 게 좋겠다고 했고요.”

아버지가 몸을 조금 일으켰다.

“주원 씨까지 왔네. 바쁠 텐데.”

“지금 안 바빠요.”

주원이 침대 머리 쪽 버튼을 찾다가 간호사에게 먼저 물었다. 허락을 받고 등받이를 조금 올렸다.

나는 반대편에서 아버지 베개를 받쳤다.

베개를 고쳐 놓자 주원의 손과 내 손이 난간 양쪽에 남았다.

◈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이 울렸다.

이헌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화면이 보이지 않게 휴대폰을 뒤집었다. 주원은 원무과에서 받은 종이를 읽고 있었다.

“잠깐 전화하고 올게요.”

응급실 밖으로 나와 출입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네, 실장님.”

“아버님 병원 가셨다면서요.”

“반장님한테 들으셨어요?”

“조금 전에요. 지금은 어떠세요?”

“의식 있으세요. 검사 기다리고 있어요.”

전화 너머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제가 지금 바로는 못 갑니다.”

“일 있으시죠.”

“형님하고 회의 중이에요.”

나는 출입문 위의 안내등을 보았다. 문이 열릴 때마다 안쪽 침대가 잠깐씩 보였다.

“주원 씨 왔어요. 접수도 해 줬고요.”

이헌이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혼자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맞는 말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쥔 손을 바꿨다.

“네. 다행이에요.”

“밥은 먹었어요?”

“아직요.”

“먹을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먹어요. 아버님 설명 듣고,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 주고요.”

“일 보세요. 저 들어가야 해요.”

통화를 끝내기 전에 이헌이 나를 불렀다.

“나경아.”

문이 열리고 주원이 밖으로 나왔다.

나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주원을 보았다. 주원이 안쪽을 가리켰다.

“선생님 오셨어.”

“네. 지금 가요.”

누구에게 하는 대답인지 구분하지 않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뒤 주원 뒤를 따라 들어갔다.

주원이 문을 잡아 줬다. 나는 그 앞을 지나며 가방 안으로 휴대폰을 밀어 넣었다.

◈

의사는 검사 수치를 짚어 가며 설명했다.

당장 큰 이상은 보이지 않지만 과로와 식사 부족이 겹쳤고, 탈수도 있어 수액을 맞으며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먹고 있던 약과 최근 수면 시간을 물을 때마다 아버지 쪽을 봤다.

“어젯밤에는 몇 시에 주무셨어요?”

“좀 늦었지.”

“몇 시요.”

“2시쯤.”

염 반장이 헛기침했다.

아버지가 이불 끝을 만졌다.

“3시 넘었나.”

나는 의사에게 들은 주의 사항을 휴대폰에 적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더는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입원할 병실을 기다려야 했다. 주원은 필요한 서류를 받아 자리를 비웠다.

염 반장에게 공장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하자 아버지가 먼저 말을 보탰다.

“사무실 책상 위에…….”

“제가 갈 거예요.”

내가 말을 끊었다.

“오늘 가져올 서류 없어요. 반장님, 아버지 외투하고 휴대폰만 부탁드려요.”

염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잠그고 올게. 넌 여기 있어.”

반장이 나간 뒤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나는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을 덮어 줬다.

침대 옆 의자에 앉자 목에 건 실이 외투 지퍼에 걸렸다. 실 끝의 약혼반지를 빼내 옷 안으로 넣었다.

커튼 하나 건너에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또 찔러?”

어른이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아니야. 지금은 기다리는 거야.”

“아까도 기다린다고 했잖아.”

아버지가 눈을 떴다. 나는 이불을 한 번 더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옆 침대에는 아이가 앉아 있었다. 한 손등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보호자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

나는 커튼 앞에서 먼저 물었다.

“종이 접는 거 보여 줘도 될까요?”

보호자가 아이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 안에는 납품할 책의 포장 견본이 있었다. 잉크도 풀도 묻지 않은 종이를 골라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이걸로 학 접을 수 있어.”

아이는 내 손만 보았다.

“가위 써?”

“안 써. 접기만 할 거야.”

나는 종이 끝을 엄지로 쓸어 보고 모서리를 맞췄다. 접지칼은 꺼내지 않았다. 손톱으로 누른 선을 따라 종이를 폈다.

아이가 울음을 멈췄다.

“그거 틀렸어. 다시 폈잖아.”

“여기 선이 있어야 다음에 접을 수 있어.”

나는 종이를 아이 쪽으로 기울였다.

“이 끝을 잡아 줄래?”

아이가 보호자 소매에서 손을 뗐다. 테이프가 없는 손으로 종이 한쪽을 눌렀다.

“세게?”

“그만큼이면 돼.”

“이제 뭐 해?”

“날개 펴면 돼.”

접힌 양쪽을 조금씩 벌려 아이 손 위에 놓았다. 아이는 목이 구부러진 부분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날아?”

“던지면 구겨져. 여기 세워 두자.”

보호자가 물병을 옆으로 밀어 자리를 냈다. 아이가 학을 내려놓다가 균형이 맞지 않자 내 손을 봤다.

나는 꼬리 쪽을 조금 폈다.

“됐다.”

아이는 학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 침대에 등을 댔다. 보호자가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내 자리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네 엄마도 병원에서 종이 접었는데.”

나는 가방 안에 남은 종이를 넣었다.

“아버지도 하나 접어 드려요?”

“손 아프겠다.”

“이 정도로 안 아파요.”

“그럼 나중에. 집에 가서.”

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나는 의자를 당겨 침대 가까이 앉았다.

잠시 뒤 주원이 봉투와 생수병을 들고 돌아왔다.

“밥 대신이라도 먹어요. 빈속이지?”

봉투 안에는 주먹밥이 있었다. 나는 하나를 꺼내고 나머지를 주원에게 내밀었다.

“주원 씨도 안 먹었잖아요.”

“나는 차에서 먹으면 돼.”

“그럼 이걸 가져가요.”

주원이 받아 옆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말 잘 듣네. 평소엔 내가 뭘 줘도 확인부터 하더니.”

나는 주먹밥 포장을 벗겼다.

“병원에 먼저 와 준 건 고마워요.”

주원은 입에 든 것을 삼키고 물병을 열었다.

“다음엔 아버님 이름이랑 병원부터 말해. 전화로 괜찮냐고 3번 묻더라.”

“제가요?”

“응. 나도 아직 가는 중인데.”

나는 먹던 것을 내려다봤다. 주원이 물병을 내 쪽으로 밀었다.

“아버님 괜찮아지시면 돼. 그치?”

“네.”

주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검정 휴대폰이었다. 화면을 본 주원이 봉투를 접어 무릎에 놓았다.

“병실 올라갈 때까진 있을게.”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부탁할게요.”

주원은 전화를 끊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

병실로 옮긴 뒤에야 아버지가 깊이 잠들었다.

염 반장이 가져온 외투를 사물함에 넣고 휴대폰을 충전했다. 간호사에게 밤에 확인할 일을 물은 뒤 주원도 돌려보냈다.

주원은 문 앞에서 코트를 입었다.

“아침에 연락해요. 아버님 말씀만 듣고 퇴원부터 하지 말고.”

“알겠어요.”

“나경 씨도 좀 자.”

나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주원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 뒤 병실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충전 중인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남아 있었다. 공장 번호였다. 나는 내일 아침에 확인하겠다는 문자를 대신 보내고 소리를 껐다.

다시 앉으려는데 내 외투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다은이 보낸 작업대 사진이었다. 창가 책에는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입원했고 급한 이상은 없다는 답을 보냈다.

이헌에게도 같은 말을 쓰다가 지웠다. 통화가 끝날 때 대답하지 못한 이름이 자꾸 걸렸다.

아버지가 잠결에 팔을 움직였다. 나는 수액 줄이 당겨지지 않게 이불을 폈다.

주원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입원 수속도, 아버지 외투도, 내일 필요한 물건도 말할 수 있었다.

이헌에게 쓰던 문자에는 물음표 하나도 붙이지 못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빈 물통을 들었다. 아버지가 깨면 마실 물을 받아 둬야 했다.

병실 문을 조용히 닫았다.

복도에는 보호자 몇 사람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나는 정수기 표지판을 찾다가 걸음을 멈췄다.

복도 끝 자판기 옆에 이헌이 서 있었다.

코트 아래로 두 번 접은 셔츠 소매가 보였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헌이 나를 보고 몸을 바로 세웠다. 한 걸음 내딛던 발이 멈췄다.

나는 손에 든 물통을 내려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우리 사이로 간호사가 밀고 가는 수레가 지나갔다.

이헌은 수레가 지나간 뒤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3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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