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9화

Author: 루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7 11:35:13

“내가 운전했다고?”

나는 엄마를 노려봤다.

“그날 나 면허도 없었어.”

한미선이 피식 웃었다.

“면허 없으면 운전 못 하니?”

“개소리하지 마.”

“기억 안 나는 게 아니라 지운 거야.”

이록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누가요.”

엄마가 그를 봤다.

“너.”

나는 고개를 돌렸다.

“뭐?”

“사율이 기억을 지우자고 먼저 말한 사람이 너라고.”

“거짓말입니다.”

“그래?”

엄마가 가방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버튼을 눌렀다.

잡음 뒤로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흘렀다.

—사율이는 아무것도 몰라야 해요.

이록이었다.

—사고 기억도, 그 여자 얼굴도 전부 없애주세요.

내 손끝이 얼어붙었다.

“당신 목소리 맞지?”

이록은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이 개자식아.”

“사율아.”

“내 머릿속까지 손댔어?”

“살리려고 했어.”

“또 그 지랄!”

나는 그의 가슴을 밀쳤다.

“이 집안 새끼들은 사람 인생 작살내놓고 전부 살리려고 했대!”

권태겸이 코웃음을 쳤다.

“기억 안 나는 게 차라리 복이지.”

나는 돌아서서 그의 얼굴에 물컵을 끼얹었다.

“당신은 주둥이 닫아.”

“이년이!”

“한 발만 와. 오늘 진짜 제삿날 만들어줄 테니까.”

예라가 스피커폰 너머에서 말했다.

“언니.”

“왜.”

“죽은 여자가 누군데요?”

나는 엄마를 봤다.

한미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

“사율아.”

“내가 누구를 쳤냐고.”

엄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문서진.”

예라 쪽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났다.

“뭐라고요?”

한미선이 휴대폰을 바라봤다.

“네 엄마.”

예라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게 웃었다.

“미친 것들.”

“예라야.”

“닥쳐요.”

예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럼 언니가 우리 엄마 죽였다는 거예요?”

“죽었다고 단정하지 마.”

엄마가 말했다.

“차에 치인 뒤 사라졌으니까.”

“장례까지 했다면서!”

내가 악을 썼다.

“그 장례는 누구 장례였는데!”

“신원 없는 여자.”

“남의 시체 가져다가 엄마 장례식까지 만든 거야?”

“그래.”

“왜 그렇게까지 했어!”

한미선이 처음으로 표정을 굳혔다.

“네가 문서진을 죽이려 했으니까.”

머리가 멍해졌다.

“사고가 아니었어?”

“아니.”

“그럼.”

엄마가 나를 똑바로 봤다.

“네가 차를 몰고 세 번 들이받았어.”

숨이 막혔다.

이록이 즉시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넌 닥쳐.”

엄마가 쏘아붙였다.

“네가 뭘 기억한다고.”

“현장에 제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록을 봤다.

“봤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데 왜 지금까지 입 처닫고 있었어?”

“당신이 부탁했으니까.”

“내가?”

이록이 낮게 말했다.

“당신이 문서진을 친 다음 차에서 내려서 나한테 그랬어.”

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시는 내가 이걸 기억하게 하지 마.’”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왜 내가 그 여자를 죽이려고 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예라가 먼저 말했다.

“우리 엄마랑 언니가 무슨 사이였는데요.”

그때 한미라가 울먹이며 끼어들었다.

“문서진이 사율이한테 사진을 보여줬어.”

“무슨 사진.”

“사율이 엄마가 사람을 죽이는 사진.”

나는 한미선을 바라봤다.

엄마가 웃었다.

“그래. 이제 그것까지 까자.”

“누굴 죽였어?”

“강태욱.”

이번에는 이록까지 얼굴이 굳었다.

“강태욱은 살아 있습니다.”

“네가 본 남자가 강태욱이라고 누가 그래?”

“DNA까지 확인했습니다.”

“누구 DNA랑?”

이록이 멈칫했다.

엄마가 비웃었다.

“또 종이 쪼가리 믿었네.”

권태겸이 욕설을 뱉었다.

“미선아, 그만해.”

“왜? 네가 제일 좆될까 봐?”

엄마가 권태겸에게 다가갔다.

“강태욱이라는 이름 자체가 가짜야.”

나는 머리를 짚었다.

“도대체 진짜 이름이 뭔데.”

엄마가 권태겸을 가리켰다.

“저 인간 친동생.”

권태겸 얼굴이 굳었다.

“한미선.”

“권태식.”

이록이 낮게 되물었다.

“삼촌이라고요?”

“그래.”

엄마가 웃었다.

“그리고 사율이 친아버지도 권태식 아니야.”

나는 이를 악물었다.

“또 아니야?”

“그래.”

“그럼 누군데!”

그 순간 현관 밖에서 박수 소리가 났다.

짝. 짝. 짝.

모두가 돌아봤다.

문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예라와 똑같은 눈매.

얼굴 한쪽에 길게 남은 흉터.

스피커폰 너머 예라가 숨을 삼켰다.

“엄마?”

문서진이 웃었다.

“잘 있었어, 딸?”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죽였다고 했던 여자였다.

문서진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뺨을 쓰다듬었다.

“사율아.”

나는 손을 쳐냈다.

“손대지 마.”

“성질은 그대로네.”

“내가 당신을 차로 쳤어?”

“응.”

“왜.”

문서진이 웃음을 지웠다.

“내가 네 친아버지를 알려줬거든.”

“누군데.”

그녀가 천천히 이록 쪽을 바라봤다.

“네 남편이 평생 아버지라고 믿었던 사람.”

나는 권태겸을 봤다.

문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 늙은이는 아니고.”

그리고 이록에게 말했다.

“이록아.”

“…….”

“네 진짜 아버지.”

문서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온정호야.”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깐.”

나는 이록과 바닥의 휴대폰을 번갈아 봤다.

문서진이 마지막 말을 뱉었다.

“그리고 사율이 친아버지도.”

그녀가 웃었다.

“온정호야.”

이록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나는 입술을 떨며 물었다.

“그럼 나랑 이록은.”

문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해.”

“…….”

“너희 둘, 친남매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제214화. 유전자 검사 결과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율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바로 나였다.”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결과지를 구겨버렸다.“말도 안 돼.”여자의 몸으로 내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일 수는 없었다.이건 또 다른 조작이었다.나는 봉투를 뒤집어 봤다.병원 이름.검사 날짜.검사번호.전부 적혀 있었다.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강연희’라는 이름 옆에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검체번호 A-01.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잠깐.”권이록이 피를 흘린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나는 그에게 결과지를 내밀었다.“이게 무슨 뜻이야?”권이록은 힘겹게 웃었다.“이제 알아차렸네.”“검체번호 A-01.”“그래.”“내 이름이 아니잖아.”“네 이름을 붙인 게 아니야.”나는 숨을 멈췄다.“그럼?”권이록이 낮게 말했다.“원본 강연희의 유전자 샘플 번호야.”나는 결과지를 다시 봤다.A-01 강연희.그리고 그 아래에는 친자관계가 적혀 있었다.사율과의 부계 유전적 일치 가능성 99.98%.“원본의 유전자?”“그래.”“그럼 사율의 친아버지가 원본 강연희라는 뜻은 아니잖아.”권이록이 웃었다.“맞아.”나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검사 결과가 말하는 건 단 하나야.”그가 피 묻은 손으로 결과지를 가리켰다.“사율의 아버지와 원본 강연희가 동일한 유전적 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그게 무슨 뜻인데?”“강연희가 남자였다는 뜻이야.”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강연희가?”권이록이 고개를 끄덕였다.“원본 강연희의 주민등록상 성별부터 조작됐어.”그때 뒤에 있던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니.”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그건 아니야.”“그럼 뭔데?”그녀는 결과지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저 검사는 부계 검사가 아니야.”나는 굳었다.“뭐?”“저건 친자관계를 확인하는 검사야. 그런데 사율에게 아버지로 등록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려면 별도의 기준 검체가 필요해.”“그럼 저 A-01은?”여자가 대답했

  •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제213화.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내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게 나야.”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도현과 똑같은 얼굴.하지만 눈빛은 전혀 달랐다.도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형…… 정말 형이야?”남자가 웃었다.“이제야 알아보네.”“말도 안 돼.”도현이 한 걸음 다가갔다.“형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했어.”“그렇게 기록했으니까.”“누가?”남자의 시선이 아버지에게 향했다.“저 사람.”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다.나는 숨을 삼켰다.“왜 당신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어요?”남자가 나를 바라봤다.“내가 실험을 거부했거든.”“무슨 실험?”“너를 만든 실험.”순간 머리가 멍해졌다.“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이 있었어?”“그래.”그가 천천히 말했다.“나는 원본 강연희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실험에 반대했어.”“그래서?”“그래서 나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지.”도현이 이를 악물었다.“그럼 형이 사라진 뒤 아버지가 나를 이용한 거야?”“너뿐만 아니야.”남자가 나를 바라봤다.“서연도 이용했어.”“왜 나를?”“네가 원본과 가장 가까웠으니까.”나는 손을 꽉 쥐었다.“원본 강연희는 누구야?”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나.”나는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당신이 원본이야?”“그래.”“그럼 왜 나를 만들었어?”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내가 만든 게 아니야.”“그럼 누가?”여자는 아버지를 바라봤다.“저 사람.”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그에게 다가갔다.“왜?”“네가 필요했으니까.”“무슨 뜻이야?”“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고 싶었어.”“누구를?”아버지가 대답했다.“내 딸.”나는 얼어붙었다.“딸?”“강연희.”원본 강연희가 눈을 감았다.“나는 죽지 않았어.”“뭐?”“죽은 건 내 기억이야.”그 말이 떨어지자 남자가 웃었다.“이제 거의 다 기억났네.”나는 그를 바라봤다.“사율의 아버지가 당신이라고 했잖아.”“그래.”“그럼 당신이 내 아이를 낳게 만든 거야?”그의 표정이 흔들렸다.“아니.”“그럼?”“네가

  •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제212화. 나는 사람이 아니라 복제된 아이였다

    “이 아이는…… 인간복제 실험의 첫 번째 성공 개체입니다.”화면 속 의사의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내 손에서 휴대전화가 떨어졌다.“복제……?”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천천히 화면을 바라봤다.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갓난아기.작은 얼굴.눈썹 모양.왼쪽 귀 아래의 작은 점.전부 나와 같았다.“저게 나라고?”의사가 화면 속에서 말했다.“유전적으로는 강연희와 동일합니다.”나는 숨을 삼켰다.“강연희?”화면에 내 얼굴과 똑같은 여자의 사진이 떴다.그런데 그 사진 속 여자는 내가 아니었다.내 앞에 서 있던 여자.내가 언니라고 믿었던 여자.그녀가 화면을 보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이 영상이 아직 남아 있었어?”친엄마가 그녀를 노려봤다.“당신도 알고 있었어?”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당신이 원본이야?”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그래.”“그럼 나는?”“너는 나를 복제해서 만든 아이야.”머리가 멍해졌다.“왜?”“널 만들면 안 됐어.”“그런데 왜 만들었어?”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네 아버지가 원했어.”나는 천천히 아버지라고 믿었던 남자를 바라봤다.그는 침묵하고 있었다.“당신이 나를 만든 거야?”“정확히는…….”“말해.”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네 유전자를 만든 건 내가 아니야.”“그럼 누가?”“도현의 아버지.”나는 도현을 바라봤다.도현 역시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내 아버지가?”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십 년 전 그 실험의 목적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었어.”“그럼 뭐였는데?”“기억을 복제하는 것.”나는 얼어붙었다.“기억?”“사람의 유전자뿐 아니라 기억과 성격까지 복제할 수 있는지 실험했어.”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그럼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은…….”친엄마가 조용히 말했다.“원본 강연희의 기억 일부를 이식한 거야.”순간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폭발하듯 떠올랐다.학교.엄마.도현.권이록.그리고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다고 생각했던

  •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제211화. 내가 태어난 날부터 나를 죽이려던 사람들

    “저 세 사람은 네가 태어나던 날부터 널 죽이려고 했어.”친엄마의 말이 끝나자 문 앞에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굳었다.엄마가 먼저 소리쳤다.“거짓말이야!”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그럼 사실을 말해.”“연희야.”“내 이름 서연이라며.”엄마의 입이 닫혔다.그 침묵 하나가 오히려 대답처럼 느껴졌다.나는 친엄마에게 물었다.“왜 저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했어요?”그녀는 잠시 망설였다.“네가 태어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거든.”“뭐가요?”“우리 가족이 숨겨온 비밀.”권이록이 비웃었다.“또 시작이군.”친엄마가 그를 바라봤다.“당신은 입 다물어.”“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알아.”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이 아이에게 진실을 돌려주는 거야.”나는 손을 빼지 않았다.“내가 태어난 날 무슨 일이 있었어요?”친엄마가 대답하려는 순간, 도현이 갑자기 달려들었다.“안 돼!”그가 친엄마의 손에서 작은 USB를 낚아챘다.나는 그를 바라봤다.“왜 뺏어?”도현은 숨을 몰아쉬었다.“그 안에 있는 걸 보면 안 돼.”“왜?”“네가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이야.”“그건 내가 결정해.”나는 도현에게 손을 내밀었다.“줘.”그가 망설였다.“도현아.”그가 결국 USB를 건넸다.기록보관실 컴퓨터에 꽂았다.영상 하나가 떴다.날짜는 내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날이었다.병원 분만실.침대 위에는 친엄마가 누워 있었다.그 옆에는 의사가 서 있었다.그리고 침대 옆에서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은……엄마였다.나는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왜 엄마가 저기 있어?”친엄마가 울먹였다.“네가 태어났을 때 네 엄마는 나였어.”영상 속 의사가 물었다.“아이 이름은 어떻게 할까요?”친엄마가 대답했다.“서연.”그 순간 영상 속 엄마가 아기를 빼앗듯 받아들었다.“이 아이는 강연희로 기록해주세요.”나는 숨을 삼켰다.“왜?”영상 속 엄마가 차갑게 말했다.“서연이라는 아이는 오늘 죽은 걸로 처리할 겁니다.”나는

  •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제210화. 내가 아버지라고 믿었던 남자는 내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네가 지금 믿고 있는 아버지는…… 내 남편이 아니야.”전화가 끊겼다.나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지 못했다.내 친엄마.죽었다고 믿었던 여자.그리고 방금 들은 말.내가 아버지라고 믿었던 남자는 내 친아버지가 아니다.“누구였어?”도현이 다가왔다.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아버지를 바라봤다.“당신.”아버지가 나를 바라봤다.“내 친아버지 아니야?”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내 엄마.”순간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연희야, 그 전화 믿으면 안 돼!”“왜?”“그 여자는 네 엄마가 아니야.”“그럼 누군데?”엄마가 입을 다물었다.나는 소리쳤다.“왜 아무도 나한테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그 순간 아버지가 낮게 말했다.“그 전화번호를 보여줘.”“왜?”“당장.”나는 휴대전화를 건넸다.아버지가 번호를 확인하자 표정이 굳었다.“이 번호…….”“누구 번호야?”“십 년 전에 죽은 번호다.”나는 헛웃음이 나왔다.“죽은 사람한테 전화가 온 거네.”“그게 아니라.”아버지가 화면을 내게 돌렸다.“이 번호는 네가 쓰던 번호야.”“뭐?”“십 년 전까지.”나는 멍해졌다.내가 쓰던 번호.그렇다면 누군가 내 옛날 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때 진짜 연희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말했다.“그 번호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나는 그녀를 바라봤다.“누구야?”“네가 찾던 사람.”“누구?”그녀가 내게 다가왔다.“세아.”순간 가슴이 철렁했다.“세아가 왜?”“세아가 그 번호를 사용하고 있어.”“말도 안 돼.”“확인해 봐.”나는 곧바로 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결되지 않았다.대신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연희야. 나한테 오지 마.]그리고 곧바로 두 번째 문자가 왔다.[네가 믿는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니야.]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엄마에게 시선을 돌렸다.“엄마.”“…….”“세아가 당신을 믿지 말래.”엄마의 얼굴이 굳었다.그때 세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

  •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제209화. 내가 살아온 이름은 죽은 사람의 것이었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름 자체가…… 죽은 사람의 이름이야.”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손끝이 얼어붙었다.나는 바닥에 떨어진 신분증을 다시 집어 들었다.강연희.내가 평생 써온 이름.그런데 생년월일이 달랐다.“이 신분증을 누가 만든 거야?”아버지가 대답했다.“네 엄마.”나는 엄마를 바라봤다.“왜?”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살리려고.”“또 그 말이야?”나는 신분증을 엄마 앞에 던졌다.“도대체 누구를 살리려고 내 이름을 훔쳤어?”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너를.”“내가 누구인데?”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내 앞에 서 있던 여자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내 이름이 연희야.”나는 그녀를 바라봤다.“뭐?”“내가 진짜 강연희야.”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럼 나는?”그 여자가 씁쓸하게 웃었다.“넌 강연희가 아니야.”“그럼 내 이름은?”“서연.”그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서연.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상하게 익숙했다.어릴 때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목소리가 떠올랐다.“서연아.”나는 관자놀이를 움켜쥐었다.“누가…… 나를 그렇게 불렀어?”엄마가 대답했다.“네가 태어나기 전부터.”“말이 안 돼.”“너는 연희의 대체품이었어.”나는 엄마를 노려봤다.“대체품?”“진짜 연희가 죽었을 때, 네가 그 자리를 대신한 거야.”“진짜 연희가 죽었다고?”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태어나기도 전에.”나는 주변을 바라봤다.그럼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전부 가짜였던 건가.학교.친구.사진.가족.전부 누군가 만들어낸 기억이었다.그때 도현이 내게 다가왔다.“서연.”나는 그를 바라봤다.그가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당신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그래.”“내가 연희가 아니라는 걸?”“알고 있었어.”“그런데 왜 나를 연희라고 불렀어?”도현이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기억을 잃기 전, 네가 직접 부탁했으니까.”“내가?”“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