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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화. 장바구니보다 무거운 것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2 13:35:51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도 두 사람은 한동안 거실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서윤은 빈 포장지를 접었다 폈다 하다가 도현 쪽을 봤다.

“저녁 해야 되는데.”

“그러게요.”

“누가 해요?”

“아이스크림 먼저 먹자고 한 사람.”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우리 집.”

서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같이 해요.”

“좋습니다.”

냉장고를 열자 조금 전 사 온 재료가 빼곡했다.

서윤은 고기를 꺼냈다.

“이거.”

“뭘 만들려고요.”

“아직 몰라요.”

“재료부터 꺼낸 겁니까?”

“일단 꺼내면 생각나겠지.”

도현이 옆에서 양파와 버섯을 꺼냈다.

“볶음으로 하죠.”

“매콤하게?”

“오늘 간식까지 많이 먹었잖습니까.”

“그래서?”

“안 맵게.”

“싫은데.”

“내일 속 아프다고 하면 제가 죽 끓여야 합니다.”

서윤이 잠시 생각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도현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알았어요. 안 맵게.”

도현이 칼을 잡고 채소를 썰었다.

서윤은 옆에서 고기를 준비했다.

둘이 움직이니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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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52화. 장바구니보다 무거운 것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도 두 사람은 한동안 거실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서윤은 빈 포장지를 접었다 폈다 하다가 도현 쪽을 봤다.“저녁 해야 되는데.”“그러게요.”“누가 해요?”“아이스크림 먼저 먹자고 한 사람.”“그런 법이 어디 있어.”“우리 집.”서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럼 같이 해요.”“좋습니다.”냉장고를 열자 조금 전 사 온 재료가 빼곡했다.서윤은 고기를 꺼냈다.“이거.”“뭘 만들려고요.”“아직 몰라요.”“재료부터 꺼낸 겁니까?”“일단 꺼내면 생각나겠지.”도현이 옆에서 양파와 버섯을 꺼냈다.“볶음으로 하죠.”“매콤하게?”“오늘 간식까지 많이 먹었잖습니까.”“그래서?”“안 맵게.”“싫은데.”“내일 속 아프다고 하면 제가 죽 끓여야 합니다.”서윤이 잠시 생각했다.“그것도 나쁘지 않은데.”도현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알았어요. 안 맵게.”도현이 칼을 잡고 채소를 썰었다.서윤은 옆에서 고기를 준비했다.둘이 움직이니 저녁 준비는 금방 끝났다.서윤이 프라이팬을 보다가 말했다.“우리 진짜 같이 오래 살았나 봐.”“갑자기?”“예전에는 주방에서 서로 뭐 할지 계속 물어봤잖아요.”도현도 잠깐 생각했다.이제는 달랐다.한 사람이 칼을 잡으면 다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불을 켰고, 접시가 필요하면 말하지 않아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편해진 거겠죠.”“좋은 쪽으로?”“저는 그렇습니다.”서윤이 웃었다.“나도.”***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끝낸 뒤였다.서윤이 냉장고 앞을 지나가다가 멈췄다.어제 붙인 메모가 그대로 있었다.**금요일 저녁 — 같이 장보기****토요일 — 늦잠****일요일 — 아무것도 안 정하기**그리고 맨 아래.**오늘 — 아이스크림 먼저.**서윤은 펜을 들었다.마지막 문장 옆에 작은 체크 표시를 했다.도현이 물을 마시다 그 모습을 봤다.“그것도 체크합니까.”“했으니까.”“그럼 저녁도 적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저녁은 원래 먹는 거잖아요.”“아이스크림도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51화. 냉장고에 붙은 메모

    아침에 먼저 일어난 건 도현이었다.서윤은 여전히 그의 팔을 베고 자고 있었다.어젯밤에는 일찍 자겠다고 해놓고 한참 동안 집 이야기를 했다.주방은 얼마나 넓어야 하는지.작업실 창은 어느 방향이 좋은지.마당이 생기면 뭘 심을 건지.그러다 마지막에는 소파 자리까지 정했다.도현은 조심스럽게 팔을 빼려 했다.그 순간 서윤의 손이 움직였다.잠든 채로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도현이 멈췄다.“…….”한동안 내려다보다 다시 누웠다.조금 더 늦게 일어나도 괜찮았다.십여 분쯤 지나 서윤이 눈을 떴다.가장 먼저 보인 건 도현의 얼굴이었다.“안 갔네.”잠긴 목소리였다.“어디를 갑니까.”“먼저 일어나면.”서윤은 눈을 비볐다.“나가지 말라고 했잖아요.”“그래서 안 갔습니다.”“진짜 기다렸어요?”“네.”서윤이 만족스럽게 다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잘했어요.”“이제 일어나야 합니다.”“오 분.”“어제도 그랬습니다.”“오늘은 진짜 오 분.”도현은 결국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댔다.“오 분입니다.”“응.”정확히 십이 분 뒤.도현이 말했다.“서윤.”대답이 없었다.“오 분 지났습니다.”여전히 조용했다.다시 잠든 모양이었다.도현이 웃으며 그녀의 뺨을 가볍게 건드렸다.“출근.”서윤의 눈이 번쩍 뜨였다.“몇 시예요?”“늦지는 않았습니다.”서윤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왜 안 깨웠어요!”“두 번 깨웠습니다.”“거짓말.”“오 분 달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요.”서윤은 시계를 확인하고서야 안도했다.“진짜 안 늦네.”“그러니까 씻으십시오.”침대에서 내려가던 서윤이 갑자기 돌아왔다.도현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기다려준 값.”그리고 바로 욕실로 사라졌다.도현은 닫힌 문을 보다가 웃었다.퇴근 후.먼저 집에 돌아온 서윤은 냉장고를 열었다.한참 들여다봤다.다시 닫았다.그리고 또 열었다.“먹을 게 없네.”분명 있었다.계란도 있었고 채소도 있었고 고기도 조금 남아 있었다.하지만 지금 먹고 싶은 건 없었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50화. 소파 끝에 남겨둔 자리

    “그건 밤에 생각해보고.”서윤의 대답에 도현이 웃었다.“역시.”“왜요.”“일찍 자자는 말을 믿으면 안 될 것 같아서.”“오늘은 진짜예요.”“어제도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서윤은 대꾸하지 않고 새로 산 쿠션을 끌어안았다.《사이》의 소파에 나란히 놓인 쿠션 두 개.하나는 자신이 안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도현의 등 뒤에 있었다.“근데 이거 잘 샀다.”서윤이 턱을 쿠션 위에 올렸다.“푹신해.”“매장에서 당신이 안 놨잖습니까.”“마음에 들었으니까.”“하나만 사도 됐을 텐데.”“두 개가 예쁘잖아요.”서윤은 옆의 쿠션을 한번 보고 도현을 봤다.“그리고 하나씩 써야지.”“꼭 하나씩?”“응.”도현이 자신의 쿠션을 꺼내 서윤 쪽에 붙였다.“그럼 이건 당신 겁니다.”“왜요?”“두 개 다 안고 싶어 하는 얼굴이라서.”“아닌데.”말은 그렇게 하면서 서윤은 두 번째 쿠션까지 끌어안았다.도현이 피식 웃었다.“맞잖습니까.”“잠깐만 빌리는 거예요.”“그러십시오.”서윤은 쿠션 두 개 사이에 파묻혔다.잠시 뒤 도현이 책을 한 권 꺼내왔다.“책 읽게요?”“네.”“나 있는데?”도현이 책을 펼치다 멈췄다.“당신이 있으면 책 읽으면 안 됩니까.”“그건 아닌데.”서윤은 잠깐 고민하다 소파 끝으로 몸을 옮겼다.자신과 도현 사이에 일부러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자리를 남겼다.도현이 그 공간을 봤다.“이건 뭡니까.”“자리.”“누구 자리.”“도현 씨.”“저 여기 있는데요.”“책 읽으려면 거기 앉아요.”서윤이 손바닥으로 빈자리를 두드렸다.“여기.”도현은 결국 책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서윤의 바로 옆.“됐습니까.”“응.”“뭐가 달라졌습니까.”“가까워졌잖아요.”“아까도 같은 소파였습니다.”“그래도.”서윤은 만족한 얼굴로 쿠션 하나를 내려놓았다.도현은 책을 다시 펼쳤다.이번에는 서윤도 방해하지 않았다.처음에는.십 분쯤 지났을 때 서윤이 슬쩍 책을 들여다봤다.“재밌어요?”“네.”“뭔데.”“주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9화. 베개 옆의 빈자리

    아침.서윤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이불 속에서 몸을 조금 움직였다.따뜻했다.그리고 이상하게 조용했다.평소라면 옆에서 느껴져야 할 도현의 체온이 없었다.서윤의 손이 옆자리를 더듬었다.비어 있었다.그제야 눈을 떴다.“도현 씨?”대답이 없었다.협탁 위 시계를 확인했다.오전 9시 18분.주말이라고 해도 꽤 늦게 잤다.어젯밤 자신이 분명 말했다.먼저 일어나도 깨우지 말라고.서윤은 이불을 끌어안고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진짜 안 깨웠네.”몇 초 뒤.어젯밤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허락 없어도 보고 있었습니다.서윤의 눈이 번쩍 뜨였다.“맞다.”침대에서 바로 일어났다.바닥에 놓인 가디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도현은 없었다.대신 식탁 위에 커피가 있었다.아직 따뜻했다.주방에는 간단한 아침거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그런데 사람이 없었다.서윤은 자연스럽게 《사이》 쪽을 봤다.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조용히 다가갔다.안쪽을 들여다본 순간 걸음을 멈췄다.도현은 창가의 차콜색 의자에 앉아 있었다.무릎 위에는 스케치북.손에는 연필.서윤이 문틀에 기대었다.“뭐 해요?”도현의 손이 멈췄다.고개를 들었다.“깼습니까.”“응.”서윤의 시선이 스케치북으로 내려갔다.“설마.”도현이 스케치북을 덮었다.서윤의 눈이 커졌다.“왜 덮어요?”“아직 안 끝났습니다.”“나 그렸어요?”“네.”서윤은 바로 안으로 들어왔다.“보여줘요.”“안 됩니다.”“왜.”“완성 안 됐으니까.”“어제 나한테는 그렇게 보여달라고 해놓고.”“당신도 완성하고 보여줬잖습니까.”“자는 동안 그렸어요?”“조금.”서윤은 그의 앞에 섰다.“얼마나.”“삼십 분 정도.”“나 자는 걸 삼십 분이나 봤다고?”“그림을 그렸습니다.”“그리려면 봐야 되잖아요.”도현이 대답하지 않았다.그게 답이었다.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나 자는 거 그렇게 보고 싶었어요?”“어제 허락했잖습니까.”“허락 안 했으면 안 봤을 거예요?”이번에는 도현이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8화. 두 번째 장

    김치볶음밥이 완성될 때까지 도현은 그림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그게 오히려 서윤을 신경 쓰이게 했다.계란프라이를 밥 위에 올리던 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안 궁금해요?”“궁금합니다.”“근데 왜 안 물어봐.”“기다리라고 했잖습니까.”서윤이 도현을 힐끗 봤다.“말 잘 듣네.”“보여줄 거죠?”“오늘 밤.”“그럼 기다립니다.”“진짜 아무것도 안 물어볼 거예요?”“힌트 주고 싶습니까?”“아니.”“그럼 안 묻겠습니다.”서윤은 입술을 삐죽였다.자신이 비밀로 하겠다고 해놓고 정작 도현이 순순히 기다리니 재미가 없었다.“치.”“왜 또.”“아무것도 아니에요.”도현이 웃었다.“한 총괄님이 상당히 복잡하군요.”서윤이 바로 그를 노려봤다.“집에서 그거 금지.”“알겠습니다.”“벌점.”“그런 것도 있었습니까.”“방금 생겼어요.”“벌점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서윤은 잠깐 고민했다.“오늘 그림 보는 시간 늦어져요.”“그건 곤란한데.”그제야 도현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서윤이 만족스럽게 접시를 내밀었다.“그러니까 잘해요.”식사를 마친 뒤 둘은 소파에 앉았다.도현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서윤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화면 내용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작업방에 있는 스케치북이 계속 생각났다.결국 서윤이 먼저 일어났다.“기다려요.”도현이 시계를 봤다.“벌써 밤입니까.”“마음 바뀌기 전에 보여주려고.”“마음이 왜 바뀝니까.”“좀 부끄러워서.”서윤은 작업방으로 들어갔다.잠시 뒤 새 스케치북을 등 뒤로 숨긴 채 나왔다.도현이 웃었다.“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해야 돼요.”서윤은 그의 앞에 섰다.“조건 있어요.”“말해보십시오.”“보고 바로 놀리기 없기.”“네.”“웃기도 없기.”“그림 보고 웃으면 안 됩니까.”“응.”“어려운데.”“그럼 안 보여줘.”“알겠습니다. 안 웃겠습니다.”서윤은 여전히 망설였다.“그리고.”“또 있습니까.”“왜 그렸냐고 바로 묻지 말기.”도현이 눈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7화. 첫 장의 주인

    다음 날 아침.서윤이 눈을 뜬 건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이었다.옆자리를 확인했다.도현은 아직 자고 있었다.서윤은 가만히 누운 채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어젯밤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생각났다.내일 또 봐야 그리지.그때는 그냥 한 말이었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리고 싶었다.회사에서의 단정한 얼굴도 아니고, 일부러 골라 앉힌 모습도 아닌 지금.잠이 덜 깬 얼굴.베개에 눌린 머리.이불 밖으로 나온 한쪽 팔.서윤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거실 식탁 위에는 어제 산 새 스케치북이 그대로 있었다.첫 장.서윤이 보고 싶은 것들.그리고 그 아래 자신이 쓴 문장.첫 번째는 차도현.서윤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침실로 돌아왔다.침대 옆 바닥에 앉았다.그리고 조용히 그리기 시작했다.몇 번 선을 잘못 그었다.지웠다.다시 그렸다.머리카락이 생각보다 어려웠다.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상한데.”작게 중얼거린 순간.“뭐가 말입니까.”서윤의 손이 멈췄다.침대 위에서 도현이 눈을 뜨고 있었다.“깼어요?”“방금.”도현의 시선이 스케치북으로 내려갔다.“몰래 그리고 있었습니까.”“몰래까지는 아니고.”“자는 사람 앞에서 조용히 그리는 게 몰래 아닙니까.”서윤이 스케치북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아직 보지 마요.”“왜.”“망했어.”도현이 몸을 일으켰다.“보여주십시오.”“싫어요.”“첫 장 저라면서요.”“그러니까 더 싫어.”서윤은 스케치북을 뒤로 숨겼다.도현이 침대 끝으로 다가왔다.“얼마나 이상하게 그렸길래.”“안 이상해.”“방금 망했다면서.”“그 정도는 아니야.”“그럼 보여주십시오.”“싫어.”서윤이 뒤로 물러났다.도현이 결국 웃었다.“알겠습니다.”너무 쉽게 포기했다.서윤이 오히려 의심스럽게 바라봤다.“진짜?”“네.”도현은 침대에서 내려왔다.“완성하면 보여주십시오.”그리고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서윤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다가 스케치북을 다시 펼쳤다.“……이렇게 쉽게 간다고?”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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