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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강현준은 고월영을 풀어주고 궁녀에게 다가갔다.

당황한 고월영이 뒤에서 그를 말렸다.

“전하, 그러지 마세요!”

전설 속 현왕은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로 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한낱 궁녀에게 제수와 뒤엉켜 있는 모습을 들켰으니 살인으로 입막음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다.

“현왕 전하,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옵소서….”

현왕이 뚜버뚜벅 다가가자 궁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이 몸이 누구라고?”

강현준은 궁녀의 앞에 다가가서 싸늘한 시선으로 궁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시 말해 보거라. 이 몸이 누구라고?”

“현… 악!”

강현준의 발길이 궁녀의 손등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전하!”

고월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궁녀의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극심한 고통에 궁녀는 정신이 아늑해졌지만 살기 위해서 입술을 질끈 깨물고 대답했다.

“여… 여왕 전하.”

근처에 있던 호위대가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네가 오늘밤 만난 이가 누군지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현준은 바로 발을 들어 궁녀를 걷어찼다. 궁녀는 그대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고월영은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하려 했지만 강현준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왕비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까 이 몸과 무엇을 하고 있었지?”

강현준의 시선이 고월영의 목덜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고월영은 숨이 턱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왕 전하께서는… 궁에 익숙하지 않는 저를 배려하시어 같이 산책을 하고 계셨습니다.”

강현준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산책? 그게 다인가?”

그는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여왕비가 이 나의 몸에 불을 지펴서 이 몸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왕비를 겁탈하려 한 게 아니고?”

고월영은 이 인간과 더 같이 있다가는 제 명에 못 죽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현왕 전하는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냥 산책 중이었습니다.”

“공사가 다망한 분을 이리 잡아두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소녀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알고?”

강현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다가 궁녀나 태감에게 물어서 가면 됩니다.”

멀지 않은 곳에 호위대가 있었다.

혼자 헤매며 길을 돌아가더라고 이 남자를 따라다니는 것보다는 덜 위험할 것이다.

강현준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여왕비에게 산책을 시켜준다고 약조했으니 홀로 돌아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의 흉흉한 기세에 호위대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현왕인지 여왕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강현준은 앞장서서 걸었다.

고월영은 주저하다가 결국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방으로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전하, 눈물점을 다시 그려드리겠습니다.”

“싫은데?”

현왕은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거절했다.

“어차피 왕비가 이 몸을 먼저 유혹한 것이고 이 몸은 초대에 응한 것뿐이니 벌을 받을 사람은 왕비와 장군가 사람들이 되겠지.”

“전하!”

고월영은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싶었다.

어찌 사람을 이리도 농락한단 말인가?

“평생 나라를 위해 살육을 하며 살아온 나다. 그런 내가 왕비와 장군가를 위해 죄를 뒤집어 쓰기를 바라는가?”

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또 뭐가 이렇게 화가 난 거지?’

‘설마 아까 내가 궁녀를 두둔했다고 토라지신 건가?’

항상 잘난 멋에 살아온 자신감을 넘어 거만하기까지 한 현왕에게 이런 유치한 면이 있을 줄이야.

“제가 잘못했습니다. 현왕 전하는 저를 위해 불필요한 위협을 제거하셨는데 제가 너무 나약해서….”

“웃기네. 이 몸이 한낱 장군가의 여식을 위해 궁녀를 폭행했다는 건가?”

강현준이 차갑게 비아냥거렸다.

고월영은 눈썹붓을 들고 그에게 다가가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하, 제가 다 잘못했으니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지요.”

하필 이때, 밖에서 지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왕비마마, 박 상궁께서 드셨습니다.”

박 상궁은 기력 보강 탕약을 배달하러 온 것이었다.

탕약이 식으면 약효가 떨어질 것을 걱정한 박 상궁은 지언의 만류에도 벌써 문 앞까지 다가왔다.

“전하, 왕비마마, 태후께서 소인에게 탕약을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시는 것까지 꼭 확인하라 명하셨으니 소인, 실례지만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고월영은 당황한 눈빛으로 강현준의 멀쩡한 눈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디서 난 용기인지 그녀는 신속히 다가가서 강현준의 턱을 잡고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그의 눈가에 점을 찍었다.

강현준의 눈빛이 탁해졌다.

이런 무엄한 여자를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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