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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5화

Author: 류한나
곽승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았다. 대신 고은서의 손을 잡고 그녀가 편히 차에서 내리도록 도와주었다.

오랫동안 꿇고 있었던 탓에 무릎이 아팠던 고은서는 이것까지 거절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집에 들어서니 이미숙이 따끈따끈한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사모님, 도련님과 같이 오셨네요. 마침 밥이 다 됐으니 식사하세요.”

고은서는 입맛이 없었다.

“아줌마, 저는 못 먹을 것 같아요. 먼저 좀 쉴게요.”

“조금이라도 먹고 쉬어. 송민아 말로는, 네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던데.”

곽승재의 말에 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먹어. 난 정말 입맛이 없어.”

곽승재는 방에 들어가려는 고은서의 손을 잡았다.

“민시후가 수술이 잘돼서 기억을 되찾는다면, 네가 이렇게 몸을 혹사하는 걸 알고 마음이 편하겠어?”

이 말에 고은서는 고개를 들었다. 불빛 아래서 곽승재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과 함께 약간의 어색함이 흘렀다.

항상 카리스마가 넘치던 그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민시후까지 들먹인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건강이 최고의 자산’이라고 전생의 위암 경력을 떠올린 고은서는 묵묵히 식탁으로 걸어가 앉았다.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 곽승재는 말 없이 그녀에게 국을 떠주었다.

이미숙은 곽승재에게 밥그릇과 수저를 가져다준 후 부엌으로 사라졌다.

고은서는 국물을 몇 모금 마신 후 곽승재에게 물었다.

“오늘 유일에 갔었어?”

그렇지 않고서야 송민아가 어떻게 그녀의 상황을 알려줄 수 있었겠는가?

곽승재는 고개를 저었다. 전화 연결이 되지 않자, 걱정된 그는 운전기사에게 전화했고, 운전기사로부터 그녀가 절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송민아한테 연락해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고 한다.

“어쨌든 오늘 고마웠어.”

남처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곽승재는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고은서는 민시후의 일로 혼이 빠진 상태에서도 그와 차갑게 거리를 두고 있다.

마음에도, 눈에도 곽승재밖에 없던 과거의 고은서가 아니다.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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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148화

    “여시은이 워낙 착한 척 연기를 잘하는 데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보호막이 돼주니 사랑과 아낌을 받는 게 당연해.”박지연이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성공한, 훌륭한 남자를 평생 재혼도 안 하게 만든 여시은의 어머니는 얼마나 뛰어난 분일까? 여시은은 왜 부모님의 장점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하고 이렇게 마음씨가 고약한 사람이 됐을까?”고은서는 더 이상 여시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지연아, 왜 혼자야? 아름 언니는?”“전화를 받길래 내가 먼저 들어왔어. 저기 오네.”박지연이 앞을 향해 입을 삐죽 내밀었다.고은서가 앞으로 다가가 도아름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명운이 증시에 상장한 후 도아름은 더욱 바빠진 모습이다. 그들이 최근에 모인 것도 박지연이 사할 때가 마지막이었다.도아름도 고은서와 박지연을 반가워했고, 둘과 함께 홀을 둘러보면서 진정한 ‘추억 여행’을 했다.식사할 때도 세 사람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다. 절친들과 함께하니 고은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식사를 마친 세 사람이 스파숍이라도 갈까 의논하던 중, 도아름이 긴급회의 통지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먼저 자리를 떴다.“말해봐. 무슨 일로 기분이 안 좋은 거야?”도아름이 가자, 눈치 빠른 박지연이 물었다.최근에 정말 많은 일을 겪었지만, 고은서는 복잡한 사건들은 생략한 채 민시후의 상황만 그녀에게 말했다.“민시후와 관련이 있을 줄 알았어.”“육현석한테 들었는데, 어제저녁 곽승재가 사찰에 가서 너를 데려왔다며?”“너 어제 사찰에 간 게 민시후 때문이었어?”박지연의 질문에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민시후를 위해 뭔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네가 그 사찰이 영험하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빌고 싶었어.”박지연이 농담처럼 흘린 사찰 이야기를 그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 반나절이나 무릎 꿇고 빌 줄이야.“은서야, 너 민시후에게 도대체 어떤 감정이야? 죄책감? 사랑? 아니면 너 자신도 구분 안 돼?”박지연의 질문에 고은서는 침묵을 지켰다. 송민아가 말한 것처럼

  • 어게인, 비긴   제1147화

    고은서가 고개를 돌려 보니 여시은이었다.여시은은 며칠 전의 초췌한 얼굴이 아니었고, 어느새 사랑스러운 아가씨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그녀는 나팔 모양의 축음기를 가리키고 있었고, 여재훈은 미소를 띤 채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고은서의 시선을 감지한 여시은과 여재훈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여시은은 그녀를 힐끗 쳐다볼 뿐, 예전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다가오지 않았다.“고은서 씨, 여기서도 만나네요. 식사하러 오셨어요?”신사답게 인사를 건네는 여재훈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고은서.“네,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요.”여재훈이 말을 이었다.“요 며칠 시간 되시면 같이 식사하실래요? 이전 일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드리고 싶어요.”고은서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단지 리셉션과 농장 사건 때문이라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 두 건에 관해서는 이미 사과하셨잖아요.”여재훈은 고은서가 회사 앞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다칠 뻔했던 사건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았다.“고은서 씨, 지난 사건은 경찰 조사에서 시은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잖아요.”“시은과 꽤 친한 사이였는데 무슨 오해가 있는 거라면 마주앉아 솔직한 대화로 풀어요.”인자한 어른이 딸과 친구를 화해시키려고 애쓰는 것처럼 친근하고 온화한 말투였다.하지만 고은서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고 속도 좁아서 여시은 씨와 평화롭게 지낼 수 없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에 애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이 말에 여시은이 여재훈의 팔을 잡으며 약간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고은서, 우리 아빠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그 일에 관해서는 아빠가 나를 많이 혼냈고, 나도 너한테 사과했잖아. 아빠가 너를 위해 팔까지 다치셨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오히려 내가 쿠아를 학대했다고 모함해?”여시은은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마재경 사건도 그래. 네가 조사도 제대로 안 하고 그 여자 말만 믿는 바람에 내가 아빠

  • 어게인, 비긴   제1146화

    고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여시은이 작정하고 고육지책을 썼다면 당연히 외출해서 꼬투리 잡히지 않겠지. 송민준은 결백하거나, 설령 무언가 했더라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거야.”곽승재도 이 점은 잘 알고 있었다.송민준이 C선생이든 아니든, 고씨 가문과 고은서를 겨냥한 이 사건에 중요한 퍼즐이 빠져있는 느낌이다.고씨는 꽤 부유한 집안이긴 하지만, 여씨나 송씨 집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원한? 하지만 원한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고준석은 사리에 밝아 평생 누구와도 원수진 일이 없었다.고국성 부부는 비록 속물이지만 담이 큰 편은 아니었고 극악무도한 성격도 아니라서 이렇게 깊은 원한을 살 만한 일을 저질렀을 리 없었다.그렇다면 원인이 고은서의 어머니에게 있는 건 아닐까?“왜 그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고은서의 질문에 곽승재는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손문호에 관해서는 내가 확실하게 알아볼 테니 너무 마음을 졸이지 마.”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곽승재가 개입하니 꽤 마음이 놓였다.식사 후, 곽승재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고은서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일찍 쉬라고 말한 후 재빨리 자리를 떴다.고은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려고 애쓰며 겨우 잠든 고은서는 악몽에 시달렸다.꿈속에서 민시후는 그녀의 무관심과 몰인정함을 비난했고, 곽승재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가 변심했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송민준까지 나타났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가 C선생이고 그녀와 고씨 가문을 파멸로 이끌겠다고 속삭였다.“아!”고은서는 공포에 질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주변의 낯익은 장식품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악몽이었을 뿐이다. 만약 실제로 세 남자가 이렇게 몰아붙인다면 그녀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괴로운 심정을 뒤로한 채 고은서는 몇몇 담당자와 함께 WOR 게임 회사를 방문했다.창립 멤버와 회사 직원들이 게임 OBT 출

  • 어게인, 비긴   제1145화

    곽승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았다. 대신 고은서의 손을 잡고 그녀가 편히 차에서 내리도록 도와주었다.오랫동안 꿇고 있었던 탓에 무릎이 아팠던 고은서는 이것까지 거절하지는 않았다.두 사람이 집에 들어서니 이미숙이 따끈따끈한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사모님, 도련님과 같이 오셨네요. 마침 밥이 다 됐으니 식사하세요.”고은서는 입맛이 없었다.“아줌마, 저는 못 먹을 것 같아요. 먼저 좀 쉴게요.”“조금이라도 먹고 쉬어. 송민아 말로는, 네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던데.”곽승재의 말에 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당신이 먹어. 난 정말 입맛이 없어.”곽승재는 방에 들어가려는 고은서의 손을 잡았다.“민시후가 수술이 잘돼서 기억을 되찾는다면, 네가 이렇게 몸을 혹사하는 걸 알고 마음이 편하겠어?”이 말에 고은서는 고개를 들었다. 불빛 아래서 곽승재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과 함께 약간의 어색함이 흘렀다.항상 카리스마가 넘치던 그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민시후까지 들먹인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건강이 최고의 자산’이라고 전생의 위암 경력을 떠올린 고은서는 묵묵히 식탁으로 걸어가 앉았다.표정이 살짝 어두워진 곽승재는 말 없이 그녀에게 국을 떠주었다.이미숙은 곽승재에게 밥그릇과 수저를 가져다준 후 부엌으로 사라졌다.고은서는 국물을 몇 모금 마신 후 곽승재에게 물었다.“오늘 유일에 갔었어?”그렇지 않고서야 송민아가 어떻게 그녀의 상황을 알려줄 수 있었겠는가?곽승재는 고개를 저었다. 전화 연결이 되지 않자, 걱정된 그는 운전기사에게 전화했고, 운전기사로부터 그녀가 절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송민아한테 연락해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고 한다.“어쨌든 오늘 고마웠어.”남처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곽승재는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왔다.고은서는 민시후의 일로 혼이 빠진 상태에서도 그와 차갑게 거리를 두고 있다.마음에도, 눈에도 곽승재밖에 없던 과거의 고은서가 아니다.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

  • 어게인, 비긴   제1144화

    “괜히 산 게 아니야.”송민아는 송민준에게 다가가 버블티 한 잔을 받아 들고는 아양을 떨며 말했다.“나는 그냥 객관적으로 분석했을 뿐이야.”“오빠가 정말 고은서를 좋아한다면 잘해봐. 어차피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애라 내 말에 휘둘리지 않아. 아, 맞다. 중요한 전화를 받아야 해서.”송민아는 이마를 탁 치더니 잽싸게 도망쳐버렸다.고은서는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방금까지 송민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터라 두 사람만 남으니 살짝 어색했다.그녀가 차분하게 물었다.“들어와 좀 앉을래?”송민준은 표정 변화 없이 침착하게 걸어들어와 남은 버블티를 건넸다.“민아한테서 너희 둘 다 이런 과일차를 좋아한다고 들었어. 마침 지나가다 보이길래 사 왔어.”고은서는 버블티를 받아 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그녀는 송민준에게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민아를 찾아온 거야? 아니면 나랑 볼 일이 있는 거야?”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닌 송민준이 일부러 버블티를 전하러 온 것은 아닐 테니까.송민준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원래는 민시후의 수술 소식을 알리려고 왔는데, 이미 민아한테서 들었겠네.”고은서는 여전히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민아가 어젯밤에 알려줘서 민시후에게 전화도 했어. 지금쯤 수술이 시작됐어?”전화한 지 몇 시간 지났으니 수술이 시작됐을 것이다.송민준은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아직. 이틀 뒤로 미뤄졌어.”고은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미뤄졌지?”“갑자기 두통이 심해져서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나 봐.”“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순간 고은서는 신경이 곤두섰다.“구체적인 원인은 모르겠어. 민 시장님이 바쁘셔서 자세히 묻지 못했어.”“너무 걱정하지는 마. 외국 병원으로 옮긴 후 다른 외상은 거의 회복됐다고 들었어. 다만 잦은 두통과 현기증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야 하나 봐.”“이번 두통은 의료진이 예상했던 거래.”고은서는 이게 다 위로의 말이라는 걸 알았다. 민시후의 상태는 그녀가 상상했던

  • 어게인, 비긴   제1143화

    통화를 끝낸 후, 고은서는 침대에 쓰러졌다.민시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민시후에게서 떨어지는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축복이다. 그녀는 이 평온을 깨지 말아야 했다.잠을 설친 탓인지, 이튿날 출근한 고은서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송민아가 다가와 물었다.“어떻게 됐어? 민시후에게 전화했어?”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왜 이렇게 우울해 보여? 민시후가 걱정돼?”고은서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민시후의 수술이 끝나면 그 결과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송민아는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민씨 가문에서 줄곧 고은서를 경계하고 있으니, 또 누군가가 경고했을 것이다.“고은서, 민시후가 모든 기억을 되찾으면 어떻게 할 거야?”“민시아 말로는,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이 잘돼도 최근 2년간의 기억을 되찾지 못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대. 설령 기억을 되찾는다 해도 민시후는 나한테 실망할 거야.”“그리고 요즘 괜찮은 여성이 민시후를 보살피고 있고,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양가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추진할 거라고 했어.”“애초에 우리는 친구 사이일 뿐이니 민시후가 나를 떠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야.”송민아는 고은서의 말을 듣고 오히려 자책했다.“예전에 민시후가 나를 피해 다닐 때, 너무 화나서 ‘연애길이 확 막히고 좋아하는 사람과 안 됐으면 좋겠다’고 저주한 적이 있어.”“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고은서, 나 너무 악독한 거 아니니?”자책하는 송민아를 보며,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그 정도 능력이면, 회사 다니지 말고 점집을 차려도 되겠어.”그래도 송민아는 속상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풀이하는 건 옳지 않았다.송민아가 곁에 앉자, 고은서는 그녀의 오밀조밀한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반성도 잘하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아는 네가 어떻게 악독한 사람이야?”“송민아, 너는 좋은 사람이야. 너를 놓친 민시후가 오히려 손해지.”고은서의 칭찬에 송민아는 살짝 어색해하며 그녀의 손을 밀쳐냈다.“민시후가

  • 어게인, 비긴   제1142화

    “민시후, 너 지금 몸 상태는...”“알고 싶으면 영상통화를 걸어 직접 볼래?”고은서의 말이 끝나기 전에 민시후가 단칼에 잘라버렸다.“...”고은서는 잠시 민시후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녀를 놀리는 건지, 아니면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은 건지?“시후야, 이른 시간에 누구랑 통화 중이야?”침묵이 흐르는 동안, 전화기 너머로 민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시후, 나라고 말하지 마.”고은서가 급히 귀띔했다.민시후는 민시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고은서에게 물었다.“왜?”고은서가 설명했다.“네가 나 때문에 다쳤잖아. 가족분들이 줄곧 나를 원망하고 있는데, 내가 연락한 걸 알면 더 노여워하실 거야.”민시후는 이 말을 듣더니 민시아에게 말했다.“고은서야, 누나. 자기 이름을 밝히지 말라네.”고은서는 어이없었다.좋아하는 감정이 없으면, 민시후는 정말 그 누구라도 감싸주는 일이 없었다.곧이어 휴대폰이 민시아의 손에 넘어갔고 한참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병실에서 나온 민시아가 입을 열었다.“은서 씨?”고은서는 즉시 사과했다.“죄송해요. 다른 뜻은 없어요. 그저 민시후가 곧 수술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 상태가 어떤지 묻고 격려하려고요.”민시아는 의외로 비아냥거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시후는 지금 괜찮아요.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성공 확신이 있다고 하셨어요.”민시아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약간 마음이 놓였다. 다만 ‘난이도가 높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이번 수술은 반드시 순조롭게 진행될 거예요.”민시아에게 한 말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민시아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어찌 됐든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시후에게 연락하지도, 시후 앞에 나타나지도 말아주세요.”“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뇌에 남은 혈종을 제거하더라도 최근 2년간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대요. 그러니까 정말 시후를 위한다면 더 이상 연락하지 마세요.”고은서는 수술만 잘된

  • 어게인, 비긴   제1141화

    송민아의 전화였다. 그녀는 민시후의 수술 방안이 확정됐고, 내일 진행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나도 시후 오빠 소식을 오랜만에 들었어. 방금 부모님이 언급하셔서 알게 됐어.”“민시후가 너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 집안에서도 네가 연락하는 걸 허락하지 않지만 그래도 너한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민시후의 수술에 관해서는 그때 절에서 송민준에게 들은 바 있다.그때는 대략적인 방안이 나왔지만 최종 확정은 아니고 수술 일정도 미정이라고 했다.이제 민시후가 수술을 앞두고 있다.“부모님께서 수술 성공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말씀해 주셨어?”고은서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송민아는 고개를 저었다.“부모님도 잘 모르던데, 별일 없을 거야. 아저씨가 시후 오빠를 위해 최고의 병원, 최고의 의료팀을 준비했대.”고은서가 걱정할까 봐 건네는 위로의 말이었다. 간단한 수술이라면, 수술 방안을 잡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국내 의사가 어려운 수술이라고 말했던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민시후 씨의 지금 연락처를 구할 수 있을까?”민시후를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가 수술을 앞둔 지금 몇 마디라도 하고 싶었다. 친구로서의 응원과 격려라도 좋았다.송민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네가 달라고 할 줄 알고 아빠 휴대폰으로 아저씨한테 연락해서 캐냈어. 특별히 너를 위해 알아낸 거야. 바로 보내줄게.”고은서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민아야, 고맙다.”모든 사람이 그녀가 민시후에게 연락하는 걸 원치 않는데, 송민아는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잠시 후, 송민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고은서는 그 숫자들을 보면서 약간 두렵고 망설여졌다.민시후가 외국 병원으로 떠나기 전,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그의 인생에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남겠다고 결심한 그녀였다.이제 와서 전화하면 폐를 끼치지 않을까?한참 망설이던 고은서는 결국 번호를 저장했다.라이트문 아파트에 돌아온 그녀는 민시후의

  • 어게인, 비긴   제1140화

    고은서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어느 정도 마무리는 됐지만, 또 다른 귀찮은 일이 생겼어요.”고은서는 자신이 하마터면 사고를 당할 뻔했던 이야기를 서연정에게 간단히 털어놓았다.다만, 여재훈이 자신을 위해 다쳤다는 등 민감한 부분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서연정은 곽승연을 돌보느라 바쁘기도 하고, 본인의 일도 있는데 괜히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마재경 씨라는 분, 예전에 승재랑 스캔들 났던 그 사람 맞지?”서연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생각해 보면, 이 일도 어쩌면 승재가 일을 크게 만든 셈이네.”마재경과 관련된 일은 사실 명확하게 누구의 잘못이라 단정 짓기 어려운 일이었고, 고은서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그게 아니었기에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갔다.곽승연이 주방에서 나온 걸 본 고은서는 마치 그제야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어머니, 승연이가 그러는데 며칠 전에 정월 광장에서 무슨 행사가 있었다던데요?”서연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곽승연더러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말한 뒤, 고은서에게 자세히 설명했다.그날 참여한 건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위한 자선단체가 주최한 공익 행사였다고 했다.“승연이 말로는, 그날 손문호 씨도 오셨다던데요?”고은서가 조심스레 덧붙였다.“맞아요. 문호 씨는 그런 행사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그쪽에서 연락을 받은 모양이에요.”‘그날 손문호가 진짜 단순히 행사만 참여하러 간 걸까?’고은서가 의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가 나타난 장소가 두 번이나 공교롭게 겹친 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이 문제는 서연정에게 더 묻기 어려운 사안이라, 나중에 곽승재와 따로 이야기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고은서의 호기심은 그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어머니, 좀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고은서가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손문호 씨에게 감정이 있으신가요?”손문호는 서연정에게 오랜 세월 마음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서연정이 Y국에 있을 때 손문호도 그곳에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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