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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심계피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18 13:27:09

“혼자 내려올 수 있지. 혹시 구르면 병원에는 데려다 주지. 머리가 깨진 애기를 내버려 둘 정도로 각박한 사람들은 아니니.”

탁유환은 안절부절 못하는 최지호의 손에 들린 담요를 잡아챘다. 그리고 ‘어디 가져갈 테면 가져가 보라’는 식으로 들어 보였다.

도복희는 방 밖으로 나오면서 분명 제 상태를 간단히 점검했다. 티셔츠가 원피스마냥 무릎까지 늘어지니, 문제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치 않았다. 그러나 희롱하듯 훑어보는 심우주의 시선, 속내를 알 수 없는 탁유환의 조소, 불안한 표정의 최지호, 뒤늦게 나와 이마를 짚는 강은택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그녀를 수치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도복희는 이 민망한 상황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손에 들린 담요를 얼른 받아들어 제 허리에 두르는 것. 결심한 그녀는 난간을 생명줄처럼 붙잡고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발을 내디뎠다.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풀썩 꺾일 것 같은 무릎에 의식적으로 힘을 실으며 간신히 계단을 내려갔다. 마침내 마지막 한 칸, 바닥에 맨발이 닿는 순간이었다. 

도복희는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며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찌르는 두통과 함께 이명이 동반했다.

“아…….”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듯 휘청거리는 도복희를 잡아챈 것은 탁유환이었다. 시험이라도 하듯 그의 얼굴에 떠 있던 묘한 미소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단단한 손아귀가 그녀의 여린 팔뚝을 아플 정도로 세게 움켜쥐었다.

“….쯧. 비리비리해서는.”

혀를 차며 나직하게 읊조린 탁유환이 그녀를 받느라 놓쳤던 담요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도복희의 어깨에 툭 걸쳐 주었다.

“걸음마 제대로 걷기 전까지 싸돌아다니지 마라.”

“…….”

“지호. 네가 책임지고 회복시켜 놔.”

아이를 대하는 건지 환자를 대하는 건지 모호한 태도였다. 

“응.”

최지호는 그의 명령이 당연히 제가 할 일이라는 듯 빠릿하게 대답했다. 

싸돌아다니지 말라는 말에 도복희는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탁유환은 상황이 정리된 것으로 마음대로 판단한 듯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복희는 제 어깨에 걸쳐진 담요를 집어서 느릿느릿 허리에 둘렀다. 흘러내리지 않게 끝자락을 쥐고 매듭을 묶는 손길은 너무도 맥아리가 없어서, 보던 심우주가 속 터지는 소리를 냈다.

“하…. 뭐 하냐?”

심우주가 다가와 길고 다부진 손으로 단단히 마무리를 해주었다. 드러난 다리를 희롱하던 사람 같지 않은 태도였다.

탁유환은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것처럼 지체하지 않았다. 그녀의 팔을 다시 잡아 끌어서는 식탁 앞에 앉혔다. 도복희는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겨우 걸쳐 앉았다.

“아가, 똑바로 앉아야지.”

까딱. 탁유환의 턱끝이 불안정하게 앉은 도복희를 가리켰다. 어른이 아이를 훈계하는 것만 같은 태도였다. 

도복희는 꾸물꾸물 엉덩이를 당겨 식탁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그러자 탁유환은 만족스럽다는 듯 옅게 웃었다.

“밥은 먹었나.”

“네….”

식탁에는 잠시 기묘하게 평화로운 정적이 흘렀다. 

“저…, 죄송해요….”

머뭇거리던 도복희의 입에서 개미 기어가는 듯 작은 사죄의 말이 흘러나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의외로 그 내용은 명확하게 남자들의 귓가에 닿았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한, 그러나 딱 떨어지게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으로 하는 사과.

“뭐가 죄송하냐?”

심우주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엔 조금 짜증이 서려 있었다.

“너 어디 모자라냐? 쓰러져 있는 걸 우리가 오지랖 발휘해서 주워와서 돌봐준 게 아니라, 네가 이 새끼 차에 치였다니까?”

심우주가 갑자기 자신을 끌어들이자 강은택은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앓아 눕게 된 건, 장시간 굶어 영양 부족에 내리는 비까지 맞아 체온이 떨어진 탓이 클 테다. 그렇다고 해서 강은택의 차에 치인 것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영 틀린 말도 아닌지라 할 말이 없었다.

강은택은 짧게라도 사과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것도 뱉지 못하고 제 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넘기며 자리를 떠버렸다.

탁―

타이밍 좋게 도복희의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와 해열제가 놓였다. 옅은 노란 빛을 띄는 컵에서는 달콤한 향이 났다. 꿀물인 듯했다.

숙취에 시달리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제게 꿀물을 주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도복희는 적어도 그것이 최지호의 선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도복희는 머그컵의 손잡이를 쥐고 온기를 느끼며, 유난히 뜨거운 것을 못 먹는 제 혀가 적응할 정도로 온도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독이라도 탔을까 보냐.”

탁유환이었다.

도복희는 자신의 행동이 선의를 수상케 여기거나 혹은 거절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더이상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해명을 할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들고 있던 컵을 얼른 입가로 가져다 댔다. 그 바람에 혀가 데이는 감각을 느끼며 알싸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은 탁유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편식하는 것 같은 그녀의 태도도, ‘나 억지로 마시고 있어요’하는 것만 같은 찡그린 표정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다 못한 심우주가 부드럽게 그녀의 손에서 머그컵을 빼앗아 들었다. 그가 보기에도 도복희가 남의 눈치를 보느라 원치 않는 것을 꾸역꾸역 마시고 있는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뭔…, 고문받아? 억지로 먹으면 탈 나.”

“형, 걔 뜨거운 걸 잘 못 먹어서 그래. 식혀서 먹게 그냥 좀…, 냅둬.”

차마 탁유환에게 반기를 들지는 못하고 동동거리기만 하던 최지호에게는 심우주가 구원투수 같았다. 도복희를 잘 아는 것처럼 얼른 설명을 갖다 붙인 최지호가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탁유환은 그녀를 감시하던 것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떨떠름한 기색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더는 혀를 차거나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대로 부엌을 빠져나가려던 그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약을 착하게 잘 먹으면 저녁에는 맛있는 걸 사주마.”

도복희는 이 남자가 자신을 몇 살로 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따로 묻진 않았다.

“먹고 싶은 것 있나? 적당히…, 네 몸 상태에도 먹을 수 있는 걸 얘기해야 할 거야.”

그 말은 터무니없는 메뉴를 말해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았다.

먹고 싶은 것. 도복희는 그 다섯 글자를 듣는 순간, 머릿 속이 어떤 음식 하나로 가득 차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홀린 듯이 말했다.

“선지국…….”

머릿속을 지배하던 뜨겁고 진한 국물에 대한 갈망이 여과없이 툭 튀어나왔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안에 침이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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