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는 10초 남짓 자료 화면으로 나왔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탈락.
“그런데 이놈은 어쩌다가?”
그 순간,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머릿속으로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토바이…”
회귀 후유증이라면 후유증일까?
표은우는 데뷔 전에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책임졌다는 것도 떠올랐다.
‘이 자식, 소년 가장이었지…’
그러다가 우연히 기획사에 배달을 갔다가 관계자의 눈에 띄어 데뷔했었다.
현실에서는 그릴 수 없는 상황.
표은우는 혼자 판타지를 찍으며 살다가 사라졌다.
“흐음….”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살펴봤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참 잘생겼다.
마치 명화를 보고 감동받은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진짜 눈물 나게 잘생겼네.”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었다.
“고놈 참, 예쁘네.”
“감사합니다….”
팔이 부러져서 옆 침대에 깁스를 하고 누워 있는 할아버지가 은우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학생… 이거….”
간호사들끼리 분명 담당 환자가 배정되었을 텐데 자꾸만 담당이 바뀐다.
바뀐 간호사들이 자꾸 전화번호를 준다.
그렇게 받은 번호만 열 개가 넘는다.
전생에서는 여자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라고는 스팸뿐이었는데 말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가관이었다.
온갖 종류의 음료수가 꽉꽉 차 있었다.
“후…”
콜라 하나를 대충 집어 들고 병원 로비로 나왔다.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은우는 자신을 두고 쑥덕거리는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네?”
“저 모르세요? 저 표은우인데.” “지… 지금부터 알면 되죠. 혹시 연예인이세요? 배우? 가수? 아니면 아프리카TV BJ? 채널 알려주시면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할게요!”
“아니에요.”
미치겠다.
시작부터 출발선이 달랐다.
전생에서는 겨우겨우 노력해서 출발선에 섰는데,
이 얼굴은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는구나.
‘대충 신사동이나 압구정 근처에서 기웃거리면 연예인이 되는 데는 큰 문제가 없겠군.’
전생에 생계형 가수라서 그런지 적응력이 빨랐다.
나이도 젊고, 몸도 건강한데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아, 잠깐…. 이 자식 음치였지….’
은우는 조심스럽게 한 소절을 내뱉었다.
‘음… 음색은 괜찮고.’
일단 음색은 합격. 기본 음역은 약간의 중저음으로, 전생의 자신과 비슷했다.
은우는 조금 더 키를 올려 불렀다.
“네가 울면~ 난 시들어~”
아까 TV에서 나온 노래를 불렀다. 심사위원이었던 이상철의 전성기 시절 노래.
‘오?’
성대가 튼튼했다.
억지로 힘을 내지 않아도 고음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레인지(range)가 꽤 넓은데?’
저음에서 고음까지 낼 수 있는 범위가 넓었다.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표은우가 음치로 불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음정은 신체 능력보다 인지의 문제였다.
표은우는 그 능력이 남들보다 좀 떨어졌던 것이다.
첫 시작음을 높게 잡으니 클라이맥스에 도달할수록 쥐어짜듯이 부를 수밖에 없었고, 낮은음에서는 고음을, 고음에서는 음이 뚝 떨어졌다.
좋게 말하면 자체적으로 편곡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편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제멋대로 부르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표은우는 댄스 가수이자 비주얼 담당이었다.
당시 소속사에서는 노래 연습할 시간에 피부과에 보낼 정도였으니 노래를 못하는 게 당연지사였다.
“짝짝짝.”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 곡 더! 한 곡 더!”
‘이런, 미친.’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느라 엄밀히 말하면 대충 불렀다.
원래 실력의 10분의 1 정도나 발휘했을까?
그런데 이런 반응이라니.
‘역시 얼굴이 한몫하는 건가?’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두 번째였다.
지난번 얼굴을 공개했을 때는 사람들이 떠나갔지만,
지금은 오히려 몰려들었다.
“어… 어떤 걸 불러볼까요?”
그들의 호응에 보답하기로 했다.
“아무거나요!”
‘하하. 그게 제일 힘든 건데….’
그때 하늘에서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은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해체한 건 알았는데, 왜 해체했는지는 잘 몰라요.”“멤버 중 하나가 문제를 일으켜서 해체가 됐어···.”“아! 그 사건 알아요. 아주 그냥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잖아요.”지훈이 아는 체를 하다가 체인쏘에게 옆구리를 찔렸다.지훈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그래. 그 뒤로 케플라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있는 거야.”“누나, 대단한 사람이었군요.”“눈보라 멤버들하고는 지금 연락하고 지내세요?”“아니. 다들 조용히 일반인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해서 연락 안 하고 있어. 몇몇은 안 좋은 소식도 있고.”“아···.”“그래도 가끔 걔네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강기연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더는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멤버들도 그 뜻을 알아들었다.곤이 괜히 남은 감자튀김을 강기연 접시에 밀어 줬다.강기연은 피식 웃으며 그걸 집어 먹었다.표은우는 강기연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아직 30대 중반인데,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아이돌로 실패하고, 매니저로 성공하고, 그리고 그 성공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까지.그녀의 감은 오랜 경험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다.그리고 은우는 기억하고 있었다.전생에서도 강기연은 못생긴 은우에게 기회를 주려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모두가 얼굴을 보고 고개를 저을 때, 강기연만 은우의 노래를 들었다.그때는 몰랐다.그
더블유의 근황이 끝나자 이번엔 지훈의 차례였다.지훈은 학교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보컬 수업을 들었다.호흡과 발성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는 중이었다.그러면서 알게 됐다.은우가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것들이 사실은 교과서 맨 마지막 장에 나오는 기술이라는 걸.“진짜 배우면 배울수록 은우 형은 천재라니까요. 선생님들이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되면 은우 형이 부른 노래를 들어요. 그러면 싹 풀려요.”“교과서 취급이네.”“교과서보다 낫죠. 교과서는 노래를 안 하잖아요.”“그럼 한국 가면 직접 봐 줄게. 발성부터.”“진짜요? 약속했어요!”지훈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은우는 못 이기는 척 손가락을 걸었다.“두팔이 형은요? 형은 뭐 했어요?”곤이 체인쏘를 쳐다봤다.체인쏘는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었다.“흥. 비밀.”“에이, 말해 줘요.”“앨범 나오면 알게 될 거야.”체인쏘는 그 말만 하고 다시 고기를 썰었다.은우는 체인쏘의 손가락 끝을 봤다.펜을 오래 쥔 사람처럼 가운뎃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가사 쓰고 있었구나.’은우는 모른 척해 주기로 했다.곤이 고기를 꿀꺽 삼키고 손을 들었다.“그럼 형, 여기서 노래 한번 불러 줘요!”“여기서?”은우는 포크를 내려놓았다.“후··· 너희, 내가 미국에서 ‘노래 한 번만’ 소리 듣고 어떤
크리스마스이브 아침.강기연은 숙소 문을 두드려 은우를 깨웠다.“은우야. 일어나. 선물 받으러 가자.”“선물이요? 벌써요?”“응. 근데 선물이 좀 커서 공항으로 가야 돼.”은우는 영문도 모른 채 강기연을 따라 LA 공항으로 향했다.입국장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공항에서 무슨 선물을 받아? 설마 누나가 한국 가는 비행기 표를 사 준 건 아니겠지?’“누나. 대체 뭔데요?”“기다려 봐. 곧 나와.”“나와요? 선물이 걸어 나와요?”강기연은 대답 대신 전광판만 쳐다봤다.인천발 LA행 비행기의 도착 표시가 막 바뀌고 있었다.그때였다.“은우형!”곤이 저 멀리서 캐리어를 내팽
케이시는 깜짝 놀랐다.무용을 전공했지만, 춤을 접은 지는 어언 25년.정확히 말하면 조이를 낳고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런데 표은우가 자신을 일으켜 세워 춤을 추게 만들었다.그저 귀를 자극한 게 아니라, 잠들어 있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운 것이다.그러자 케이시는 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엄마, 방금 진짜 예뻤어. 나 엄마 춤추는 거 처음 봐.”“처음이니?”“응. 사진으로만 봤지.”조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케이시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조이가 왜 그토록 은우를 추천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케이시가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아쉽네요. 이 노래가 조금만 더 일찍 나왔으면 ‘라라랜드’ 같은 영화에 삽입될 수 있었을 텐데.”“나중에 그런 영화를 하나 만들어 주세요. 소닉 계열사에는 영화사도 있잖아요?”은우가 넉살 좋게 받아쳤다.강기연은 또 한 번 은우의 옆구리를 찌를 뻔했다.“그거 굉장히 좋은 생각인데요? 하지만 우선 OST 작업은 당장 알아봐야겠군요.”“엄마. 그 영화 나오면 나 카메오로 넣어 줘.”“노래는 안 하고?”“노래는 은우가 하고, 나는 지나가는 행인 1.”조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가수의 꿈을 접은 아이의 말치고는 밝았다.
“이제 재미없는 사업 이야기는 접어 두고, 우리 음악 이야기를 해 볼까요?”케이시가 다시 은우를 바라봤다.“은우 씨는 어떤 노래를 좋아해요?”“음. 가리지는 않아요. 다만 가사에 메시지가 담겨 있고, 누군가에게 희망이나 행복이 되는 노래면 좋을 거 같아요.”“작곡이나 작사도 직접 하시나요?”“할 줄은 알지만 아직 배우는 수준입니다.”그때 조이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은우가 ‘급식 래퍼’에 나온 영상이었다.“엄마, 이거 봤어? 은우가 한국에서 나간 방송이야.”“어? 그걸 어떻게 찾았어?”“나 너 팬이잖아. 이 정도는 기본이지.”은우는 민망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그거 내가 제일 흑역사라고 생각하는 건데···.”“왜? 멋있기만 하던데.”“그때 랩 가사 틀렸어.”“그래? 몰랐는데?”조이가 고개를 갸웃했다.은우만 아는 실수였다.케이시는 이미 한 번 본 영상이었다.하지만 은우에게 호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다시 보니 색다르게 보였다.“으흠~.”케이시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그 뒤 표은우와 케이시는 자연
‘뭐가 문제지?’강기연은 깜짝 놀랐다.은우가 한국말로 노래를 불렀어도 케이시는 노래의 내용을 다 이해했다.심지어 좋은 반응까지 보여 줬다.그런데 계약서를 찢었다.혹시 방금 은우한테 귓속말한 게 실례였나?아니면 처음 노래를 거부한 게 아직 마음에 걸리는 건가?강기연의 머릿속이 하얘졌다.조이도 놀라서 엄마를 쳐다봤다.“엄마?”강기연은 찢어진 계약서 조각을 멍하니 내려다봤다.C급이라도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계약서였다.그게 지금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었다.케이시가 그제야 손을 내저었다.“아! 오해하지 말아요. 표은우 씨의 노래를 들으니 이런 계약은 어울리지 않아서요.”강기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리에 힘이 쭉 풀렸다.소파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C급 계약은 가능성에 거는 계약이에요.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가수한테 소닉뮤직스의 이름만 빌려주는 거죠.”케이시가 찢어진 종이 조각을 한쪽으로 밀어냈다.“그런데 방금 노래를 들어 보니, 은우 씨는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결과더군요.”은우가 강기연에게 소곤거렸다.“누나. 저 칭찬받은 거 맞죠?”“응. 엄청난 칭찬.”&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