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날 저녁.서윤은 냉장고 앞에 서서 한참 메모를 보고 있었다.다음 여행 — 금·토·일운전은 번갈아 하기.사진은 이번에도 많이.계획 하나만 정하고 나머지는 가서.도현 씨는 그냥 따라오기.한 번은 내가 데려가기. — 허락.목적지만 비어 있었다.도현이 물을 가지러 왔다가 그 옆에 섰다.“말할 겁니까?”서윤이 고개를 돌렸다.“뭘?”“여행지.”“아직.”“그런데 왜 계속 봅니까?”“마음 바뀌었나 확인하는 거야.”“바뀌었습니까?”서윤은 잠시 생각했다.“아니.”“그럼 정해졌네요.”“응.”“어딘지는 비밀이고.”“출발 전날까지.”도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서윤이 얼른 그의 팔을 잡았다.“진짜 안 물어봐?”“네.”“조금도?”“궁금하다고 어제도 말했습니다.”“근데 어떻게 참아.”도현이 그녀를 내려다봤다.“당신이 말해줄 거니까요.”서윤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그렇게 믿어?”“네.”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서윤은 몇 초간 그를 바라보다 팔을 놓았다.“……알았어.”“뭘요?”“출발 전날까지 진짜 안 알려줄게.”“그러십시오.”“후회하지 마.”도현이 웃었다.“안 합니다.”저녁을 먹은 뒤.서윤은 자연스럽게 《사이》로 향했다.도현이 뒤따라오다 물었다.“오늘입니까?”“뭐가?”“사진.”서윤이 문 앞에서 멈췄다.“어떻게 알았어?”“이틀 참았잖습니까.”“그걸 세고 있었어?”“당신이 계속 세니까 기억하는 겁니다.”서윤은 문을 열었다.“오늘 한 장만 볼래.”선반에는 앞면이 보이는 일곱 장.그리고 뒤집힌 세 장.그중 마지막 한 장은 다음 여행 전날까지 남겨두기로 했다.결국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두 장뿐이었다.서윤은 러그 위에 앉았다.도현도 옆에 앉았다.“이번엔 어떻게 고를까요?”서윤이 세 장을 내려다봤다.“가운데.”“바로요?”“응.”“고민 안 합니까?”“고민하면 마지막 사진까지 건드릴 것 같아.”도현이 웃었다.서윤은 가운데 사진을 집었다.“뒤집는다?”“네.”
아침에 먼저 눈을 뜬 건 도현이었다.서윤은 그의 팔을 베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이불 밖으로 나온 손은 도현의 셔츠 자락을 느슨하게 쥐고 있었다.도현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서윤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가지 마.”잠결에 나온 목소리였다.도현이 움직임을 멈췄다.“안 갑니다.”“진짜?”“네.”그제야 서윤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몇 초 뒤.서윤이 천천히 눈을 떴다.바로 앞에 있는 도현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나 뭐라고 했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내가?”“네.”“잠꼬대였어.”“알고 있습니다.”서윤은 괜히 이불을 끌어올렸다.“기억하지 마.”“이미 기억했습니다.”“잊어.”“싫습니다.”“도현 씨.”그가 웃자 서윤은 결국 이불 속에서 발을 움직여 그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진짜 얄미워.”“그래도 안 갔습니다.”그 말에 서윤이 조용해졌다.잠시 뒤 이불 밖으로 얼굴을 다시 내밀었다.“그건 잘했어.”출근 전.서윤은 냉장고 앞에서 우유를 마시다가 메모를 발견했다.다음 여행 — 금·토·일운전은 번갈아 하기.사진은 이번에도 많이.계획 하나만 정하고 나머지는 가서.도현 씨는 그냥 따라오기.어제 자신이 쓴 그대로였다.그런데 맨 아래에 한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한 번은 내가 데려가기.서윤이 우유를 마시다 말고 도현을 찾았다.“이거 뭐야?”넥타이를 정리하던 도현이 다가왔다.“추가했습니다.”“그냥 따라오라니까.”“대부분은 따르겠습니다.”“근데?”“한 번만 제가 데려가려고요.”“어디를?”“비밀.”서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봤다.“내 여행인데?”“네.”“목적지도 내가 정하고.”“네.”“계획도 내가 하나만 정하기로 했는데.”“그것도 압니다.”“그런데 도현 씨가 어디를 데려가?”“한 곳만.”“어딘데?”“아직 안 정했습니다.”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럼 왜 벌써 써놨어.”“당신이 목적지를 알려주면 찾으려고요.”“내가 고른 여행지 안에서?”“네.”서윤은 다시 메모
다음 날 아침.서윤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가장 먼저 느껴진 건 허리를 감싼 도현의 팔이었다.어젯밤 가까이 붙어 잠든 그대로였다.서윤은 움직이지 않고 잠시 천장만 바라봤다.그러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도현은 아직 눈을 감고 있었다.“도현 씨.”대답이 없었다.“자요?”“……네.”서윤이 피식 웃었다.“자는 사람이 대답을 해?”그제야 도현이 눈을 떴다.“깨웠잖습니까.”“원래 깨어 있었던 것 같은데.”“조금 전에.”서윤은 몸을 돌려 그와 마주 봤다.“어제 여행 날짜 정한 거 기억나죠?”“네.”“후회 안 해?”“하룻밤 사이에요?”“혹시 일정 생각해보니까 귀찮다거나.”도현의 팔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안 갑니까?”“아니, 가.”“그럼 됐습니다.”“내가 어디 가는지도 아직 안 말했는데.”“그것도 압니다.”서윤은 그 얼굴을 빤히 봤다.정말 캐물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래서 오히려 서윤 쪽이 먼저 말하고 싶어졌다.“힌트 하나 줄까?”“안 줘도 됩니다.”“왜?”“비밀로 하고 싶다면서요.”“그래도 궁금해야 되는 거 아니야?”“궁금합니다.”“표정은 아닌데.”도현이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차로 갑니까?”서윤의 눈이 커졌다.“그건 힌트잖아.”“제가 물었는데요.”“대답 안 할래.”“그럼 비밀 유지하십시오.”서윤이 이불을 끌어올렸다.“재미없어.”도현이 웃었다.출근 준비를 마친 서윤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도현이 물었다.“뭐 두고 왔습니까?”“아니.”서윤이 다시 나온 손에는 작은 메모지가 들려 있었다.냉장고 앞으로 가더니 자석으로 붙였다.다음 여행 — 금·토·일그 아래 목적지는 비워뒀다.도현이 옆에 서서 읽었다.“정말 안 쓰는군요.”“응.”“언제 알려줄 겁니까?”서윤이 펜 끝을 입술에 대고 생각했다.“출발 전날.”“그때까지?”“응.”“준비할 건요?”“내가 알려줄게.”“옷도?”“그건 평소대로.”“날씨는?”“내가 확인할 거야.”
서윤은 다음 날 퇴근하자마자 달력을 봤다.정확히는 휴대폰 일정표였다.이번 달.다음 달.그다음 달까지 넘겼다.손가락이 멈췄다.“……여기 괜찮은데.”옆에서 물을 마시던 도현이 돌아봤다.“뭐가요?”서윤은 재빨리 화면을 껐다.“아무것도 아니야.”“다 봤습니다.”“뭘 봤는데?”“달력.”“달력 본 게 뭐.”“어제 다음 여행 이야기를 했고, 오늘 달력을 보고 있었고.”도현이 컵을 내려놓았다.“연결하기 어렵지 않습니다.”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도현 씨 눈치가 너무 빨라.”“언제 갈 생각이었습니까?”“아직 생각만 한 거야.”“언제요?”“말 안 할래.”“왜요?”서윤은 그를 지나 《사이》 쪽으로 걸었다.“사진부터.”“또 봅니까?”“응.”“어제 두 장 봤는데요.”“오늘 한 장.”“그럼 세 장 남는군요.”서윤의 발이 멈췄다.“아니지.”“네?”“지금 네 장 남았으니까 하나 보면 세 장.”“맞습니다.”서윤은 천천히 도현을 돌아봤다.“근데 마지막 한 장은 다음 여행 전날 보기로 했잖아.”“네.”“그럼 사실 내가 앞으로 볼 수 있는 건 세 장이 아니라 두 장이네.”도현이 웃었다.“이제 계산했습니까?”“왜 어제 말 안 했어?”“당신이 먼저 약속했잖습니까.”“사기당한 기분인데.”“제가 사진 수를 숨긴 것도 아닙니다.”서윤은 입술을 삐죽였다.“됐어.”그러면서도 《사이》 문을 열었다.“오늘 하나는 볼 거야.”선반 위에는 지금까지 확인한 여섯 장이 놓여 있었다.여행 가방.빵집의 서윤.잠든 도현.커피와 엽서.첫날의 바다.마지막 날 셀카.그리고 뒤집힌 네 장.서윤은 러그에 앉았다.“오늘은 내가 안 고를래.”“그럼요?”“도현 씨가 하나 줘.”“제가 고르는 겁니까?”“응.”“나중에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 마십시오.”“사진인데 마음에 안 들 게 뭐가 있어.”도현은 네 장 중 두 번째 사진을 집었다.앞면이 보이지 않게 그대로 서윤에게 건넸다.“직접 뒤집으십시오.”서윤이 사진을 받았
다음 날 저녁.서윤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사이》 쪽을 봤다.어제 하루 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사진 여섯 장.아침에도 일부러 보지 않고 나왔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도현 씨 언제 와?”메시지를 보내자 답장이 금방 왔다.십 분 정도 걸립니다.서윤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혼자 먼저 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사진을 고를 때부터 둘이 했고,뒤집을 때도 둘이 있었다.서윤은 결국 옷부터 갈아입었다.그리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다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7분.“왜 이렇게 안 와.”바로 그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서윤이 고개를 돌렸다.문이 열리자마자 말했다.“늦었어.”도현이 신발을 벗다 멈췄다.“십 분이라고 했는데요.”“십일 분 걸렸어.”“쟀습니까?”“아니.”“그런데 어떻게 압니까?”“느낌이 그래.”도현이 웃었다.“사진 때문이죠?”서윤은 대답 대신 그의 가방을 받아 옆에 내려놨다.“빨리 와요.”“저녁은요?”“사진 하나 보고.”“씻는 건?”“사진 보고.”“옷은?”“도현 씨.”“네.”“오늘 되게 말 많다.”도현이 결국 재킷만 벗었다.“갑시다.”《사이》에는 여섯 장이 그대로 있었다.서윤이 천을 걷었다.“어제 진짜 안 봤지?”“네.”“나도 안 봤어.”“압니다.”“어떻게 알아?”“봤으면 어제 밤에 말했을 테니까요.”서윤은 반박하지 못했다.“……그건 맞아.”둘은 러그 위에 나란히 앉았다.서윤이 말했다.“오늘은 두 장.”“하루 참았으니까?”“응.”“결국 수량이 누적되는군요.”“그게 합리적이잖아.”“어떤 계산으로요?”“내 계산.”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두 장.”이번에는 한 장씩 고르기로 했다.첫 번째는 서윤.두 번째는 도현.서윤은 여섯 장을 한참 바라보다 오른쪽 끝을 집었다.“이거.”사진을 뒤집었다.바다가 나왔다.그런데 흔히 찍는 수평선 사진이 아니었다.화면 아래에는 서윤의 머리카락 일부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한쪽에는
서윤이 넥타이를 당긴 순간, 도현의 손이 소파 등받이를 짚었다.가까워진 얼굴 사이로 짧은 웃음이 섞였다.“내 책임이라고 했죠?”도현이 낮게 물었다.“응.”“그럼 끝까지 책임집니까?”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뭘 어떻게 책임지는데.”“먼저 시작했으니까.”“그래서?”도현은 대답 대신 서윤이 쥐고 있던 넥타이를 풀었다.매듭이 느슨해졌다.서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려갔다.“도현 씨.”“네.”“일부러 그러지?”“뭘요.”“내가 먼저 했다고 해놓고 자기가 분위기 바꾸잖아.”“싫습니까?”“아니.”서윤의 대답은 빨랐다.도현이 웃었다.그 순간 서윤이 다시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이번에는 입술이 제대로 맞닿았다.조금 전까지 사진을 고르며 웃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도현의 손이 그녀의 등을 감쌌고, 서윤은 소파 깊숙이 기대면서도 그를 놓지 않았다.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닿았다.“잠깐.”서윤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도현이 바로 멈췄다.그런데 서윤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오히려 셔츠 깃을 잡았다.“왜 진짜 멈춰.”“잠깐이라면서요.”“숨 쉬려고 한 말이지.”“그건 제가 어떻게 압니까.”서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지금 알았잖아.”“네.”“그럼 다시.”이번에는 도현이 먼저 가까워졌다.서윤은 눈을 감았다.소파 옆 작은 선반에는 오늘까지 확인한 네 장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뒤집힌 여섯 장은 천 아래 그대로였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 모두 그쪽에는 관심이 없었다.얼마 뒤.서윤은 도현의 어깨에 기대 앉아 있었다.느슨해진 넥타이는 어느새 소파 옆에 떨어져 있었다.서윤이 발끝으로 그것을 건드렸다.“저거 내일 출근할 때 매려고 했던 거 아니야?”“다른 거 하면 됩니다.”“내가 아침에 고쳐준 건데.”“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하고 있었습니다.”서윤이 고개를 들었다.“진짜?”“네.”“그런 건 왜 말 안 해.”“말해야 합니까?”“응.”“왜요?”“좋으니까.”도현이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서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