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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심계피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18 13:27:25

강은택이 자리를 뜬 뒤, 부엌에는 도복희와 최지호만 남겨졌다.

도복희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으니, 제가 사용한 그릇 정도는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가만히 보고만 있던 최지호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넌 쉬어. 내가 할게.”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아, 아니야. 괜히 움직였다가 다시 아프면 내가 혼나.”

최지호는 도복희를 식탁에 다시 앉히려고 손을 뻗었다가 닿기도 전에 금방 손을 거두었다. 커다란 자신에 비해 그녀의 몸은 너무 작고 약하게 느껴져서, 아무렇게나 쥐었다간 부서질 것만 같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도복희는 제 앞에서 허둥대는 이 남자가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그래서 그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는 얌전히 국그릇을 싱크대 볼 안에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최지호는 곧바로 고무장갑을 꼈다. 울룩불룩 근육이 잡힌 까무잡잡한 팔에 덧씌운 진분홍 고무장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최지호는 제 할 일을 찾은 듯 익숙하고 편안해 보였다.

“거실에서 티브이 봐도 돼.”

최지호가 잠시 돌아보고서 말했다. 혼나지 않으려고 남의 일을 떠맡은 사람의 얼굴 같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오히려 대신 해 줄 수 있어 기쁘다고 쓰여 있는 것만 같았다. 도복희는 ‘TV를 보는 일’이 꼭 미션처럼 느껴졌다. 

널찍한 거실 대부분을 시커먼 가죽 소파가 차지하고 있었다. 간밤에 누워 있었던 게스트룸의 침대보다도 큰 것 같았다. 도복희는 화면이 잘 보이는 가운데가 아닌 오른쪽 팔걸이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런 다음에 리모컨을 꾹꾹 눌러 영화 채널을 찾고, 들릴듯 말듯 작게 소리를 낮춘 뒤, 의무적으로 화면을 보기 시작했다.

스토리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영화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지루했다. 뜨끈한 선지국으로 채워진 속은 나른한 포만감을 주었고, 허리에 두른 담요는 포근하게 몸을 감쌌다. 반듯하게 앉아있던 몸은 스르륵 기울어져 어느새 팔걸이에 머리를 기댄 채 웅크리고 누운 모습이 되었다.

강은택이 외출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왔다. 강은택은 소파에서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옅게 미소가 떠 있었다.

“애 깨우지 마라. 시끄러워지니까.”

강은택은 묵묵히 싱크대를 정리 중인 최지호에게 괜히 경고를 하고선 집을 나섰다.

차고로 통하는 뒷문이 아닌, 커다란 현관문을 통해 나온 강은택이 성큼성큼 돌길을 밟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널찍한 마당은 누구도 돌보지 않아 아무렇게나 잡초가 자라 있었다. 볼 것도 없는 풀밭이 전부인 공간은 쓸데없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끽— 

철제 대문을 밀어젖히자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식구 중 유일하게 이 대문을 사용하는 강은택은 소음을 들을 때마다 ‘기름칠 좀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 벌써 두 달째 끼익― 거리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붉은 벽돌 담장 아래에는 도복희가 부딪친, 강은택의 SUV가 서 있었다. 그와 꼭 어울리는 커다란 차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흠집 하나 없는 채로 짙은 회색빛을 뽐내고 있었다. 강은택은 말없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묵직한 배기음과 함께 출발한 차가 한적한 주택가를 빠져나갔다. 

차는 20여분을 달려 구도심지의 깊은 곳에 닿았다. 과거 해원시에서 가장 번화했던 동네. 아무렇게나 이어 붙인 듯 구불구불한 길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규격도 규칙도 없는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지저분하고 시끄럽지만, 낮이나 밤이나 복작거리는 곳이었다.

강은택은 철물점이 유난히 많은 어느 골목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어느 3층짜리 낡은 건물 앞에 멈추었다.

거대한 차체가 ‘가스콘 용역’이라는 작은 사무소의 입구를 가렸으나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용역 사무소에서 일거리를 딸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모두 다녀갔을 테니, 이 시간대에 출입하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사실 그런 상식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별 상관 없었다. 주차 개떡 같이 한 본인이 건물주였으니.

강은택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흙먼지가 풀풀 나는 시멘트 계단을 밟고 2층으로 향했다. 출입문 옆에 ‘가스콘 심부름센터’라는 작은 나무 팻말이 걸린 사무실이었다. 안에는 투박한 가죽 소파와 이름 모를 식물이 자라는 커다란 화분, 누리끼리하고 칙칙한 색깔의 철제 캐비닛이 놓여 있었다. 사무실에는 잡무를 처리하는 여직원이 한 명 식구로 딸려 있었지만, 대부분 1층 용역 사무소에 틀어박혀 있었다. 덕분에 2층은 강은택의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

강은택은 커다란 책상에 앉아 자연스럽게 컴퓨터 전원을 켰다. 주머니에서 작은 플라스틱 쪼가리를 꺼내 탁― 소리가 나게 내려 놓았다. 도복희의 운전면허증. 그는 부팅이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빤히 신분증에 박힌 사진을 보았다. 지금의 그녀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열아홉 살 때쯤 찍었을까. 근데 그게 중요한가. 강은택은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는 마우스를 쥐었다.

오늘은 흥신소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은택이 출근까지 감행한 이유는, 그저 도복희의 뒷조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세상에 사연 있는 인간은 너무도 많다. 당장 강은택 자신도 그랬고, 식구로 지내는 나머지 세 놈도 구질구질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연을 제각각 가지고 있었다. 돈도 빚도 없고 의무 교육만 겨우 마친 스물세 살짜리. 그리 특별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은택은 이상하게도 집도, 가족도, 금융 기록도, 병원 기록도 없는 도복희가 궁금했다. 차라리 처음 신원 조회를 했을 때, 모든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한 사람이었더라면 이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씨발, 이거 뭐냐….”

집요하게 매달리던 강은택이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 짧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흐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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