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여의가 열렬히 말했다.“정말로 고 선생을 난처하게 했군요. 이리 오랜 시간 붙들고 귀찮게 해서 미안하오. 무진아, 네가 고 선생을 모셔다 드리렴.”“네.” 무진이 소파에서 일어났다.성연이 돌아가려는데 마침 옆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안금여는 성연의 가방에 과일 두 개를 넣어주었다.수입된 과일인데, 엄청 달다고 말하며.성연은 받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을 따라 거실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손건호 또한 운전을 위해 앞 좌석에 앉았고 무진과 성연은 뒷좌석에 앉았다.하지만 거리를 좀 떨어뜨려 앉았다.무진이 물었다.“고 선생님,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성연이 대답했다.“지난번 그곳에 내려 주시면 됩니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지난번 주소는 손건호도 기억하고 있었다.무진이 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차를 몰아 목적지로 향했다.성연이 말한 주소는 바로 서한기가 사는 곳 부근이었다.거리가 멀지 않아서 곧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성연이 무진과 작별인사를 했다.“대표님, 안녕히 가세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여 표시하자 손건호가 차를 출발시켰다.회사로 돌아가는 길, 무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왜 웃는지도 모르는 듯한 웃음이다.무진의 차가 떠나는 것을 본 성연이 서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서한기에게 겨우 한 마디 했다. 자신이 집으로 들어간다고.비록 부하였지만 어쨌든 서한기의 집이었다. 성연이 함부로 들어가는 건 옳지 않았다.전화를 받은 서한기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보스, 그냥 바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혹시 키가 없는 거예요? 내가 키 가져다 드려요?”서한기가 연이어 질문을 해댔다.성연이 이를 갈았다. 서한기에게 전화를 한 건 그야말로 자신의 실책이었다.서한기에게는 남녀의 구분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모처럼 마음을 좀 쓰려고 했는데 하필 서한기는 나무토막 같았다.성연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열쇠는 내가 찾을 수 있어. 먼저 들어갈 테니 일 없으면 끊어.”
올림피아드는 이미 확정되어 번복의 여지가 없었다.갑자기 올림피아드의 대열 끼인 성연은 더욱 바빠졌다.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거의 밥을 먹자마자 문제를 풀러 갔다.집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게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무진도 서류와 노트를 들고 옆에 앉아 성연이 막히는 문제가 있을 때 도와주었다.머리가 좋은 성연은 조금만 가르쳐 줘도 바로 알아차렸다. 무진이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성연이 그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무진은 오히려 마음이 좀 아팠다.성연이 오늘 꽤 오랜 시간 문제를 풀었다 싶었던 무진이 적극 제안했다.“송성연, 우리 나가서 산책할까?”마침 문제를 풀고 있던 성연은 갑자기 생각이 끊겼다.무진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성연이 매우 단호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시간이 촉박해서 지체할 수 없어요. 아직 이해 못한 것들도 많아요. 서둘러야 해요.”말을 하고 다시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문제를 풀었다.무진은 다시 한번 설득하려 했다.“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어? 일과 휴식을 잘 병행해야 한다고. 긴장도 좀 풀어줘야지.”“무진 씨는 서류 봐요. 나 문제 푸는 거 방해하지 말.” 성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무진은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보았다.밤에 잠을 잘 때 성연은 침대에 눕자, 무진이 몸을 옆으로 해서 성연의 관자놀이를 마사지해 주었다.편안함을 느낀 성연은 막지 않았다. 무진의 마사지는 꽤 훌륭했다.지난번에 그에게 마사지를 받은 다음날 아프던 머리가 개운해졌었다.“힘들지 않아?” 무진은 성연이 그렇게나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건 처음 보았다.하지만 성연은 항상 책임감 있게 약속한 일은 반드시 해냈다.“할 만해요. 보람 있어요.” 성연은 오랜만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피곤하기야 하지만, 자신이 승낙한 일은 100%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후회하지 않을 터였다.“자.”무진이 조용히 말하면서도 손의 움직임
수학 올림피아드의 일도 물론 긴장되지만 성연이 더욱 염려하는 것은 무진의 건강이었다.맥을 짚어 보면 신체 기초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구체적으로는 기계로 데이터를 봐야 한다.심장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가능한 한 빨리 살펴보아야 했다. 무진의 몸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본 다음 증상에 맞게 약을 써야 했다.그래서 성연은 시간을 내여 다시 연씨 저택을 찾아 갔다.성연을 본 연경훈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고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다음 진료 시간까지는 좀 더 남은 것 같은데?’“이번에 온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일 때문이에요. 지난번에 강씨 고택에 갔었는데 회장님께 강 대표님을 진찰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지금 의료기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대표님께 전화 좀 해주겠어요? 시간이 어떤지 좀 물어봐 주세요.”찾아온 이유를 성연이 바로 설명했다.성연의 핸드폰에는 당연히 무진의 번호가 자고 있는 게 맞았다.하지만 그녀가 직접 연락하는 건 불가능했다.고 선생은 강무진을 잘 모르니까.그리고 그녀는 지금 고 선생이었다.“물론 되지요. 지금 당장 무진 형한테 전화해 볼게요.” 연경훈은 사람됨이가 좀 경망스럽긴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송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그녀의 감사 인사에 연경훈은 좀 쑥스러웠다.“우리가 고 선생에게 고맙지요. 분명 고 선생님은 할아버지를 진찰하러 온 거였는데, 무진 형까지 추가로 진찰을 받게 됐잖아요. 고 선생님,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연경훈이 잔뜩 어색한 모습으로 결국에 한 마디를 짜내었다.성연은 가볍게 헛기침만 할 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연경훈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화끈거리게 할 정도로 짙었다.“고 선생님, 오셨군요.” 그때 뒤에서 또 다른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동시에 성연에게 퇴로를 열어주었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연경훈의 모친 하지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사모님.”다
성연과 하지연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무진이 왔다.성연은 무진을 연구실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 곳에는 많은 첨단 의료기와 장비들이 있어서 신체 데이터를 정확하게 뽑을 수 있었다.“대표님. 저와 함께 가 주세요. 거기에 검사용 기기들이 있어요.” 성연이 미리 설명했다.무진은 경계심이 상당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무진은 그녀와 함께 낯선 곳으로 쉽게 가려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어찌 되었든 무진은 지금 강씨 집안 최고 실권자였다. 그의 몸값은 가격을 매길 수도 없을 정도로 높을 터이니 경각심이 없는 게 더 이상했다.“그러죠.” 무진은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동의했다.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연경훈은 미묘한 불편함을 느꼈다.고 선생 앞에는 항상 한 겹 막이 쳐져 있는 듯했다.다른 사람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예의 바르고 단정한 그 모습이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그런데 무진과 같이 있는 지금 성연을 둘러싸고 있던 그 막이 마치 사라진 것 같았다.‘설마 고 선생이 무진 형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하긴, 무진 형은 얼굴도 집안도 다 괜찮으니까.’젊고 유능하다는 점은 언제나 여자들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연경훈은 갑자기 자신이 좀 형편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선생은 자신이 먼저 반했다.‘고 선생과 무진 형 단둘이 있게 해서는 절대 안돼.’연경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고 선생님, 나도 참관하러 같이 가고 싶은데 괜찮겠지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하지연이 나무랐다.“고 선생님과 무진이 진찰하러 가는데 네가 뭐 때문에 따라 가? 가서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얌전히 집에 있어.”연경훈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자신의 엄마는 고 선생을 매우 좋아했다. 또 무진도 무척 불쌍하게 생각하며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유독 친아들인 자신에 대해서만 불만스럽게 여겼다.고 선생과 무진을 한데 엮으려는 게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생각도 들었다.‘우리 엄마 눈에는 무진 형만 믿을
성연은 정말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그럼 가요. 별 영향 없을 거예요.”성연의 동의를 받은 연경훈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하지연을 향해 눈썹을 치켜 세웠다.하지연 자기도 모르게 또 다시 한 두 마디 호통을 쳤다.“가서 절대 소란 피우지 마.”“내가 어린애도 아닌데…….”연경훈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어린아이면 오히려 내가 더 안심이지.” 하지연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했다.“사모님, 저희는 가 볼게요. 안 그러면 곧 시간을 놓칠 거예요.”성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끊으며 먼저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계속 저렇게 설전을 벌이게 놔두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그래요, 그럼 볼 일 봐요.” 말을 하는 와중에도 하지연은 연경훈을 노려보았다.연경훈이 하지연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그리고 성연의 뒤를 따라 나갔다.연구소에는 성연이 미리 일러 두었다. 연구소 내 직원들에게 그녀를 고 선생이라고 부르고 헸디. 보스라고는 절대 못 부르게 신신당부했다.그렇지 않으면 무진의 의심을 사기 쉬웠다.연구소는 교외의 외진 곳에 있었다.부근의 풍경과 공기가 아주 좋았다.도착한 후에 성연은 두 사람을 데리고 연구소를 구경시켜 주었다.이곳의 기계는 얼음 같이 차가웠지만 아주 세밀하고 정교했다.무진은 몸이 좋지 않았다. 안금여 또한 몸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자연히 늘 이런 의료기들을 가까이해 온 무진은 이 기계들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도무지 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였다.두세 개 정도만 보고도 성연의 연구소가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녔는지 대략 판단되었다.무진은 모든 기계 설비들을 세세히 살펴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속으로 더 많은 의혹이 생겼다.보아하니, 과연 이 고 선생 정말 간단한 인물이 아닌 듯하다.그에 반해 연경훈은 그냥 단순했다.무진과 성연을 주시하며 두 사람이 어떤 친밀한 동작도 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신경 썼다.조금 전 오는 길에는 무진과 고 선생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그래서 연경훈의 마음 속 의심도 지워
연구소 참관이 끝난 후 성연은 무진을 데리고 내실로 들어갔다.“대표님, 여기 위에 누우세요. 제가 검사할 수 있게요.” 성연이 한 팔을 펼치며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무진이 누웠다.성연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의료기기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서서히 입구가 닫히며 의료기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체 데이터를 측정하기 시작했다.성연은 스크린에서 번쩍이는 데이터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그런 성연의 모습에 연경훈의 두 눈은 경탄으로 반짝였다.마치 영화를 찍는 것처럼 아주 환상적이었다.성연의 진지한 옆모습을 바라보던 연경훈은 눈치 있게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다.성연을 방해할까 봐 숨을 죽인 채.좋아하는 사람 앞이니 당연히 알아서 잘해야 할 터였다.십여 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무진의 검사가 끝났다.성연은 문을 열자 무진이 일어나 앉았다. 성연의 표정이 좀 굳어 있었다.“대표님, 체내에 내상이 많이 쌓여 몸이 매우 좋지 않아요.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연경훈 또한 무진의 상태가 그토록 심각할 줄은 몰랐다.강씨 집안 내부의 복잡한 관계를 생각하면, 보호해 줄 부모가 없는 무진이 잘 지냈을 리 만무한 터.옆에서 연경훈이 관심 있게 물었다.“무진 형, 기분이 좀 어때요? 참기 힘들어요?”좌절감이 느껴졌다. 하필 의학엔 문외한인지라 무진을 도울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무진은 평소 자신에게 아주 잘해 주었다.“익숙해졌어.” 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 한 마디가 엄청나게 무겁게 들렸다.무진이 익숙해지기까지 뒤로는 얼마나 병고에 시달렸을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무진이 결코 쉽게 살아오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좀 아닌 것 같아 축 처진 모습으로 한쪽편에 섰다.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데리고 밖에 있는 휴게실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연구실로 들어가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 앉아서 좀 기다리세요.”연경훈과 무진이 휴게실에
성연이 나온 후 무진에게 약 한 병을 건넸다.이는 희귀한 약재들로 만들어진 매우 귀중한 약이었다.무진에게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무진이 약병을 받자 성연이 말했다.“이 약은 하루 세 번, 식후에 드세요. 까먹으시면 안 돼요.”그러다 성연은 여러 가지 약재를 살펴보며 무진에게 처방을 내렸다.이 약재들은 보통 몸을 보호하고 기력을 보충하는 데 쓰였다.그녀는 처방을 내린 후, 무진에게 건네며 우스갯소리로 말했다.“대표님은 북성 시에서 높은 자리에 계시니 약재 몇 가지를 찾는 건 일도 아닐 거예요.”무진은 처방전을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물론 고 선생님이 치료를 도와주시겠죠? 강씨 집안에서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 선생님이 돈을 쓰지 않도록 할 겁니다.”성연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강씨 집안에 이런 약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처방전만 썼을 뿐 약을 만들지 않았다.약을 만들어 주는 건 약재를 낭비하는 것에 불과했다. 강씨 집안은 부유했고 심지어 어떤 약재는 훨씬 상태가 좋았다.무진은 그쪽에 있는 약재를 먹는 편이 더 나았다.옆에 있던 연경훈은 성연이 아픈 무진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자 질투가 좀 났다.이에 경훈이 입을 열었다.“고 선생님, 저도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한 번 봐주세요.”성연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연경훈 씨는 너무 튼튼해서 백 살까지도 거뜬히 살 수 있을 거예요.”진료를 마친 후, 무진은 회사에 아직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 떠나려 했다.그가 없이는 회사가 돌아가지 않았다.연경훈도 더 머물 다른 구실을 찾지 못해 무진과 함께 떠나야 했다.무진이 선뜻 말을 건넸다.“고 선생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성연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할 일이 남아서 연구실에 있어야 해요. 먼저 가세요. 전 나중에 택시 타고 가면 돼요.”무진은 더 이상 그녀를 잡지 못했다.경훈은 차창에 기대 아쉬운 듯 성연을 바라봤다.“고 선생님, 다음에 시간 되면
실험이 끝난 후, 성연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왔다.바로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가장했다.하지만 검사 결과를 통해 무진의 몸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현재 다른 방법으로는 안된다. 식단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레시피를 다시 정리한 성연이 집사에게 무진의 건강에 더 도움이 될만한 식단들로 준비해 줄 것을 요구했다.집사에게 레시피를 건네주는 순간, 집사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작은 사모님, 도련님에게 정말 잘하시네요.”과거 무진이 병에 걸려 몸져누웠을 때 모든 친척이 그를 신경 쓰지 않은 탓에 그의 성격은 더 내성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했다.하지만 성연이 나타난 후, 무진은 건강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밝아졌다. 점차 그에게서 인간미가 보이기 시작했다.무진이 어릴 때부터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던 집사는 무진의 변화가 무척 반가웠다.“당연한 일인 걸요. 무진 씨 건강은 관리하지 않으면 더 심각해질 거예요.”성연이 부드럽게 대답했다.그녀는 무진을 단지 환자로 대했다.‘무진 씨는 내 환자야. 내가 책임감 있게 대해야 해.’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바로 무진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다. 더 이상 무진이 이러한 고통을 견뎌서는 안 됐다.“작은 사모님, 도련님이 사모님과 결혼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집사는 옆에서 그녀를 치켜세웠다.“그이도 저에게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무슨 생각인지 그녀는 나오는 대로 말했다.성연은 수학 경시대회 문제를 풀던 날, 자신이 잠들 때까지 무진이 안마해준 것을 기억했다.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고 했던가, 무진이 그녀에게 잘하는 만큼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아이고, 두 분 사이가 좋은 걸 보니 큰 사모님께서도 마음이 놓이실 겁니다.”처음에 안금여는 집사에게 엠파이어 하우스를 감시하게 지시했었다.무진이 성연을 싫어해서 성연을 난처하게 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지금 보니 역시 안금여는 안 해도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