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한결은 구급차 내부의 비릿한 소독약 냄새와 기계적인 환기 장치 소음을 분리해 들으려 애썼다. 바닥에 고정된 들것의 쇠붙이가 서늘하게 등을 타고 올라왔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김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는 이미 아득한 기억의 저편처럼 멀어졌다. 지금 그를 둘러싼 공기는 구급차 특유의 긴박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몰아넣은 맹수들의 우리처럼, 희박하고 날카로운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요원들의 군화가 바닥을 울릴 때마다 그 진동이 흉터 칩을 자극했다. 손목 아래에서 맥박이 아닌, 시스템의 신호가 박동하는 것만 같았다.
"대상자 안정 수치 42퍼센트. 뇌파 동기화가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요원 중 하나가 홀로그램 단말기를 조작하며 무미건조하게 보고했다. 그들은 한결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한결은 '영겁의 틈'이라는 공허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데이터가 담긴 귀중한 그릇에 불과했다. 한결은 눈을 감은 채 뇌리에 스친 잔상들을 억지로 갈무리했다. 틈에서 보았던 수만 가지의 죽음과 그보다 더 잔혹했던 행복의 파편들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고 있었다. 관리국, 인간의 기억을 수확하고 그 부산물로 영생을 설계하는 거대한 도살장이었다.
요원 하나가 한결의 어깨를 거칠게 낚아채듯 일으켜 세웠다. 한결은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들의 움직임을 계산했다. 몸은 구속되어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틈의 영겁 속에서 단련된 상태였다. 그는 의도적으로 호흡을 느리게 조절하며 뇌파의 진폭을 위장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뇌 안에 잠들어 있는 정보의 가치를 완벽히 파악했다면, 지금쯤 벌써 뇌를 해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신중했다. 한결이 틈에서 가져온 '무언가'가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열쇠임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구급차의 문이 열리고 들이닥친 것은 차가운 밤공기가 아닌, 인공적인 환기 시스템의 건조한 바람이었다. 지하 주차장의 형광등 불빛이 한결의 망막을 찔렀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붉은색 타일로 장식된 관리국 본부의 로비는 마치 거대한 심장의 혈관처럼 붉고 기괴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방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는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결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추적했다. 한결은 손목에 박힌 흉터 칩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억지스러운 걸음을 옮겼다.
심문실로 향하는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복도 양옆으로는 투명한 유리관 속에 갇힌 실험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눈을 뜬 채로 강제로 기억을 추출당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비명은 뇌파 신호로 변환되어 벽면의 모니터를 타고 실시간 그래프로 흐르고 있었다. 한결은 그 참혹한 광경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들이 훔쳐간 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첫사랑,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찬란했던 여름날의 오후 같은 인간의 영혼이었다.
"강한결 구조사, 아니, 이제는 실험체 001번이라고 불러야겠군."
복도 끝에서 최진혁 국장이 나타났다. 그는 한결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완벽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감정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함이 서려 있었다. 최진혁의 뒤를 따르는 요원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국장은 한결의 손목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가 매일 복용한다는 그 푸른 알약의 기운 때문인지, 그의 눈동자는 마치 시스템의 중앙 연산 장치처럼 차갑게 번들거렸다. 한결은 그를 향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모든 계산은 끝났다.
"국장님, 당신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기억은 그저 0과 1로 치환되는 숫자가 아닙니다."
한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의지는 서늘할 정도로 명확했다. 최진혁은 비웃음을 흘리며 한결에게 다가왔다. "숫자라면 어떠한가. 그것이 인류의 진보를 앞당긴다면, 개인의 기억 따위는 희생해도 좋지 않은가. 자네는 틈에서 무려 7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지. 그 시간 동안 축적된 자네의 행복 데이터는, 우리 시스템을 다음 단계로 진화시킬 유일한 연료다. 순순히 내놓는다면 고통은 최소화해주지."
최진혁의 손짓에 요원들이 한결을 의자에 결박했다. 머리 위로 수많은 전극이 달린 헬멧이 천천히 내려왔다. 한결은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헬멧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닿는 순간, 그는 흉터 칩에 숨겨둔 마스터 키를 활성화할 준비를 마쳤다. 시스템의 깊은 곳으로 접속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틈에서 겪은 지옥보다 더한 고통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데이터로 변환하려는 관리국의 시도가 오히려 그들의 시스템을 마비시킬 바이러스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행복 데이터라, 참으로 예쁜 이름이군요."
한결이 전극에 머리가 고정되는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당신들은 모릅니다. 내가 틈에서 본 것은 행복이 아니라, 당신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시스템의 파멸 그 자체라는 것을 말이죠. 영겁의 시간 동안 나는 당신들의 추악한 본질을 학습했습니다. 시스템은 완벽할수록 무너지기 쉽죠. 가장 작은 틈새만 공략하면, 그 거대한 데이터의 성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겁니다. 이제 당신들의 그 오만한 통제권도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모니터의 레버를 당겼다. "지껄일 시간은 끝났다. 데이터 추출을 시작한다. 뇌파 동기화 1단계, 심층 기억 섹터에 접속하라." 기계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한결의 머릿속으로 수만 볼트의 전기 신호가 쏟아져 들어왔다.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게 만드는 동기화 고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휩쓸었다. 하지만 한결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그 고통 속에서 오히려 시스템의 핵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한결의 시야가 붉게 점멸했다. 관리국 내부의 보안망이 복잡한 암호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지우가 남겨준 통로, 틈에서 보았던 시스템의 설계도, 그리고 자신의 흉터 칩에 저장된 코드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고통은 이제 감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데이터의 흐름을 읽는 감각 기관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관리국장인 최진혁은 자신이 사냥감을 가두었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사냥꾼이 스스로 덫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덫을 해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데이터 추출기가 돌아가는 소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최진혁은 모니터에 떠오르는 파동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결의 뇌파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더 깊이 들어가. 그 행복의 정수를 남김없이 끄집어내라." 하지만 모니터의 수치는 이상하리만치 기괴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데이터의 흐름이 관리국 서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리국 시스템의 핵심부를 향해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결의 뇌가 서버의 방화벽을 갉아먹는 바이러스가 되고 있었다.
한결은 턱을 악물며 자신의 의식을 시스템 내부로 밀어 넣었다. 흉터 칩이 미친 듯이 발열하며 살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도리어 입꼬리를 비틀어 최진혁을 조소했다. "행복은 당신들의 상품이 아니야. 이것은 내 영혼의 파편이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관리국 본부 전체의 전등이 일제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을 상징하는 중앙 서버의 붉은 불빛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진짜 복수극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최진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완벽한 통제 아래 놓여 있어야 할 데이터의 파동이 비정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모니터 밖으로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는 책상을 탁 내리치며 옆에 서 있던 박철웅에게 고함을 질렀다. “저놈의 뇌파를 당장 강제 종료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보안팀은 지금 뭘 하고 있지? 시스템의 핵심부로 향하는 데이터 흐름이 저항군의 백도어와 일치해. 강한결, 네놈이 어떻게 우리 내부망의 주소를 알고 있는 거지? 이건 단순한 추출이 아니야, 이건 침투다!” 박철웅은 당황하며 통제실의 레버를 당겼지만, 서버는 응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스템 전체의 냉각 장치가 굉음을 내며 멈췄고, 실내는 삽시간에 불쾌한 열기로 가득 찼다. 박철웅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강제로 연결된 케이블을 뽑으려 했으나, 흉터 칩에서 뿜어져 나온 고압 전류가 그의 팔을 튕겨냈다.
한결은 눈을 감은 채 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영겁의 기억들을 감각했다. 타인의 죽음, 짓밟힌 일상, 그리고 관리국이 강제로 약탈해간 행복의 조각들이 유리 파편처럼 뇌리를 찔러왔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었다. 한결은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날카롭게 벼려 시스템의 혈관 속으로 쑤셔 넣었다. 닥터 린이 설계한 완벽한 보안 방벽이 한결의 의식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틈 속에서 보았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공허의 바다를 현실의 서버에 구현하고 있었다. 이곳의 시간은 느려지고, 저곳의 데이터는 폭주한다. 한결은 관리국의 모든 정보를 0과 1의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치환하여 서버의 중추로 쏟아부었다. 그가 겪었던 1분의 영겁이, 이제 관리국 전체에 역으로 투사되고 있었다.
박철웅은 권총을 뽑아 들고 한결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당장 멈추지 않으면 네 뇌를 물리적으로 파괴하겠다. 네 녀석이 죽으면 이 데이터의 주인은 누가 되지? 관리국의 영생은 네 뇌 속에 저장된 기억 없이는 완성될 수 없어. 국장님, 지금 당장 저 녀석을 사살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버의 손실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데이터의 40퍼센트가 손상되었습니다. 저놈은 처음부터 추출을 방해할 작정으로 들어온 겁니다. 한결은 우리에게 순순히 잡혀준 게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가 거대한 인질이자 바이러스였던 겁니다!” 박철웅의 목소리에는 이제 살의를 넘어선 공포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한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야에는 이제 관리국 지하 층층이 숨겨진 비밀 시설의 설계도가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최진혁은 서류를 팽개치고 한결의 의자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한결의 턱을 거칠게 낚아채며 그의 붉게 충혈된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안다. 죽음 직전에 본 그 영겁의 틈, 그곳에서 네가 무엇을 얻었는지. 하지만 강한결, 잊지 마라. 인간은 기억을 삭제당하지 않으면 그 고통에 미쳐버리는 존재다. 우리가 네 행복을 가져가는 건 너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 더럽고 추잡한 생의 기억을 우리가 정화해주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네가 감히 그 시스템을 부수겠다고? 네 손에 묻은 피는 어쩔 셈이지? 네가 이 데이터를 파괴하는 순간, 이곳에 저장된 수천 명의 영혼도 함께 소멸할 것이다. 너는 지금 해방자가 아니라 학살자가 되려는 거야.” 국장의 말은 독설이었으나, 한결은 그 속에서 희미하게 떨리는 최진혁의 불안을 읽어냈다.
한결은 억지로 눈을 뜨며 국장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지옥을 견뎌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서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당신들이 말하는 구원은 포장이었을 뿐이지. 기억을 데이터화해서 사고파는 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인간의 존엄을 논하는 거지? 당신들은 행복을 도둑질해 영생이라는 이름의 사치품을 만들고 있을 뿐이야. 수천 명의 영혼이 소멸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당신들의 통제권이 사라지는 게 두려운 거겠지. 나를 학살자라고 불러도 좋다. 이 더러운 시스템 안에서 영원히 박제되어 있느니, 차라리 모두가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인 결말일 테니까.” 한결의 손목에 박힌 흉터 칩이 희번득한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은 방 안의 모든 모니터를 덮쳤고, 서버의 중추에서 폭발적인 오류 메시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철웅이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알은 허공을 갈랐다. 한결이 시스템의 조작 권한을 장악해 자기장의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총알은 궤도를 잃고 벽면에 박혔다. 통제실의 조명은 이제 극도로 낮아져, 마치 심해의 어둠 속에 잠긴 듯했다. 최진혁은 비명을 지르듯 다시 서버실로 달려가 명령어를 입력하려 했다. 하지만 화면에 떠오른 것은 이제 관리국의 로고가 아니었다. 한결이 틈 속에서 보았던, 이름 없는 죽은 자들의 이름이 끝없이 흐르고 있었다. 관리국이 삭제했던 사람들의 기억, 그들이 빼앗아간 행복의 파편들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서버를 잠식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하던 동기화 장치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실내는 타는 듯한 냄새와 비릿한 금속성 공기로 가득 찼다.
닥터 린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국장님, 뇌파 동기화가 역전되었습니다! 틈의 내부 데이터가 현실로 범람하고 있습니다. 강한결의 의식이 물리적 한계를 넘어 시스템 자체와 융합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해킹이 아닙니다. 시스템의 논리 구조가 붕괴하고 있어요! 당장 강한결과 연결된 모든 장치를 분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관리국 전체의 뇌파망이 파괴될 겁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한결은 자신의 의식을 시스템의 심장부에 박아 넣었다. 흉터 칩을 타고 흐르는 전류는 이제 한결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리국이 수십 년간 쌓아온 모든 데이터의 총합이었다. 한결은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희미하게 지워가며, 시스템의 뿌리를 하나하나 끊어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고통의 공유가 아니라, 고통의 해방이었다.
박철웅은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이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다. 그는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통신 장비를 만졌지만, 그조차도 지직거리는 잡음만 낼 뿐이었다. 최진혁은 모니터를 붙잡고 발악했다. “안 돼! 그 데이터들은 내 인생 그 자체야! 수십 년을 들여 만든 내 왕국이라고!” 한결은 차갑게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서지우가 남겨준 마지막 코드가 실행되고 있었다. 마스터 키가 발동되는 순간, 관리국의 모든 기억 추출 기록이 세상 밖으로 노출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왜 이렇게 공허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한결은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죽음보다 더한 지옥을 견뎠던 기억들이 이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연료가 되어 타올랐다.
서지우가 해킹을 시작했을 때 계획했던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결말이었다. 한결은 단순히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것을 넘어, 그것의 존재 이유였던 '기억의 상품화'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모든 기억 데이터는 암호화되어 관리국조차 접근할 수 없는 심연의 바다로 가라앉았다. 더 이상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 부를 쌓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지막으로 최진혁의 얼굴을 보았다. 국장의 얼굴은 공포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완벽한 통제 국가를 꿈꾸던 자의 최후는 처참했다. 한결은 자신의 뇌 속에서 시스템의 마지막 방화벽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멈출 것이다. 지독했던 영겁의 시간도, 관리국의 오만한 영생도, 이 방의 소음도.
최진혁이 비틀거리며 한결의 목을 졸랐다. “이 미친 새끼! 너는 네 기억도 함께 잃게 될 거야! 그 데이터의 주인은 너 자신이기도 해! 너의 정체성마저 파괴하고 싶은 거냐? 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다! 이름도, 과거도, 그 어떤 감정도 남지 않는 무(無)로 돌아갈 거라고!” 한결은 목이 졸리는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손은 이미 흉터 칩을 꽉 쥐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명령어를 입력할 시간이었다. 한결의 머릿속에 박혀있던 흉터 칩이 화염에 휩싸인 듯 뜨겁게 타올랐다. 관리국 본부의 모든 서버실이 일제히 정지했다. 데이터의 흐름이 끊기자, 실내를 가득 채웠던 인공적인 소음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정적이, 깊고 어두운 정적이 방 안을 지배했다.
박철웅은 총을 떨어뜨렸고, 최진혁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멈춰버린 모니터를 응시했다. 한결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명료했다. 그는 자신의 뇌 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행복의 데이터, 그 영롱하고도 슬픈 기억의 조각을 시스템의 심장부에 쐐기처럼 박아 넣었다. 이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었다. 관리국이 그토록 갈망했던 완벽한 데이터의 마지막은,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는 파괴적 자정 작용이었다. 이제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기억은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엮여 있는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한결은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멈춘 이 순간, 그는 진정한 안식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한결의 뇌파가 정지 신호를 보냈다. 흉터 칩이 마지막으로 강한 섬광을 내뿜으며 숯처럼 검게 타들어 갔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덮고 있던 흉터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지우의 해킹, 자신의 헌신, 그리고 지옥 같았던 틈에서의 영겁. 그 모든 것이 이제는 과거의 잔상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관리국의 중앙 서버는 연기를 내뿜으며 완전히 침묵했다. 최진혁이 절망적인 신음을 내뱉었지만, 한결은 더 이상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뇌 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말을 나직하게 읊조렸다. 기억은 상품이 아니야. 내 영혼의 파편이지.
첫눈은 12월 22일 밤에 왔다.자정이 조금 지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철웅이었다. 문자 대신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병실 창가,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 사이를 비스듬히 내리는 눈. 그리고 사진 앞쪽에 누군가의 손. 앙상한 손가락, 누런 피부. 새끼손가락 손톱 끝에 주황색이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 가는 초승달. 거의 다 자라 나가서, 손톱깎이로 한 번만 깎으면 없어질 만큼.사진 아래 한 줄이 따라왔다.남았다.나는 옥탑방 창문을 열었다. 눈이 빨랫줄 위에 얇게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소원 뭐래요. 답은 한참 뒤에 왔다. 안 알려 준대. 말하면 안 이루어진대.나는 그날 밤 무전을 켜지 않고 잤다. 1년 만에 처음이었다.그 뒤로 2주가 흘렀다. 그 2주 동안 세상은 빠르게 움직였다.연말 뉴스는 올해의 말을 뽑았다. 1위는 마지막 1분이었다. 보험사 네 곳이 실손 보험에 라스트 미닛 특약을 기본으로 끼워 넣었다. 새로 보험에 드는 사람은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패치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대형 병원 스무 곳이 호스피스 병동 전체에 도입했다. 요양 시설 단체 가입이 줄을 이었다. 1월 첫 주, 안식은 가입자 이백만 명 돌파를 발표했다. 11월에 삼십만이었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였다.지하철 광고판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약국 계산대 옆 전단지에서 하얀 바탕의 노인의 손이 나를 따라왔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는데, 계산대 아르바이트생의 귀 뒤에 흰 동그라미가 붙어 있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그걸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봉투 필요하세요, 하고 두 번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나오다가 돌아서서 물었다. 그거, 왜 붙였어요? 아르바이트생은 귀 뒤를 만지며 웃었다. 보험 들었더니 그냥 왔어요. 떼기 귀찮아서요. 그리고 이거 있으면 좀 덜 무섭잖아요, 오토바이 탈 때. 나는 고개를 끄덕
나흘 뒤 밤, 철웅에게서 전화가 왔다."나와."그 한마디였다. 어디냐고 묻자 성진대 후문 앞이라고 했다. 포장마차. 목소리가 이미 조금 풀려 있었다.밤 열 시 반, 후문 건너편 골목 입구에 주황색 비닐 천막이 하나 서 있었다. 천막 안에 백열등 두 개, 플라스틱 탁자 세 개. 어묵 냄비에서 김이 올라 비닐 벽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손님은 철웅 하나였다. 그는 구석 탁자에 앉아 지팡이를 탁자 모서리에 기대 놓고, 소주병 두 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비어 있었다."어머님은요?""자. 오늘 저녁에 한 번 숨이 이상해서 다들 뛰어왔는데, 돌아왔어. 의사가 오늘은 넘긴대." 그가 잔을 비웠다. "미경이가 옆에 있어. 나가서 바람 좀 쐬라고 쫓아냈어."나는 맞은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기우뚱했다. 포장마차 주인 할머니가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떠서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술은 안 마신다고 했고, 할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어묵 꼬치 두 개를 국물 옆에 얹었다."지팡이 양반이 매일 여기서 한 병씩 해." 할머니가 철웅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두 병째야. 아가씨가 좀 말려."철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냄비 앞으로 돌아가 어묵을 꼬치에 꿰기 시작했다."이만 명." 철웅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 말이 머리에서 안 나가."나는 국물을 불었다. 나흘 전 가족실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만 명이 서로 옆에 서서, 서로 모르고."아무도 모르잖아. 그 사람들이 거기 있는 거." 그가 소주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가족들은 편히 가셨다고 생각하고, 안식은 이만 명 돌파라고 광고하고. 근데 그 사람들은 그 골목에 서 있어. 아무도 모르는 데에. 아무도 안 찾는 데에.""……네.""나 그런 사람들 옮긴 적 있어.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주치의가 상담실 문을 열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제 입은 스웨터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고, 원탁 위에는 식은 커피 두 잔과 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벽의 뇌 단면 그림 옆에 누군가 모니터 기록을 출력한 긴 종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초록 선을 검은 잉크로 옮긴 띠가 벽을 가로질러 문 쪽까지 이어져 있었다."밤새 계셨어요?""집에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잠이 안 와서요." 그가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두 가지를 말씀드려야 합니다."나는 앉았다. 그는 수첩을 펼쳤다. 어제 적은 시각들이 빽빽했다."첫째, 어제 그 새 파형이요. 밤 열한 시 이십 분쯤 마지막으로 나오고 멈췄습니다. 오늘 새벽엔 없었어요." 그는 수첩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런데 시각을 늘어놓고 보니까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네 시 오십이 분부터 여덟 시까지, 그러니까 정하윤 씨가 병실에 계시던 동안에 제일 촘촘하게 나왔어요. 가시는 뒤로는 점점 드물어지고요.""제가 있어서요?""모릅니다. 우연일 수도 있어요. 하루치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런데 두 번째가 더 큽니다."그는 벽에 붙은 긴 종이 앞으로 갔다."어젯밤에 그 새 파형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확실히 하려고, 1년 치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이 모니터에 분석 기능이 있어요. 파형을 쪼개서 겹쳐 있는 성분을 따로 보여 주는 기능입니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서 한 번도 안 켰어요. 선 모양이 1년 동안 똑같았으니까."그가 종이의 왼쪽 끝을 가리켰다. 거기서는 선이 가늘었다."이게 작년 11월, 강한결 씨가 처음 오셨을 때입니다. 선 하나예요. 깨끗한 한 줄." 그는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선이 조금 굵어져 있었다. 눈으로 보면 여전
다음 주 목요일 아침, 나는 은평 시장에서 귤을 샀다.트럭 것 말고 시장 것으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과일 가게 확성기는 여전히 귤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바구니를 샀다. 두 개가 아니라 스무 개쯤 되는 귤이 검은 봉지 안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 멈췄다. 파란 천막 아래에서 문순자 할머니가 얼음을 깨고 있었다. 두꺼운 고무장갑, 목까지 올린 털 조끼, 머리에 두른 수건. 쇠꼬챙이로 얼음 덩어리를 내리칠 때마다 작은 조각이 튀어 할머니의 앞치마에 붙었다. 며느리가 옆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랬잖아요.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할머니가 먼저 나를 보았다. 쇠꼬챙이를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귤 거기서 샀어? 잘했네. 거기가 싸.""할머니, 얼음 깨셔도 돼요?""이거 안 깨면 내가 죽어." 할머니가 얼음을 한 번 더 내리쳤다. "병원에서 누워 있으니까 자꾸 그 하얀 게 생각나. 여기서 이거 깨고 있으면 안 나. 손이 시리고, 비린내 나고, 저 여편네가 잔소리하고. 그래야 여기가 내 데인 줄 알지."며느리가 한숨을 쉬었고, 할머니는 웃었다. 이 몇 개 빠진 입이었다."오늘은 어디 가?""아빠 보러요. 요양원."할머니가 쇠꼬챙이를 내려놓고 나를 오래 보았다."잘 생각했네. 가서 손 한번 잡아 드려. 늙으면 그게 제일 좋아."솔밭요양원 2층 거실에 들어섰을 때, 창가 끝 의자 옆에 엄마가 서 있었다.1년 사이에 엄마는 작아져 있었다. 머리가 반쯤 하얘졌고, 등이 조금 굽었다. 회색 누빔 점퍼를 입고, 손에는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온병을 창턱에 내려놓고 걸어와, 내 팔뚝을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아프지 않게."살 빠졌네.
이송 병원은 성진대학병원이었다.무전에서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사십 분, 서울까지 한 시간 반. 버스 안에서 나는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이어폰 속 무전은 이미 다른 출동으로 넘어가 있었다.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고속도로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다. 하나, 둘, 셋, 넷.안식의 남자는 패치가 작동하면 자동으로 연락이 간다고 했다. 새벽 두 시에도 머리를 빗고 봉투를 챙겨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패치는 지퍼 백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비공개 동의서에는 서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섬망입니다. 흔한 일입니다.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철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그가 받았다."왜.""아저씨 지금 병원이에요?""어. 엄마 옆에.""성진대 응급실에 방금 소생자가 들어왔어요. 라스트 미닛. 스물네 살이래요. 오토바이."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병실의 기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그래서.""제가 한 시간 반 뒤에 도착해요. 그 전에 안식 사람들이 먼저 올 거예요. 그 사람 어디로 옮겨지는지만이라도 알아봐 줄 수 있어요?"철웅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전화를 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 귀 뒤에는 그 패치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 하늘이 자기 어머니의 하늘보다 낫다고 말한 사람이었다."구급 7이면 서교 쪽 애들이네." 그가 말했다. "알았어."전화가 끊겼다.아홉 시 반, 나는 성진대학병원 본관 로비에 도착했다. 철웅이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회색 스웨터 위에 검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지팡이가 무릎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구급 7 반장이 내 후배야." 그가 먼저 말했다. "애 이름은 오재민. 배달하다가 합정 사거리에서 혼
마을버스는 정류장 앞에 섰다가, 아무도 타지 않자 문을 닫았다.기사가 창밖으로 나를 한 번 보았다. 나는 벤치에 앉은 채 손만 들었다. 괜찮다는 뜻인지, 가라는 뜻인지 나도 몰랐다. 버스가 짧게 경적을 울리고 떠났다. 산모퉁이를 돌아 불빛이 사라졌다.이어폰 속에서 무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송 준비. 들것. 잡음. 산속이라 신호가 자꾸 끊겼다. 스물넷. 그 숫자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는지 들어야 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귀 가까이 들었다. 지지직. 목소리의 반쯤만 들어왔다가 흩어졌다.정류장 기둥의 시간표를 보았다. 다음 버스는 사십 분 뒤였다.해는 이미 산 뒤로 넘어가 있었다. 주황색이던 하늘이 잿빛으로 식어 갔다. 정류장 지붕 밑 형광등이 깜박이다 켜졌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발끝이 시렸다. 벤치 끝에 누가 두고 간 목장갑 한 짝이 얼어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손바닥 쪽 빨간 고무가 반쯤 닳아 있었다. 밭일을 하던 누군가가 버스를 타면서 떨어뜨렸을 것이다. 나는 그걸 한참 보았다. 다른 할 일이 없었다.십 분쯤 지났을 때 산길 위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내려왔다. 흰 승합차였다. 옆구리에 초록 글씨로 솔밭요양원. 차가 정류장 앞에 서더니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분홍 조끼가 보였다."따님! 아직 계셨네. 버스 놓쳤어요?"면회 신청서를 받던 요양보호사였다. 그녀는 비상등을 켜 두고 차에서 내렸다. 한 손에 종이컵 두 개를 포개 들고, 겨드랑이에 무언가를 끼고 있었다."병원 가는 어르신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이라서요. 원장님 차 빌렸어요. 저녁 배식 전에 올라가야 돼서 오래는 못 있어요."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자판기 거예요. 율무차."나는 컵을 받았다. 손바닥이 녹았다. 달고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아까 어머님한테 전화드렸어요. 따님 오셨다고." 그녀가 자기 컵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