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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or: 매화야담
뱀은 크지 않았지만 생김새가 몹시 사나웠다. 꼿꼿이 치켜든 머리는 삼각형이었고, 새까만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뜩였으며, 둥글게 말린 꼬리 끝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붉은꼬리 죽엽청이다!

임하연은 숨을 삼켰다. 맹독을 품은 뱀이지만 약재로는 버릴 것 하나 없는 귀한 것이기도 했다. 의학을 전공한 임하연에게는 더없이 익숙했다. 직접 죽엽청을 해부해 담낭을 꺼낸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살아 있는 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해독 혈청도 없는 시대에 저 뱀에게 한 번 물렸다가는 그대로 저승행이었다.

임하연은 몸을 지킬 만한 막대기를 찾으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그만 채의를 깨우고 말았다. 문가에서 고개를 치켜든 뱀을 발견한 채의는 목청껏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독사가 순식간에 몸을 튕겨 임하연을 향해 덮쳐 들었다.

임하연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잘 있어라, 임씨 집안. 이 몸은 오늘 밤 저세상으로 떠난다!

절체절명의 순간, 헛간 밖에서 비수 하나가 날아들었다. 탁, 짧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뱀이 벽에 박혔다.

어느새 나무문 밖에 임태겸이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풀어 헤친 채였고, 웃옷이라고는 급히 걸친 겉옷 한 벌뿐이었다. 미처 여미지도 못한 옷자락이 밤바람에 벌어지자, 군살 없이 탄탄한 허리가 드러났다. 단단하게 잡힌 근육마다 힘이 배어 있었다.

임하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얼른 문살을 움켜쥐고 울먹였다.

“오라버니, 조금만 늦게 오셨으면 저 죽을 뻔했어요!”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놀라고 겁먹은 표정까지. 어느 하나 과하지 않게, 딱 알맞았다.

임태겸은 빛을 등지고 서 있어 표정을 읽기 어려웠지만, 목소리에는 조금 전보다 다급한 기색이 묻어났다.

“왕길, 어서 문을 열어라.”

왕길이 다가와 자물쇠를 풀자마자 임하연은 밖으로 달려 나가 임태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오라버니, 저 뱀 너무 무서워요. 저 정말 무서웠어요…….”

너무 기세 좋게 달려든 탓에 손이 벌어진 옷자락 안으로 들어가 그의 맨허리에 닿았다.

임하연은 속으로 감탄했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네. 복근까지 있어!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길이 닿자 임태겸의 가슴에 낯선 감각이 스쳤다. 시선을 내린 그의 눈에,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임하연의 얼굴이 들어왔다.

심청운을 볼 때와 거의 똑같은 표정이었다.

임태겸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손을 들어 임하연을 떼어 냈다.

한 걸음 휘청거린 임하연이 붉어진 눈을 깜빡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릴 때는 오라버니도 저를 자주 안아 주셨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왜 저를 그렇게 피하세요? 오라버니께 저는 더 이상 여동생도 아닌 건가요?”

그동안 그녀가 벌인 일들을 떠올린 임태겸은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네가 얌전히 지낸다면, 여전히 내 여동생일 것이다.”

임하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아직 희망이 있어!

조금 더 밀어붙이려는 순간, 멀리서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두 사람 앞에 이르렀다.

앞장선 여인은 마흔 언저리로 보였다.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인상이 당당해, 집안을 이끄는 안주인의 위엄이 느껴졌다. 다만 걸음이 조금 불안정했고, 안색에도 병색이 어려 있었다.

그 곁에는 임하연과 비슷한 또래의 여인이 서 있었다. 몸매가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화려해 제법 눈길을 끌었다.

저 여자가 소설의 여주인공, 임서월인가 보네.

임서월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살갑게 임하연의 손을 잡았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손은 왜 이렇게 차가워요?”

말과 달리 눈에는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그 눈을 들여다보던 임하연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임서월은 이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남강에서 살았다.

그곳에는 온갖 뱀과 벌레가 들끓었다. 특히 붉은꼬리 죽엽청이 많았고…….

임씨 부인은 벌써부터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한밤중에 무슨 소란이냐? 임아연, 갈수록 버릇이 없어지는구나.”

채의가 사실대로 답했다.

“비명을 지른 건 저예요. 여기…… 뱀이 있어서요.”

임씨 부인은 임하연이 또 시녀를 시켜 제 잘못을 떠넘기는 줄 알고 곧바로 호통을 쳤다.

“입 다물어라! 여기는 도성이다. 뱀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

“부인, 정말 뱀이 있었습니다.”

왕길이 축 늘어진 뱀을 들고 나왔다. 임하연은 곧장 임태겸의 등 뒤로 숨으며 잔뜩 겁먹은 시늉을 했다.

달빛이 뱀의 꼬리 끝을 비추자 임태겸의 낯빛이 달라졌다.

“붉은꼬리 죽엽청!”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임씨 부인은 짧게 비명을 지르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날카롭게 임하연을 몰아붙였다.

“독사가 아니냐! 임아연, 네가 이런 위험한 것을 집 안으로 들여왔단 말이냐? 누구라도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

임하연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이건 해도 너무했다. 십수 년이나 원래 주인을 길렀으니,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사람이 한번 눈이 멀면 머리까지 장식품이 되어 버리는 모양이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뱀을 무서워했잖아요. 감히 저런 걸 만질 수나 있겠어요? 어디서 들어왔는지도 몰라요. 갑자기 헛간 안으로 들어와 저를 물려고 했어요. 오라버니께서 구해 주지 않으셨으면 오늘 정말 죽었을 거예요.”

임하연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몸은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처럼 끊임없이 떨렸다.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임씨 부인은 또 엄살을 부린다고 여길 뿐이었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네 말이 모두 사실이어야 할 게다. 거짓이라면 모녀의 정을 봐줄 생각은 없으니. 채의, 어서 네 아가씨를 데려가거라.”

채의가 서둘러 달려와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손이 팔에 닿기도 전에 임하연의 몸이 기울더니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서늘한 손이 가느다란 허리를 받쳐 들었다.

“임아연…… 어머니, 제가 먼저 데려다주겠습니다.”

귓가에 임태겸의 목소리가 들리자 임하연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사실 발을 살짝 접질렸을 뿐, 정신을 잃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 보기로 했다. 임하연은 숨을 고르게 가다듬고 계속 기절한 척했다.

임서월이 뱀을 힐끗 보더니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께서 언니를 오해하신 것 같아요. 언니가 평소에 망나니 공자들과 어울리기는 해도, 정말 사람을 해칠 생각까지 했겠어요? 저 죽엽청도 뱀 시장에서 빠져나온 걸지도 몰라요. 장사를 하는 집안에서는 상선으로 뱀을 들여오는 걸 좋아한다잖아요. 독이 강할수록 담낭의 약효도 좋다고요.”

“장사를 하는 집안이라…….”

임씨 부인의 낯빛이 조금 달라졌다.

유씨 가문은 황실에 물품을 납품하는 상인 집안이었다. 그 집 막내 공자와 임아연은 꽤 가깝게 지냈고…….

“어머니, 무슨 생각을 하세요?”

임서월이 다정하게 물었다.

임씨 부인은 이마를 짚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는 횃불을 더 밝혀 구석구석 살펴보거라. 혹시 다른 뱀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이런 일까지 어머니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추위도 잘 타시는데, 저희는 이만 들어가요.”

임서월은 살뜰하게 임씨 부인의 팔짱을 끼었다. 그러나 시선만은 임태겸의 품에 안겨 멀어지는 임하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눈 속으로 증오가 짙게 번졌다.

임씨 집안의 아가씨는 자신 하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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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30화

    임태겸은 시선을 거두고 담담히 말했다.“아니다. 네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줄은 몰랐구나. 글은 언제부터 배웠느냐?”임하연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사실 남몰래 배운 지 이 년쯤 됐어요. 그래도 비웃으시면 안 돼요. 책에 나온 이야기도 겨우 뜻만 짚어 가며 읽는 거지, 글자를 전부 아는 건 아니거든요.”그건 사실이었다. 한자는 획수가 많고 복잡해서, 임하연도 몇몇 글자는 앞뒤 문맥을 보고 짐작하며 읽어야 했다.“그럴 수 있지. 앞으로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붓으로 표시해 두거라. 내가 알려 주마.”말을 마친 임태겸이 다시 눈을 들었다.“그런데 아까 채의가 그러더구나. 밖에 나가 살고 싶다 했다지?”임하연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채의가 괜한 소리를 한 거예요.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집이 이렇게 좋은데 제가 왜 나가겠어요?”임태겸은 임하연의 얼굴을 잠시 살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뒷짐을 진 어깨 위로 맑은 달빛이 은빛 비단처럼 흘러내렸다. 훤칠한 몸을 감싸는 빛이 서늘하고도 고요했다.“집에 있는 것이 답답하면 가끔 나가 바람을 쐬어도 좋다. 다만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마라. 어머니 심기를 거슬러 또 책잡힐 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몸에 밴 냉랭한 분위기와 달리, 목소리는 꽤 부드러웠다.임하연은 뜻밖이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선뜻 짐작되지 않았다.“오라버니도…… 제가 이 집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짐짓 서운한 얼굴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허튼소리.”임태겸이 못마땅한 듯 돌아서더니, 예스러운 모양의 황동 열쇠 하나를 탁자 위에 던졌다.“영안가 끝자락에 작은 집이 있다. 문 앞에 백양나무 두 그루가 있고, ‘발묵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니 쉽게 찾을 게다.”임하연은 놀라 입을 벌렸다.이건…… 집을 쓰라는 뜻인가?눈빛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밤하늘의 별보다도 반짝이는 눈이었다.임태겸은 정말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오라버니가

  •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29화

    운방각으로 돌아오자 채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부인께서 먼저 잘해 주시는데, 아가씨는 왜 여전히 기분이 안 좋으세요?”임하연은 턱을 괸 채 대꾸했다.“이유 없이 잘해 주는 사람은 속셈부터 의심하라는 말도 못 들어 봤어?”잠시 임하연을 바라보던 채의가 뜻밖의 발견이라도 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런데 아가씨는 언제 그렇게 많이 배우셨어요? 노래도 지으시고, 어려운 말도 척척 하시잖아요. 언제 공부하신 거예요? 정말 대단하세요!”채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얼굴에는 감탄과 동경이 가득했다.임하연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대체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흘러가는 건데?“대단하면 뭐 해. 그걸로 배가 부르는 것도 아닌데.”겨우 허기만 달랜 배를 쓰다듬으며 임하연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만 더 이렇게 먹었다가는 저혈당으로 쓰러질 판이었다. 옛날 규수들의 허리가 한 줌밖에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죄다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 거였다.그렇다고 음식점에 가서 배불리 먹을 수도 없었다. 임아연의 악명은 도성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또 밖에서 눈에 띄게 돌아다녔다가는 여기저기서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했다.차라리 몰래 집 한 채를 사 두는 편이 낫겠다. 가끔 들러 제대로 된 식사도 하고, 나중에 임씨 가문을 정말 떠나게 되면 자신만의 보금자리로 삼을 수도 있으니까.“채의야, 도성에서는 집값이 비싸?”채의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자리 좋은 곳에 우리 저택만한 집을 장만하려면 팔구천 냥은 있어야 할 거예요. 그보다 더 비쌀 수도 있고요.”임하연은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비싼 대저택을 살 형편은 못 됐다.“외진 곳은? 그냥 평범한 살림집 말이야.”“그런 집은 훨씬 싸지요. 조용한 곳에 있는 작은 집이라면, 따로 마당이 딸려 있어도 팔십 냥에서 백 냥 정도면 살 수 있을 거예요.”“아, 그렇구나.”현대 돈으로 어림잡으면 400만 원쯤이었다. 그 정도면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그렇게 따져 보니, 임씨 가문은 생각보다 훨씬

  •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28화

    운방각으로 돌아온 임하연은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아이들에게는 이미 유재휘의 생김새와 특징까지 알려 두었다. 이제 유재휘와 심청운이 서로 물고 뜯게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설령 유재휘가 돈을 받아 오지 못하더라도, 심청운은 날마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노래를 듣고 견디지 못할 게 분명했다.어느 쪽이든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없었다.임하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햇볕을 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옛날의 생활은 참 단순하면서도 심심했다.방으로 들어가 한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임하연은 채의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앞채로 향했다.오솔길을 막 벗어나는데, 이복이 의원 한 명을 안내해 정청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임하연은 일부러 발소리를 죽이고 문가에 몸을 숨겼다. 안에서는 의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부인께서는 마음의 근심 때문에 몸이 상하신 겁니다. 크게 염려하실 일은 아니니, 마음을 편히 가지시면 머지않아 회복하실 것입니다.”임씨 부인은 임태겸을 가볍게 나무라는 눈으로 바라보았다.“내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태겸이가 영 마음을 놓지 못해서 말이지.”의원이 웃으며 거들었다.“임 대인께서 효성이 지극하셔서 그렇지요. 어머님께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급하실 수밖에요. 이런 효자를 두셨으니 부인께서는 참으로 복이 많으십니다.”칭찬에 임씨 부인의 눈가에 잡힌 웃음 주름이 한층 깊어졌다. 그녀는 임태겸을 곁눈질하며 슬쩍 말을 돌렸다.“그렇지요. 아들은 효성이 지극하고, 딸도 어미 마음을 살뜰히 헤아려 준답니다. 이제 떡두꺼비 같은 손자만 하나 있으면 되겠어요.”의원은 약상자를 챙기며 아첨을 이어 갔다.“소인이 도성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임 대인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큰일을 맡으신 데다 재주도 출중하시고, 용모 또한 훤칠하시니, 어느 집 규수가 국공부로 시집오든 조상님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지요.”임씨 부인은 그런 말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더욱 흡족해진 그녀는 곁의

  •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27화

    그 시각, 심청운은 근처 찻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이들 몇이 깡충깡충 뛰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에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저 아이들, 심 공자라고 부르는 것 같지 않느냐?”하인이 귀를 기울이더니 목을 움츠렸다.“도련님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만…… 썩 좋은 말은 아닌 듯합니다.”바로 옆에서 밀떡을 파는 장사꾼이 쉴 새 없이 손님을 부르는 통에, 심청운에게는 노랫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한 명 데려와서 물어보거라.”하인은 곧장 아이들을 뒤쫓아가 사탕 하나로 한 아이를 달랜 뒤, 심청운 앞으로 데려왔다.“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었니? 나한테도 들려주겠느냐?”심청운이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눈앞의 사내가 노래 속 심 공자인 줄 모르는 아이는 임하연에게 배운 노랫말을 그대로 읊었다.심청운은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유지했다.“얘야, 그 노래는 누가 가르쳐 주었니?”“유씨 성을 가진 공자님이요.”아이는 대답을 마치자 다시 깡충깡충 뛰어갔다.심청운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게 누구야. 청운 도련님 아니신가? 한참 찾아다녔잖아.”다가오는 사람을 확인한 심청운의 속이 불편해졌다.“유재휘?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백성들은 두 사람을 똑같이 망나니라 불렀지만, 실상은 꽤 달랐다.심청운은 풍류를 즐기고 돈을 물 쓰듯 쓰기는 해도, 양갓집 여인에게 함부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 도성에 온 뒤 몇 년 동안 그와 가까이 지낸 여인은 임아연뿐이었다.반면 유재휘는 악명이 자자했다. 상인들을 괴롭히고 시장을 제멋대로 휘어잡는 데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납치하는 등 못 하는 악행이 없었다. 뒤를 따르는 몇몇 앞잡이를 제외하면, 누구나 그를 보는 즉시 멀찍이 피했다.유재휘는 능글맞게 웃으며 심청운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임씨 가문의 큰소저 대신 볼일 좀 보러 왔지. 그동안 그 소저 돈을 꽤 많이 썼다며? 마음을 받아 줄 생각이 없으면 돈이라도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뒤따라온 하인들도

  •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26화

    “제가 여자를 납치하는 도적도 아니고, 흉악한 강도도 아닌데 무슨 나쁜 짓을 하겠어요? 어머니 마차가 돌아오는 걸 봤단 말이에요.”임하연은 응석 부리듯 가볍게 콧소리를 내고는 치맛자락을 들어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허둥지둥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임태겸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번졌다.이제는 제 말을 들을 줄도 알고, 성격도 한결 밝아졌다. 좋은 변화였다.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임씨 부인의 마차가 대문 앞에 도착했다. 임태겸은 얼른 다가가 어머니가 내리는 것을 부축했다.“오늘은 햇볕이 좋아 나들이하기에 알맞겠습니다. 몸은 좀 나아지셨습니까?”임씨 부인이 기분 좋은 얼굴로 답했다.“절의 종소리를 듣고 은은한 단향을 맡으니, 마음이 한결 고요해지더구나.”“그러셨다니 다행입니다. 예부의 방 대인께 들으니, 얼마 전 도성에 온 이 의원이라는 분의 의술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오늘 신시에 어머니를 진찰하러 오도록 청해 두었습니다.”임서월의 안색이 미세하게 변했다. 슬쩍 임태겸을 살피는 눈에 의문이 스쳤다.갑자기 왜 의원을 바꾸는 거지?반면 임씨 부인은 아들의 정성에 흐뭇해졌다. 임태겸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날마다 공무로 바쁠 텐데, 어미 몸까지 신경 쓰느라 애쓰지 말거라. 앞으로 이런 일은 서월이에게 맡기면 된다.”임태겸이 담담히 웃었다.“서월이는 아직 도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처녀가 밖에 나가 알아보기 어려운 일도 있고요.”임씨 부인은 사뿐히 다가오는 임서월을 바라보았다. 눈길에는 숨길 수 없는 편애가 묻어 있었다.“여자는 혼인 전까지 집 안에서 얌전히 지내는 게지. 온종일 밖으로 쏘다니면 그게 무슨 꼴이겠니.”당연히 임하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다행히 오늘 유씨 노부인을 만났으니, 임씨 가문의 뜻도 곧 유 승상의 귀에 들어갈 터였다.임태겸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어렸다.“한 가지 모습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실 수는 없습니다. 아연이도 이제는 달라지고 있으니, 어머니께서도 선입견을 거두어 주십

  •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25화

    “아가씨, 정말 대단하세요! 말 몇 마디로 유 공자를 속이시고, 심청운에게 돈까지 받아 오게 하셨잖아요. 이거야말로 일석이꿩 아닌가요?”조금 전 유재휘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갈 기세였다. 채의는 몇 번이나 식은땀이 날 만큼 겁에 질려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위기를 넘긴 데다 뜻밖의 소득까지 생겼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임하연은 채의처럼 낙관할 수 없었다. 유재휘는 몹시 집요한 인간이었다. 한번 눈독을 들인 여인은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으니, 오늘은 둘러댔다 해도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서둘러 돈을 모으고, 미리 살길을 마련해야 했다.유 승상은 세 황제를 섬긴 원로로, 지금도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임씨 가문의 양녀일 뿐이었다. 정말로 가문의 이익이 걸린다면, 임태겸도 집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버릴 터였다.“이 멍청아, 그럴 땐 일석이조라고 하는 거야. 일단 전장부터 가자.”은표를 잔돈으로 바꾼 임하연은 채의에게 다시 일렀다.“채의야, 사탕을 몇 봉지 사 와. 아까 그 아이들도 데려오고.”채의는 무슨 생각이신지 알 수 없었지만,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잠시 뒤, 옆 골목에 아이들 열댓 명이 모였다. 임하연은 사탕을 나누어 주며 웃었다.“누나가 노래 하나 가르쳐 줄게. 이걸 부르고 다니면 사탕도 주고, 동전도 줄 거야.”아이들이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빨리 가르쳐 주세요! 저희 부를래요!”임하연은 몸을 낮추고 아이들 곁에서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두 번 들려주었다.“다 외웠어?”“네!”“좋아. 한 사람씩 사탕 한 봉지에 동전 두 닢이야. 사흘 뒤에 누나가 거리로 나와 볼 테니까, 잘 부르고 다니면 그때도 사탕이랑 동전을 줄게.”한창 먹을 것에 마음이 끌릴 대여섯 살 아이들이었다. 사탕만 받아도 기쁜데 동전까지 생겼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아이들은 제 몫을 챙기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작은 등 뒤로 노랫소리가 따라붙었다.“후작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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