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은은한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하경은 그제야 마차 안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넓은 좌석에는 두꺼운 방석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서류함과 작은 약상자가 있었다. 상단을 오가며 일을 보는 사람의 마차답게 장식보다는 실용적인 물건들이 많았다.
도겸은 약상자를 열어 깨끗한 천을 꺼냈다.
“손을 보이시오.”
하경은 경계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는 대신 천을 앞에 내려놓았다.
“피가 흐르고 있소.”
그제야 하경은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담장을 넘을 때 베인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이자 굳어 가던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하경은 천을 집어 들어 상처를 감쌌다.
도겸은 그녀가 붕대를 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마부에게 마차를 천천히 몰라고 지시했다.
바퀴가 돌길을 지날 때마다 하경의 발목이 흔들리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발목도 다친 것 같군.”
“담장에서 뛰어내리다가 접질렸습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도겸은 그녀의 발목을 잠시 살폈지만 함부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
대신 마차 한쪽에 놓인 두툼한 겉옷을 꺼내 건넸다.
짙은 남색의 비단 겉옷이었다.
하경은 선뜻 받지 못했다.
삼 년 동안 시댁에서 무언가를 받을 때마다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밥 한 끼에도 은혜를 갚으라는 말을 들었고, 겨울옷 한 벌을 받으면 죽은 남편을 위해 평생 몸을 낮추라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도겸은 그녀의 망설임을 알아챈 듯 겉옷을 좌석 위에 내려놓았다.
“빌려주는 것이오. 돌려주고 싶을 때 돌려주시오.”
하경은 그제야 옷을 집어 들었다.
어깨에 걸치자 묵직한 온기가 내려앉았다.
마른 나무와 먹, 오래된 비단 창고에서 맡았던 향이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그녀가 옷깃을 여미는 동안 도겸은 맞은편에 앉아 서류함을 정리했다.
하경은 그를 곁눈질했다.
소문으로 듣던 백도겸은 거래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데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친 여자의 손을 억지로 잡지도,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감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경은 품속의 약조를 손끝으로 확인했다.
도겸이 그 움직임을 보았다.
“내 인장이 제대로 찍혀 있는지 다시 확인하고 싶소?”
하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아직은 대행수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도겸은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그렇다면 서둘러 믿으려 하지 마시오.”
그 말에 하경은 그를 바라보았다.
도겸은 등을 기대며 덧붙였다.
“나도 아직 당신을 잘 모르니까.”
마차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퀴가 흙길을 구르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만 들렸다.
하경은 품속에서 최 객주의 편지를 꺼냈다.
등잔 가까이 가져가 다시 읽었다.
남색 비단 열두 필.
백은 스무 냥.
북문 밖 창고.
그리고 맨 아래에 적힌 짧은 문장.
*마님, 이 거래는 오늘 처음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하경의 눈길이 그곳에 멈췄다.
처음 읽을 때는 미처 보지 못한 문장이었다.
그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가 이어져 있었다.
*제가 보관 중인 장부에는 윤씨 집안의 다른 거래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 서신이 누구 손에 들어갈지 몰라 자세한 내용은 적지 못합니다.*
하경은 편지를 천천히 접었다.
남편이 죽은 뒤 시댁에서 사라진 재물은 혼수뿐이 아니었다.
정씨가 장부를 내놓으라는 말에 그토록 격렬하게 화를 낸 이유도 단순히 재산을 돌려주기 싫어서만은 아닐지 몰랐다.
마차가 갈림길에 접어들었다.
북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곳에 그녀의 혼수가 있었다.
아직 되찾지 못한 재산이었고, 시댁이 숨기려는 거래의 흔적이었다.
도겸이 맞은편에서 입을 열었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오?”
하경은 편지를 품에 넣은 뒤 그를 바라보았다.
백운상단의 주인이라면 이 서신 한 장의 가치를 금세 알아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내용을 모두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우선 안전한 곳에서 쉬고 싶습니다. 그다음에는 제 물건을 찾으러 갈 겁니다.”
도겸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윤씨 집안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도겸은 서류함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장부를 찾으러 가는 사람에게는 장부를 읽을 자리가 필요하지 않겠소.”그는 종이를 그녀 앞으로 밀었다.백운상단의 장부 열람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문서였다.하경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이걸 제게 주시는 겁니까?”“빌려주는 것이오.”도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대신 조건이 있소.”하경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녀는 종이를 내려놓았다.“무슨 조건입니까?”“당신이 찾아낸 장부를 나에게도 보여 주시오.”하경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다 종이를 집어 들었다.“원본은 제가 보관하겠습니다.”도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그건 이미 약속했소.”하경은 문서를 접었다.“그렇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도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서하경.”하경이 고개를 들었다.“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사람이군.”그녀는 그의 눈빛을 마주했다.“저는 재미를 드리려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도겸은 낮게 웃었다.“알고 있소.”그의 눈빛이 깊어졌다.“그래서 더 눈을 뗄 수가 없군.”하경은 잠시 말을 잃었다.도겸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그저 그녀가 손에 쥔 문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그날 밤, 하경은 객실로 돌아왔다.탁자 위에는 깨끗한 옷 한 벌이 놓여 있었다.짙은 남색 저고리와 치마였다.관리인이 도겸의 지시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하경은 옷을 내려다보았다.삼 년 동안 입었던 흰 상복과는 전혀 다른 색이었다.그녀는 손끝으로 비단을 만졌다.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친정어머니가 혼례 전날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네가 입고 싶은 색을 골라라. 네가 입을 옷이니 네 마음에 들어야지.”하경은 한동안 옷을 바라보았다.그러나 아직 상복을 벗지 않았다.내일 아침이 되면 직접 고를 생각이었다.누군가 마련해 준 옷을 입는 것과 스스로 입을 옷을 선택하는 것은 달랐다.그녀는 옷을 가지런히 접어 두었다.그리고 등잔 아래에 앉아 오늘 확인한 문서들을 펼쳤다.가짜 손도장이 찍힌
하경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남색 비단 열두 필은 제 친정에서 가져온 혼수입니다.”상단주는 비웃었다.“윤 도련님께서는 집안 물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대금도 지급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요?”하경은 준비해 둔 종이를 펼쳤다.비단의 수량과 품질, 친정에서 가져온 날짜가 적혀 있었다.그녀는 비단 끝에 수놓인 서씨 집안의 표식까지 설명했다.상단주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졌다.“그 표식은 저도 보았습니다.”하경은 그를 바라보았다.“그렇다면 제 물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겠군요.”상단주는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이미 돈을 지급했습니다. 거래를 취소하려면 그 돈부터 돌려받아야 합니다.”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합니다. 대금을 지급했다는 영수증을 보여 주십시오.”상단주는 품속에서 종이를 꺼냈다.하경은 그것을 받아 들었다.거래 금액과 날짜를 확인하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영수증 아래에 찍힌 도장이 눈에 들어왔다.붉은 도장.그 안에 새겨진 이름은 윤시율이 아니었다.서하경.그녀의 이름이었다.하경은 종이를 가까이 가져갔다.도장의 모양이 이상했다.그녀가 사용하던 인장은 가장자리 한쪽이 조금 깨져 있었다. 어린 시절 떨어뜨린 뒤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도장에는 깨진 흔적이 없었다.완전한 모양이었다.누군가 그녀의 이름으로 새 인장을 만들었다.하경은 숨을 삼켰다.시댁은 그녀의 손도장만 위조한 것이 아니었다.인장까지 새로 만들어 거래에 사용하고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이 도장은 제 것이 아닙니다.”상단주의 얼굴이 굳어졌다.“무슨 말씀입니까?”하경은 종이를 도겸에게 건넸다.도겸은 도장을 확인했다.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윤씨 집안이 꽤 대담한 짓을 했군.”상단주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저는 몰랐습니다! 윤 도련님께서 분명히 형수의 허락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하경은 그를 바라보았다.“그렇다면 그 말을 증언해 주십시오.”상단주는 입술을 다물었다.
탁자 위에는 은전이 담긴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너희는 며느리가 열녀문에 불을 지르는 것을 보았지?”하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마님, 저희는 불이 난 뒤에야 달려갔습니다.”정씨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럼 지금부터 본 것으로 해라.”그녀는 은전 주머니를 하인들 앞으로 밀었다.“서하경이 사내와 달아나려고 열녀문에 불을 질렀다고 증언하면 된다.”하인들의 얼굴이 굳었다.“하지만 마님, 사실과 다르지 않습니까?”정씨가 탁자를 내리쳤다.“내 집에서 삼십 년을 먹고살았으면 누구 덕에 살아왔는지 알아야지!”하인들은 고개를 숙였다.정씨는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관아에 가서 말 한마디만 하면 된다. 며느리가 남편의 명예를 더럽히고 외간 사내와 도망쳤다고.”그녀는 은전 주머니를 다시 밀었다.“그렇게만 하면 너희 자식들까지 먹고살게 해 주마.”하인들은 끝내 주머니를 거절하지 못했다.정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그녀는 서랍에서 다른 문서를 꺼냈다.서하경이 남편의 빚을 갚지 않으려고 도망쳤다는 내용의 고발장이었다.정씨는 붓을 들어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죄인을 즉시 체포하여 윤씨 집안으로 인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그녀는 붓을 내려놓았다.“열녀문을 태우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정씨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번졌다.“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윤씨 집안 며느리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해가 저물 무렵, 북문 창고를 확인하러 갔던 사람이 돌아왔다.하경은 관리인과 함께 그를 맞았다.“남색 비단 열두 필은 아직 창고에 있습니다. 다만 내일 새벽 동문상단으로 넘기기로 했습니다.”하경은 종이를 받아 펼쳤다.매도인 윤시율.매수인 동문상단.남색 비단 열두 필.거래 금액은 시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그녀는 종이를 접었다.“대금을 지급했다는 영수증도 확인했습니까?”“그것까지는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하경은 잠시 생각했다.“그렇다면 내일
“이야, 형수가 아주 좋은 곳에 들어앉았네. 형님 제사상 앞에서는 그렇게 정숙한 척하더니, 이제는 사내 집에서 밤을 보내?”하경의 얼굴이 굳어졌다.시율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어머니께서 보내셨어. 돌아와서 이것만 찍으면 열녀문 태운 일도 덮어 주신대.”하경은 종이를 받아 들었다.혼수품 일체의 처분에 동의한다는 문서였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제 재산을 모두 팔겠다는 겁니까?”시율이 어깨를 으쓱했다.“형님 빚을 갚아야지. 설마 형님이 남긴 빚을 모른 척할 생각은 아니겠지?”하경은 문서를 접었다.“그 빚은 제가 진 것이 아닙니다.”시율이 코웃음을 쳤다.“형수가 돈을 빌렸든 형님이 빌렸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집안 돈인데.”“제 혼수는 집안 돈이 아닙니다.”시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하경에게 성큼 다가왔다.“형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형수는 열녀문을 태운 죄인이야. 어머니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당장 관아에 끌려가!”하경은 물러서지 않았다.시율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려 했다.그러나 하경이 재빨리 손을 피했다.“손대지 마십시오.”시율이 비웃었다.“백 대행수 뒤에 숨으니까 이제 형수도 무서운 게 없어졌나 봐?”그가 다시 손을 뻗는 순간,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그 손을 어디에 대려는 거지?”백도겸이었다.시율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도겸은 천천히 다가왔다.그의 시선이 시율의 손에 머물렀다.“어젯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시율은 황급히 손을 내렸다.“대행수님, 집안일입니다. 형수를 데리러 왔을 뿐입니다.”도겸은 하경을 바라보았다.“돌아가겠소?”하경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도겸은 시율에게 시선을 돌렸다.“들었나?”시율의 얼굴이 붉어졌다.“대행수님,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안일에 이렇게 끼어드시는 건—”도겸이 그의 말을 끊었다.“남의 집안일이라.”그는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남색 비단 열두 필의 거래 내역이었다.“그럼 이것도 집안일인가?”시율
“이건 지나친 처사입니다! 백운상단이 아무리 큰 곳이라 해도 남의 장부를 함부로 뒤질 권리는 없소!”하경이 문을 열었다.회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도겸 앞에 앉아 있었다. 그 곁에는 두꺼운 장부 세 권이 쌓여 있었다.도겸은 하경을 보자 빈자리를 가리켰다.“앉으시오.”중년 사내가 그녀를 훑어보았다.“이 여자가 서하경이오?”도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말을 가려 하시오.”사내는 입을 다물었다.하경은 자리에 앉아 장부를 펼쳤다.백은 삼백 냥.이자 이백팔십 냥.총 오백팔십 냥.그 아래에는 윤시헌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하경은 날짜를 확인했다.차용증에는 초사흘.장부에는 초나흘.돈을 빌린 날짜와 실제 지급한 날짜가 달랐다.“이자가 초사흘부터 계산되었군요.”중년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문제요?”“돈은 초나흘에 지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자는 하루 전부터 받으셨군요.”사내의 얼굴이 굳어졌다.하경은 다음 장을 넘겼다.“그리고 삼백 냥을 지급했다는 영수증이 없습니다.”“있소!”사내가 품속에서 종이를 꺼냈다.그는 탁자 위에 종이를 내던졌다.하경은 종이를 펼쳤다.대금 지급 영수증.수령인 윤시헌.금액 삼백 냥.그 아래에는 담보물로 남색 비단 열두 필이 적혀 있었다.하경의 손이 멈췄다.최 객주가 어젯밤 알려 준 바로 그 물건이었다.“이 비단을 직접 확인하셨습니까?”사내가 헛기침했다.“윤 나리께서 부인의 혼수라고 하셨소.”“물건을 보셨느냐고 여쭈었습니다.”“윤씨 집안의 명성을 믿고 거래한 것이오.”하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렇다면 제 물건을 담보로 잡으면서 저에게는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군요.”사내는 얼굴을 붉혔다.“부부 사이의 재산이니 남편이 처리할 수도 있지!”하경은 영수증을 내려놓았다.“돈을 받은 사람은 윤시헌입니다. 그런데 채무자는 서하경으로 적으셨습니다. 제 동의도 없고, 제가 직접 돈을 받은 기록도 없습니다.”사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도겸이 장부를 집어 들었다.“박 서기.
도겸은 차용증을 가리켰다.“내일 아침까지 원장과 영수증을 가져오시오. 돈을 받은 사람의 이름도 확인하겠소.”사내는 입술을 깨물었다.“남의 대부방 장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오?”도겸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걸렸다.“불편한가?”사내의 얼굴이 굳었다.백도겸은 한번 의심한 거래를 끝까지 파헤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가 장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허위 거래와 빼돌린 돈은 오래 숨길 수 없었다.사내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를 갈았다.“내일 다시 오겠소.”“오시오. 그때는 사람을 끌고 갈 생각 말고 장부부터 가져오시오.”사내들이 말을 타고 사라졌다.하경은 그들이 떠난 길을 바라보았다.손에는 여전히 차용증이 들려 있었다.도겸은 그녀의 붉게 부어오른 손목을 보았다.“많이 다쳤소?”하경은 소매를 내려 상처를 가렸다.“괜찮습니다.”도겸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대신 마차 문을 열었다.“타시오. 오늘 밤은 여기서 끝내야겠군.”하경은 차용증을 품에 넣었다.죽은 남편이 남긴 것은 추억만이 아니었다.그녀의 이름으로 된 빚이었다.***백운상단의 별채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높은 담장 안쪽에는 창고와 사랑채가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밤늦은 시각인데도 일꾼들이 비단 꾸러미를 나르고 있었고, 서기들은 등불 아래에서 수량을 확인하고 있었다.하경은 창고 앞에 쌓인 비단을 바라보았다.물건마다 표찰이 붙어 있었다.수량과 가격, 보관 장소가 적힌 표찰이었다.친정아버지가 거래하던 방식과 같았다.하경은 문득 울컥했다.친정에서는 그녀가 숫자를 잘 읽는다고 칭찬했다. 아버지는 거래처에서 보내온 장부를 맡겼고, 어머니는 혼수품을 고를 때도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그러나 윤씨 집안에 시집간 뒤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여자가 돈을 밝히면 천박하다고 했다.장부를 보겠다고 하면 시댁을 의심하는 불효한 며느리가 되었다.그렇게 삼 년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재산은 하나둘 사라졌다.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