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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화. 준비하지 않은 밤

Penulis: 에이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11 00:30:03

서윤이 현관문을 닫자마자 말했다.

“오늘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도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시선만 들었다.

“회의 길었습니까.”

“세 시간.”

서윤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리 쪽은 자기들 보고서가 급하다고 하고, 뮌헨은 다음 분기 예산 먼저 확정해달라고 하고, 프라하는 둘 다 기다리면 된다고 하고.”

“카렐은?”

“퇴근했어요.”

“잘했군요.”

“나도 알아.”

서윤은 구두를 벗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퇴근했어. 해결 안 된 거 그대로 두고.”

도현이 노트북을 닫았다.

“잘했습니다.”

서윤은 그를 빤히 봤다.

“오늘은 잔소리 안 하네.”

“제가 왜 합니까.”

“예전이면 업무가 머릿속에 남아 있냐고 물어봤을 것 같은데.”

“남아 있습니까.”

“엄청.”

“그렇군요.”

끝이었다.

도현은 더 캐묻지 않았다.

서윤은 오히려 그게 이상해 거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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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93화.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사람

    회의실 맨 앞자리가 비어 있었다.평소라면 서윤이 앉았을 자리였다.오늘 그녀는 두 번째 줄 끝에 앉아 있었다.노트북도 열지 않았다.앞에서는 카렐이 프라하·뮌헨·파리 세 도시의 다음 분기 운영 조정안을 설명하고 있었다.“파리 쪽에서 요구한 추가 인력은 그대로 승인하지 않겠습니다.”화면이 넘어갔다.“대신 프라하의 계약 관리 인력 두 명을 석 달 동안 공동 배치합니다. 그동안 파리 팀의 승인 단계를 하나 줄이겠습니다.”한 이사가 물었다.“한 총괄과 협의된 내용입니까?”카렐이 대답했다.“최종 방향은 제가 결정했습니다.”회의실 안에서 몇몇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윤 쪽으로 향했다.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카렐이 이어 말했다.“한 총괄에게 보고는 했지만 승인받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조정은 제 권한 안에 있습니다.”그 말 뒤.서윤은 아주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끝.발언권을 가져오지 않았다.카렐이 숫자를 하나 잘못 말했다.화면에는 4.8.입으로는 4.6.서윤은 알아챘다.옆에 앉아 있던 예린도 알아챘는지 펜 끝이 잠깐 멈췄다.하지만 누구도 끼어들지 않았다.카렐이 다음 문장을 말하다 스스로 화면을 봤다.“정정하겠습니다. 4.8퍼센트입니다.”그대로 넘어갔다.회의는 사십 분 뒤 끝났다.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렐이 뒤쪽으로 왔다.“아까 숫자.”“봤어요.”“왜 말 안 했습니까.”서윤이 가방을 들었다.“본인이 고쳤잖아요.”“못 고쳤으면요?”“그럼 회의 끝나고 말했겠죠.”카렐이 잠깐 그녀를 봤다.“예전 같으면 바로 끼어들었을 텐데.”“알아요.”“불편하지 않았습니까.”서윤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조금.”카렐이 웃었다.“그럼 성공이네요.”“뭐가.”“불편한데도 안 가져갔으니까.”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요즘 다들 왜 나를 평가하지.”“제가 배웠으니까 돌려드리는 겁니다.”“됐어요. 퇴근이나 해요.”카렐은 시계를 확인했다.“오늘은 정말 갑니다.”“아내 기다려요?”“오늘은 제가 저녁 만들 차례입니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92화. 출근보다 먼저

    알람이 울리기 전. 서윤은 먼저 눈을 떴다. 침실은 아직 어두웠고. 커튼 사이로 아주 옅은 새벽빛만 들어오고 있었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손을 뻗어봤지만. 도현은 없었다. 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 “어디 갔어….” 그때. 침실 문이 열렸다. 도현이 물컵을 들고 들어왔다. “깼습니까.” 서윤이 눈만 들었다. “몇 시예요?” “일곱 시 십 분.” “알람은?” “이십 분 뒤.” 도현은 협탁에 물을 내려놓았다. 서윤이 이불 속에서 그를 보다가 말했다. “나한테 먼저 오라며.” “왔습니다.” “이건 물 가져온 거잖아.” “제가 먼저 일어났고.” 도현이 침대 옆에 앉았다. “지금 당신한테 왔습니다.” 서윤은 몇 초 그를 봤다. “그렇게 따지면 맞네.” “무엇을 기대했습니까.” “몰라.” “거짓말.” 서윤이 이불을 조금 더 끌어올렸다. “아침부터 캐묻지 마.” 도현은 웃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 “어제 말했잖습니까.” “뭘.” “먼저 오라고.” “응.” “그래서 왔습니다.” 손가락이 뺨을 아주 천천히 쓸었다. “하….” 서윤의 숨이 작게 길어졌다. 도현의 시선이 바로 내려왔다. “아직 잠도 덜 깼는데.” “응.” “이 소리는 납니까.” 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주인님이 만지잖아.” “그것뿐?” “아침부터 왜 이래.” 도현이 아주 조금 가까이 왔다. “제가 먼저 오라고 했던 사람이.” “응.” “지금 피합니까.” 서윤은 오히려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도현의 손목을 잡았다. “안 피해.” 몇 초. 도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럼 놓지 마십시오.” “응.” “말로.” “안 놓을게요, 주인님.” “좋아.” 알람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도현은 서윤이 자기 손목을 잡은 채로. 반대 손을 그녀의 허리 위에 올렸다. 이불 위. 아주 가볍게. “오늘 몇 시까지 나가야 합니까.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91화. 먼저 돌아본 사람

    아침 일곱 시 반. 서윤은 현관 앞에서 구두를 신다가 멈췄다. “도현 씨.”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던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네.” “오늘 몇 시에 들어와요?” “모르겠습니다.” “회의 있어?” “두 개.” “늦어?” “아마.” 서윤은 가방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도현이 컵을 내려놓았다. “왜.” “아니.” “말하십시오.” 서윤은 잠깐 그를 봤다. “오늘 저녁 같이 먹고 싶어서.” 도현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회의 있다며.” “조정할 수 있습니다.” “굳이?” “같이 먹고 싶다고 했잖습니까.” “응.” “그럼 됐습니다.” 너무 간단하게 결정해서. 서윤이 오히려 웃었다. “주인님 요즘 진짜 바로바로 움직이네.” 도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출근 전에 그 호칭 씁니까.” “집이잖아.” “삼 분 뒤에는 유럽 총괄이면서.” “그래서 지금만.” 서윤이 현관문을 열었다. 나가기 직전. 뒤를 한번 돌아봤다. 도현은 아직 주방에 서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왜.” “그냥.” “또 그냥.” 서윤은 웃었다. “저녁에 봐.” 문이 닫혔다. 오후 다섯 시 오십 분. 도현은 마지막 자료를 덮었다. 맞은편 이사가 말했다. “의장님, 뮌헨 쪽 수정안은 내일 오전까지 받아도 됩니다.” “그렇게 하죠.” “추가 논의는요?” “내일.” 짧게 끝냈다. 회의실을 나오는 길. 도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여섯 시 조금 전. 평소라면. 한두 통 더 확인했을 메일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대로 나왔다. 차 안에서 서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일곱 시 전에 갑니다.] 답장은 바로 왔다. [진짜?] [네.] [나도 맞춰서 갈게.] 그 문장을 본 뒤. 도현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서윤이 먼저 집에 도착했다. 정확히 십 분. 그녀는 코트를 벗어놓고. 냉장고를 열었다. 뭔가 제대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간단한 샐러드. 남아 있던 빵. 어제 사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90화. 늦게 돌아온 사람

    프라하 사무실의 마지막 회의가 끝난 건 밤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 서윤은 회의실 문이 열리자마자 노트북부터 닫았다. “오늘 추가 보고는 내일 오전으로 넘겨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카렐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파리 쪽 수정본도요?” “네.” “자정 전까지 달라고 했는데.” “그쪽이 자정 전에 달라고 한 거지, 우리가 자정 전에 주겠다고 한 건 아니잖아요.” 카렐이 잠깐 멈췄다가 웃었다. “맞습니다.” “내일 아홉 시 반.” “알겠습니다.” 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렐도 자료를 챙겼다. “저도 갑니다.” “오늘은 빠르네요.” “제 아내가 지금부터 삼십 분 안에 안 나오면 저녁을 혼자 먹겠다고 했습니다.” 서윤이 시계를 봤다. “이미 늦은 것 같은데.” “그래서 뛰어야 합니다.” 카렐은 정말 서둘러 회의실을 나갔다. 서윤은 혼자 남은 테이블을 잠깐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수정본을 한 번 더 열었을 것이다. 파리 쪽 요청 내용을 읽고. 뮌헨 예산안도 다시 확인하고. 결국 퇴근 시간은 또 밀렸을 테고. 하지만 오늘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그걸로 끝냈다. 현관문을 열자 불은 거실 하나만 켜져 있었다. “왔습니까.” 도현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렸다. 서윤은 신발을 벗으며 대답했다. “응.” “늦었습니다.” “회의.” “먹었습니까.” “간단하게.” 도현이 거실에서 나왔다. 검은색 홈웨어 차림이었다. 서윤은 가방을 내려놓다가 그를 한번 봤다. “왜.” 도현이 바로 물었다. “아무것도.” “봤는데.” “그냥 봤어.” “왜.” 서윤은 코트를 벗었다. “오늘 유난히 집에 있는 사람 같아서.” 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럼 평소에는 무엇 같습니까.” “회사 사람.” “집에서도?” “가끔.” 도현이 코트를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오늘은 회사 이야기 하지 말까요.” 서윤이 바로 그를 봤다. “진짜?” “네.” “나 지금 머릿속에 파리 수정본 있는데.” “있어도 두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89화. 준비하지 않은 밤

    서윤이 현관문을 닫자마자 말했다. “오늘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도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시선만 들었다. “회의 길었습니까.” “세 시간.” 서윤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리 쪽은 자기들 보고서가 급하다고 하고, 뮌헨은 다음 분기 예산 먼저 확정해달라고 하고, 프라하는 둘 다 기다리면 된다고 하고.” “카렐은?” “퇴근했어요.” “잘했군요.” “나도 알아.” 서윤은 구두를 벗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퇴근했어. 해결 안 된 거 그대로 두고.” 도현이 노트북을 닫았다. “잘했습니다.” 서윤은 그를 빤히 봤다. “오늘은 잔소리 안 하네.” “제가 왜 합니까.” “예전이면 업무가 머릿속에 남아 있냐고 물어봤을 것 같은데.” “남아 있습니까.” “엄청.” “그렇군요.” 끝이었다. 도현은 더 캐묻지 않았다. 서윤은 오히려 그게 이상해 거실로 들어왔다. “끝?” “무엇이.” “질문.” “더 듣고 싶으면 말하십시오.” “아니.” 도현은 다시 노트북을 들려다가 멈췄다. 서윤이 여전히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냥.” “그냥?” “오늘 주인님 되게 얌전해서.” 도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얌전하다.” “응.” “집에 들어온 지 삼 분 됐습니다.” “그래서?” 도현은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벌써 판단합니까.” 서윤이 웃었다. “그럼 아닌가 봐.” “모르겠습니다.”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셔츠 소매를 한 번 접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서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팔로 내려갔다. 도현이 바로 알아챘다. “왜 봅니까.” “그냥.” “거짓말.” “팔 봤어.” “왜.” “소매 걷으니까.” 도현이 한 걸음 가까이 왔다. “좋습니까.” “응.” “많이?” 서윤이 웃었다. “왜 갑자기 캐물어.”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88화. 당기지 않아도 남는 감각

    도현이 오늘 꺼내온 건 처음 봤을 때 도무지 플레이 도구처럼 보이지 않았다. 작고 투명한 실리콘 컵 세 개. 크기도 조금씩 달랐다. 나는 침대 위에 놓인 걸 하나 집어 들었다. 말랑했다. 손가락으로 누르자 금방 찌그러졌다가 다시 원래 모양으로 돌아왔다. “이건 뭐예요?” “실리콘 마사지 컵.” “부항 같은 거?” “비슷하게 보이지만 오늘은 아주 약하게만 씁니다.” 나는 바로 눈썹을 올렸다. “붙이는 거예요?” “네.” “아파요?” “세게 흡착시키지 않으면 거의 없습니다.” 도현은 말하면서 가장 작은 컵을 자기 팔 바깥쪽에 먼저 댔다. 가운데를 살짝 누르고. 피부에 붙인 뒤 손을 뗐다. 톡. 컵이 그대로 붙었다. 나는 웃었다. “뭔가 귀여운데.” 도현이 나를 봤다. “플레이 시작하고도 그렇게 말하는지 보겠습니다.” “왜. 안 귀여워져?” “모르겠습니다.” 몇 초 뒤. 그가 컵 가장자리를 살짝 들어 공기를 넣었다. 툭. 바로 떨어졌다. 피부에는 아주 옅은 자국만 남았다. “어때요?” “당기는 느낌 정도.” “통증은?” “없습니다.” 도현은 이번에는 자기 손등에 붙여보고. 다시 떼었다. 그 과정을 전부 확인한 뒤에야 나를 봤다. “손 내미십시오.” 나는 오른팔을 내밀었다. “여기부터?” “네.” 도현이 가장 작은 컵을 내 팔 바깥쪽에 댔다. 살짝 누르고. 톡. “아.” 나도 모르게 짧은 소리가 났다. 아프진 않았다. 그런데. 피부 한 점을 가볍게 잡아당긴 채 놓지 않는 느낌이 낯설었다. “어떻습니까.” “이상해.” “싫습니까.” “아니.” “당김?” “응. 약하게 잡혀 있는 것 같아.” 도현이 컵을 손끝으로 아주 살짝 건드렸다. 흔들. “읏….” 이번에는 바로 팔에 힘이 들어갔다. 도현의 시선이 올라왔다. “이게 더 큽니까.” “건드리니까.” “아프고?” “아니. 그냥 붙어 있는 게 움직여서.” “색깔.” “초록.” “좋습니다.” 그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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