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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Author: 공자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0 09:48:50

하필 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 그가 또 눈 앞에 나타났다.

타이밍 한 번 참 거지 같았다.

나 오늘은 회식이 잡혀서 안 될 거 같아

내일 안 될까?

그렇게 보내놓고 이렇게 마주치다니.

게다가 회식이란 것 치곤 너무 단둘이 먹고 있는 그림이었다.

“여림 님?”

“아.”

그제야 여림은 현재의 팔목을 붙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죄송해요.”

급하게 손을 놓았다.

현재가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하게 붉어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가 너무 세게 잡았죠,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아니에요, 무슨 일이에요? 안색이….”

현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림을 살폈다.

여림은 슬쩍 다시 현재의 뒤를 보았다.

“…!”

그러자 또다시 윤호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또다시 여림이 시선을 피하자 윤호는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의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림의 시야에는 여전히 앉아 있는 윤호의 뒷모습이 걸렸다.

보이는 걸 안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보이니 눈이 가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현재 님, 죄송한데.”

“네?”

“조금만 오른쪽으로 옮겨주실 수 있을까요?”

여림은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허공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오른쪽이요?”

“네, 조금만.”

현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의자를 끌어 옆으로 옮겼다.

“딱 그 정도요.”

여림은 한쪽 눈을 감고 현재와 자신의 시선을 번갈아 확인했다.

드디어 윤호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지자 여림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세요?”

현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현재에겐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차윤호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

여림은 어색하게 웃으며 맥주잔을 들었다.

“혹시 저, 한 병만 더 마셔도 될까요…….”

현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 한 병을 더 시켜주었다.

***

[알겠어 내일 보자]

무슨 월요일부터 그 회사는 회식을 하냐. 

윤호는 운전대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뒷좌석에 놓인 쇼핑백이 처량해 보였다.

집에 가자마자 세탁기에 돌려 쫙쫙 펴서 건조대에 널어 놓았다. 

그리고 곱게 개어 넣어왔는데.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 미안. 팀장이 갑자기 잡아서 일 넘기려는 거 간신히 빠져나왔어.”

그때, 자연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고 지언이 탔다.

“그 냉삼 집으로 가자. 거기 이모가 서비스를 잘 줘.”

“난 오늘 술 안 마신다. 대리 안 부를 거야.”

“헐? 그럼 왜 마시자 한 거야.”

“그냥 난 저녁 먹으려고 그랬던 거지.”

윤호의 말에 지언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

“몇 명?”

“두 명이요!”

시끄러운 식당에 직원과 지언 모두 데시벨이 커졌다.

지언이 앞장서 들어가고, 윤호는 그 뒤를 따랐다.

무심코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퇴근 시간 때문인지 테이블마다 사람이 빼곡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배가 안 고프던 사람마저도 오감을 자극해 입맛을 다시게 했다.

“여기 앉자 우리!”

지언은 재빨리 비어 있는 자리로 윤호를 불렀다. 그 말에 윤호도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때.

“현재 님, 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어?”

걸음은 자연스럽게 제자리에 멈췄고, 무심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

그 시선 끝엔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홍여림.

여림 역시 자신을 발견한 듯 그대로 굳어 있었다. 아마, 거울을 보듯 표정이 똑같았을 것이다.

아니, 열미이 조금 더 자신을 귀신 보듯 한 것 같기도 했다.

“야, 어디 봐. 나 여기 있어.”

뒤통수에서 지언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윤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회식이라는 게 이거였구나. 

잠시 여림을 바라보던 윤호는 표정 관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림을 등지며 말했다.

“뭐 먹을까.”

***

“자. 계란찜은 서비스.”

“와, 역시 이모 짱.”

폭탄 같은 계란찜이 서비스로 나오자 지언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며 말했다.

그리고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을 때, 윤호는 아무 말 없이 지언의 빈 술잔을 채웠다.

둘이서만 먹는 게 회식인가.

하지만 윤호의 온 신경은 뒤로 향해 있었다.

“안 먹냐.”

“먹고 있어.”

윤호는 다 익은 고기를 지언의 앞접시에 올리며 말했다. 배가 고픈 것도 잊었다. 자신도 모르게 신경이 다른 쪽으로 곤두섰으니.

그렇게 여림의 테이블은 한 병을 더 시킨 뒤로 한참 이야기가 이어졌다. 윤호에게 잘 들리진 않았지만, 웃음소리가 오가는 건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와, 현재 님 진짜 막잔. 우리 이거 먹고 가요!”

그때. 여림이 꽤 뭉개지는 발음으로 말했다. 복잡한 마음이 얽히고 설켜 평소보다 더 빨리 눈이 풀렸다.

그렇게 잔을 탈탈 비웠을 때.

“여림 님, 괜찮아요?”

“그럼요. 저 진짜 멀쩡한데?”

말과 달리 여림은 안 잡히는 초점을 맞추려 눈을 찡그렸다.

현재는 피식 웃으며 여림의 앞에 놓인 고기를 집었다.

“안주 먹고, 일어나요 우리.”

여림은 얌전히 현재가 주는 고기를 받아먹었다.

“맛있당…….”

두 사람은 가끔 술자리를 갖긴 했지만, 여림이 이렇게 눈이 풀린 모습은 처음이었다. 얼른 여림을 데려다줘야겠다고 생각한 현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림 님. 걸을 수 있겠어요?”

“당연하죠!”

여림은 자신 있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하지만 한 걸음 내딛기도 전에 일어나자마자 몸이 휘청였다. 갑자기 일어난 탓에 술기운이 급격히 오르는 느낌이었다.

“어어, 잠깐만요.”

현재가 재빨리 여림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여림은 반대편 벽을 짚으며 간신히 섰다.

“업혀요.”

현재는 피식 웃으며 여림의 앞에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고 앉았다.

“네? 아니에요. 저 진짜 걸어갈 수,”

“이 상태로 가면 병원을 가야될 수도 있는데.”

웃음 섞인 말투였다.

진짜 업혀도 되나? 여림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있는 정신줄로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죄송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

그렇게 두 사람이 가게를 나가고, 하필 그 모습은 윤호의 시야에 걸리고 말았다.

탁.

두 사람이 앉았던 맞은편 테이블에서 의자가 거칠게 밀려났다.

“……”

“뭐야, 왜 그래 무섭게.”

고기를 먹으려던 지언이 고개를 들며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윤호는 대답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을 확인하더니.

“나 볼 일이 생각났다.”

“갑자기?”

“응. 까먹고 있었어.”

지갑에서 카드를 하나 꺼내 내려놓으며.

“계산은 이걸로 하고, 나 간다!”

“야!”

다급히 외치는 지언을 뒤로한 채 윤호는 그대로 가게를 나섰다.

본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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