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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심계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8 13:27:05

“네가 낳았냐?”

심우주였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비꼬았지만, 딱히 최지호를 말리지는 않았다.

심우주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최지호는 직접 떠 먹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빈정거리는 그를 의식한 탓인지 죽을 충분히 식히고 나서 숟가락을 도복희에게 쥐여 주었다.

“천천히 먹어.”

“고맙습니다.”

도복희의 목소리는 듣기 민망할 정도로 쉬고 갈라져 있었다. 쓸데없이 지극정성인 최지호를 놀리고 싶어 일부러 때 맞춰 찾아왔던 심우주는 그걸 듣고 준비했던 조롱을 다 까먹었다.

심우주는 그녀가 깨작거리는 걸 가만 보고 있다 한 마디 던졌다.

“복희야, 팍팍 좀 먹어라. 그래야 얼른 낫지.”

알려준 적 없는 제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도복희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얼굴에는 작은 두려움도 떠 있었다. 기민하게 그 감정을 읽어낸 최지호가 허둥지둥 대신 변명했다.

“아, 혹시 보호자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해서 가방을 열어봤어. 가방에 신분증이 있더라고. 멋대로 열어서 미안….”

최지호는 제가 하지도 않은 짓을 대신 사과했다. 그러자 심우주가 코웃음을 쳤다.

“뭘 미안이야. 그럼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가 정신 놓고 남의 집에 누워 있는데, 신분 확인도 안 하냐?”

도복희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힘없는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심우주는 그녀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올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는 당황하며 입술만 달싹거리더니 결국 무슨 말도 더 하지 않은 채 나가 버렸다.

최지호는 안쓰러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우리 형 차에 치인 건데…, 바로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는데, 우리가 미안.”

최지호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병원 안 가도 돼요. 고맙습니다.”

간단한 문장의 나열이었지만, 최지호는 그녀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아니라는 건지, 본인의 몸상태가 어떤지나 알고 병원에 안 가도 된다고 하는 건지, 피해자는 당신인데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가 있을 테니까 편하게 먹어.”

최지호는 그저 그녀를 배려해서 자리를 비켜줄 뿐이었다.

최지호가 1층으로 내려갔을 때는 삭막할 정도로 조용하던 이 집에 작은 소란이 벌어져 있었다. 회의라도 하듯 식탁에 둘러앉은 형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최지호는 혹시 탁유환의 입에서 다시 땅에 묻는다는 둥의 험악한 이야기가 나올까봐 긴장한 채 그저 부엌 입구에 서 있기만 했다. 

커다란 놈이 멀뚱히 서 있는 것을 보고 강은택이 인상을 찌푸렸다.

“앉아라. 정신 사납다.”

강은택의 말에 최지호는 조용히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네 남자가 둘러 앉은 식탁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고요함을 깬 건 의외로 눈치 보던 최지호였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

“은택이가 주워 온 애기 이야기.”

탁유환의 입에서 나온 ‘애기’라는 단어에 최지호는 잠시 눈을 꿈뻑거렸다. 하지만 빠르게 수긍했다. 큰형인 탁유환의 눈에는 그녀가 턱없이 어린 ‘애기’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난 밤에 그녀의 신분증을 주워 들고 나갔던 강은택이 그 플라스틱 쪼가리를 탁― 소리나게 식탁에 내려놓았다. 모두의 시선이 잠시 ‘도복희’ 이름이 쓰인 신분증에 꽂혔다가 이내 흩어졌다.

“그래서, 뭐 하는 애래? 데리고 놀아도 되나?”

심우주의 목소리는 조금 들떠 있었다.

강은택은 흥신소나 마찬가지인 심부름센터를 하나 굴리고 있었다. 그에게 촌뜨기 여자애의 신원 조회를 하는 일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아내서 정보를 줄줄 읊어야 할 강은택의 입이 굳게 다물려 있었다.

“뭐 하는 애냐니까?”

심우주의 재촉에 강은택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어.”

그 말에 심우주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아무것도 없다니?”

놀라서 되물은 사람은 최지호였다.

“신용카드는커녕 그 흔한 체크카드도 하나 없어. 은행 계좌가 하나 있긴 한데, 그것도 거래 내역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최근 몇 년동안 병원도 한 번 안 갔어.”

“가족은?”

“없어. 혼자야.”

강은택의 말에 세 남자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귀찮아지겠군.”

탁유환은 인상을 찌푸렸다.

“복희야, 복희야…. 너 뭐 하는 기지배냐….”

그녀에겐 들리지 않을 질문을 혼잣말처럼 내뱉는 심우주의 얼굴에는 연민보다 흥미가 더 짙게 서려 있었다. 

최지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르긴 몰라도 순탄한 삶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하고서 안타까워했다. 그런 최지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강은택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툭 던졌다.

“ 최지호, 오버하지 마라.”

그때였다.

삐걱― 

윗층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식탁에 앉은 남자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남자들이 모두 모인 타이밍에 기척을 낼 사람은 객식구 한 명뿐이었다. 가장 먼저 최지호가 부엌을 뛰쳐나갔다.

널널한 하얀색 티셔츠 한 장만 걸친 도복희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아래로 내려오려던 참인지, 불안한 얼굴로 계단 난간을 붙잡고 서 있었다. 티셔츠 아래에 허옇게 드러난 다리를 보고 최지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최지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 심우주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다가온 그는, 최지호의 시선과 같은 방향을 보고서 눈썹을 씰룩거렸다. 조소만 떠 있던 입가는 길게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돌봐준 감사를 표하면, 우리가 되려 땡큐인데.”

빌려 입으려던 바지가 너무 커서 도저히 걸칠 수조차 없었던 도복희의 사정이 한순간에 천박한 서비스로 변모했다.

“지랄한다.”

강은택이 제법 거칠게 그의 어깨를 밀쳤다. 그러자 심우주는 으쓱거리며 옆으로 딱 한 발 비켜 섰다.

심우주의 과한 농담을 알아들어 버린 도복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수치심에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 모습을 본 최지호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최지호는 거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담요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반신을 가려 줄 작정으로, 담요를 펼쳐 들며 계단으로 향했다.

그때, 부엌에서 느긋하게 나온 탁유환이 단호하게 그의 팔을 붙잡으며 저지했다.

“버릇 나빠지게.”

“형.”

“거기. 아가.”

‘아가’가 자신을 부르는 말이란 걸 어렴풋이 알아챈 도복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탁유환은 그녀가 동요하고 있단 걸 눈치채고 조금 흥미롭다는듯 옅게 웃었다.

“혼자 내려올 수 있지.”

“…….”

“혹시 구르면 병원에는 데려다 주지. 머리가 깨진 애기를 내버려 둘 정도로 각박한 사람들은 아니니.”

탁유환은 안절부절 못하는 최지호의 손에 들린 담요를 잡아챘다. 그리고 ‘어디 가져갈 테면 가져가 보라’는 식으로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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