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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거짓말

Author: 공자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0 09:49:22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따라가서 도대체 뭘 할 건데.

하지만 복잡한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이미 결정을 한 듯 핸들을 꺾었다.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윤호가 사는 빌라였다. 주차를 마친 윤호는 뒷좌석에 있는 쇼핑백을 챙겨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 빌라로 향했다. 그곳은 자신이 며칠 전, 신세를 졌던 여림의 집이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여림에게 정신없이 끌려오다시피 따라왔을 대 알았다. 바로 옆 빌라였다는 것을.

“하…….”

불이 꺼진 여림의 방을 올려다 보았다.

벌써 도착해서 이미 자고 있는 건가. 아님 아직 도착을 안 한 건가.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몰래 남의 방을 들여다 보며 괜한 추측만 하고 있고.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발만 굴리던 때, 골목 안으로 차 한 대가 천천히 들어왔다. 헤드라이트가 정면으로 쏟아졌다. 윤호는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빛을 가렸다.

차가 부드럽게 정차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자연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

“천천히 내려요, 괜찮죠?”

“으응…….”

거기서 모습을 보인 사람은 여림이었다.

여림은 현재의 팔을 잡고 간신히 차에서 내렸다.

“길을 잘못 들어서 좀 늦었어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여림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현재가 그런 여림의 팔을 잡아 부축했다. 

“업힐래요?”

“아니요! 저 진짜 잘 걸을 수 있다니까요….”

현재가 웃으며 여림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한 사람. 

“……”

빌라 기둥에 기대어 보던 표정은 서서히 굳었고, 쇼핑백을 쥔 손에는 강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슨 권한으로 저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겠는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회사 동료끼리 저렇게 가까이 붙어 있어도 되나. 아무리 봐도 저 눈빛 수상한데.

그렇게 온갖 생각이 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어?”

여림과 눈이 탁 마주쳤다.

여림은 손가락으로 윤호를 가리켰다. 

“아니, 왜….”

그리고 현재에게서 몸을 떼고 똑바로 섰다. 

세 사람 사이엔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고, 윤호와 여림의 눈맞춤은 한동안 오래 지속되었다.

윤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저렇게 마시고 남자한테 기대어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어색한 정적이 한참 흐를 때.

“홍여림.”

그 정적을 깬 것은 윤호였다.

자신도 속으로  흠칫 놀랐다. 하지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 자꾸만 머리를 거치지 않은 행동들이 나와 버린다.

이성이 또 한 번 본능에 져 버린 순간이었다.

그 목소리에 여림은 현재의 눈치를 살폈다. 

“아….”

그리고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오빠….”

건조한 듯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오빠가 왜 여기 있어?”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는 듯 눈동자는 풀려 있지만, 윤호의 등장이 확실히 정신을 깨운 모양이었다.

윤호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공백이 길어질 때.

“아.”

그때까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현재가 작게 탄식을 뱉었다.

“여림 님 친오빠시구나.”

친오빠?

현재의 말에 여림이 당황한 듯 다급히 입을 열었다.

“네? 아, 그게….”

여림은 황급히 현재에게 변명을 하려 했다.

이 사람은 친오빠가 아니라……

“네. 맞습니다.”

하지만 여림이 제대로 말을 하기도 전에 윤호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너무도 태연히 대답하는 윤호에 되려 당황한 건 여림이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윤호를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지만 윤호에겐 전달되지 않은 듯 했다.

윤호는 여림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현재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여림 님 회사 동료 남현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현재는 허벅지에 손을 닦기까지 하며 자신을 소개하고는 윤호에게 악수를 건넸다.

“오늘 첫 PM 맡은 일을 축하한다고 같이 저녁 먹다가 술을 좀 해서 제가 데려다드리는 길이었습니다.”

아니, 현재 님 굳이 설명 안 해도 돼요!

여림이 있는 힘껏 속으로 외쳤지만, 전혀 닿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윤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재의 손을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웃었다. 아주 불편한 마음을 숨긴 채.

“그럼 오빠 분도 오셨으니까 저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네?”

“여림 님, 내일 봬요.”

“아,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여림은 얼떨결에 손을 들어 흔들며 배웅했다. 

현재의 차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만 남은 조용한 빌라 앞. 어두운 골목 속 가로등 밑에 서 있는 두 사람. 마치 둘이 대화를 하라고 만든 무대 마냥 주변은 고요했다.

“……”

여림은 가만히 윤호를 올려다보았다. 살짝 초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균형은 잡을 수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해.”

술기운에 자꾸만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넌 뭐라고 하려 했는데?”

“나는….”

생각해보니까 뭐라고 해야 했지?

아는 사람? 아는 오빠? 뭐, 첫사… 이건 아니지.

잠시 수많은 호칭이 스쳐갔지만 딱히 현재에게 윤호를 소개할 만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고개를 세게 저은 여림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오빠는 여기 왜 왔는데? 아까 분명 식당에 있었잖아.”

식당에서 봤던 사람이 자신보다 빠르게 자신의 집 앞에 와 있다. 이상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 왜 왔긴.”

윤호는 그런 여림에게 태연하게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저도 모르게 힘을 줘 구겨진 부분을 잡은 채.

“이거 주려고.”

얼떨결에 쇼핑백을 받아 든 여림은 바로 그 안을 확인했다. 자신이 며칠 전 빌려줬던 옷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내일 주면 된다고 했잖아.”

“그래도 남의 옷인데 빨리 주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어색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색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서둘러 온 이유를 여림에게 곧이 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

윤호의 말을 가만 듣던 여림은.

“알겠어. 그럼 우리 이제 볼 일 없는 거지?”

윤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윤호가 본 여림의 눈빛은 왠지 단단하고, 서늘하고,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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