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씨발, 이거 뭐냐….”
집요하게 매달리던 강은택이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 짧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흐트렸다.
도복희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었으나 출신 학교는 중학교가 마지막이었다. 중졸 이후 검정고시 응시. 고등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1학년도 안 마치고 관뒀다. 주목할 만한 건, 그녀가 학교를 관둔 그 시점에 가족이 전원 사망했다는 것. 가족이 없다는 건 처음 그녀의 신분증을 습득하자마자 떼어 본 서류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뭔가 찜찜했다.
도복희의 출신지는 작은 촌동네라 큰 사건이랄 게 잘 없었다. 그 때문에 실마리를 찾아 당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은택은 지역 신문에서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금품을 노리고 들어왔던 강도와 대치 끝에 엄마와 아들이 사망했다는 내용. 딸이 혼자 살아남았다는 기사. 날짜를 대조할 것도 없었다. 도복희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단순 강도 사건이라기에는 현장이 너무 잔인하더란다. 그 때문에 원한이라고 떠드는 놈들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로 도복희는 세상에 혼자 남았다. 열일곱 살부터 읍내 편의점이나 빵집 아르바이트 따위로 생활비를 벌며 제 나름 치열하게 살아온 모양이었다. 그녀의 주소지는 어느 낡은 다세대 주택으로, 알아보니 실거주하지 않은 지도 오래라고 했다. 활자상의 도복희는 가족을 모두 잃은 그날로부터 시간이 멈춘 사람 같았다.
강은택은 입안이 껄끄러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담배를 물었다. 뿌연 연기로 밀어내지 않으면 이 답답한 속이 도저히 뚫릴 것 같지가 않았다.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오갈 곳이 없었던 열다섯의 자신. 친척이라 부를 어른들은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강은택을 떠맡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버려지듯 어느 산골 기숙학교에 처박혔던 십대 시절.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닮았다―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강은택은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비웃었다. 이십대에 뒷골목을 전전하면서 깡패 짓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고작 된 것이 흥신소 소장인, 자신과 악착같이 양지에서 버틴 여자애가 닮았다니.
강은택은 그녀의 뒷조사를 마치고 궁금증이 해결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줄 알았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서, 치료비 겸 합의금 명목으로 두둑하게 돈을 쥐여 주고서 도복희를 내보내려고 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니까. 네가 나타나서 집이 너무 시끄러워졌으니까. 지루할 정도로 평화롭던 우리 집에서 이만 사라져 달라고. 그러나 실행에 옮길 때가 가까워지니, 체한 것처럼 속이 불편하고 답답해졌다.
강은택은 재떨이에다 짜증스럽게 담배를 지져 껐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직한 목소리. 탁유환이다. 전화기 너머로는 작게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그가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강은택은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형, 어딘데.”
「어디긴. 집이다. 너야말로 어디냐.」
탁유환의 대답에, 강은택은 그제서야 그의 주변에 들리는 소음이 거실 TV 소리란 것을 알아차렸다. 가만 있는 최지호에게 괜히 ‘깨우지 마라’ 으름장까지 놓고 나온터라 그 사실이 썩 달갑지 않았다.
“애는?”
「옆에서 텔레비전 본다.」
“좀 자게 두지.”
강은택의 목소리엔 약간의 책망이 담겨 있었다.
「안 깨웠어. 애기가 알아서 일어났다.」
강은택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용건은.」
탁유환이 간결하게 물었다.
강은택의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본래 집 주인이자 큰형 노릇을 하는 탁유환에게 상의를 가장한 통보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급한 일은 아니니까 가서 얘기하자.”
강은택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 당사자가 옆에서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어쩐지 말을 꺼내기가 조금 껄끄러워졌다.
「싱겁기는.」
인삿말 없이 전화가 끊겼다.
“…….”
해결된 것이 없으니 속은 여전히 답답했다.
강은택은 모니터에 낯선 중학교의 단체 사진을 띄워 놓고서 가만히 응시했다. 교복의 색깔은 칙칙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어린 얼굴들만은 밝고 싱그러웠다. 그 사이에 앳된 얼굴의 도복희가 있었다. 비극을 겪지 않은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강은택은 그 사진을 한참이나 본 끝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집에서는―
열어놓은 베란다 창으로 비가 갠 뒤의 흙 냄새, 풀 냄새가 들어와 거실을 채웠다. 잔잔한 바람이 들어와 잠이 든 이의 머리칼을 살랑 흔들었다. 나른한 오후의 전형 같았다.
탁유환은 TV 뉴스나 좀 볼까 싶어 거실로 나왔다. 그는 소파에서 몸을 말고 자고 있는 도복희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10년째 이 집에서 살고 있는 탁유환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낯선 장면이 꼭 완성된 그림처럼 평온해 보였다.
탁유환은 조용히 소파 쪽으로 갔다. 그녀가 잠이 깰까 노심초사 발소리를 죽여 걷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평소처럼 배려없이 쿵쿵거리며 걷지도 않았다.
탁유환은 그녀의 발치, 소파 가운데에 앉았다. 육중한 몸이 소파 쿠션을 짓누르자, 옆에 누운 도복희의 몸도 조금 기우뚱 쏠렸다. 그는 남의 집에서 속 편하게 자고 있는 이질적인 존재를 잠시 관찰했다. 동그란 이마는 백자 도자기 같았고, 미열이 있는 뺨은 복숭아 같았다. 혈색을 되찾아 붉고 도톰한 입술 아래에는 작은 점이 찍혀 있었다.
탁유환은 조금 인상을 쓰며 시선을 돌렸다. 간질거리는 낯선 기분이 썩 유쾌하지가 않아서였다.
“으음….”
잠시 후, 잠투정을 하듯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복희가 천천히 눈을 떴다.
“깼나.”
탁유환은 어느새 채널을 돌려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TV화면에 고정한 채 나직하게 물었다.
도복희는 ‘아저씨 때문에 깼어요’라는 말은 삼켰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탁유환은 그제서야 TV 볼륨을 조금 높였다.
“학교는.”
탁유환은 난데없이 물었다.
“중학교까지 다니고, 고등학교는 검정고시요.”
“흠….”
탁유환은 도복희의 대답에 제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짐짓 생각에 잠긴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럼 어디 크게 모자라진 않다는 건데.”
탁유환이 옅게 웃으면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도복희는 그가 노골적으로 비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이 마주친 후 확인한 그의 얼굴에는 그저 느긋한 미소가 떠 있을 뿐이었다.
“아가, 시커먼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 그렇게 무방비하게 자면 안 되지.”
탁유환의 말에, 도복희는 조금 당황하며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다 개새끼다, 아가.”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
심우주의 외모를 표현하자면, 여자들은 보통 그를 ‘아, 그 키 크고 잘생긴 사람?’으로 기억했고, 남자들 중엔 가끔 ‘제비’라든지 ‘호스트바 선수’와 같은 단어로 공연히 비아냥거리는 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심우주가 객관적으로 잘생긴 편에 속한다는 걸 뜻하는 방증이었다.쌍꺼풀 없는 눈매가 날렵했다. 자칫하면 날카롭고 차가워 보일 수도 있는 생김새였다. 그러나 남성 평균보다 약간 밝은 피부톤에 짙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심우주는 늘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여 그 분위기를 상당히 중화시킨 편이었다. 느긋하게 웃음을 머금은 입에서는 중간톤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장난스러운 말들이 흘러나왔으니,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완성된 심우주의 외적인 모습과 분위기는 가벼워 보인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그것조차 의도한 것이었다.심우주는 심각하거나 진지한 분위기를 못 견뎌했다. 꽤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에서 심우주가 당연히 그런 가벼운 사람이기를 기대했기에 그렇게 자라났는지도 모른다.엄마는 젊은 시절에 나름 인지도 있는 배우였다고 했다. 파파라치가 따라붙을 정도는 아닌 듯했고, 오전 늦게 주부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에 왕왕 출연하여 식당에 가면 사인 한 장을 부탁 받는 일이 많았다. 그마저도 심우주가 초등 저학년이 됐을 무렵엔 이른 저녁에 방영하는 작품에도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알아보는 이가 많아지는 바람에 함께 외식을 하는 일이 사라진 까닭에 그녀의 전성기엔 얼마나 위세를 떨 수 있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미혼의 여배우와 재벌가 사내에서 난 아이는 혹이나 다름없었다. 없느니만 못한 존재였으니 없는 것처럼 숨어서 살아야 했다. 대신 용돈이 부족해서 편의점 라면 코너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는 또래와는 다르게 심우주의 지갑은 늘 두터웠다. 친구 중 누구도, 심지어 선생조차도 심우주의 부모를 본 적이 없는데, 심우주는 그 미스터리한 부모에게서 늘 이상할 정도로 용돈을 많이 받는 애였다. 그 두둑한 지갑에서 나온 여유 덕
“어딜 간다고 그래, 돈도 없는 게.”최지호는 꼭 그 말이 자신에게 한 말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가로막듯 심우주와 도복희의 사이에 비집고 섰다. 심우주도 키가 상당히 큰 편에 속했지만, 호리호리한 편인 그와 다르게 최지호는 덩치까지 훨씬 컸으므로 도복희는 마치 자신의 앞에 커다란 바위산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런 그가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줄지,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비켜.”“형, 그만해.”“내가 뭘 했다고 그만하래. 너나 그만하고 비켜, 나 복희랑 얘기 중이잖아.”어느 쪽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두 남자가 대치 중인 거실의 공기가 변했다.도복희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해졌다.남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인지 티를 내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네 명 중 누구도 ‘우리는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로 살기로 했다’ 같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서로의 일상에 자리 잡은 그들이기에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형제로 봐 주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 집에서 함께 지내며 도복희도 그걸 느꼈다.그런데 지금, 도복희의 거처 문제를 두고 남자들 사이에 충돌이 생겼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그들의 우애에 금이 가는 것만 같아 괴로워졌다. 누군가는 고작 여자 때문에 흔들릴 신의라면 애초에 대단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여우가 사람을 홀린다.’‘구미호는 사람을 홀려서 간을 빼 먹는다.’그런 말들은 세상에 너무도 널리 퍼져 있었다. 진실은 도복희 그녀도, 그녀의 엄마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연구된 적 없는 숨은 존재였고 구미호족은 이미 절멸했으니까.‘그런 말들을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는 사람을 해하는 존재가 아니야.’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러나 도복희는 육류, 특히 육회나 선지만 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게 되는 자신에게 인간의 피와 간을 탐하는
“아기 이 집에서 내보낸다.”탁유환의 발언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처럼 지내는 네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큰형 노릇을 하는 탁유환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그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변덕스러운 성정도 아니었으므로 강은택은 그가 이미 뱉은 말을 쉽게 바꾸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탁유환은 흥신소에 들이닥친 양아치들이 도복희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 와서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일은 없고 아마 급하게 숨다 다친 모양이다’라고 둘러댄다고 한들 좋은 수가 될까. 아마 그 정도로는 그의 마음을 쉽게 돌릴 수 없을 것이다.탁유환은 등을 돌려 제 뒤에 서 있던 도복희와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그 큰 몸을 접어서 마치 작은 아가씨 앞의 기사가 된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탁유환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상황이 도복희에게는 좀 낯설었지만,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아가.”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조금 전 강은택을 질책하던 그에게서 풍기던 싸늘한 기운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네.”그래도 도복희는 바짝 긴장한 채였다. “이런 곳에 있지 마라. 응?”언제나처럼 명령조였지만 어쩐지 오늘 탁유환이 뱉는 말투는 마치 어르고 달래는 것 같았다. 도복희는 그런 그의 앞에서 차마 거절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네…. 그런데 저 정말로 어디 맞거나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정말루요.”도복희는 강은택 대신 해명이라도 하듯 늘어놓았다. 강은택에게는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지는 그녀의 말이 꼭 ‘저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까 여기 조금 더 머물면 안 될까요?’하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처럼 들렸다.“다행이군.”탁유환은 커다란 손으로 도복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는 눈치 없는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리한 편에 속했다. 단순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강은택마저 읽었을 그녀의 속내를 탁유환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내 회사 근처에 빈 오피스텔이 있어. 혼자 지내기엔 괜
흥신소 사무실에서의 사건을 가장 늦게 알게 된 사람은 탁유환이었다. 그 주 토요일까지도 바빠서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던 그도 일요일에는 주말 낮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던 중이었다.거실의 커다란 1인용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던 탁유환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작은 몸이 기다란 소파에 엎드려서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도복희는 두꺼운 판타지 소설책을 읽으며 다리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녀가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탁유환이 일부러 사 온 책인데, 도복희는 그것이 탁유환이 이미 소장하고 있던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었다.“…큭.”탁유환은 허공에서 덜렁거리는 발목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짐승이 귀를 쫑긋 세우듯 도복희가 그 웃음소리에 홱 그를 돌아봤다.“저 보고 웃은 거죠?”“아니다.”“거짓말.”“그래, 거짓말이다.”도복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왜요. 제가 책 읽는 모습이 웃겨요?”“네가 웃긴 게 아니라 이 집에 나 말고 글자 읽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어색해서 웃었어.”탁유환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이 집에 있는 다른 놈들은 머리통이 밥통이거든.”“…푸핫.”신랄한 뒷담화에 도복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헙’ 하고 갑자기 숨을 들이키며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그 말 듣고 제가 웃었다고 소문 내면 안 돼요.”괜한 걱정이었다. 스스로 입단속을 하느라 잠시 손에서 놓은 책이 파라락― 소리를 내며 접혔다. 읽던 구간을 놓친 도복희가 작게 ‘으앗’ 소리치며 허둥지둥 다시 책을 펼쳤다. 그때 엎드려 있는 도복희의 바지 밑단이 조금 걷히며 그녀의 하얀 다리에 남은 멍 자국이 드러났다. 푸르뎅뎅하던 것은 이제 노르스름한 빛을 띠며 옅어져 가는 중이었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충격의 흔적이라는 것은 분명했다.“다리는 어쩌다 그랬나.”탁유환의 얼굴에 떠 있던 미소가 희미해졌다.“아, 이거.”흥신소 사무실의 창고에 숨으면서 어딘가 부딪힌 것이었다. 그 순간에는 몰랐으나
“저도 평범하게 착한 사람 아니에요.”도복희의 대답을 듣고 최지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떠오른 그대로 물었다.“네가 착한 사람이 아니면 뭔데?”적어도 최지호가 보기엔 그랬다. 도복희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물 정도로 바보 같이 착하고 순해 빠졌다. 그래서 궁금했다. 대체 그녀는 왜 스스로를 그렇게 낮춰서 표현하는지. 그저 겸손을 떠는 것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그냥, 숨기는 게 좀 많은 사람이요.”도복희는 사실 숨기는 것보단 속이고 있는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으나 굳이 그대로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이 집에 비밀 없는 사람 없어.”고작 숨기는 게 많다는 이유만으로 네가 이 집에 머물 자격이 없는 건 아니야. 최지호의 말은 도복희에게 그렇게 들렸다.“저 그럼 조금만 더 여기 있어도 돼요?”“나가라고 한 말 아닌데….”도복희와 시선이 마주치자 최지호가 귓바퀴를 조금 붉혔다. 어쩐지 그녀가 조금 더 머물러 주길 바라는 제 마음이 들킨 것만 같아서였다.“그럼 염치 없지만, 조금만 더 잘 부탁드릴게요.”도복희는 구김살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웃었다.“아!”용건이 끝났으니 그 자리를 벗어나려던 최지호가 그녀의 ‘아’하는 탄성에 옮기던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도복희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거처 알아보는 거 도와주신다고 한 거요.”최지호는 그녀가 갑자기 말을 바꿔 나가겠다고 할까봐 잠시 긴장했다. 저도 모르게 추리닝바지를 잠깐 쥐었다가 놓았다.“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오빠.”뿌듯해야 할 감사 인사를 듣고 그는 어쩐지 김이 빠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최지호는 ‘고마워요’란 말 뒤에 따라붙은 호칭을 한 박자 늦게 인지하고는 몸이 굳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목에서 기름칠하지 않은 로보트처럼 삐꺽대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방금 뭐라고 불렀어?”“네? 오빠요....”도복희는 자신이 무슨 말 실수라도 했나 싶어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아저씨라고 부르기에는 나이 차이가 얼마 안
“아직 해가 중천인데?”심우주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도복희가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큰 키 덕분에 어느 문이든 드나들 때마다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게 습관이 되어 버린 최지호였다. 턱을 들자마자 도복희와 눈이 마주치니 조금 당황하는 듯 보였다.“일요일인데, 어디 다녀오세요?”도복희의 시선이 그의 비어 있는 손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눈을 마주쳤다.“마트 다녀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아, 응…. 잠깐 배달.”“배달요?”도복희는 전혀 감이 안 잡힌다는 듯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최지호는 어쩐지 부끄러워하며 손을 제 등 뒤로 숨겼다. 배달을 다녀왔다는 그의 손에는 거무스름하게 약간의 흙이 묻어 있었다. 그의 입장에선 썩 보여 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나무 배달.”최지호는 마지못해 꺼내 놓는 사람처럼 짧게 대답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듣고서 흥미로워하는 여자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가 자기보다 훨씬 어린, 도복희의 또래와 이야기를 나눌 일 자체가 딱히 없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는 그 동그란 눈에 깃든 호기심 어린 빛이 금방 사그라들 거라고 여겼다.“우와. 그냥 꽃집 한다고만 들었는데!”도복희는 손뼉을 짝― 치더니, 신이 난 것처럼 생글생글 웃었다.“꽃집 운영하는 거 맞는데, 외곽 쪽에 온실 하우스도 있어.”“대박, 대박. 저 언제 한 번 구경 가면 안 돼요?”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최지호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구경?”“네!”최지호의 눈이 느리게 꿈뻑거렸다. 그녀를 바라보며 예의상 하는 말인지 가늠해 보고 있었다. 그러나 도복희의 표정에 뜬 신호는 분명한 흥미였다.“…그래. 그럼 너 쉬는 날 한번 같이 가자.”“쉬는 날요?”도복희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가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최지호는 아직 그녀가 강은택의 사무실 아르바이트에 나가지 않게 된 사연을 모르고 있었다.“아아. 저 다시 백수예요.”“아…, 그래?” 최지호는 심우주와 다르게 덜컥 ‘왜’를 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