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수요일 아침 6시 30분, 밥솥에서 김이 올랐다.
서연은 태주가 손질해 둔 애호박을 볶고 달걀을 풀었다. 봄이는 세수도 하기 전에 식탁으로 와서 휴대전화를 가리켰다.“아빠 일어났어?”“아직 잘 시간이야. 어제 늦게 끝났잖아.”“전화하면 안 돼?”“아빠가 일어나면 먼저 할 거야.”봄이는 입술을 내밀었지만 휴대전화를 만지지는 않았다. 서연은 아이 머리를 낮게 묶었다. 노란 물병과 양말은 전날 태주가 둔 자리에 있었다.등원길에 봄이는 아빠가 없는 집이 이상했다고 말했다.“뭐가 제일 이상했어?”“아빠 방문이 안 열렸어. 근데 밥 냄새는 똑같았어.”“아빠가 재료를 해 놓고 갔으니까.”“이모랑 아빠랑 반씩 했네.&r금요일 저녁, 민아는 고기 한 점을 불판에 올리며 물었다.“그래서 전 약혼자가 다시 만나자고 했다고?”“두 번째 기회를 달라고 했어.”“그게 그 말이지. 넌 뭐랬는데?”“아직 아무 말 안 했어.”민아는 익은 고기를 서연의 접시에 놓았다.“그 사람, 예전에는 자기 엄마 말 한마디도 못 거절했다며.”“이번엔 달라진 것 같긴 해.”“한 번 상자 들고 왔다고?”“그것 때문만은 아니고.”서연은 촬영장에서 재민이 자기 팀의 실수를 처리한 일을 설명했다. 민아는 듣고도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사람은 달라질 수 있지. 네가 다시 만나야 할 이유랑은 별개고.”“알아.”“그리고 형부 집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결혼부터 생각하지 마.”“결혼 생각 안 했어.”“네 얼굴이 계산 중이길래.”서연은 물컵을 들어 입을 가렸다. 민아는 더 캐묻지 않고 불판의 고기를 뒤집었다.밤 10시가 넘어 원룸에 돌아왔을 때 방 안은 이상할 만큼 차가웠다. 보일러 조절기에는 숫자가 켜져 있었지만 바닥에 온기가 없었다.서연은 싱크대 온수를 틀었다. 한참 기다려도 찬물만 나왔다.관리인에게 전화하자 주말 당직 번호를 알려 줬다. 당직 기사는 오늘 방문이 어렵고 토요일 오전에 점검할 수 있다고 했다.서연은 접수번호와 방문 시간을 문자로 받아 두었다. 전기장판은 이사할 때 가져오지 않아 얇은 이불 두 장뿐이었다.‘우리 집 와.’상황을 들은 민아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태주는 세 번째 그릇을 찬장에 넣고 문을 닫았다.“아빠, 왜 이모 그릇 꺼냈어?”봄이가 돈가스에 소스를 찍으며 물었다.“세 개 꺼내던 게 습관돼서.”“이모 이제 여기 안 사는데.”“알아. 밥 먹어.”태주는 대답하고 자기 접시를 봤다. 서연이 떠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두 사람 몫만 차린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오늘만 손이 틀린 이유까지 따질 필요는 없었다.밤에 봄이를 재운 뒤 그는 휴대전화를 열었다. 서연과의 대화창에는 목요일에 주고받은 도서관 시간과 책 두 권에 관한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잘 들어갔어?’적어 둔 문장을 지웠다. 열쇠를 돌려준 날의 확인과 같은 문장이라 더 지웠다. 열쇠를 돌려준 날에도 하지 않은 확인이었다. 대신 주방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다음 주 화요일, 소담살림 겨울 침구 촬영을 2시간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온유리빙에서 보내기로 한 베이지색 이불 한 상자가 엉뚱한 물류센터로 갔다. 메인 화면에 들어갈 제품이라 빠지면 촬영 전체를 다시 잡아야 했다.“퀵으로 받아도 3시 넘는대.”미경이 운송장 화면을 보며 혀를 찼다.“스튜디오 4시까지인데.”서연은 촬영 순서를 바꾸려고 작가에게 전화했다. 그때 협업 단체방에 재민의 메시지가 올라왔다.‘오배송은 저희 쪽 확인 누락입니다. 전시실 동일 제품 확보했습니다. 제가 스튜디오로 가져가겠습니다. 도착 예상 13:40.’서연은 전화를 끊고 답했다.‘확인했습니다. 먼저 다른 색상부터 촬영하겠습니다.’1시 37분, 재민이 큰 상자를 안고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코트 어깨에 먼지가 묻어
목요일 저녁 7시가 되기 3분 전, 윤재민은 회사 앞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다.서연이 맞은편 의자를 당기자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뒤집었다. 테이블에는 물 두 잔뿐이었다.“뭐 마실래?”“안 마셔도 돼. 30분이니까.”재민은 주문대로 30분 타이머라도 맞출 사람처럼 벽시계를 한 번 봤다.“그때 미안했어.”서연은 코트를 벗지 않았다.“뭐가?”“네가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을 때, 난 네 말도 이해한다고만 했어. 정작 우리 부모님한테는 한 번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고.”“이제는 말했어?”“응. 그땐 지방으로 가 놓고 부모님 탓을 했지. 서울로 다시 온 건 내가 지원한 거야.”“나 때문에?”“그렇게 말하면 또 네가 책임져야 할 것 같잖아. 회사에서 서울팀 맡으라고 했고 내가 지원했어. 네가 여기 있는 건 나중에 알았어.”재민은 준비한 변명 대신 사실을 짧게 놓았다.“사과는 받아 줄게.”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고마워.”“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건 아니야.”“알아.”“회사 일은 회사에서만 하고.”“그것도 알아.”재민은 잠시 물잔을 만지다가 물었다.“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 건?”서연은 곧바로 거절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하나 듣자고 나온 자리에서 앞으로의 결혼까지 결정할 수는 없었다.“오늘은 사과만 듣기로 했잖아.&rd
11월 첫째 화요일, 소담살림 회의실 문이 열리자 서연은 펜을 놓쳤다.바닥에 떨어진 펜이 테이블 다리를 치고 굴렀다. 협력사 직원들 사이에서 들어오던 남자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웠다.“여기.”두 해 전까지 매일 듣던 목소리였다.서연은 펜을 받아 들고 남자의 명찰을 봤다.윤재민. 32세. 온유리빙 브랜드기획팀 팀장.“두 분, 아는 사이세요?”미경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서연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전에 알던 사이예요.”재민도 그 말에 맞춰 인사했다.“오랜만입니다.”회의는 겨울 침구 공동 기획전 이야기로 시작됐다. 서연은 화면에 띄운 판매 자료를 설명했고 재민은 납품 일정과 촬영 가능한 제품 수를 답했다. 그는 사적인 말을 섞지 않았다. 서연이 숫자를 잘못 읽었을 때도 아는 척 고쳐 주지 않고 다음 장에서 정확한 수치를 짚었다.그 덕분에 서연은 회의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1시간 뒤 협력사 직원들이 먼저 나갔다. 서연이 노트북 선을 정리하는 동안 재민은 문 옆에서 기다렸다.“잠깐 이야기해도 돼?”“근무 중이야.”“알아. 회사 얘기 아니면 밖에서 할게.”“앞으로 회의 몇 번 더 있어?”“이번 달은 내가 담당이야. 불편하면 우리 팀 사람 바꿔 달라고 할 수 있어.”서연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예전의 재민은 결정을 미루는 사람이었다. 결혼식장을 알아볼 때도, 그의 부모가 신혼집 지역을 정했을 때도, 서연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기다리다가 약혼을 끝낸 쪽은 서연이었다.마지막으로
서연이 원룸으로 돌아간 뒤 첫 월요일, 태주는 작은방 문을 닫지 않았다.창가에는 새로 세탁한 요와 이불이 개어져 있었고 붙박이장 한쪽이 비어 있었다. 봄이가 맡긴 인형도 서연의 상자에 실려 갔다. 태주는 방 안을 한 번 둘러본 뒤 출근 가방을 들었다.전날 이사는 2시간 만에 끝났다. 태주가 책 상자를 차에 싣고, 봄이는 무릎 위에 인형을 안았다. 오래 비운 원룸에서는 마른 배수구 냄새가 났다. 서연이 창문을 열고 수도를 틀자 태주는 현관 옆에 상자만 쌓아 주었다.“책장까지 정리해 줄까?”“제가 할게요. 봄이를 데리고 들어가세요.”태주는 고집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바닥에 앉아 자장면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헤어졌다. 봄이가 놓고 간 인형은 서연의 베개 옆에 남았다.그날 밤 서연은 작은 냉장고에 우유와 달걀을 채웠다. 다음 날 입을 옷을 의자에 걸고, 알람도 예전 출근 시간에 맞췄다. 804호보다 버스 정류장은 멀어졌지만 욕실 문을 잠가도 되는 자기 방이었다.생활은 약속한 대로 굴러갔다. 아침에는 태주가 봄이의 머리를 묶었다. 처음 며칠은 좌우 높이가 달랐지만, 봄이는 유치원 화장실 거울 앞에서 스스로 다시 묶는 법을 배웠다. 화요일은 명자가 하원했고 목요일은 태주가 회의를 앞당겼다. 금요일에는 늦은 돌봄을 신청한 날도 있었다.서연은 9월 마지막 수요일까지 월요일과 수요일에 왔다. 마지막 날에는 약속한 안 매운 떡볶이를 만들었다. 봄이는 고추장 대신 케첩이 많이 들어간 소스를 먹고도 맵다며 물을 두 잔 마셨다.“다음 주 수요일도 오면 안 돼?”“다음 주에는 아빠랑 할머니가 정한 대로 해 보고, 이모는 토요일 오후에 올게.”봄이는 섭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 수요일, 태주가 보낸 사진에는 봄이가 명자와 동네 문구점에서 산 지우개를 들고 있었다.
8월의 마지막 날, 냉장고 문에는 두 달 동안 쓴 종이가 세 장 붙어 있었다.태주는 저녁을 먹고 식탁 위에 그것들을 차례로 펼쳤다. 늦은 돌봄을 쓴 날, 자신이 일찍 퇴근한 날, 명자가 2시간만 봄이를 데리고 있던 날이 다른 색으로 표시돼 있었다.“일단 두 달 동안 갑자기 빈 날은 없었어.”“형부 현장 때문에 바뀐 날은 네 번이었고요.”“그중 세 번은 늦은 돌봄이나 내가 해결했고, 한 번은 어머니.”서연은 자기 이름이 들어간 칸을 짚었다.“저는 원래 맡기로 한 월요일, 수요일 말고 두 번 더 했네요.”“한 번은 네가 먼저 된다고 한 날. 한 번은 내가 전날 부탁한 날.”둘은 기억으로 말하지 않고 기록으로 확인했다. 서연이 원룸에서 잔 날도 달력에 네 번 표시돼 있었다. 최소 두 번이라는 약속을 두 달 모두 지킨 셈이었다.봄이는 맞은편에 앉아 숫자를 따라 세다가 물었다.“그래서 이모 또 여기 살아?”그 질문 뒤로 식탁이 잠잠해졌다. 태주는 서연을 보지 않고 종이 모서리를 맞췄다.“이번 약속은 오늘까지였어.”“그다음 약속은?”“오늘 정하는 거야.”태주는 아이에게 결론을 떠넘기지 않았다. 서연도 봄이가 울기 전에 괜찮다고 약속하지 않았다.“이모는 다음 일요일에 원룸으로 돌아갈 거야.”봄이의 손가락이 숫자 31 위에서 멈췄다.“왜?”“아빠랑 봄이가 둘이서도 아침 준비하고 유치원 가는 거 잘하잖아. 이모 집도 오래 비워 두면 안 되고.”“그럼 월요일에 안 와?”&l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