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스틸은 뽀뽀는 좀 그렇다고 말을 하자, 지니는 쿡쿡 웃더니 스틸의 허리를 꼭 감싸 안더니 작게 램프에게 속삭였다.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네. 램프야, 우리 주인님 레벨을 보여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금빛 연기가 주변을 에워쌌다. 사람들은 이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지 별 내색은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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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능력 : 210,000
- 현재 레벨 : 8 (E급 마력소유자)
★ 물 마법 능력이 자유로워짐.
★ 마력 탐지 기능이 발현함.
★ 추가 수명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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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정말…… 대단해.”지니는 스틸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바라보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을 흘렸다.
스틸은 눈을 가늘게 뜨며 허공의 한 지점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신기하군, 레벨이 이리 빨리 오르다니.”
수명도 늘었고, 스킬도 새로 생긴 게 눈에 들어오자 피식 웃음을 절로 흘리게 되었다.
그리고 저 멀리, 은폐 마법 뒤에 숨어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을 존재도 똑똑히 느껴졌다.
“이 속도라면 우리 주인님, 금방이라도 온 세상을 발아래 두겠어.”
지니의 귓가에 맴도는 간지러운 속삭임이 그를 기분 좋게 자극했다.
하긴, 단 며칠 만에 마력 레벨이 3단계나 수직 상승했다. 초월자의 가호로 개화한 마력에 다섯 번의 생을 거치며 쌓인 처절한 경험까지 더해진다면, 이번 생은 분명 다를 것이다. 아니, 반드시 달라야만 했다. 아쳐, 그 오만한 놈의 목줄을 죄어버릴 날도 결코 머지않았다.
그는 강당을 가득 메운 군중의 시선을 하나하나 정면으로 받아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한 공기 너머 숨어있는 아쳐를 향해 맹수와도 같은 짙은 안광을 쏘아 보냈다.
= = = ‘설마, 아니겠지? 저 망나니 자식이 지금 날 보고 있는 건가?’아쳐는 관자놀이가 터져 나갈 듯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계획했던 모든 일이 진흙탕 속에 처박혀 버린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리나를 끌어안고 이 뒤틀린 화풀이를 퍼붓고 싶었건만, 품 속의 마정석 통신기는 차갑게 식어 있을 뿐이었다.
마구간에서 매캐한 연기에 질식해 비참하게 죽었어야 할 스틸 대공이, 대체 어떻게 저토록 당당하고 서슬 퍼런 모습으로 돌아왔단 말인가.
게다가 그의 곁을 지키는 저 의문의 레이디는 또 누구인지.
찬란한 금발에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앙큼하고 매혹적인 곡선을 뽐내는 여인은 아쳐의 비뚤어진 소유욕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저런 보물을 저 망나니 놈이 끼고 돌다니.’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이를 갈던 아쳐는 문득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투명 마법을 뚫고 저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으려 했지만, 마치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힌 듯 마력의 파동이 번번이 튕겨 나가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레이디께서는 이제 물러나 계셔도 좋습니다!”
스틸의 곁에서 살랑거리던 레이디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뒤로 물러났다. 심판의 방관자를 자처하려는 듯한 몸짓이었으나, 그녀의 황금빛 시선만은 아쳐가 숨어 있는 곳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사회자의 권유에 몸을 뒤로 물린 그녀는 붉은 입술을 살며시 달싹였다.
“참고로 스틸 대공 전하는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시랍니다. 저는 전하께서 화마를 잠재우는 순간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죠. 마구간 화재의 진짜 진실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순간, 아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에 하마터면 투명화 마법이 풀릴 뻔했다.
아무도 없어야 했던 그 마구간에 목격자가 존재했다니. 그는 다급하게 진행자 마티스를 응시했다.
금테 안경을 추켜세우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마티스가 헛기침을 뱉어냈다.
“은인? 증인이라니…… 음, 그렇다면 레이디께서도 진실을 진술해 주셔야겠군요.”
아쳐는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저 여자의 입에서 무슨 치명적인 독이 쏟아져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의 파멸뿐이었다.
‘에잇!’
아쳐는 결단한 듯 반대편 커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르륵! 순식간에 기괴한 불길이 치솟았다. 그는 멈추지 않고 창가의 모든 커튼에 차례로 화염을 질러버렸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
“연기야! 불이다!”고요했던 강당은 순식간에 비명과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붉은 혓바닥을 내민 불길이 벽면을 타고 천장으로 순식간에 번졌고, 두툼한 천을 덧댄 출입문마저 뒤틀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꽉 닫힌 문은 이제 거대한 화로가 되어 사람들을 가두었다.
“도망쳐! 문이 안 열려!”
“누구 물 마법 쓸 수 있는 사람 없어? 제발!”비명과 울음소리가 매캐한 연기와 섞여 넓은 강당을 가득 채웠다. 몇몇 교수와 학생들이 다급히 불을 끄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광기에 어린 아쳐의 화염을 잠재우기엔 그저 마른 땅에 떨어지는 이슬비 정도에 불과했다.
= = = 그 참혹한 아수라장 속에서, 오직 단 한 사람만이 냉정을 유지하며 불길을 향해 유유히 걸어 나갔다.“모두 진정하고 소매로 입과 코를 막으십시오!”
스틸의 낮은 저음이 혼란을 뚫고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겁에 질린 사회자가 그의 팔을 붙들고 매달렸다.
“스틸 대공! 미쳤습니까? 저 불길 속으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스틸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사회자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
“죽으러 가는 게 아닙니다. 살기 위해 가는 거지.”
불길의 진원지인 커튼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간 스틸은 어제의 감각을 되살렸다. 손바닥 끝에 모여드는 마력의 흐름, 지니가 건네주었던 그 생소하고도 강렬했던 에너지를 떠올리며 군중을 향해 외쳤다.
“제 등 뒤로 모이십시오! 불길을 뚫고 창문을 깨부술 테니, 차례대로 탈출하는 겁니다!”
스틸은 양손을 앞으로 뻗어 전신의 기운을 집중했다. 심장 부근에서 뜨거운 열기가 소용돌이치더니 손바닥 끝으로 밀도 높게 응축되었다.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전신을 지배했다.
일순간, 쏴아아아아!
스틸의 손끝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아닌, 거대한 폭포수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억눌려 있던 수룡(水龍)이 깨어난 듯, 압도적인 수압의 물대포가 화마를 정면으로 타격했다.
치익-! 하는 굉음과 함께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스틸은 전신을 관통하는 짜릿한 마력의 쾌감에 전율했다.
비로소 그날 발휘한 물마법의 능력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남자가 주인공인 로판에 도전하는 중입니다. 시원시원한 사이다와 절절한 순애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옆에 있던 세도르 역시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받았다.“주군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요.”“다만 아카데미 외부에서 주둔하고 있었을 터인데, 이곳까지 곧바로 순간이동을 해 올 정도라니 상당한 실력자들이군요.”세도르와 이버의 나직한 말에 주변에 둘러선 이들 사이에서 가벼운 탄성과 함께 웅성거림이 일었다.그 순간 스틸은 허공에 주둔한 군대를 향해 손짓하며 덤덤히 명령을 내렸다.“그렇습니다. 다만 계속 머물러 있으면 분위기가 흉흉해질 테니, 이들은 다시 영지로 돌려보내겠습니다.”스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많던 무장한 기사단은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겉보기에는 완벽히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션은 그들이 그저 은밀하게 투명화 마법을 뒤집어썼을 뿐임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전력보다 안 보이는 존재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 온몸의 털이 서늘하게 일어서는 순간이었다.“멀리서 모시는 주군의 마력 파동만 감지하고도 이처럼 정확하게 좌표를 찍고 찾아오다니, 나중에 군사 훈련에 관한 조언은 스틸 대공에게 꼭 들어야겠습니다.”세도르는 연신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스틸을 높이 추켜세웠다.“별말씀을요. 다른 학생들에게 괜한 공포심을 주었을 수도 있으니 자중시키겠습니다.”스틸이 여유로우면서도 겸손하게 굴자, 옆에서 지켜보던 아쳐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물들인 채 콧바람을 씩씩 내뿜었다.상황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스틸은 세도르와 이버에게 수고 많았다며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곧이어 소란이 정리되고 다시 수업이 재개되었다.학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평범하게 마도구를 제작하는 실습에 들어갔다.
스틸은 밀려오는 황당함을 가라앉히며 상황을 정리했다.가짜 마지션은 대놓고 사직을 선언하고, 지니는 저자가 과거 자신을 고문했던 자라고 말한다.어쨌든 이 난장판 속에서 숨겨진 진실 하나만큼은 명확히 드러날 기세였다.게다가 조금 전부터 주변 공기를 감도는 서늘한 위화감은 거슬렸다.스틸은 아카데미의 치안을 책임지는 기사단장 세도르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세도르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다친 사람도 없고, 황태자 전하를 위해할 의도도 없었으니 연행할 까닭이 없습니다. 마지션 교수님께서 직을 내려놓으실 이유도 전혀 없고요.”세도르가 가볍게 손을 저어 상황을 일단락짓자, 옆에 있던 황태자 아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무슨 수를 써서든 스틸을 물어뜯고 싶었을 황태자로서는 속이 뒤틀릴 일이었다.‘그건 그렇고, 이 기묘한 감각은 뭐지?’스틸은 주변을 탐색하기 위해 마력을 얇고 날카롭게 펼쳤다.아니나 다를까, 공터 구석 진영에 누군가 은밀히 숨어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익숙한 마력 파동. 알고 있는 마력의 향기였다.‘행색을 숨긴 마지리안인가?’은밀하게 투명 마법을 뒤집어쓴 채 벌벌 떨며 상황을 지켜보는 마지리안과 정확히 시선이 마주쳤다.[저 여자, 제법 흥미롭군.]스펙터 역시 헛웃음을 흘렸다. 스틸의 옆에 선 지니 역시 그쪽을 포착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존재감을 완벽히 숨겼다고 믿었던 마지리안은 스틸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황급히 몸을 말아 웅크렸다.***한편, 마지션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데스가 널 항상 지켜보는 모양이군. 재미있어. 명계의 신이 인간 죽을까 봐 호위까지 붙이다니.]스펙터의 묵직한 음성에 스틸은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인간의 목숨을 거두며 저승으로 불러들이는 명계의 주인이 제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니. 하데스 녀석, 보기보다 엄청나게 끈끈한 의리가 있었다.“주인님! 내 인벤토리도 난리야. 하마터면 레드 드래곤까지 원래 모습으로 등장할 뻔했다니까?”“다들 날 못 지켜서 안달이군.”스틸이 살짝 의식을 집중하자, 묘하게 인벤토리 안에서 케르베로스가 웅성대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저 마법사, 기운이 이상하다.― 저 데스나이트는 이성이 있다. 스틸 널 앞으로도 계속 지켜 줄 거다.― 평소에는 투명화로 아기 엘프와 너를 지키던 놈들이다.이 얼마나 든든한 아군인가. 스틸은 이형의 존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심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아낼 정도였다.[저쪽 듀라한들은 하데스 명령보다 자발적으로 널 지킨 것 같다. 물론 하데스가 널 돌보라고 한 게 원인이겠지.]스펙터의 설명에 케르베로스들이 왈왈거리며 덧붙였다.― 인간 주제에 운 하나는 더럽게 좋군.― 하데스 님의 군사 1만이 널 지켜줄 거다.― 널 통해서 세상을 구경하고 싶으신 게 그분의 의지다.케르베로스의 설명에 스틸은 기가 찼다.하데스가 군사를 보낸 이유가 스토커 수준으로 주변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니,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하데스가 어지간히 심심했나 보군.’일상이 지루해 유독 재미를 추구하는 하데스였기에 조금은 납득이 가기도 했다.― 가르나르에서는 우리 맘대로 돌아다녔다.― 아카데
속삭이듯 내뱉은 밀로투스의 말에 메스메리아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렷다.그녀도 스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지 고개를 끄덕였다.사건을 몰고 다니는 유별 스틸은 과거 망나니 모습을 벗어던지고 제국 내의 온갖 시선을 한몸에 받는 능력자로 거듭나 있었다.밀로투스의 손길이 허리선을 지나 굴곡진 엉덩이에 머물렀을 때, 그녀는 살짝 몸을 떨며 그의 품 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밀로투스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안아 들고 창가로 이끌었다.혹여나 창문 밖에서 학생들이 교수동을 올려다볼까 싶어 투명화 마법을 가볍게 펼쳐 놓은 뒤, 두 사람은 한층 더 대담하게 서로의 몸을 비벼댔다.“정말 오랜만에 교수님을 뵙다니 신이 나네요.”“지난주 황실과의 협의 때문에 개강을 놓쳤는데, 이리 메스메리아 교수님을 안고 있으니 방학이 다 지나간 게 비로소 실감이 나는군요. 후후.”두 사람은 깊은 관계까지 나아가지 않은 채, 야릇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의 손길과 온기를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저는 연구실에 파묻혀 지내느라 바빴는데, 교수님은 왜 이리 학교에 안 계셨던 건가요?”밀로투스는 옷 위로 볼록하게 솟아오른 메스메리아의 풍만한 흉부를 주물럭거리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루카스크 대공가 부근이 저희 가문의 영지와 가까워서, 요즘은 서로 군사력을 공유하며 전선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도른이 자꾸 도발을 해서 말입니다.”“제국의 국경을 이리 지켜 주시니······ 저희 같은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거네요. 감사해요, 교수님.”생각지도 못한 칭송에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 밀로투스는 머쓱함을 달래려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
점심 식사를 마친 스틸은 지니와 함께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마법학 개론』 강의를 듣기 위해 웨스트 에어리어 공터로 향했다.오늘도 날씨는 쾌청했다.야외 수업이 열리는 공터는 햇살이 찬란히 내리쬐고 잔디밭이 펼쳐져 초록빛 향연을 이루는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스틸에게는 날씨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이럴 수가. 황가보다 더 대단한 게 루카스크 가문이었다니.”스틸은 충격으로 입술을 깨물었다.“그러게. 주인님, 몰랐어. 그 루카스크 가문이 그리 대단한지.”광증으로 사교계에도 못 나가고 정치에도 관여하지 못하는 대공이라 얕본 것일까.전생의 짝사랑 상대와 닮은 대공비의 외모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 가문을 외면한 탓일지도 몰랐다.그러나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광증으로 폐인처럼 산다던 대공이 어떻게 영지를 풍요롭게 유지하고, 하필이면 군수 산업까지 발전시켰을까.“원래 그 대공가가 마정석이 많이 난다고 해도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전쟁도 없는 시대에 무기가 무슨 소용이지? 어쩌면 현대처럼 미리 방어를 하려고 하는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걸까.무기를 많이 생산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주인님, 알고 보면 그 영지도 습격을 많이 받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역시 지니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그 대공이 광증 탓에 전면전에 나설 수 없어도 가신이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원래 평화를 외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싸우지 않겠소- 그리 선포하려면 싸울 능력이 있고 함부로 안 해야 다들 인정하게 된다.스틸은 루카스크 대공가가 제국에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군사력이라도 갖춰 숨어 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애써
수업이 끝난 직후, 스틸과 지니는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한 온기를 만끽하며 학부 식당으로 향했다.아카데미 검술 대회도 기대가 되고, 합법적으로 아쳐에게 철퇴를 내릴 수 있는 앞날도 기대가 되는 그였다.그리고 무엇보다 등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우군들의 존재 덕분일까.가슴 속 깊이 퍼지는 여유는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만들었다.다만 그로 인해 얻은 소소한 번뇌가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뇌리를 울리는 차원 인벤토리 속 전력들과 '마음의 소리'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행복한 비명뿐이었다.스틸의 공간에는 칠흑 같은 오라를 품은 듀라한 기사단과 스펙터, 그리고 덤으로 깃든 플로럴스피릿의 왕이 자리 잡고 있었고, 지니의 공간에는 가르나르의 마정석 꽃밭 수만 송이와 수백 체의 밴시, 심지어 웅크린 레드 드래곤까지 깃들어 있었다.— 인간들의 학문이란 참으로 기이하군.—정치라니, 굳이 머리를 썩혀 배운들 저 실상과 어찌 같겠는가.— 전하, 저편에 불온한 저주의 기운을 품은 무리가 서성입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귓가를 잔잔하게 울리는 정령들과 마물들의 와글거리는 음성은 스틸에게 색다른 즐거움이자, 그 어떤 첩보망보다 완벽한 이중 방어선이 되어 주고 있었다.“주인님, 정말 우리 주변에 많은 존재가 있어 그런지 하나도 심심하지가 않아.”스틸이 능력이 많아질수록 지니 역시도 함께 성장하고 있으니 느낀 바는 똑같은 것 같았다.“그러게. 어수선해도 즐겁군.”그리고 이제 주변 인간들도 스틸에게는 웃으며 다가오는 존재가 많았다.인사하는 사람, 눈을 마주쳐도 찡그리지 않는 학생, 그리고 동경하듯 바라보는 사람들까지.지난봄과 많은 변화를 겪은 그였다.&ldq
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
30대 중반의 노련한 호위 기사단장, 세도르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거칠게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이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뚫고 은발의 젊은 부하 기사가 다급하게 다가와 앞을 가로막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 “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이런 황당할 데가. 세도르는 황망함에 굵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황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아카데미 안에서 화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이버 경, 지금 뭐라고 했나?” “진화는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
자신이 알고 있는 ‘소원을 말해 봐!’라고 하는 램프의 요정이 그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서 빨리 이 소녀를 전문가에게 보여줘야 하는데.“어이,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니 말은 좀 편히 할게. 엘프야, 일단 내가 눈 떠보니 다른 세상에 소환되어 환생한 것 같아서 얼른 적응해야 하거든? 그러니 그쪽도 정신 차려.”넋두리하듯 그리 스틸이 말을 내뱉고 몸을 돌리라 하자, 엘프는 제 두 어깨를 꼭 부여잡더니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어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초월자인가? 나 횡재했잖아? 초월자를 주인님으로 맞이하다니!”
주인님은 무슨. 불이 난 연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스틸은 우선 잠시 목걸이를 들여다보았다.3초 잠깐 고민한 그였다. 누가 봤나? 참 CCTV는 없는 세상이지? 하지만 목숨까지 내던지며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던 천하의 파일럿 강철신이 이런 목걸이 하나의 움찔하다니.게다가 망한 영지기는 해도 고위 귀족 대공 인생에 뭘 주워서 넙죽- 꿀꺽할 수 없는 법.일단 이 화재부터 진압하고 주인이나 찾아줘야겠다 싶어 주변을 훑었다.강철신은 일단 구유통이 아닌 우물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불길에 쫓겨 물을 찾던 그의 눈에 목걸이가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