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도겸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약갑의 모서리를 눌렀다. 윤씨 집안의 혼수 착복을 의심하며 거래 내역을 추적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재물을 둘러싼 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장부의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방에 얼마나 계셨습니까?"
"어제 낮부터 오늘 저녁까지요. 고유제에 입을 상복을 갈아입으라며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도겸은 하경의 젖은 옷깃을 바라보았다. 찢어진 상복은 오래 입어 색이 바랜 듯했고, 소매 끝에는 여러 차례 기워 붙인 자국이 있었다.
열녀문을 세우는 데 막대한 돈을 쓴 집안이 정작 그 문에 이름을 올릴 여인에게는 해진 상복을 입혔다는 사실이 기이했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약갑을 조금 더 가까이 밀었다.
"우선 상처부터 씻으십시오. 그 뒤에 필요한 말씀을 나누시지요."
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겸은 그녀가 천을 갈아 감는 동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인의 고통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그 고통을 말하도록 강요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
작은 주막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한층 깊어져 있었다.
도겸은 호위에게 뒤따르는 자들의 움직임을 확인하게 한 뒤, 주인에게 따뜻한 물과 마른 수건, 두툼한 겉옷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주막 안에는 장작불이 피워져 있었고, 늦은 손님 몇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있었으나 그는 하경을 사람들 앞에 세우지 않았다.
마차 문을 열어 주며 별도의 방에서 쉬어도 된다고 말하자, 하경은 주막 안쪽을 살핀 뒤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겠습니다."
도겸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낯선 방에 들어가 문이 닫히는 순간을 그녀가 반기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추측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더 권하지 않고 마차 안에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게 했다.
"문은 열어 두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부르십시오."
그가 처마 아래로 물러나자 호위 하나가 다가왔다.
"대행수님, 윤씨 집안 사람들이 갈림길까지 따라왔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둘은 되돌아갔고 나머지는 다른 길로 움직인 듯합니다."
도겸은 젖은 장갑을 벗으며 산길 쪽을 바라보았다.
시율이 감정에 휩쓸려 직접 쫓아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훨씬 냉정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윤씨 집안이 하경을 되찾기 위해 가문의 명예를 내세운다면 관아와 관문까지 움직이려 할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보다 앞서갈 수 있는 길을 모두 확인해라. 그리고 오늘 밤 열녀문에서 있었던 일을 본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 두어라."
호위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증인을 확보하시려는 겁니까?"
"불이 난 사실은 숨길 수 없지. 하지만 그 여인이 어떤 상황에서 불을 질렀는지까지 윤씨 집안의 말로만 남게 할 수는 없다."
도겸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상단을 운영하면서 그는 수많은 분쟁을 겪었다. 돈을 잃은 사람은 장부를 고쳤고, 권세를 가진 사람은 증인을 바꾸었으며, 때로는 억울한 사람 하나를 죄인으로 만드는 데 거짓 문서 한 장이면 충분했다.
윤씨 집안이 하경을 되찾지 못한다면 다음에 할 일은 뻔했다. 열녀문을 불태운 패륜한 며느리라는 이름을 붙여 관아에 고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늘 밤 그녀가 당한 일들은 모두 지워지고, 불을 지른 사실만 남게 될 터였다.
도겸은 호위에게 한 가지를 더 지시했다.
"열녀문을 지은 목수와 장식품을 납품한 상인도 찾아라. 건립 비용을 누가 냈는지, 어떤 장부를 근거로 돈을 받았는지 확인해야겠다."
호위가 물러가자 도겸은 마차 쪽을 돌아보았다.
하경은 문을 조금 열어 둔 채 상처를 씻고 있었다. 등잔불이 그녀의 옆얼굴을 비추었고, 젖은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따라 흘러내렸다.
도겸은 문득 여인의 나이가 스물넷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스물넷이면 아직 삶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할 나이였다. 그런데 그녀는 삼 년 동안 죽은 남편의 이름 아래 갇혀 지냈고, 이제 겨우 문밖으로 나왔을 뿐이었다.
그는 마른 겉옷을 받아 들고 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옷을 가져왔습니다."ㅍ
도겸은 그의 팔을 놓으며 낮게 말했다.“마차에서 내려오십시오.”시율은 뒤로 밀려났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하경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형수님! 내가 이대로 보내 드릴 것 같소? 어디를 가든 찾아낼 것이오. 그 사람이 형수님을 숨겨도 소용없소!”하경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도겸은 그녀의 입술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하경은 문을 닫지 않았다.“찾아오셔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시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왜!”그의 고함이 관문을 울렸다.“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소? 형수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했는데, 왜 나를 버리고 저 사내를 따라간다는 말이오!”도겸은 그제야 시율이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형수가 자신을 버렸다는 말.그것은 동생이 형수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시율은 하경을 이미 제 여자로 여기고 있었다.***하경은 마차 발판에 한 발을 내디뎠다.도겸은 그녀가 내려오려는 줄 알고 옆으로 물러섰다. 시율 역시 기대에 찬 얼굴로 손을 뻗었다.그러나 하경은 땅에 내려서지 않았다. 발판 위에 선 채 관문 앞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시율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도겸은 그녀의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차가운 바람에 젖은 상복이 흔들렸고, 왼쪽 손목의 천에는 다시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도련님, 잘 들으십시오.”시율은 숨을 죽였다.“저는 백 대행수께 억지로 끌려온 것이 아닙니다. 제가 부탁드렸습니다.”관문 앞에 모인 사람들이 술렁였다.하경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그 집에서는 제 뜻대로 문 하나 열지 못했습니다. 제 친정에서 가져온 재산도 제 것이 아니었고, 제가 먹는 음식과 입는 옷까지 모두 허락받아야 했습니다.”그녀의 시선이 다친 손목으로 내려갔다.“그런데도 저는 삼 년 동안 참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여자가 어디로 갈 수 있겠느냐는 말을 믿었으니까요.”도겸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하경은 울지 않았다. 그러나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말을
새벽바람이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흰 상복은 곳곳이 찢어져 있었고, 왼쪽 손목에는 붉게 물든 천이 감겨 있었다. 도겸이 건넨 검은 겉옷이 가느다란 어깨를 덮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 드러난 상처까지 가려 주지는 못했다.도겸은 그녀가 문턱에 선 모습을 보며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려 했다. 그러나 하경이 스스로 문틀을 붙잡고 균형을 잡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거두었다.시율이 먼저 달려들었다.“형수님!”그는 마차 발판에 발을 올리려 했지만, 도겸이 앞을 막아섰다.“거기서 말씀하십시오.”시율은 그를 노려보다가 하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형수님, 대체 왜 이러시는 거요? 어머님께서 밤새 기다리셨소. 지금 돌아오시면 내가 다 해결하겠소.”하경은 대답하지 않았다.도겸은 그녀의 오른손이 문틀을 세게 움켜쥐는 모습을 보았다.시율은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형수님이 화가 나신 것은 알겠소. 내가 어젯밤 방에 들어간 것이 싫으셨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소. 그러니 이리 내려오시오.”그가 손을 내밀었다.하경의 시선이 그 손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도겸은 그녀가 몸을 조금 뒤로 물리는 것을 알아차렸다.시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형수님.”하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돌아가지 않겠습니다.”시율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무슨 말씀을…….”“저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시율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억지로 웃었다.“형수님, 지금 겁이 나서 그러시는 것이오. 백 대행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형수님을 책임지지 못하오.”그는 도겸을 손가락질했다.“저 사람은 장사꾼이오. 필요할 때는 웃으며 사람을 데려가지만,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자들이란 말이오!”도겸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경이 어떤 선택을 할지 자신이 대신 설명하거나 변호할 생각은 없었다.시율이 다시 손을 뻗었다.“어서 내려오시오. 내가 데려가겠소.”하경은 그 손을 피했다.“도련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집 과부를 데리고 밤새 도망치더니, 이제는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모두 믿겠다는 것이오?”그가 도겸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백도겸. 형수님은 내 사람이오.”도겸은 움직이지 않았다.시율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당연한 사실을 털어놓는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형님이 죽은 뒤 삼 년이오. 삼 년 동안 그 여자 곁에 있었던 건 나란 말이오. 아프면 내가 의원을 불렀고, 굶으면 내가 밥을 들여보냈소. 형수님이 울던 밤에도 내가 그 문밖에 있었소.”그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들거렸다.“그렇게 삼 년을 보냈는데, 어느 날 나타난 사내가 데려가겠다고 하면 내가 순순히 내줘야 한단 말이오?”도겸은 시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형수라는 호칭을 입에 올리면서도 그 여인을 형의 아내로 대하지 않는 사내였다. 그가 말하는 삼 년은 가족을 돌본 시간이 아니라, 제 것이라고 믿는 여인을 감시한 시간에 가까웠다.“그분은 당신 것이 아닙니다.”시율의 웃음이 사라졌다.“뭐라고 했소?”“부인은 사람입니다. 당신이 몇 년을 지켜보았든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시율은 순식간에 도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입 다무시오!”도겸은 제 옷깃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어 시율의 손목을 잡아 천천히 떼어 냈다.“관문 앞입니다. 사람들 보는 데서 더 추해지지 마십시오.”시율이 주먹을 치켜들자 장필과 호위 둘이 곧장 다가와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도겸은 그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눈짓했다. 이 사내를 때려눕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시율과의 싸움이 아니라, 하경이 선택한 길을 열어 주는 일이었다.***관문 책임자가 허둥지둥 달려온 것은 그때였다.“백 대행수님, 윤 도련님. 두 분 모두 진정하십시오.”도겸은 책임자에게 몸을 돌렸다.“누가 통행을 막으라고 명했습니까?”책임자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시율을 힐끗 바라보았다.“윤씨 집안에서 열녀문 방화 사건을 알렸습니다. 죄인을 놓칠 수 없다고 하여…….”“관아의 공문은?”“아직 도착하지
“정식 공문은?”“아직 없습니다.”도겸은 젖은 장갑을 벗어 장필에게 건넸다.“책임자를 데려와라. 뒤따라오는 우리 상단의 마차들은 강 건너에서 대기시키고, 이곳에서 피해를 본 상인들의 이름도 받아 두어라.”장필은 곧바로 움직이려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윤씨 집안 사람들이 계속 마차를 뒤지려 들 겁니다.”“그러니 누구의 허락으로 그 짓을 하는지부터 밝혀야지.”도겸이 관문으로 다가갈수록 수색은 더욱 난폭해지고 있었다. 윤씨 집안 사내 하나가 젊은 여인이 탄 가마의 문을 열어젖히더니, 놀라 소리를 지르는 여인의 턱을 붙잡아 얼굴을 돌리려 했다.“손을 떼라.”사내가 고개를 돌렸다.“누구…….”“지금 당장.”도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사내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황급히 손을 놓았다. 도겸은 여인이 다시 가마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가마꾼들에게 길가로 물러나 있으라고 손짓했다.그때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내가 허락했다!”윤시율이었다.그는 도겸을 발견하자 고삐를 거칠게 당겼다. 말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울부짖었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길가로 물러섰다.시율은 말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내려 도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백도겸. 형수님을 어디에 숨겼소?”도겸은 사내의 얼굴을 차분히 살폈다.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 한쪽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밤새 말을 달린 사람답게 피로가 짙었지만, 그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억눌리지 않는 분노였다.도겸은 시율이 하경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그녀가 자신의 뜻을 거슬렀다는 사실에 더욱 격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사람을 찾는다면 관아에 신고하십시오.”“내 형수님을 찾는데 관아의 허락까지 받아야 한단 말이오?”시율은 도겸의 어깨 너머를 살폈다.그의 눈길이 검은 마차에 닿는 순간 표정이 달라졌다.“저 마차…….”도겸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율이 그를 밀치듯 지나쳐 달려갔다.“형수님!”그의 고함에 관문 앞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형수님! 안
새벽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에 관문 앞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마차 문을 열어! 안에 여자가 있으면 전부 끌어내!”백도겸은 마차의 창문을 반쯤 열고 소란이 일어난 곳을 살폈다.밤새 내린 비로 관문 앞길은 온통 진창이었다. 윤씨 집안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 아래로 사내 열댓 명이 흩어져 있었고, 그중 몇은 지나가는 마차의 짐칸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한 사내가 짚단을 걷어차자 그 아래에 쌓여 있던 곡식 자루가 진흙탕으로 굴러떨어졌다.마차 주인이 항의하자 사내는 도리어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과부 하나가 도망쳤다니까! 숨겨 줬다가 들키면 너도 같은 죄를 뒤집어쓸 줄 알아!”도겸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윤시율은 단순히 사람을 보내 길목을 지키게 한 것이 아니었다. 정식 수색 명령도 없이 지나가는 마차를 뒤지고, 통행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며 하경의 행방을 캐고 있었다.그의 시선이 관문 한가운데로 향했다.시율은 젖은 도포를 걸친 채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밤새 달린 탓인지 말의 옆구리에는 거품이 맺혀 있었고, 시율의 머리카락도 비에 젖어 흐트러져 있었다. 그러나 고삐를 움켜쥔 손에는 조금도 힘이 빠져 있지 않았다.“그 여자, 제 발로 멀리 못 간다! 손목을 다쳤으니 말도 제대로 못 탈 것이야. 가마든 마차든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뒤져!”그는 지나가던 짐수레의 휘장을 직접 걷어 올렸다. 안에 늙은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한참 동안 얼굴을 살피더니, 찾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거칠게 휘장을 내려놓았다.곧이어 빈 가마 하나가 관문으로 들어왔다.시율은 가마꾼의 설명도 듣지 않고 문을 잡아당겼다. 안이 비어 있자 발로 가마 기둥을 걷어찼고, 가마가 기울어지면서 가마꾼 하나가 진흙탕에 넘어졌다.“이 근방에 검은 마차가 지나간 적 없느냐? 백씨 상단의 문장이 달린 마차 말이다!”도겸은 창문을 닫고 맞은편에 앉은 서하경을 돌아보았다.그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있었다. 밤새 젖었던 상복은 아직 축축했고, 찢
하경은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구름 아래로 희미한 빛이 번지고 있었고, 멀리 강가에는 새벽 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했다.도겸은 여인이 한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도록 두었다.그러다가 하경이 겉옷 안쪽에서 접어 둔 종이를 꺼내는 모습을 보았다. 조금 전 도겸이 받아 적어 준 혼수 목록이었다.그녀는 종이의 접힌 부분을 펴서 물목들을 다시 확인했다."대행수님."도겸이 고개를 들었다."제가 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하경은 종이 아래쪽의 빈자리를 가리켰다."혼수 목록을 적어 주신 친정어머니께서 마지막 장에 도장을 찍어 두셨습니다. 전답과 곡식 창고를 제 이름으로 마련했다는 증표라고 하셨지요."도겸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그 도장이 찍힌 문서도 정씨 부인이 가져갔습니까?"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제 방에서 가져가셨습니다. 다른 종이는 모두 찢어 버리셨는데, 그 문서만은 따로 접어 품에 넣으셨습니다."도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정씨가 단순히 혼수 목록을 없애려 했다면 다른 종이와 함께 찢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도장이 찍힌 문서만 따로 챙겼다면 그것을 보관하거나 다른 거래에 이용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그는 하경에게 종이를 돌려주며 말했다."그 문서는 반드시 찾아야겠습니다."하경은 종이를 다시 접었다."제가 돌아가서 찾겠다는 뜻은 아닙니다."도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알고 있습니다."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종이를 겉옷 안쪽에 넣었다. 도겸은 여인이 문서를 되찾고 싶어 하면서도 윤씨 집안으로 돌아갈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그때 앞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도겸이 창문을 열자 먼저 보냈던 호위가 말을 몰아 돌아오고 있었다. 호위는 마차 곁에 이르러 고삐를 당겼고, 뒤쪽을 한 번 살핀 뒤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대행수님, 앞쪽 큰길에 윤씨 집안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아직 길을 막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마차를 살피고 있습니다."도겸은 강 너머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보았다.새벽 안개 사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