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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1화

Author: 류한나
전미자와의 통화를 마친 고은서는 탑승 시간이 다 되어 외할아버지와 오춘식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약 두 시간 후, 세 사람은 해찬시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은 터라 그들은 먼저 호텔에 묵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외할아버지의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 후,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와 오춘식을 모시고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

호텔로 돌아온 고은서는 곽승재에게 부재중 전화가 온 것을 발견했다.

식사할 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전화뿐만 아니라 ‘도착했어?’ 라는 짧은 메시지도 와 있었다.

이미 한 시간도 더 지난 일이었기에 고은서는 굳이 답장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 들고 욕실로 향했다.

...

예원별장.

곽승재는 할머니 댁에서 돌아와 거실로 들어섰다.

이미숙이 다가와 물었다.

“차 드릴까요, 대표님?”

곽승재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 집에 돌아왔을 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지만 왠지 집 안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어제 차에서 가져오신 그 떡은 냉장고에 넣어놨습니다. 누구 드릴 건가요? 아니면 사모님에게 드릴까요?”

이미숙이 물었다.

곽승재는 떡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원래는 고은서가 외할아버지와 전미자를 위해 사 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젯밤 일들이 꼬이면서 결국 누구에게도 주지 못한 채 잊혀졌다.

고은서는 항상 섬세한 마음으로 어딜 가든 가족을 생각하며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했다.

그녀는 예전에도 그와 함께 새로운 음식점을 탐방하고 싶어 했지만 곽승재는 시간 낭비라며 매몰차게 거절하곤 했다.

그래서 고은서는 늘 직접 음식을 사 와 곽승재가 집에 돌아오면 함께 나누려 했지만, 곽승재는 항상 바쁜 척하며 그녀 곁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고은서의 기대에 찬 눈빛이 점점 실망으로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다음 날이면 고은서는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다시 그의 곁을 맴돌았다.

곽승재는 고은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떡 어떻게 할까?’

몇 초간 기다렸지만 고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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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242화

    곽승재가 전화를 끊은 뒤 휴대폰이 진동하며 알림이 왔다. 화면을 보니 육현석이 보낸 메시지였다.메시지에는 고은서의 SNS 캡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형, 형수님 어디 가신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운호산장에서 잘 보내고 계셨잖아?’곽승재는 그에게 답장하지 않고 보내온 사진을 확대했다.사진 속에는 고은서가 찍은 맛집 음식 사진과 그녀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셀카가 있었다.그리고 사진이 올라온 시간은 겨우 5분 전.그러니까 고은서는 자신의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못 본 척하고 답장하지 않았던 것이다!바로 그때, 주민기가 호텔 프런트와 고은서의 객실 번호를 보내왔다.곽승재는 주저하지 않고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고은서는 일회용 장갑을 끼고 샤워를 마친 뒤, 어깨에 약을 뿌리고 나서 침대에 편안하게 누웠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 앨범을 열고 SNS에 올릴 사진을 골라 보정을 하기 시작했다.그 사이 곽승재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지만 이제는 아예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사진을 신중하게 골라 게시물로 올리고는 다른 예쁜 사진들도 천천히 구경하려던 찰나 방 안의 전화기가 울렸다.호텔 프런트에서 걸려 온 전화겠거니 생각하며 고은서는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해맑은 여성의 목소리에 곽승재는 잠시 멍해졌다.가득 차오르던 짜증도 순간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여보세요? 무슨 일인가요”고은서가 다시 불렀다.그제야 곽승재는 입을 열었다.“왜 내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는 거야?”“...”고은서는 잠시 멈칫하다가 그가 호텔 방으로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은서, 내가 지금 묻고 있잖아.”곽승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고은서는 귀를 살짝 막으며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인데?”그녀의 싸늘해진 목소리에 곽승재는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내 메시지 못 봤어? SNS에 글 올릴 시간은 있으면서 왜 내 메시지엔 답이 없어? 아직 이혼한 것도 아닌 데 없는 사람 취급하겠다는 거야?”헛웃음이 새어

  • 어게인, 비긴   제243화

    메시지는 도아름에게서 온 것이었다.그녀는 서인수가 경찰서에서 풀려나 오늘 집으로 찾아왔다고 전해왔다.‘술 공장이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폐쇄되었고 전에 보육원의 그 여자아이가 갑자기 진술을 번복했어요. 자기가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었다고 했거든요. 지금 서인수는 미친개처럼 보이는 사람이면 아무나 물려고 해요. 억지로 내쫓긴 했지만 조심하세요. 지금 서인수는 잃을 게 없으니까. 외출할 땐 꼭 곽 대표와 함께 다니는 게 좋을 거예요.’아름 언니는 지난번 곽승재가 나서서 두 남자를 내쫓고 서인수를 경찰서에 보냈던 일을 떠올리며 그와 고은서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고은서는 그녀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고 자신이 지금 타지에 있어서 서인수와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고만 전했다.‘그럼 다행이네요. 지금 경찰 측이 증거를 수집하고 있어요. 보육원 여자아이가 진짜 진술을 한 거라면 며칠 안에 서인수는 다시 잡혀갈 거예요. 최소 2년은 살게 될 거고.’...다음 날, 고은서는 고준석과 함께 병원으로 유정길을 만나러 갔다.고은서는 이미 이분을 여러 번 만나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았다.하지만 몇 년 사이에 그가 이렇게 병마에 시달리며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백발이 성성하고, 몸은 뼈만 남은 채 가죽만 덮여 있는 모습이었다.전생에 외할아버지도 이렇게 병상에 누워 계셨던 모습을 떠올리자 고은서는 마음이 무너지며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이 녀석, 보고 싶어서 눈물까지 흘리다니 너무 과한 거 아니냐?”상황을 모르는 외할아버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유정길도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고은서는 민망하게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할아버지, 지금은 좀 어떠세요?”유정길은 기운을 차리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너희를 보니 훨씬 나아진 것 같구나.”고은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빨리 나으셔야 해요. 저희 자주 찾아뵈러 올게요. 이번에도 며칠 동안 외할아버지랑 같이 병문안 자주 올 거예요.”“그래그래.

  • 어게인, 비긴   제244화

    고은서는 민시후와 여러 번 만난 경험이 있기에 그가 진짜로 기밀 자료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전적으로 송민아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다.잠시 생각하던 고은서가 물었다.“송민아 씨가 지난번에 받은 충격이 부족했나 보네요. 이번엔 또 뭘 원하는 거죠?”“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민시후가 말했다.“어디서 들었는지 은서 씨가 다음 달에 ZY그룹에서 일하게 된다는 소식을 알아버렸어요. 그래서 송민아도 거기 가겠대요.”“그래서요?”“매니저가 필요하지 않나요?”“필요 없거든요!”“그럼 그렇게 결정된 거로 할게요.”민시후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민시후 저 인간은 대체 왜 자꾸 골칫거리를 만들어내는 거야!’송민아가 자신에게 적대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매니저로 붙이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화가 치민 고은서는 화단 옆의 잡초를 발로 차버렸다.하지만 잡초는 튕겨 나오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분통이 터진 고은서는 발로 꾹 밟아버리며 말했다.“감히 나한테 덤벼? 어디 두고 봐!”“풉.”갑자기 등 뒤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나이가 26, 27세쯤 되어 보이는 캐주얼 차림의 안경을 쓴 온화한 미소를 띤 남자가 서 있었다.‘이 사람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은서야, 정말 우연이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남자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그의 인사말을 듣고 나서야 고은서는 그가 누구인지 떠올렸다.그는 유전길의 손자 유성준이었다.몇 년 만에 다시 본 그는 이전에 풋풋한 모습은 사라지고 한층 성숙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봄바람 같은 느낌이었다.유성준은 고은서보다 네 살이 많았기 때문에 고준석은 그에게 ‘은서’ 라고 부르도록 했었다.일반적으로 이런 호칭은 다소 가벼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유성준이 부를 때는 정말 친형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몇 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하지 않고

  • 어게인, 비긴   제245화

    “은서야,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할아버지 아직 건강해. 부축해 주지 않아도 혼자 걸을 수 있어.”고준석이 웃으며 말했다.고은서는 외할아버지의 팔에 기대어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그럼 제가 걷기 힘들어서 의지하고 싶어 하는 걸로 생각해 주세요!”고준석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은서야, 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는 거니? 요즘 너 많이 변한 것 같아서 말이야.”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는 제가 이렇게 변한 게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나쁜 변화라고 생각하세요?”고준석은 손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할아버지는 네가 이렇게 어른스럽고 얌전해질 필요 없다고 생각해. 그냥 네가 행복하게 살면 돼.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아도 괜찮아.”외할아버지의 말에 고은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외할아버지는 언제나 그녀를 아껴주셨다. 무슨 잘못을 해도 절대 그녀를 나무라지 않으셨다.“왜 또 울려고 하니?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있었어?”고준석이 물었다.고은서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냥 할아버지한테 죄송해서요. 예전에는 곽승재밖에 몰랐고, 할아버지께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어요.”고성준이웃으며 말했다.“바보 같은 소리하고 있구나.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할아버지는 기뻤단다.”고은서가 더 말을 하려는 순간, 앞쪽에서 갑자기 놀란 비명이 들렸다.곧이어 한 대의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질주해 왔다.고은서는 가슴이 철렁하며, 외할아버지를 부축하고 급히 옆길로 몸을 피했다.오토바이는 그들이 서 있던 곳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간신히 한숨을 돌리려던 찰나, 또 다른 오토바이가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았다!“할아버지, 조심하세요!”고은서는 재빨리 길가에 있던 주차 금지 표지판을 잡아 들고 오토바이를 향해 던졌다.“끼익!”오토바이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브레이크를 밟으며 미끄러졌다. 타이어와 도로가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 어게인, 비긴   제246화

    고은서는 지난 생에 백유미를 해치려 방화 사건을 꾸민 범인으로 몰렸었다. 그 사건을 꾸민 자들 중 한 명이 방금 헬멧을 떨어뜨린 그 남자였다.그와 또 다른 남자는 경찰서에서 고은서가 주범이고 그들은 단지 돈을 받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그때 고은서는 그들과 맞서 싸우며 한참을 억울함에 시달렸어야 했기에 그들의 얼굴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설마 여기까지 와서 외할아버지를 공격하려 할 줄이야.그렇다면 전생에서 외할아버지가 당한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된 범행이었던 것이다.“벡유미, 대체 어디까지 해보려는 거야!”고은서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외할아버지까지 해치려 하다니!전생 이맘때쯤 곽승재는 이미 백유미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고은서는 백유미의 SNS를 엿보며 그들이 매일 함께 일하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등 거의 연인 관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곽승재는 고은서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싫어했고,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을 냈다.그런데도 왜 전생의 백유미는 굳이 외할아버지를 해치려 했을까?원지훈이 고은혜에게 접근했던 건 GS그룹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하지만 외할아버지를 노린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외할아버지는 그녀의 감정 문제에 관여한 적도 없고, 이미 오래전에 회사 경영에서도 손을 뗐는데.백유미는 고은서 주위의 모든 사람을 해치려 했던 걸까.고은서는 온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천천히 대응할 수 있겠지만, 외할아버지에게 해를 입히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고은서는 당장이라도 해성으로 돌아가 백유미의 목을 조르고 싶은 심정이었다.“도착했습니다.”기사의 목소리가 고은서를 증오와 분노의 감정에서 깨어나게 했다.고은서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추스르고 차에서 내렸다.유성준은 병원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은서야, 대체 무슨 일이야?”“혹시 일에 방해가 되진 않았어요?”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247화

    유성준은 고은서를 호텔로 데려다주며 부드럽게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마. 경찰 쪽은 내가 계속 신경을 써서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 알려줄게.”고은서는 진심으로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번 일을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성준만은 고은서의 우려를 이해하며 그녀와 함께 세세한 조사까지 도와주었다.호텔로 돌아온 고은서는 외할아버지가 그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고 외할아버지 방으로 갔다.문을 두드리자 고준석이 걱정 어린 얼굴로 문을 열어 주었다.“은서야, 돌아왔구나. 얼굴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니?”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아까 성준이에게 전화했는데, 네가 카메라 영상을 확인하러 갔다고 하더구나. 오늘 일은 정말 그냥 우연이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고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오토바이가 두 대나 우리를 거의 칠 뻔했어요. 너무 우연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방 안에서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할아버지,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계신 건가요?”고준석은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은서야, 들어와서 이야기 좀 하자. 마침 승재랑 영상 통화 중이었어. 너도 몇 마디 나눠보렴.”영상 통화 화면 속에 보이는 곽승재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자, 고은서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옷을 갈아입다가 실수로 영상 통화를 받았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괜찮아요, 할아버지. 저 좀 피곤해서 먼저 방에 들어가 쉴게요.”고은서는 방에서 나와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곽승재와 나눌 말이 없었다.방으로 돌아온 고은서는 민시후에게 전화를 걸었다.“은서 씨, 요즘 나한테 연락 자주 하네요? 내가 보고 싶어진 건가?”민시후가 농담을 섞어 말했다.고은서는 핸드폰을 든 채 눈을 굴리며 말했다.“해성에 아는 사람 많죠?”“이젠 내 인간관계도 조사하는 거예요?”민시후는 과장을

  • 어게인, 비긴   제248화

    전화를 끊은 후 고은서는 호텔 침대에 몸을 뉘었다.오늘 밤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외할아버지께서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을 절대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잠시 누워있으려는데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나를 차단 목록에서 해제해.’주민기의 휴대폰에서 온 메시지였다.내용만 봐도 곽승재가 보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맞다. 그날 통화를 끊고 그녀는 아예 그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해제는 무슨.고은서는 곽승재를 떠올리며 화가 치밀었다.그가 이혼을 시원하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유미가 여차 손을 대게 된 것 아닌가.고은서가 메시지에 답하지 않자 곽승재는 호텔 방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고은서는 짜증이 나서 아예 방 전화선까지 뽑아버렸다.드디어 조용해졌다.고은서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한 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얼마나 잤을까, 문득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감사합니다.”그리고 나지막하게 들려온 곽승재의 감사 인사.고은서는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곽승재가 정말 눈앞에 서 있었다.외할아버지와의 영상 통화에서 입고 있던 그 정장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먼 길을 달려온 듯 피곤해 보였다.“여기, 여긴 왜 있어?”고은서의 목소리가 떨렸다.지금이 몇 시인데 해찬시까지 찾아왔단 말인가.곽승재는 가방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 옷장에 걸었다. 마치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처럼 그의 행동은 매우 자연스러웠다.“호텔 직원이 어떻게 들여보낸 거야?”고은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곽승재는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우린 부부잖아. 프런트에 결혼 증명서를 보여주니까 간단히 확인만 하고 문을 열어주던데.”“...”고은서는 쓴웃음을 지었다.결혼 증명서를 이용해 권리를 주장하던 건 항상 자신이었는데 이제 곽승재가 그것을 이용할 줄이야.“그래서,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와서 대체 뭘 하려는 건데?”고

  • 어게인, 비긴   제249화

    고은서는 곽승재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그와 말다툼하는 대신 그녀는 방 전화선을 다시 꽂고 프런트로 전화를 걸었다.“혹시 남는 방 있나요? 하나 더 예약하고 싶어요.”곽승재가 이 방을 쓰게 놔두고, 그녀가 다른 방을 쓰기로 한 것이다.그러나 프런트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손님. 현재 저희 호텔은 만실입니다.”고은서는 방해받아 잠에서 깨어난 것만으로도 화가 나 있었는데 방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더 화가 났다.“내 허락도 없이 사람을 내 방에 들이다니, 어떻게 된 거예요? 당장 방을 하나 마련해주지 않으면 이 호텔을 신고할 거예요!”프런트 직원은 당황하며 설명했다.“죄송합니다, 손님. 상대방이 남편이라고 하시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손님 휴식에 방해 될까 봐 조심스러워서 그렇게 했습니다...”고은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어버렸다.침대 옆에 여전히 앉아 있는 곽승재를 더 이상 쫓아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옷장에 여분의 이불이 있어. 알아서 방바닥에 깔고 자.”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고은서는 곽승재에게 등을 돌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곽승재는 고은서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침대에 누워 있는 가녀린 등을 바라보며 그녀의 조금 전 행동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테이블에서 고은서가 전에 사용했던 연고를 찾아내 그녀의 왼손을 이불 속에서 꺼내 살살 바르기 시작했다.밤공기가 서늘해서인지, 곽승재의 손은 평소보다 더 차가웠다. 고은서는 그의 손길에 닿은 피부가 불편했다.손을 빼내려 했지만 곽승재가 단단히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가만히 있어.”한밤중에 싸우고 싶지 않았던 고은서는 그가 약을 다 바를 때까지 옆으로 누운 자세로 조용히 있었다.“어깨 상처는 어때? 약 뿌렸어?”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곽승재, 제발 작작 좀 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난 네 '좋은 남편' 이미지를 망치지 않을 테니까.”곽승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외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네가 밤새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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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100화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

  • 어게인, 비긴   제1099화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곽승재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녀는 친구에게 부탁해 적절한 시기에 감시 카메라를 끊어놓도록 준비해두었다.하지만 여시은이 먼저 참지 못하고 로비의 카메라를 꺼버린 것이다.고은서가 감히 감시 카메라의 확인을 제안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준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여시은 역시 감시 카메라를 조작할 것이라는 점까지 예측했다.“만약 여시은이 참고 끝까지 널 찾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어?”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개업식이 끝난 후 대형 스크린에 공개할 계획이었어.”곽승재가 눈썹을 추켜세웠다.“네가 앞서 백스테이지 주위를 둘러본 것도 동영상을 공개할 준비를 했던 거야?”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시은이 일부러 나를 물에 빠뜨리고 향수로 나를 함정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쿠아까지 학대했어. 내가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리고 시은이가 인내심을 가졌다고 해도 난 개업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 거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지. 시은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테라스에서 쿠아의 죽음을 언급하며 나를 자극했고 다시 같은 수법을 쓸 참이었던 거지. 나는 그저 시은이가 파려던 함정을 그대로 돌려준 것뿐이야.”곽승재는 고은서가 준비를 해왔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고육지계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펼칠 줄은 몰랐다.게다가 그녀의 연기는 너무나도 실감 났다.고은서가 바닥에 넘어져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순간 곽승재는 정말로 여시은의 소행일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생각을 읽었는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가여운 척 한 거 아니야. 백유미와 여시은이라는 고수들 덕분에 나도 한 수 배웠을 뿐이지.”백유미의 과거 행동을 떠올린 곽승재는 가슴을 죄는 듯한 자책감이 밀려왔다.곽승재는 진지하게 사과했다.“은서야, 미안해.”무심코 흘린 말에 곽승재가 사과하는 모습을 본 고은서는 잠시 당황했다.“사과할 필요는 없어. 당신도 백유미 씨에게 속았을 뿐이잖아. 어쨌든 ‘목숨의 은인'

  • 어게인, 비긴   제1098화

    “시은아!”영상 속 장면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재훈은 걱정된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그리고 뒤이어 멀리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어서 따라가서 시은이를 보호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해서는 안 돼!”부하들이 여시은의 뒤를 쫓아 나간 뒤 여재훈은 스크린을 힐끗 바라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은서에게 사과했다.“제가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시은에게 직접 확인한 뒤 여은서 씨께 해명해 드리겠습니다.”고은서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는 그곳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이유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여 대표님, 제가 은서 씨를 모셔다드리겠습니다.”곽승재가 말했다.송민준 역시 함께 가겠다고 전했다.여재훈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개업식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킨 이상 누구라도 축하할 마음이 없을 터였다.고은서 일행이 떠나자 여재훈은 참석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며 홍보팀에 현장 수습을 지시했다.호텔 앞 광장에서 곽승재와 송민준의 운전기사들이 각각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송민준은 고은서를 배웅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곽승재가 고은서를 부축하면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번거로울 텐데 제가 은서 씨를 모시고 가겠습니다.”송민준은 자기가 고은서의 파트너로 왔기 때문에 그녀를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득했다.곽승재는 송민준의 이런 친근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고은서를 안아 들어 자신의 차에 태우고 싶었지만 고은서가 화를 낼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입을 오므리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택권을 고은서에게 넘겼다.고은서는 당연히 송민준과 함께 갈 생각이 없었다.“오빠, 오늘은 고마웠어. 오늘 승재 오빠의 차를 타고 갈게. 어차피 길도 같으니까. 내일 다시 연락할게.”고은서의 반응에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알겠어.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곽승재는 고은서를 차에 태운 뒤 트렁크에서 깨끗한 외투를 꺼냈다.차 안에 앉자 곽승재는 고은서의 어깨

  • 어게인, 비긴   제1097화

    여시은은 고은서의 말에 더욱 어리둥절해졌다.‘갑자기 왜 또 농장 일을 다시 꺼내는 거지?’여시은은 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점점 더 억울하고 분했다.“은서야, 왜 나를 이렇게 모함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너를 물에 빠뜨렸다고 그래? 네가 나를 밀었잖아! 내가 우리 아빠를 생각해서 참고 넘어갔는데 이제 와서 또 나에게 뒤집어씌우다니!”여시은은 여재훈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아빠, 저는 항상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는 것 같아요... 은서가 이런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너무 속상해요...”여시은의 슬프고 안쓰러운 모습에 여재훈은 점차 진지해졌고 고은서를 보며 물었다.“고은서 씨, 시은이가 은서 씨를 물에 빠뜨렸다는 증거라도 있어요?”“물론 있죠.”고은서는 이미 곽승재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상태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송민준이 보낸 영상을 찾았다.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은서가 진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더니 그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이때 곽승재가 제안했다.“여 대표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영상을 공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직접 보면 진실이 명백해질 테니 나중에 왜곡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여시은은 고은서가 미리 준비한 듯한 태도를 보이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고은서가 이렇게 계획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증거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여시은이 고은서를 과소평가했던 것이다.여시은은 붉어진 눈으로 소리쳤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에요! 이미 개업식 시간이 다 됐는데 계속 이러쿵저러쿵하며 일을 벌이다니! 고의로 우리 개업식을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아빠, 오늘 이분들은 분명히 좋은 의도로 온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쫓아내는 게 낫겠어요!”“여시은 씨, 말씀이 참 지나치군요. 우리는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송민준이 여재훈보다 먼저 입을 열

  • 어게인, 비긴   제1096화

    구경하는 사람들도 송민준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의 여자 파트너가 곽승재의 품에 안겨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송민준은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여시은 씨, 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은서와 여시은 씨의 사이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은서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아빠, 정말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저 사람들은 같은 편이라서 일부러 저를 괴롭히려는 거예요!”여시은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여재훈은 눈물 글썽이는 딸을 바라보더니 온몸이 흐트러진 고은서를 향해 물었다.“고은서 씨, 사실대로 말해보세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고은서는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렸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당연히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여 대표님, 제가 뭘 말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시은이와 저는 각자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판단하기 어려울 겁니다.”고은서는 로비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여기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요. 직원들을 시켜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진실도 드러나겠죠.”이 말을 듣자 여시은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고은서가 여시은보다 먼저 바닥에 넘어졌는데 감시 카메라의 확인까지 제안하다니!‘설마 은서가 이 시간대에 감시 카메라를 꺼뒀다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시은아, 너의 생각은 어때?”고은서는 고개를 들어 여시은에게 물었다.여시은은 분노를 꾹 참고는 여전히 억울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좋아! 하지만 개업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감시 카메라는 확인하는 동안 내가 먼저 개업식을 진행하고 나중에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게 어때?”“안 돼.”고은서의 작은 얼굴에는 단호한 표정이 담겨있었다.“이 사건은 반드시 바로 조사되어야 한다고 봐.”고은서는 다시 여재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여 대표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제가 시은이 만큼 귀하지는 않지만 이런

  • 어게인, 비긴   제1095화

    고은서는 얼굴과 몸이 온통 와인으로 범벅이 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와인은 그녀의 얼굴 결을 따라 드레스 위로 떨어졌고 머리카락에도 많이 튀었다. 그리고 젖은 앞머리 몇 가닥이 이마에 붙어 고은서를 더욱 가여워 보이게 했다.고은서는 놀란 듯 눈동자에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괜찮아요?”그 순간 곽승재와 송민준이 동시에 고은서를 향해 급히 다가왔다.곽승재가 송민준보다 한발 앞서 도착해 고은서를 부축하며 다급하게 물었다.고은서는 몸을 살짝 떨면서 두려움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네, 괜찮아요.”누군가 물티슈를 건네자 곽승재는 서둘러 고은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여시은은 텅 빈 와인 잔을 들고 테라스에서 고은서와 멀지 않은 곳에 떡하니 서 있었다.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평소 감정을 잘 숨기던 여시은도 고은서의 이런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사이 로비의 음악은 멈췄고 상황을 보려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은서야, 괜찮아? 어떻게 넘어진 거야?”여시은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고은서의 앞에 다가가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하지만 고은서는 여시은을 보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몸까지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곽승재는 고은서를 안정시키듯 감싸며 여시은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여시은 씨, 대체 무슨 일이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송민준이 곽승재보다 먼저 여시은에게 질문하고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고은서에게 걸쳐주려 했다.그러나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곽승재가 재킷을 받아 고은서에게 걸쳐주었다.“시은아!”소식을 접한 여재훈이 급히 달려왔다.“아빠!”여재훈을 본 여시은은 든든한 빽이라도 생긴 듯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으윽...”여재훈이 여시은을 달래기도 전에 고은서가 타이밍 좋게 아픔을 참는 소리를 냈다.“왜요? 아파요?”고은서에게 재킷을 걸쳐주던 곽승재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고은서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다른 한 손으로 팔꿈치를 문지르는 동작을 했다.곽승재가 고은서의 팔을 살펴

  • 어게인, 비긴   제1094화

    이런 수법은 백유미도 쓴 적이 있었다.안타깝게도 여시은은 백유미처럼 곽승재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수작은 곽승재에게 통하지 않았다.아마 고은서의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인지 여시은의 시선이 마침 고은서에게로 향했다.고은서는 입가의 비웃음을 다 감추지도 못한 채 여시은과 눈을 마주쳤다.여시은의 눈빛이 차가워졌지만 고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에 들고 있던 주스를 한 모금 마시더니 여시은에게 잔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기분 좋게 앞쪽 테라스로 걸어갔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이런 식으로 도발을 당한 적이 없었기에 참지 못하고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다.역시나 고은서가 테라스에 도착지 얼마 되지 않아 뒤에서 여시은의 목소리를 들려왔다.“은서야, 왜 혼자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 송 대표님은?”여시은은 손에 와인 잔을 들고 있었고 목소리는 여전히 달콤했다.고은서는 잔을 내려놓으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여시은 씨, 매일 이렇게 연기하느라 피곤하지 않으세요? 아니면 제가 여시은 씨처럼 건망증이 심한 줄 아세요?”여시은은 고은서가 이런 태도를 보일 줄 몰랐는지 환했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은서야, 지난번에 아버지께서 우리 둘 사람을 불러 화해시켜줬잖아. 왜 아직도 화를 내고 있어?”여시은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슬픈 어조로 계속해서 말했다.“은서야, 너에게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쿠아가 사고를 당해서 이미 하늘나라로 갔어.”고은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쿠아가 죽었다고?’여시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쿠아가 연못에 빠져 사고를 당했어. 연못에 금붕어들이 많이 있었는데 쿠아가가 놀면서 잡으려다가 빠진 모양이야. 내가 발견했을 때는 쿠아가 이미 물 위에 떠 있는 상태였어. 내가 직접 건져 올렸지만 쿠아의 몸이 이미 굳어버린 거 있지. 눈도 뜨인 채로 털은 전부 젖어서 몸에 붙어 있었어. 정말 안됐지...”고은서는 알고 있었다. 여시은이 일부러 이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을.그리고 쿠아가 물고기를 잡다가

  • 어게인, 비긴   제1093화

    곽승재는 현재 판주 투자은행에 있지만 감히 그를 얕보는 사람은 없었다.그는 곽씨 가문의 장손이자 곽씨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판주 투자은행에 간 것도 일종의 시련으로 여겨질 뿐이다.앞으로의 곽씨 그룹은 여전히 곽승재가 이어받게 된다는 것도 모두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 속에 둘러싸인 곽승재는 평소처럼 검은색의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키가 크고 훤칠한 체구에 빼어난 외모는 마치 이곳이 그의 무대가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여시은과 여재훈 역시 그에게 다가가 친근하고 허물없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주변에서는 곧장 수군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곽씨 가문과 여씨 가문이 혹시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 거 아니에요? 저렇게 친밀하게 대화하는 걸 보면 마치 한 가족 같잖아요.”“아직도 모르셨어요? 여씨 가문이 이번 투자은행의 개업을 순조롭게 하게 된 것도 곽 대표님이 뛰어다니며 큰 도움을 줬다잖아요!”“얼마 전까지 곽 대표님이 연예인과 스캔들 난 거 아니었어? 요즘은 소식이 뚝 끊겼던데... 아마도 정략결혼 얘기가 오가면서 그런 여자들은 정리한 모양이네.”“솔직히 곽 대표님과 여시은 씨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죠. 진짜 결혼하면 주가가 어디까지 치솟을지 가늠이 안 가네요!”“그러게 말이야. 얼른 주식 좀 사둬야겠다...”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은서는 담담한 미소만 지었다.여시은이 곽승재와 결혼할 마음이 굉장히 확고한 모양이었다. 곽승재에게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여론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으니까.하지만 고은서는 그런 것에 한 치도 관심이 없었다. 오늘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KK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한 고은서는 홀로 로비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찾아온 몇몇 동업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곽승재 역시 고은서를 발견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두 사람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만 했다.하지만 그 모습을 여시은이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살짝 어두운 그림자가

  • 어게인, 비긴   제1092화

    여시은은 몇몇 귀부인들에게 고은서를 소개했다.고은서도 예의 바르게 그녀들에게 인사를 나눴다.“시은아, 이분이 바로 네가 말했던 요즘 사업을 크게 성공시키고 관청에서 상까지 받은 그 친구야?”화려한 옷을 입은 한 귀부인이 물었다.“네, 언니. 은서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 제가 본받을 만한 점이 많아요. 우리 회사도 은서 회사처럼 잘 운영될 수만 있다면 너무 만족할 것 같아요!”여시은은 과장된 어조로 대답했다.“고은서 씨가 뛰어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굴은 참 예쁘네.”이혜화로 불리는 사람이 이렇게 평가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니까. 자기 장점을 잘 파악하고 이용하다니! 우리 세대는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아.”다른 한 귀부인이 감탄했다.고은서는 눈앞의 여자들의 말하고 있는 의도를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성과가 얼굴 덕분이라는 얘기였다.고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언니들이 이루신 지위와 성과에 비하면 제가 이 얼굴로 얻은 작은 성과는 비교도 안 되죠. 앞으로는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언니들에게 많이 배워야겠어요.”고은서의 자기 비하와 아첨이 섞인 말을 들은 이혜화 일행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여시은이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언니들, 은서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말재주도 좋고! 제가 이렇게 훌륭한 분을 언니들에게 소개해 드리길 잘했죠?”고은서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 생각에 더 대단한 분은 시은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하지만 시은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투자은행에서 오래 일하면서 크고 작은 만찬회도 많이 참석했지만 언니분들과 같은 귀한 분들을 만날 기회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시은의 개업식에서 이렇게 많은 언니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다니 시은의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는걸요.”고은서는 살짝 한숨을 쉬며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서 시은이가 저를 부러워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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