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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Author: 매화야담

제1화

Author: 매화야담
면접을 보러 가던 임하연은 교통사고를 당해 허망하게 죽었다.

다행이라면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는 것.

딱 절반쯤 죽은 셈이었다. 소설 속으로 빙의했으니까.

문제는 하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가짜 규수의 몸에 들어왔다는 거였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은 임아연.

임하연과 이름 한 글자만 다른 그녀는 국공부에 입양되어 딸로 자랐지만, 진짜 딸이 돌아오면서 성병에 걸린 망나니에게 떠밀리듯 시집을 가야 했다. 시댁에서도 시부모의 냉대를 받으며 지내던 그녀는 끝내 부군에게 병까지 옮았고, 유씨 가문에서 쫓겨난 뒤 길가에서 얼어 죽고 말았다.

소설 속 그 처참한 장면을 떠올리자 임하연의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그저 일자리 하나 구해 보겠다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불쌍한 취준생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시작부터 이렇게까지 꼬아 놓을 필요가 있나?

“아가씨, 많이 추우세요? 제가 손을 좀 비벼 드릴게요.”

곁에서 들려온 시녀의 목소리에 임하연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마른 풀이 깔려 있었고, 여기저기 농기구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장작을 쌓아 두는 헛간인 듯했다.

그때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은 먹었느냐?”

임하연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나무문 앞에 훤칠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스물셋이나 넷쯤 되었을까. 묵직한 검은 장포가 남자의 몸에 꼭 맞게 떨어졌다.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가 옷 위로도 선명하게 드러났고, 반듯하게 선 자태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배어 있었다.

임하연은 잠시 멍해졌다.

이 잘생긴 남자는 누구지?

아직 머릿속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밖에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예, 도련님. 아가씨께서는 이미 드셨습니다.”

달칵, 문이 열렸다.

남자는 허리를 조금 숙여 천장이 낮은 헛간 안으로 들어왔다. 구름무늬가 수놓인 신발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임하연의 두피가 바짝 조여 들었다. 막혀 있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도련님이라고?

그렇다면 이 사람이 바로 임아연의 명목상 오라버니, 소설 속에서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던 임태겸이었다!

물론 그가 아낀다는 여동생은 친여동생인 임서월이었다. 그러니 다시 말해 임하연과는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순간, 마디가 또렷한 커다란 손이 임하연의 턱을 움켜쥐었다. 낮고 냉랭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임아연. 대체 언제까지 이리 소란을 피울 셈이냐?”

눈이 마주쳤다.

짙고 곧은 눈썹과 맑고 날카로운 눈매, 높게 뻗은 콧대와 얇은 입술이 또렷한 얼굴 윤곽과 어우러져 더없이 수려했다.

임하연은 넋을 놓고 바라보다 그만 속마음을 입 밖으로 흘리고 말았다.

“정말 잘생겼다…….”

임태겸이 순간 멈칫했다. 이내 턱을 쥔 손에 한층 힘이 들어갔다.

그의 눈 속에서 금방이라도 불꽃이 일 듯했다.

“한 번만 더 허튼소리를 하면 추월호에 도로 던져 버리겠다.”

추월호.

그 이름을 듣고서야 임하연은 자신이 소설의 어느 대목에 들어왔는지 깨달았다.

불쌍한 조연인 원래 주인은 조금 전 물에 뛰어들었다. 구경꾼까지 잔뜩 모아 놓고 벌인 일이었으니, 국공부의 체면이란 체면은 다 구긴 뒤였다.

임아연은 북백후의 장남 심청운을 짝사랑했다. 그런데 임서월이 돌아오자마자 그를 빼앗아 갔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임아연은 그때부터 온갖 소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기억이 맞는다면, 이 일이 있은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임씨 가문에서는 임아연의 혼처를 정했다. 그 썩어 빠진 망나니를 골라 준 사람이 바로 눈앞의 잘난 오라버니였고…….

“왜 말이 없느냐? 물에 빠지더니 머릿속까지 물이 찬 게냐?”

싸늘한 눈빛에 임하연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임태겸은 임씨 가문의 유일한 적자였다. 그의 말 한마디가 집안에서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원래 주인과 같은 최후를 피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이 남자와 가까워져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임하연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물기를 머금은 눈을 깜빡이며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오라버니, 오해하셨어요. 저 물에 뛰어든 게 아니에요. 오라버니께 드릴 물고기를 잡으러 간 거예요.”

“물고기를 잡아?”

임태겸의 얇은 입술 끝이 올라갔다.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임아연이 심청운의 동정심을 사려고 일부러 물에 빠졌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저런 가당치 않은 거짓말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늘어놓다니. 십수 년 동안 어지간히도 잘못 키운 모양이었다.

“거짓말 아니에요. 정말 물고기를 잡으러 갔어요. 돌아와서 오라버니께 국을 끓여 드리려고 했는데, 수초에 다리가 감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뭡니까.”

일자리를 구하느라 고생했던 날들과 그동안 견뎌야 했던 냉대가 떠오르자, 설움이 불쑥 치밀었다.

눈앞에 금세 뿌연 물기가 어렸다. 강아지처럼 맑은 눈망울에 눈물까지 맺히니 더없이 가련해 보였다.

임태겸이 천천히 몸을 숙였다.

깊은 눈동자는 속을 헤아릴 수 없었다. 겉으로는 고요했지만, 먹잇감에 시선을 고정한 맹수처럼 섬뜩했다.

“국공부에 물고기 살 돈이 없어 네가 직접 잡으러 갔다는 말이냐?”

임하연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했다.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얼른 시선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억울한 듯 항변했다.

“살 수야 있죠. 그래도 제가 직접 잡아 드리는 건 다르잖아요.”

임태겸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언제부터 나를 그리 살뜰히 챙겼는지 모르겠구나.”

심청운을 알게 된 뒤로 저 아이의 눈에 오라버니가 들어오기나 했던가.

임하연은 겁을 꾹 누른 채 조심스럽게 임태겸의 소매를 잡았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오라버니를 좋아했어요. 오라버니께서 저를 가까이하지 않으셨을 뿐이죠. 이제 친여동생까지 돌아왔으니…… 저를 무슨 못 볼 것처럼 피하시잖아요. 저는…… 그저 오라버니 마음을 되돌리고 싶었어요.”

임태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그녀를 살폈다. 그 말의 진위를 가늠하는 듯하더니, 이내 붙잡힌 소매를 빼냈다. 뒤이어 쏟아진 목소리는 북풍처럼 매서웠다.

“내게 쓸데없이 매달릴 시간에 바느질이나 익혀라. 서월과 심청운은 서로 마음이 깊고, 혼인도 이미 정해졌다. 네가 무릎을 꿇고 빈다 해도 달라질 일은 없다. 또 기회를 엿보아 훼방을 놓는다면, 그때는 남매의 정조차 기대하지 말거라.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도 똑똑히 생각해 두고.”

휘날린 넓은 소매가 임하연의 얼굴을 스칠 뻔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임태겸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임하연은 문밖을 향해 퉤, 침을 뱉었다.

말만 들으면 정이 아주 깊으신 줄 알겠네. 십수 년을 남매로 지내 놓고도 마음만 먹으면 가차 없이 끊어 버릴 거면서.

그때 곁에 있던 채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그 하인은 한기를 풀어주는 약을 가져오지도 않았어요. 분명 임서월 아가씨가 중간에서 버린 걸 거예요. 왜 도련님께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임하연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말해 봐야 소용없어. 사랑받지 못하면 가족이 있어도 고아나 마찬가지지. 지금은 기운이나 아껴 둬야 해.”

그녀는 마른 풀 위로 털썩 누웠다. 몸을 몇 번 뒤척여 편한 자리를 잡고는 눈을 감았다.

채의는 더 말하지 못하고 분한 마음을 삼켰다.

임하연에게는 어린 시녀와 길게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 풀 한 줄기를 입에 물고 소설의 줄거리를 차근차근 되짚었다.

멀쩡한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임아연은 그야말로 사랑에 눈이 먼 여자였다. 혼자 품었던 꿈이 깨지자 순식간에 이성을 잃었다. 심청운과 억지로 하룻밤을 보내 기어이 혼인하려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가로막는 임씨 부인과 임태겸을 독살하려고까지 했다. 임태겸이 서둘러 그녀를 시집보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기억을 정리한 임하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힘껏 문질렀다.

괜찮아. 아직 큰일 난 건 아니야.

심청운에게 약을 먹이지도 않았고, 임씨 집안의 실세인 모자를 독살하려 들지도 않았으니 아직 수습할 여지는 있었다.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게 상책이었다.

소설에도 원래 주인이 갇히는 장면이 있었다. 뒤이어 큰비가 쏟아지자 임태겸이 차마 두고 보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풀어 주었다.

당장 할 일도 없으니, 누워서 비나 기다리자.

그렇게 짚더미에 몸을 맡긴 임하연은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그런데 비는 여전히 내리지 않고 있었다.

갇힌 지 두 시진이면 비가 온다더니. 무슨 일기예보가 이렇게 엉터리야?

임하연은 하늘이라도 살펴볼 생각으로 마른 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귀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스쳤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희미한 달빛 아래, 커다란 푸른 뱀 한 마리가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뱀은 이미 나무 창살 사이를 지나, 헛간 안으로 천천히 기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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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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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라버니, 여동생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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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씨, 정말 대단하세요! 말 몇 마디로 유 공자를 속이시고, 심청운에게 돈까지 받아 오게 하셨잖아요. 이거야말로 일석이꿩 아닌가요?”조금 전 유재휘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갈 기세였다. 채의는 몇 번이나 식은땀이 날 만큼 겁에 질려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위기를 넘긴 데다 뜻밖의 소득까지 생겼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임하연은 채의처럼 낙관할 수 없었다. 유재휘는 몹시 집요한 인간이었다. 한번 눈독을 들인 여인은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으니, 오늘은 둘러댔다 해도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서둘러 돈을 모으고, 미리 살길을 마련해야 했다.유 승상은 세 황제를 섬긴 원로로, 지금도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임씨 가문의 양녀일 뿐이었다. 정말로 가문의 이익이 걸린다면, 임태겸도 집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버릴 터였다.“이 멍청아, 그럴 땐 일석이조라고 하는 거야. 일단 전장부터 가자.”은표를 잔돈으로 바꾼 임하연은 채의에게 다시 일렀다.“채의야, 사탕을 몇 봉지 사 와. 아까 그 아이들도 데려오고.”채의는 무슨 생각이신지 알 수 없었지만,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잠시 뒤, 옆 골목에 아이들 열댓 명이 모였다. 임하연은 사탕을 나누어 주며 웃었다.“누나가 노래 하나 가르쳐 줄게. 이걸 부르고 다니면 사탕도 주고, 동전도 줄 거야.”아이들이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빨리 가르쳐 주세요! 저희 부를래요!”임하연은 몸을 낮추고 아이들 곁에서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두 번 들려주었다.“다 외웠어?”“네!”“좋아. 한 사람씩 사탕 한 봉지에 동전 두 닢이야. 사흘 뒤에 누나가 거리로 나와 볼 테니까, 잘 부르고 다니면 그때도 사탕이랑 동전을 줄게.”한창 먹을 것에 마음이 끌릴 대여섯 살 아이들이었다. 사탕만 받아도 기쁜데 동전까지 생겼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아이들은 제 몫을 챙기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작은 등 뒤로 노랫소리가 따라붙었다.“후작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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