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낮에 육가 마당에 관원 둘과 서리 셋이 들어와 광 문을 열어 놓고 물목을 적기 시작했다.광 앞 멍석에 궤짝이 여섯 나와 있었고 뚜껑이 다 열려 있었다.노영감이 광 문턱에서 비켜서서 새 나무판을 옆구리에 끼고 서 있었다.서리 하나가 궤 안의 것을 하나씩 꺼내 마당에 늘어놓으면 다른 하나가 그것을 적었다.한경이 마루 끝에 서서 그 줄을 봤다.넷째 궤에 손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당으로 내려섰다."나리. 그건 맨손으로 만지지 마세요.""…이 댁 물건이 아니오?""우리 집 거 맞아요.그래서 말씀드리는 거고요.그거 종이로 집으세요.어제 여기 손 댄 분 오늘 아침에 손등 부었을 거예요.가운뎃손가락부터요."서리가 손을 궤에서 뺐다.뺀 손을 도포에 두 번 문지르고 나서 제 손등을 들여다봤다.관원 하나가 그 서리를 보다가 종이를 넘겼다.분이어멈이 마루 아래에 놋대접을 스물 남짓 내어 놓고 하나씩 엎어 놓으면서 세는데, 세다가 중간에서 한 번 걸렸다."예. 예. 스물셋입니다.아니, 스물넷이요.이 나간 걸 소인이 아까 빼 놓아서요.빼 놓은 걸 도로 넣었더니 소인이 또 헷갈리고요.""이 나간 것은 왜 뺐소.""…이 나간 것은 부인이 쓰십니다."서리가 붓을 든 채로 마루 위를 한 번 봤다가 도로 종이를 봤다.분이어멈이 회색 손톱을 앞치마 안으로 넣었다.* * *중문 안쪽에 여자가 하나 서 있었다.감색 치마에 검은 겉옷을 입고, 손에 붓과 접은 종이를 들고 있었다.소하가 부엌에서 물동이를 이고 나오다 그 앞에서 멎었다.물이 전을 넘어 어깨로 흘렀다."아기…"서란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아니, 저기요.왜 저기 서 있어요.""소인은 오늘 이 댁에 불려 왔습니다.""불려 오다니요! 여기 아기씨 집이잖아요!아니 저기, 그러니까 아기씨가 살던 집이고요, 뒤채 방도 그대로 있고요, 이불도 소인이 봄에 개켜 놓은 그대로—"소하가 물동이를 마루 아래에 내려놓다가 한쪽 전을 놓쳤다.동이가 옆으로 넘어가면서 물이 섬돌을 다 적셨고,
새벽에 별당 앞 섬돌에 신이 두 켤레 놓여 있었고, 방 안에는 보퉁이가 셋 묶여 벽 쪽에 나란히 서 있었다.등잔은 꺼져 있고 창호가 희끄무레해서 방 안의 것들이 다 잿빛으로 보였다.육설이 방 가운데 앉아 골패를 한 짝씩 무명천 위에 놓고 있었다.놓을 때마다 나무가 나무에 닿는 소리가 짧게 났다.한경이 문을 밀고 들어가 그 앞에 앉았다."작은아씨. 이거 가져가시게요?""…아니요."육설이 마지막 짝을 내려놓고 무명천 네 귀를 모아 쥐었다가 도로 폈다."언니 가지세요.""나 이거 할 줄 몰라요.""할 줄 몰라도 가지세요.이거 스물아홉 짝이에요.서른둘이라야 한 벌인데 셋이 없어요.하나는 재작년에 잃어버렸고 둘은 작년에 잃어버렸고요.짝이 하나 없어서 값이 안 나가요.그러니까 아무도 안 가져가요."* * *육설이 무릎을 세워 앉았다.세우는 동안 적삼 소매가 팔뚝까지 흘러내렸는데, 반지 자국이 손가락 셋에 아직 희게 남아 있었다."언니. 나 하나 말하고 갈게요.""…""그 말요. 저잣거리에서 도는 말.그거 박씨 형님이 먼저 했어요. 여기서요.이 방에서 골패 하다가요.""…""형님이 나쁜 뜻으로 한 거 아니에요.그 형님은 원래 아무 말이나 하고 나서 제가 놀라잖아요.그날도 말해 놓고 제 입을 손으로 막았어요.근데 그 자리에 여섯이 앉아 있었고, 여섯이 다 저녁에 제 집으로 돌아갔어요."한경이 무명천 위의 골패를 손끝으로 한 짝 밀었다."작은아씨는 그때 뭐 하셨어요.""아무것도 안 했어요."육설이 고개를 들었다."내가 그때 아니라고 안 했어요.그 말 하려고 언니 기다렸어요. 어제부터요."* * *마당에서 오어멈이 함지를 들고 나오다 툇마루 끝에 놓았다.놓고 나서 허리를 두 번에 폈다.대부인이 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다.무릎에 염주가 놓여 있었고 손은 그 위에 얹혀만 있었다.육설이 마루 아래에 서서 절을 했다."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먹어라.""…예.""먹고 가."오어멈이 함지에서 종지를 꺼내
심가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문간에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마당 가운데 멍석이 두 닢 펴져 보리가 널려 있었는데, 널어 놓고 아무도 안 보아서 참새가 내려앉았다 날아갔다 했다.사당 문은 닫혀 있었다.닫힌 문 앞 섬돌에 신이 여덟 켤레 벗어져 있었고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낮게 이어졌다.한경이 문지방을 넘어서자 회랑 끝에서 늙은 종이 비를 세우고 섰다.지난번에 사당 안에서 위패를 닦던 종이었다."…아씨.""영감. 보리에 참새 앉는데요.""…예. 예.""쫓으세요. 나 왔다고 안에 알리지 마시고요."늙은 종이 비를 눕혀 놓고 멍석 쪽으로 두어 걸음 옮겼다가 그 자리에 섰다.그 사이에 참새가 다시 내려앉았다.* * *사당 문이 열리고 심경이 먼저 나왔다.소매를 내리면서 나오다가 마당 가운데 선 사람을 보고 걸음이 한 번 짧아졌다."…조카님.""아저씨. 아침에 우리 집에 사람 보내셨죠. 어, 아니다. 어제 저녁에요."심경이 섬돌을 내려와 웃었다.웃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오늘은 조카님이 저 문 안으로 못 드십니다.""알아요.""…""아, 저 신이요.저기 신이 여덟인데 우리 집 신이 하나도 없잖아요.그럼 오늘 저 안에서 하는 게 뭔지 대문에서 알죠."심경이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폈다.접힌 자리가 아직 날카로웠다."형님 함자는 윗줄에 그대로 있습니다.그 아래 조카님 함자에 오늘 아침에 줄을 그었습니다.출가하여 육가 사람이 되었으므로 이 집 일에 관계가 없다고 적었고요.""먹이 아직 안 말랐네요.""…예. 마르기 전에 조카님이 오셨습니다."* * *회랑 아래에서 종 둘이 마주 섰다.젊은 쪽이 먼저 소리를 냈다."아씨가 이 집 딸인데 어떻게 이름을 지웁니까!""네가 뭘 안다고 나서.""저기 저 어른들이 어제까지 아씨한테 절하던 어른들이잖아요! 어제까지—"늙은 쪽이 젊은 쪽의 소매를 잡아 끌었고, 끌리는 팔에 걸려 섬돌 위의 물동이가 밀려 넘어졌다.물이 마당 흙으로 번지면서 멍석 귀퉁이가 젖었고, 참새가 그
육정이 아침부터 정청 뒤 방에서 붓을 쥐고 있다가, 다 쓴 것에 먹이 마르기를 기다려 두 손으로 들고 문지방을 넘었다.늙은 관원이 앉은 채로 종이를 받아 첫 줄을 읽고 도로 접었다."이것을 어디에 넣으려는가.""보장이오. 내 이름으로 서는 것이니 내 방에서 나가는 것이 맞소.""자네 이름으로 무엇을 서겠다는 말인가.""내 집 안사람이 저잣에서 사람을 고친 일이 있고, 고친 일로 말이 도는 것을 내가 들었소.도는 말은 물을 데가 없으니 물을 데를 만들어 두려는 것이오.아직 아무 데서도 부르지 않았을 때 미리 서 두면—""보증은 사람이 사람을 서는 것인데, 저것은 사람 일이 아니라고들 하네."육정이 종이를 도로 받으려고 손을 냈다가 내렸다."…사람 일이 아니면 무슨 일이오.""글쎄. 나는 모르네.나도 도는 말을 옮겼을 뿐일세."늙은 관원이 종이를 상 아래로 밀어 놓았다."받는 방이 있으면 넣게.어제까지는 있었어."* * *육정이 종이를 들고 정청을 건너갔는데, 첫 방에서는 오늘부터 소관이 아니라 하였고, 두 번째 방은 안에서 문이 잠겨 있었으며, 세 번째 방 서리는 육정의 함자를 두 번 물었다."아이고. 나리 함자를 여기다 적으시겠습니까.""적겠네.""…소인이 여쭙는 것은, 적으시면 오늘 날짜로 남는데 그래도 적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지우려면 위에서 지워야 하고, 위에서 지운 것은 지웠다고 또 적힙니다.""적겠네."서리가 내민 붓대가 젖어 있어서 육정이 소매로 한 번 훑고 나서 쥐었다.* * *저녁에 같은 방 관원 하나가 육정을 붙들어 앉혔다.상에 잔이 둘 나왔고 술이 한 병이었다."자네 술 못 마시지.""…못 마시오.""오늘은 마시게."육정이 잔을 받아 반쯤 비우고는 소매로 입을 눌렀는데, 눌러 놓고도 한동안 손을 안 뗐다."오늘 내가 이름을 두 군데 적었소.""둘이나. 둘이나 적었는가.""…""하나는 안 받아 주던가."육정이 대답 대신 두 번째 잔을 받아 무릎 앞에 놓았다."자네 아래 서리 말일세
태의원 서쪽 방에 자리가 셋 펴져 있었고 문이 닫혀 있었다.새벽에 비가 지나간 자리라 문지방 아래가 아직 젖어 있었다.강목이 문서 상자를 두 번에 나눠 들여놓았다.먼저 문지방 안에 내려놓고, 성한 손으로 밀어 넣은 다음 제가 들어가 도로 안았다.관원이 둘 앉아 있었고 나이 든 쪽이 상 위의 종이를 손끝으로 돌려놓았다."이 물목을 자네가 고쳤는가.""소신이 고쳤습니다.""누구 말을 듣고 고쳤는가.""달걀. 마늘. 콩. 파.넷을 더했고 뺀 것은 없습니다.""묻는 것은 낱말이 아니라 사람일세.""…사람 말씀이십니까.""그렇지.""예. 예."강목이 상자 뚜껑을 열고 등록을 넘겼다.넘기는 손가락 둘이 반만 굽어서 장마다 한 번씩 걸렸다."사월 초닷새. 사월 초여드레. 오월 초하루.""…무엇인가 그게.""어전에 오른 상을 소신이 물목으로 받아 적은 날입니다.셋 다 소신의 글씨이고 셋 다 아래에 소신의 인이 있습니다.그 사이에 소신이 만난 사람은 모두 태의원 안에 있고, 그 사람들 이름도 여기 적혀 있습니다."* * *나이 든 관원이 종이를 넘기지 않고 강목의 손을 봤다."육가 부인이 자네한테 무엇을 일렀는가.""소신이 이미 아뢰었습니다마는, 물목은 태의원에서 가려 올리고 가려 올리는 자리에 소신이 앉아 있습니다.앉은 사람이 적고, 적은 사람이 인을 찍습니다.""그러니까 그 말을 오늘 세 번째 듣네.""소신이 세 번 아뢰었습니다."젊은 쪽 관원이 인주 갑을 상 가운데로 끌어 놓다가 뚜껑을 놓쳤다.뚜껑이 자리 밖으로 굴러가면서 붉은 것이 자리 전에 한 줄 묻었다."아이고. 소인이 닦겠습니다.""그냥 두게."나이 든 관원이 종이 아래쪽의 붉은 자국을 손톱으로 짚었다."이 인이 자네 것인가.""소신 것입니다.""테가 기울었네. 여기 이것도 기울었고 여기 이것도 같은 쪽으로 기울었어.손으로 눌러 찍은 것이 열 장 스무 장 다 이렇게 똑같이 기울겠는가.판을 새로 새겨 두고 찍는 자들이 그렇게 하네."* * *강
부엌 문지방에 아침 볕이 한 뼘 들어와 있었고, 오어멈이 그 자리로 도마를 끌어다 놓고 순무를 썰었다.소하가 광주리를 안고 들어오다 문지방에 걸려 비틀거렸다."어멈! 저 오늘 안 넘어졌어요!""비틀거린 건 안 치나 보지."소하가 광주리를 내려놓고 그 안에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이거 무예요? 아주머니가 무래요.""…그건 순무다.""어유. 그러니까 값이 쌌구나."오어멈이 칼을 놓고 어깨를 흔들며 웃었고, 분이어멈이 마루 끝에서 놋대접을 안은 채 따라 웃었다.소하가 순무를 도로 광주리에 넣고 문지방에 앉았다."근데 어멈. 아까 골목에서 애들이 이상한 놀이를 하던데요.술래가 손을 대면 잡힌 애가 도로 살아나요.그러면서 이러던데요."소하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아이들이 하던 대로 소리를 냈다."손만 대면 낫는대. 요술이래."오어멈의 칼이 도마에서 멎었고, 마루 끝에서 분이어멈이 안고 있던 놋대접을 내려놓는 소리가 마당을 건너왔다.* * *한경이 마루 끝에서 그 말을 들었다.아침에 뜬 반 그릇이 명치께에 그대로 있다가 속이 한 번 뒤집혔고, 한경이 기둥에 등을 붙이고 침을 삼켰다.행랑 앞에서 류가가 붓을 든 채로 걸어 나왔는데, 소맷부리에 먹이 한 줄 묻어 있었고 그것을 닦지 않은 채였다."부인.""뭐가요.""소인이 궁에서 하던 일 가운데 하나가 그것입니다.밖에서 도는 말을 적어 올리는 것입니다.소인이 지은 것이 아니고 소인이 시킨 것도 아닙니다.저잣에서 돌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스물여덟 해 동안요.""…""적어 올린 말 가운데 아이들 놀이에서 나온 것이 둘 있었습니다.둘 다 이듬해에 문서로 갔습니다."류가가 붓을 두 손으로 고쳐 쥐었다."소인은 한 번도 지어낸 적이 없습니다.지어낼 것도 없었고요.""그 붓 소맷부리에 묻었어요.먹은 마르기 전에 닦아야 지워지거든요."* * *분이어멈이 마당을 가로질러 부엌 문지방 앞에 섰다."어멈. 저 아이 오늘부터 밖에 내보내지 마세요.""…내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