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며칠 뒤.
윤호는 요 근래 잠을 통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잠들었다 싶으면 깼고, 잠들었다 싶으면 깨는 일상이 반복됐다.
“요새 잠을 잘 못 주무세요?”
“네?”
“아니, 요즘 유독 피곤해 하시길래.”
연우는 윤호의 책상에 놓인 진한 커피를 보며 말했다. 컵 표면에는 ‘2샷 추가’ 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좀 잠이 안 오네요.”
“그래요? 무슨 고민 있어요?”
고민이라.
‘그럼 우리 이제 볼 일 없겠네.’
그 순간, 여림의 말이 스쳤다. 그날은 맞는 말이 반박할 수 없었다. 더 인연을 이어 나가려면 한쪽이 노력해야 했다.
‘미안, 못 가.’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다가가야 할 지 모르겠다. 이제 정말 못 만나는 걸까.
한 번만, 한 번만 더 우연히 만나게 되면.
“없어요, 고민. 그냥 설칠 때 있잖아요. 뭐, 그런 거죠.”
“그래요? 그래도 커피 너무 독하게 먹지 마요. 몸 상할라.”
연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에 오프비트 콘서트 모먼트로 바뀐 거 알고 있죠?”
“맞다. 얘기 들었어요. 스케줄에 문제 생겼다고.”
“거기 미팅이 얼마 안 남았어요. 제가 오늘 일정 정리해서 넘겨드릴게요.”
두 사람은 사담도 잠시, 둘이 같이 하게 된 오프비트 단독 콘서트 건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대화를 마치고 연우는 텀블러를 가지고 자리르 떴다.
연우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윤호는 눈가를 문질렀다. 설친 잠이 많아지자 눈이 뻐근했다.
“…… 하.”
그리고 작은 한숨이 터지듯 흘러나왔다.
***
한편.
“아, 거기 있어요? 그럼 제가 오늘 퇴근하고 찾으러 갈게요!”
여림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통화를 끊었다.
“무슨 일 있어요?”
그때, 현재가 양 손에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한 잔을 여림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게 그 현재 님이랑 밥 먹은 날, 제가 거기 목걸이가 떨어졌었나 봐요.”
“목걸이요? 근데 그거 며칠 됐잖아요.”
“제가 그날 술 마셔서 잘 기억이 안 나가지고. 집 안만 다 뒤지고. 마지막 희망으로 전화 한 번 해본 거였는데 거기 있다네요.”
여림은 웃으면서 말했다.
목걸이가 없어진 걸 알아챈 건 바로 다음 날이었다. 하지만 정신이 없었다. 기획안 미팅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리고 퇴근해서 틈틈이 집안을 뒤져봤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마지막 희망으로 전화해 본 식당에 있다니 다행인 일이었다.
“그럼 오늘 칼퇴해야겠네요.”
“네. 며칠 째 야근하니까 피가 말리네요.”
여림은 뻐근한 목을 풀었다. 뚜둑 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저랑 같이 갈래요?”
“네? 아니에요! 또 폐를 끼칠 수는 없죠. 그렇게 먼 곳도 아니고.”
여림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매번 현재에게 받은 게 많아 미안함이 산처럼 쌓였는데 또 한 번 일을 만들 수는 없었다.
“괜찮은데….”
“아니에요! 현재 님이야말로 오늘은 정말 칼퇴하고 푹 쉬세요. 현재 님도 최근에 야근 너무 많았잖아요.”
“그래도 힘들면 저 불러요, 알겠죠?”
“네! 저 그럼 기획안 보고 좀 올리러….”
여림은 손목 시계를 확인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
“저 먼저 퇴근해보겠습니다.”
하나둘 사무실을 떠나는 시간. 여림도 간만에 칼퇴 준비를 하며 일어섰다.
“현재 님도 오늘 꼭 일찍 들어가서 쉬세요!”
여림은 현재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서둘러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후다닥 도착한 식당.
“안녕하세요, 저 아까 연락드렸던 목걸이 찾으러 왔는데요.”
“아, 잠시만요.”
직원이 식당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지퍼백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거 맞으세요?”
“네, 맞아요.”
익숙한 목걸이를 확인한 여림의 얼굴에 안도감이 퍼졌다.
스무 살부터 문신처럼 해온 목걸이었다. 나름 값이 나가는 거라 잃어버리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게 뻔했다.
“감사합니다.”
식당을 나서자마자 여림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목걸이를 채웠다. 목걸이가 제자리에 놓인 걸 확인한 뒤에야 다시 걸음을 옮겼다.
퇴근 시간인 거리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과 퇴근길에 오른 수많은 차들이 있었다.
여림도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옆으로 지나가던 차 한 대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여림보다 몇 미터 쯤 앞에서 멈추더니 비상등을 켰다.
하지만 여림은 꼿꼿하게 휴대폰 속 지도에 의지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때.
화면 위로 메시지 알림이 떴다.
[앞에 봐]
“…?”
발신인은 윤호였다. 여림은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앞에?
무슨 말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 사이로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지만 윤호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는데.
철컥.
앞에 세워진 차의 운전석 문이 열리고. 익숙한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윤호를 발견한 여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대체 왜 자꾸 만나는 건데. 8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왜.
8년 동안 겹치지 않던 우연이 이렇게 한 번에 몰아칠 수 있는 건가. 이러려고 목걸이가 제 발로 빠졌던 걸까.
여림은 자신 없었다. 마주칠수록 마음을 통제할 자신이. 그리고 마주칠수록 덮어두었던 기억들이 자꾸 수면 위로 떠오를 거 같았따.
가만히 멈춰 있는 여림에게 윤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망설임 없이 가 다가왔다.
“퇴근하는 거야?”
그리고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치 아무래도. 오빠도 퇴근하나 봐?”
“응.”
여림은 잠시 윤호의 뒤로 보이는 차를 바라봤다. 어느새 차까지 뽑고, 꽤 어른이 된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 정적이 내려 앉았다.
여림은 괜히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할 말을 찾았다.
“아, 여기 차 오래 못 세워두는데.”
하지만 정적을 깬 것은 윤호였다.
“혹시 집 가는 거면.”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탈래?”
살짝 고개를 꺾고 옅게 짓는 미소로 말하면 여림이 무슨 기분일지 알고 말하는 걸까.
“데려다줄게.”
며칠 뒤.윤호는 요 근래 잠을 통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잠들었다 싶으면 깼고, 잠들었다 싶으면 깨는 일상이 반복됐다.“요새 잠을 잘 못 주무세요?”“네?”“아니, 요즘 유독 피곤해 하시길래.”연우는 윤호의 책상에 놓인 진한 커피를 보며 말했다. 컵 표면에는 ‘2샷 추가’ 라고 적혀 있었다.“요즘 좀 잠이 안 오네요.”“그래요? 무슨 고민 있어요?”고민이라.‘그럼 우리 이제 볼 일 없겠네.’그 순간, 여림의 말이 스쳤다. 그날은 맞는 말이 반박할 수 없었다. 더 인연을 이어 나가려면 한쪽이 노력해야 했다. ‘미안, 못 가.’하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다가가야 할 지 모르겠다. 이제 정말 못 만나는 걸까.한 번만, 한 번만 더 우연히 만나게 되면.“없어요, 고민. 그냥 설칠 때 있잖아요. 뭐, 그런 거죠.”“그래요? 그래도 커피 너무 독하게 먹지 마요. 몸 상할라.”연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아, 그리고. 이번에 오프비트 콘서트 모먼트로 바뀐 거 알고 있죠?”“맞다. 얘기 들었어요. 스케줄에 문제 생겼다고.”“거기 미팅이 얼마 안 남았어요. 제가 오늘 일정 정리해서 넘겨드릴게요.”두 사람은 사담도 잠시, 둘이 같이 하게 된 오프비트 단독 콘서트 건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대화를 마치고 연우는 텀블러를 가지고 자리르 떴다.연우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윤호는 눈가를 문질렀다. 설친 잠이 많아지자 눈이 뻐근했다.“…… 하.”그리고 작은 한숨이 터지듯 흘러나왔다.***한편.“아, 거기 있어요? 그럼 제가 오늘 퇴근하고 찾으러 갈게요!”여림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감사합니다!”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통화를 끊었다.“무슨 일 있어요?”그때, 현재가 양 손에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한 잔을 여림에게 건넸다.“감사합니다. 그게 그 현재 님이랑 밥 먹은 날, 제가 거기 목걸이가 떨어졌었나 봐요.”“목걸이요? 근데 그거 며칠 됐잖아요.”“제가 그날 술 마셔서 잘 기억이 안 나가지고. 집 안만 다 뒤지고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따라가서 도대체 뭘 할 건데.하지만 복잡한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이미 결정을 한 듯 핸들을 꺾었다.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윤호가 사는 빌라였다. 주차를 마친 윤호는 뒷좌석에 있는 쇼핑백을 챙겨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시선이 자연스럽게 옆 빌라로 향했다. 그곳은 자신이 며칠 전, 신세를 졌던 여림의 집이었다.비가 쏟아지던 날, 여림에게 정신없이 끌려오다시피 따라왔을 대 알았다. 바로 옆 빌라였다는 것을.“하…….”불이 꺼진 여림의 방을 올려다 보았다.벌써 도착해서 이미 자고 있는 건가. 아님 아직 도착을 안 한 건가.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몰래 남의 방을 들여다 보며 괜한 추측만 하고 있고.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발만 굴리던 때, 골목 안으로 차 한 대가 천천히 들어왔다. 헤드라이트가 정면으로 쏟아졌다. 윤호는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빛을 가렸다.차가 부드럽게 정차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자연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천천히 내려요, 괜찮죠?”“으응…….”거기서 모습을 보인 사람은 여림이었다.여림은 현재의 팔을 잡고 간신히 차에서 내렸다.“길을 잘못 들어서 좀 늦었어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괜찮아요, 감사합니다…….”여림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현재가 그런 여림의 팔을 잡아 부축했다. “업힐래요?”“아니요! 저 진짜 잘 걸을 수 있다니까요….”현재가 웃으며 여림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걷기 시작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한 사람. “……”빌라 기둥에 기대어 보던 표정은 서서히 굳었고, 쇼핑백을 쥔 손에는 강한 힘이 들어갔다.하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슨 권한으로 저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겠는가.아니, 그렇다고 해도 회사 동료끼리 저렇게 가까이 붙어 있어도 되나. 아무리 봐도 저 눈빛 수상한데.그렇게 온갖 생각이 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어?”여림과 눈이 탁 마주쳤다.여림은 손가락으로 윤호를 가
하필 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 그가 또 눈 앞에 나타났다.타이밍 한 번 참 거지 같았다.나 오늘은 회식이 잡혀서 안 될 거 같아내일 안 될까?그렇게 보내놓고 이렇게 마주치다니.게다가 회식이란 것 치곤 너무 단둘이 먹고 있는 그림이었다.“여림 님?”“아.”그제야 여림은 현재의 팔목을 붙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아, 죄송해요.”급하게 손을 놓았다.현재가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하게 붉어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제가 너무 세게 잡았죠,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아니에요, 무슨 일이에요? 안색이….”현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림을 살폈다.여림은 슬쩍 다시 현재의 뒤를 보았다.“…!”그러자 또다시 윤호와 눈이 마주쳤다.“아무 것도 아니에요.”또다시 여림이 시선을 피하자 윤호는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의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하지만 여림의 시야에는 여전히 앉아 있는 윤호의 뒷모습이 걸렸다.보이는 걸 안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보이니 눈이 가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현재 님, 죄송한데.”“네?”“조금만 오른쪽으로 옮겨주실 수 있을까요?”여림은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허공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오른쪽이요?”“네, 조금만.”현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의자를 끌어 옆으로 옮겼다.“딱 그 정도요.”여림은 한쪽 눈을 감고 현재와 자신의 시선을 번갈아 확인했다.드디어 윤호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지자 여림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왜 그러세요?”현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아, 아니에요……. 아무것도…….”현재에겐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차윤호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여림은 어색하게 웃으며 맥주잔을 들었다.“혹시 저, 한 병만 더 마셔도 될까요…….”현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 한 병을 더 시켜주었다.***[알겠어 내일 보자]무슨 월요일부터 그 회사는 회식을 하냐. 윤호는 운전대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뒷좌석에 놓인 쇼핑백
콘서트 기획 일정에 맞추려면 생각보다 기간이 빡빡했다. 전해 듣기론 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모먼트에 왔던 게 아니라고 했다.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일정에 맞추려면 생각해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 우리 잘해봅시다!”정예 멤버를 꾸리는 것이었다.비록 멤버를 뽑은 것은 하영이었지만.“첫 PM이시죠 여림 님?”재훈이 웃으며 말했다.“네…. 부족한 게 많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아니에요. 우리가 한두 번 같이 일한 것도 아니고.”모먼트가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기 때문에 이미 얼굴을 다 익힌 사이였다.“아, 제가 첫 PM 맡은 기념 밥이라도 쏠까 싶은데!”“오늘이요?”“아, 오늘? 어… 전 가능한데, 다들 괜찮으세요?”오늘을 딱히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첫 PM을 맡으면 꼭 밥을 쏴야지 생각했었다.“저는 오늘 와이프랑 저녁 먹기로 해서…….”공연장 세트 제작과 기술 업체 담당인 재훈이 곤란한 듯 이야기했다.“아, 신혼이시지…. 어쩔 수 없죠 뭐.”얼마 전,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여림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휙 재훈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전 오늘 퇴근하고 친구 취업 축하 파티가…….”홍보 및 마케팅 담당 가은 역시 난감한 듯 말끝을 흐렸다.“취업도 어쩔 수 없죠. 과반수가 안 되면 그냥 다음에 쏠게요!”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당일 회식을 잡아. 나라도 없는 약속 만들어가면서 안 갔을 게 뻔한데.“그럼 일단 다음 기획안 미팅 때 봬요!”여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은과 재훈은 고개를 숙이고는 미팅실을 나갔다.그때, 책상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의 화면이 반짝였다.[길바닥]ㅡ 오늘 옷 돌려줄까?윤호로부터 온 연락이었다.저도 모르게 화면을 눌러 읽어버렸다. 너무 바로 본 탓에 쉽게 답장도 하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라고 답장하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여림은 시계를 바라봤다. 퇴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준비되지 않은 마음. 왜 이렇게 심장이
‘나 오늘 자고 가도 돼?’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 없이 집에 돌아와서 잠든 후 일어났을 땐 이미 꿈처럼 지나간 일이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이불킥 할 말은 왜 한 건지.‘그럼 번호 알려줘.’여림이 자신의 예전 번호를 차단했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림과 번호 교환을 한 것이 이상하게 마음이 묘했다. 여림은 옷을 돌려받기 위함일 뿐일 텐데.[여림]한동안 아무것도 없는 대화창에서 여림의 이름만 바라보았다. 만나지 않던 시간 동안 연락해볼까 망설이며 이름만 닳도록 쳐다보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필 그날 널 다시 만난 건……윤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화면을 껐다. 꺼진 화면 속에는 씁쓸해 보이는 윤호의 표정이 남아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있는지 또 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공백이 너무 길었으니.8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후회는 하나였다. ‘미안, 못 가.’그렇게 보내지 말 걸. 설명이라도 제대로 해줄 걸.그런 생각을 할 때 쯤.“야, 주말에 괜찮았냐? 비 엄청 쏟아졌잖아.”“아니.”이제 막 출근한 듯한 지언이 찾아왔다.“그래. 네가 괜찮았을 리가 없지. 안 그래도 부모님 기일에 비까지 쏟아졌으니.”성지언.윤호와 미국에서 만나 한국에 윤호를 데려와 준 친구였다. 지금 윤호가 살고 있는 집을 구해준 것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올 수 있던 것도 지언이었다. 워낙 발이 넓고 친화력이 좋다. 하지만 윤호와 너무 붙어 다녀 한때는 윤호와 브로맨스 관계라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였다.윤호가 있는 힘껏 부정한 덕분에 사그라들긴 했지만.“뭐, 그거 때문만은 아니긴 한데.”지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어제 또 뭔 일 있었냐?”무언가 냄새를 맡은 듯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별 거 아냐.”“별 거 아니라고 할 때, 대부분 별 거 아닌 건 없지.”윤호는 대답 대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지언은 윤호의 책상에 놓
탁, 탁, 탁.사무실에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우당탕탕 윤호가 휘젓고 간 주말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평일. 여림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손가락만 움직였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주말 내내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도 정신은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윤호가 집을 나갈 때, 정신도 같이 나간 듯 했다. 그렇게 오전 업무 시간이 끝나고, 간신히 숨을 돌리던 점심 시간. 도저히 입맛이 없어서 대충 가져온 바나나로 때우고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림 님, 무슨 일 있으세요?”그때 한숨 돌리던 여림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 현재 님…. ”여림의 직장 동료, 남현재였다.현재는 모먼트의 햇살 같은 존재였다.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잘 웃는지. 지금껏 현재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성격도 다정하고 사려 깊어서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여림과는 입사가 일 년 정도 차이 나는 선후배 사이였다. 현재는 여림의 사수로서 가장 많이 붙어 있던 동료이기도 했다. “잠을 좀 설치셨어요? 오늘 영 컨디션이 안 좋아보이길래.”현재는 자연스럽게 여림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아니에요, 저 정말 괜찮은데.”거짓말이었다.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다크서클은 턱 끝까지 내려와 있는 느낌이었고, 눈은 퀭한 게 귀신도 울고 갈 만할 정도였다. “그냥, 월요일이라 그런가 봐요.”여림은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월요일은 무적이었다. 어떠한 일에도 요긴한 핑계 거리가 돼 주었다. “아, 그쵸. 월요일은 충분히 이해합니다.”현재도 그 말에 더는 걱정하지 않는 듯 공감을 했다. 여림은 들고 있던 커피를 쭉 빨아들였다. 컵 안에 커피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현재는 작게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럼 제가 여림 님 기분 좋아질 만한 소식 하나 알려드릴까요?”“무슨 소식이요?”여림은 별 기대 없이 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