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2화. 이모입니다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4 09:03:12

수요일 오후 1시 40분, 서연은 새봄유치원 강당 앞에서 태주를 만났다.

태주는 봄이의 외투와 물병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흔적이 셔츠 소매의 접힌 자국에 남았다.

“회의는?”

“오전으로 옮겼어요. 형부는요?”

“반차 냈어.”

두 사람은 그 말만 나누고 나란히 강당으로 들어갔다. 태주는 셋째 줄 가운데에 잡아 둔 자리를 가리켰다. 서연과 좌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으려다가 뒤에서 들어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 주느라 바로 옆에 앉았다.

서연은 가방에서 국통과 눈사람 연필깎이를 꺼냈다.

“이건 끝나고 봄이에게 주세요.”

“들고 오느라 무거웠겠다.”

“통 두 개예요.”

“그래도.”

태주가 쇼핑백을 자기 발밑에 놓았다. 며칠 만에 들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서연은 무대 커튼만 바라봤다.

발표회는 봄이네 반 아이들의 합창으로 시작했다. 봄이는 보라색 리본을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언니, 나 어떡하지 형부가...   제52화. 이모입니다

    수요일 오후 1시 40분, 서연은 새봄유치원 강당 앞에서 태주를 만났다. 태주는 봄이의 외투와 물병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흔적이 셔츠 소매의 접힌 자국에 남았다. “회의는?” “오전으로 옮겼어요. 형부는요?” “반차 냈어.” 두 사람은 그 말만 나누고 나란히 강당으로 들어갔다. 태주는 셋째 줄 가운데에 잡아 둔 자리를 가리켰다. 서연과 좌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으려다가 뒤에서 들어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 주느라 바로 옆에 앉았다. 서연은 가방에서 국통과 눈사람 연필깎이를 꺼냈다. “이건 끝나고 봄이에게 주세요.” “들고 오느라 무거웠겠다.” “통 두 개예요.” “그래도.” 태주가 쇼핑백을 자기 발밑에 놓았다. 며칠 만에 들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서연은 무대 커튼만 바라봤다. 발표회는 봄이네 반 아이들의 합창으로 시작했다. 봄이는 보라색 리본을 단단히 묶고 두 번째 줄 맨 끝에 섰다. 흰 타이츠 길이는 잘 맞았고 검은 실내화 이름표는 객석에서도 보일 만큼 컸다. 아이들은 노래보다 반 박자씩 빠르거나 늦었다. 봄이는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입을 크게 벌렸고, 옆 친구가 동작을 잊자 손을 살짝 올려 방향을 알려 줬다. 첫 곡이 끝나자 태주는 촬영을 멈추고 화면을 확인했다. 무대가 기울어져 있자 다시 수평을 맞췄고,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표시가 뜨자 가방에서 보조 충전기를 꺼냈다. “그것도 챙겨 왔어요?” “지난 운동회 때 중간에 꺼졌거든.” 서연은 더 묻지 않았다. 태주가 짧은 충전선을 꽂고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옆에서 봄이를 찾느라 화면을 조금씩 옮기는 손을 보니, 무대 위 아이가 또렷이 담기겠구나 싶었다. 서연은 웃다가 눈가를 눌렀다. 태주는 촬영 중인 휴대전화를 내리지 않은 채 낮게 말했다. “울어?” “안 울어요.” “목소리가 그런데.”

  • 언니, 나 어떡하지 형부가...   제51화. 필요할 때만

    월요일 아침, 서연은 씻어 말린 국통 두 개를 쇼핑백에 넣었다. 발표회까지 열흘도 안 남았으니 퇴근길에 804호 경비실에 맡길 생각이었다.태주에게 시간을 묻는 대신 메시지만 보냈다.‘오늘 국통 경비실에 두고 갈게요. 봄이 눈사람 연필깎이도 같이요.’답은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에 왔다.‘발표회 날 받아도 돼. 일부러 오지 마.’일부러 오지 말라는 말이 배려라는 건 알았다. 쇼핑백보다 먼저 무거웠다. 원룸에서 해솔아파트까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고, 월요일 퇴근길은 늘 막혔다.서연은 쇼핑백을 책상 아래 밀어 넣었다.‘그럴게요.’겨울 침구 기획전은 예상보다 주문이 길게 이어졌다. 오전 회의에서는 재고를 더 풀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서연은 반품률이 안정될 때까지 이틀만 보자고 했다. 일을 설명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점심을 먹고 돌아오자 봄이에게서 음성 메시지가 와 있었다.“이모, 연필깎이 오늘 안 와도 돼. 내 연필 아직 뾰족해.”끝에서 태주가 “그런 말까지 안 해도 돼”라고 하는 소리가 작게 섞였다. 봄이는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자기가 들은 말을 자기 방식으로 정리한 모양이었다.서연은 웃는 얼굴을 붙여 답했다.“발표회 날 가져갈게. 그때까지 몽당연필 만들지 마.”봄이와의 약속은 달라지지 않았다. 태주가 거리를 둔다고 아이에게 먼저 다가갈 권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하나 보내려 해도 그 집을 지나야 했다.***수요일 저녁에는 재민이 저녁 사진을 보냈다. 야근하면서 먹는 삼각김밥과 컵라면이었다.‘이런 것도 보고해야 하나 싶지만, 안 보내면 또 예전처럼 좋은 모습만 보여 주는 것 같아서.’서

  • 언니, 나 어떡하지 형부가...   제50화. 지금의 우리

    일요일 오후 3시, 서연은 시립미술관 매표소 앞에서 재민을 만났다.재민은 약속보다 10분 먼저 와 있었다. 예전처럼 정장을 입지 않고 짙은 회색 코트에 운동화를 신었다. 손에는 종이 표 두 장만 들려 있었다.“꽃은 안 샀어.”“왜 만나자마자 보고부터 해?”“전에 네가 전시 보러 갈 때 꽃다발 들고 다니는 거 싫다고 했잖아.”서연은 웃다가 잠깐 멈췄다. 그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종이 표만 들린 재민의 손을 보았다. 재민은 표 한 장을 건네고 먼저 전시장으로 들어갔다.사진전의 제목은 《남은 자리》였다. 식사가 끝난 식탁, 불 꺼진 세탁소, 한 사람의 신발만 놓인 현관 같은 사진이 이어졌다.서연은 오래된 아파트 부엌 사진 앞에 섰다. 싱크대 옆에 마른 행주 세 장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누가 빨았고 누가 걷을지 정해진 집 같았다.“이런 사진 좋아했나?”재민이 한 걸음 떨어져 물었다.“예전엔 안 좋아했지. 사람이 안 나오니까 심심하다고 했어.”“지금은?”“사람이 다 보이잖아. 안 나왔는데도.”재민은 사진 대신 서연을 보았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 무엇을 떠올렸느냐고 묻지 않았다.다음 전시실에서는 초등학생쯤 된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오디오 안내기를 눌렀다. 서연은 무심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봄이가 아침에 보낸 눈사람 그림이 알림 화면에 떠 있었다. 태주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급한 일 있어?”“아니. 조카가 그림을 보냈어.”“답해. 여기서 기다릴게.”서연은 전시장 구석으로 비켜 서서 눈사람에 목도리를 그려 넣은 사진을 칭찬했다. 봄이는 곧

  • 언니, 나 어떡하지 형부가...   제49화. 한 걸음 뒤에서

    월요일 점심 무렵, 서연은 회사 탕비실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다가 태주의 이름이 뜬 화면을 보았다.‘토요일 일은 내가 잘못했어. 네가 누구를 만나는지 따져 물을 권리는 나한테 없어. 미안하다.’두 줄짜리 문자를 세 번 읽었다. 변명도, 재민에 대한 질문도 없었다.서연은 수도꼭지를 잠그고 답을 썼다.‘사과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말이 세게 나간 건 죄송해요.’보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져야 했다. 그런데 태주의 답은 한참 뒤에도 오지 않았다. 읽음 표시만 남았다.그날 저녁에는 봄이에게서 영상 통화가 왔다. 봄이는 앞니 빠진 자리를 혀로 건드리며 유치원에서 받아 온 글자 놀이 종이를 자랑했다.“이모, 나 별 열 개 중에 아홉 개야.”“하나는 왜 못 받았는데?”“‘겨울잠.’ 나는 ‘겨울참’이라고 썼어. 겨울은 진짜 참아야 되잖아. 추우니까.”서연이 웃자 화면 밖에서 태주의 웃음소리도 희미하게 났다. 평소 같으면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었을 사람이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보이지 않은 얼굴이 화면의 가장자리에만 숨었다. 숨은 얼굴이 한 걸음 뒤의 거리였다.“아빠는?”“설거지해. 아빠가 오늘은 내가 이모랑 오래 말해도 된대.”말은 다정했지만 이상했다. 태주가 통화 시간을 양보했다기보다 자신은 끼지 않겠다고 정한 것처럼 들렸다.통화가 끝난 뒤 서연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봄이가 원하던 눈사람 모양 연필깎이가 회사 근처 문구점에 있었다. 곧바로 봄이의 음성 답장이 왔고, 태주는 엄지손가락 표시 하나만 보냈다.며칠 동안 비슷했다.봄이의 등원 준비나 주말 약속에 관해 꼭 필요한 연락은

  • 언니, 나 어떡하지 형부가...   제48화. 무슨 자격으로

    토요일 오후, 서연은 804호 거실 바닥에 겨울 장식 상자를 펼쳤다.봄이가 지난주부터 같이 트리를 꺼내 달라고 졸랐고, 서연은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을 골라 오겠다고 했다.“이모, 이건 내가 걸 거야.”봄이는 금색 별 장식을 가슴에 안았다. 태주는 창고에서 꺼낸 작은 나무를 조립하고 전구 선을 풀었다.“작년에는 엄마가 여기다 걸었어.”봄이가 가운데 가지를 가리켰다.“기억나?”“사진에 있어.”태주는 휴대전화에서 지난해 사진을 찾아 보여 줬다. 서희가 트리 옆에 앉아 봄이의 머리에 금색 별을 올려놓고 있었다. 웃다가 눈을 감은 얼굴이었다.상자 바닥에는 서희가 종이점토로 만든 장식도 있었다. ‘봄이 3살’이라고 적힌 삐뚤한 글씨와 작은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었다. 태주는 그것을 가장 잘 보이는 앞쪽 가지에 걸었다. 서연은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엄마 눈 감았네.”“네 머리에 별 씌우다가 웃은 거야.”“올해는 아빠한테 할래.”봄이가 별을 들고 달려들자 태주는 고개를 숙였다. 서연은 둘의 사진을 찍어 서희 사진 다음 장에 남겼다.장식을 다 건 뒤 셋은 거실 불을 끄고 전구를 켰다. 봄이는 색이 바뀔 때마다 손뼉을 쳤다. 서연은 소파 끝에 앉아 지난해와 올해 사진을 차례로 넘겼다. 한 장이 다음 장을 없애지 않았다.저녁은 태주가 끓인 닭볶음탕이었다. 봄이가 밥을 다 먹고 방에서 색칠책을 가져오자 태주가 서연에게 물었다.“지난번 사람은 어떻게 됐어?”“누구요?”“전 약혼자.”서연은 물컵을 내려놓았다.“한 달만 다시

  • 언니, 나 어떡하지 형부가...   제47화. 한 달만

    겨울 침구 기획전이 시작된 금요일, 첫날 주문량은 예상치보다 18% 높았다.소담살림 회의실에서 마지막 점검을 마친 뒤 미경이 박수를 쳤다.“이번 주는 수정 없이 끝내자. 주말에 전화하는 사람 벌금.”온유리빙 직원들도 웃으며 노트북을 닫았다. 재민은 반품 접수 담당 번호와 월요일 확인 사항만 공유했다.“긴급한 품질 문제 외에는 월요일에 대응하겠습니다.”“윤 팀장님도 주말에는 쉬세요.”미경이 말하자 재민은 서연을 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회의가 끝나고 협력사 직원들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재민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려갔다. 서연에게 남으라는 눈짓도, 따로 기다리겠다는 문자도 없었다.서연은 자리로 돌아와 한 달간 주고받은 메일을 정리했다. 재민이 개인적인 문장을 쓴 것은 없었다. 오배송을 해결한 날에도, 첫날 주문 수치가 나온 오늘도 업무 밖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답을 미루는 동안 편했던 것은 사실이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재민의 변화를 계속 시험하는 것도 공평하지 않았다.서연은 퇴근 버튼을 누르기 전에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저녁 먹었어?’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아직. 회사 근처야.’‘국밥 괜찮으면 1시간 볼래?’재민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괜찮아. 네 회사 앞으로 갈게.’두 사람은 화려한 식당 대신 골목 안 국밥집에 앉았다. 예전에 데이트할 때 자주 오던 곳은 아니었다. 서연은 순댓국, 재민은 돼지국밥을 주문했다.“기획전 잘 나와서 다행이다.”“네가 전시실 제품 안 가져왔으면 촬영 다시 했어야 해.”“그 얘기 또 고맙다고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