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
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
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했다.
전생의 기억과 비교하여 경제적 물가 가치는 비슷했다.
1쿠퍼가 밀빵 한 개 값인 2실링, 100쿠퍼가 은화 1실버, 100실버가 금화 1골드라는 설명을 들었다. 실링은 거의 부르지 않고 대부분 쿠퍼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고 하였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운동장 공터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나서야 스틸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한숨 돌리게 되었다.
미소녀 엘프는 당연하다는 듯 제 옆에 앉아서 생글생글 미소만 지어댔다.‘이게 새 인생이라니.’
스틸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복수나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레벨이 5라니까 앞으로 노력을 해서 올릴 거야. 새로 주어진 삶이니 최선을 다해 살아 봐야겠어.”
“주인님. 잘 생각했어. 레벨을 빨리 올리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변화는 생길 거야.” “이 세계에서 온 초월자 버프 그런 것은 없나?” “글쎄. 두고 봐야지. 그래도 난 주인님이 목걸이를 주워줘서 너무 좋아. 램프 안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거든. 빨리 나도 요정계로 가고 싶어.”스틸은 현재 아무것도 아닌 이런 자신이 누군가를 건사할 수나 있을지 엘프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의 평판도 그렇고 구유통에 비친 제 심각하게 민주적으로 자유분방한 얼굴도 그렇고.
앞으로의 삶도 밑바닥부터 출발이라 걱정만 되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마 넌 주인 잘 못 만난 것일 수도 있어. 이 몸은 최악이야. 외모도 가진 것도 뒷배도 평판도 아무것도 난 내세울 게 없어 보여.”
“인간들은 100년도 못 사는데 뭘 그리 신경 써? 주인님은 의협심도 넘치고 머리도 좋아 보이는 데. 그것이면 됐지.”엘프는 의연하게 굴었지만 스틸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도 중요한 거야.”
“난 안 보이는 게 더 중요하던데. 주인님은 그래도 헛간에서 도망치지 않고 불도 껐잖아? 정의로운 모습에 반했어.”엘프의 말에 위로가 되어야 하겠지만, 지금의 스틸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사실 전생에서 스틸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본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간이었다. 몇 번의 회귀를 했으니 복수만 꿈꾸느라 허튼 짓은 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얼굴도 잘나지 못했고 여성에게 숙맥이라 이성과의 연은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면서 반지라도 한번 줘 보고 죽었으면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싶어 싱겁게 웃어 보았다.
현생에서는 무겁게 자신에게 책임을 지워주는 가주의 반지가 오른손 검지에 끼워져 있었다.
붉은 바탕에 검은색이 휘몰아치는 빛깔에 꽤 눈에 띄는 캔도르 대공가 반지였다.
그때 갑자기 엘프는 스틸의 손을 덥석 잡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리 보고 저리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 아무리 봐도 고위 귀족 가문의 가주 같은데 본인이 어떤 상항인지 궁금하지 않아?”
“···뭐 알 방법이 있어?” “램프에게 물어보면 돼.”램프? 이게 뭘 물어보면 답도 해주나?
스틸은 아직도 제 손에 들린 목걸이를 꺼내 들어보았다.
그러자 엘프는 스틸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고, 활짝 웃으며 스틸의 손을 그 램프 모양의 펜던트에 갖다 대었다.
“주인님, 램프를 문지르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봐.”
믿거나 말거나.
스틸은 엘프가 시키는 대로 램프에 손을 대고 질문을 던졌다.
“램프여, 내 현재 상황을 좀 알려 줘!”
그러자, 목걸이 주변에 다시 황금빛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상태창이 열리며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이름 : 스틸 반 가드 캔도르(20세).
★ 가문 : 캔도르 대공가에 현존하는 유일한 생존자.(황위 계승 서열 4위) ★ 주소 : 레투카 아카데미 기숙사 C동 지하 1층 109호. ★ 재산 : 가르나르 영지 소유. 1 골드 미만 금액의 재산은 추정 불가. ★ 빚 : 황태자 아쳐에게 2 골드를 빌린 상황. 1 골드 미만 금액의 빚은 추정 불가. ★ 기타 1 : 전쟁으로 인해 10년 전부터 가신 및 영지민 0명. ★ 기타 2 : 아카데미 입학 300명 중 300등.***********************************
“젠장, 이 무슨 개같은 꼬라지인지.”스틸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나자 희망이라고는 깃털 하나라도 찾아볼 수가 없어 욕만 튀어나왔다.
“주인님, 대단하다. 대공이래, 황위 계승 4위!”
아무리 인간을 초월한 엘프라도 그렇지. 어찌 이리도 보는 관점이 다른지.
대단하긴 개뿔!
“다른 건 안 보여? 이 몸뚱이는 완전 거지야! 그리고 아쳐와 원수지간이라고!”
황당해서 열불만 터질 뿐이었다. 어째 회귀할 수록 더 최악인 것인지 앞날이 캄캄했다.
“그게 뭐 어때? 그래도 지위가 높은데. 경제력이야 뭐 극복될 수 있는 문제 아니야? 와, 우리 주인님 대단하다! 대공이래!”
이 초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어쩜 좋은가. 극복도 극복 나름이지.
“대공이 밥 먹여주진 않아.”
“인간들도 참 잔혹하네. 대공 전하를 함부로 말하다니 말이야.” “무시당할 만하니 그렇겠지. 성적도 300명 중 300등? 머리까지 나쁜가? 이런 돌아버리겠네.”기어이 스틸 입에서는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엘프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그게 뭔 대수냐고 자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뭔가 시야가 닿는 저 멀리서 어수선한 기운이 몰려들고 있었다.
철갑을 두드리는 발굽 소리가 점점 커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선두에 선 기사가 허리에서 롱소드를 뽑아 들자 칼날이 서늘하게 빛났다.
“게 섰거라! 스틸 대공! 저 마구간 방화범을 잡아라!”
“이 아카데미의 원흉! 스틸 대공!”그들은 스틸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가는 내내 스틸은 마음이 여유로웠다. 자신 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기사들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기사들은 당혹감에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지니, 너도 고생 많았어.”스틸은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지니를 부축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시선이 닿는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어느새 쑥 자라난 키 덕분에 이제는 지니를 여유롭게 내려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아, 우리 주인님. 내가 아주 정성껏 다듬었네?”지니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스틸의 턱선을 훑더니, 이내 목덜미와 어깨, 그리고 단단해진 가슴팍을 노골적으로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만족스러운 탐욕이 일렁였다.“지니. 너의 기묘한 능력은 인정해. 하지만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조금만······.”스틸이 곤혹스러운 듯 말을 흐리자, 지니가 까치발을 들어 그의 귓가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지금도 내가 살짝살짝 만지고 있는걸? 뼈는 더 튼튼해지고, 근육은 더 야릇하게 붙으라고.”스틸은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정전기가 이는 듯 살갗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뭐? 너는 더 나를 멋지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니까? 이 정도면 충분해!”그리 자신도 모르게 지니가 걱정된 스틸이 버럭 하자, 옆에 기사들은 참 가지가지 한다는 듯 황당하게 바라보았다.사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봤을 때는 천하의 망나니에 못난이 범법자인데, 고위 귀족이랍시고 어지간히 깨가 쏟아지게 그녀와 붙어 다니니 시선이 곱지 않은 게 당연했다.그래도 내 엘프는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스틸은 그녀의 몸이 염려되어 허리를 감싸 안고 기사들을 따랐다. 건물 밖으로 나온 뒤 다시 다른 건물로 향해 가면서도 그는 많은 시선을 받았다. 여전히 분위기는 좋지 않았고, 그저 험담만 그들은 늘어놓았다.지니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듣기 싫었는지 입을 삐죽이며 스틸에게 더 기대어왔다.“쳇, 주인님이 얼마나 훌륭한데.”“지니, 세상 모든 일은 시
“음······.”아스라한 새벽의 잔광이 창살 사이로 스며들 때쯤이었다.지니는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가느다란 신음을 뱉었다. 몽롱한 정신을 수습하며 주변을 살피던 그녀의 입술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너무 오랜만에 램프라는 좁은 감옥을 벗어나 현신한 탓일까. 넘실거리는 마력을 갈무리하는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그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던 기억이 조각조각 떠올랐다.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딱딱한 테이블에 불편하게 엎드려 잠든 스틸의 뒷모습이 보였다. 대공이라는 고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침상을 기꺼이 내어준 그의 결벽적인 배려가 못내 안쓰러웠다.지니는 홀린 듯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손끝에 닿는 서늘하면서도 단단한 온기가 좋았다. 그녀는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옅은 금빛 연기가 일렁이더니, 테이블에 머물던 스틸의 육신이 허공을 가로질러 침대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읏차······!”고작 이 정도의 간섭에도 폐부가 타는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지니는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복도를 살폈다. 꾸벅꾸벅 졸음에 취한 간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 순간, 이 고요한 감옥 안에서 그를 독점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그녀는 은밀한 사심을 품고 그의 곁으로 파고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감돌던 침상 위로 지니의 농익은 마력과 금빛 연기가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그녀는 스틸의 넓은 가슴팍에 손을 얹고, 마치 하나가 되려는 듯 제 몸을 밀착시켰다.그때였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스틸이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커다란 손바닥이 지니의 가느다란 허리선을 타고 내려가 둔덕 근처에서 멈춰 섰다. 무의식 중에 시작된 움직임은 거칠면서도 집요했다. 단단한 손길이 살결을 파고들듯 주물러 오자, 지니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거리며 신음을 참아냈다.“우리 주인님, 무의식은 이토록 적극적이구나? 그럼 어디 한번······.”지니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제 엉덩이를
극단의 조치!“지니, 너는 요정이잖아? 소원 같은 거 당장 못 이뤄주나?”이건 사심을 품고 물어 보게 되었다.“당연히 마력이 높으면 주인님 원하는 것을 많이 들어줄 수 있지.”어쨌든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든 천일야화 판타지든 간에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지니, 이왕이면 돈이나 외모를 어찌해 봐야겠어.”인간에게 가장 필요한게 아니겠는가.“어머, 드디어 주인님! 욕망이 생긴 거야?”지니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스틸에게 더욱 바짝 의자를 붙였다. 보통 다들 그렇지 않나? “그래. 너와 힘을 합쳐서 잘 살고 싶어. 아쳐라는 인간이 여기 있다면 이번 생애는 제대로 쓸어 버리고, 요정계로 널 보내 줄게.”이왕 이렇게 되었다면 끝을 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주인님! 시원시원하니 좋네!”지니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벌떡 일어나 스틸의 허벅지에 턱- 하고 올라앉아 그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았다. “으윽! 갑자기 왜 이래?”“잠깐만, 있어 봐.”지니는 몸을 숙여 스틸의 입술을 덮쳤다. 동시에 그녀의 손이 그의 가슴골을 스치며 옷깃을 헤집자, 금빛 연기가 그들의 주변을 휘감았다. 스틸은 그녀의 체온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어찌나 손길이 농밀하던지 스틸은 당장 저리 가라고 해야 했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순간 굳은 채 멍하니 있게 되었다.말캉한 몸에 방금 씻어 그런지 향긋한 비누 향까지. 아랫도리는 그만 뻐근하게 반응이 일어 순간 몸에 열기가 돋우어갔다. 그때 지니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황금빛 안개가 스틸의 피부 위로 스며들었다.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감각에 혈관이 맥동치는 소리가 선명해졌다.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온몸이 간지럽다고 해야 하나. 따뜻한 기운이 폴폴 피어오르더니.쨍그랑, 쨍그랑.테이블 위에는 은화 5개가 생긴 동시에 지니는 후- 후- 하고 거친 숨을 뱉어 내었다.“지 지 지금 뭐 한 거야?”너무 대단한 일이 순식간이 일어나 스틸이
스틸은 죽음과 동시에 이세계로 떨어졌다. 환생을 겪으면서 이렇게 기사들에게 끌려가 본 적은 없었는데 그 대단한 경험을 지금 하게 되었다. 스틸을 체포하러 왔을 때만 해도 살기등등하던 기사들은 그가 순순히 항복하자 머쓱한 듯 거리를 좁히며 따라붙었다.나름 고위 귀족이라 그런지 포박은 안 하고 수 미터 거리만 둔 채 걷는 수준이었다.전생에는 죄짓고 산적이 없어 이런 자들도 만난 기억이 없었다.스틸은 현재 자신이 마구간 방화범으로 몰려 있긴 하지만, 사실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초만 탄 정도지 어디가 무너져 내린 것도 아니고, 말도 멀쩡했기에 피해는 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게다가 현재 이 몸은 불을 낸 사람이 아니라 끈 사람이었다.‘그런데, 아카데미의 원흉이라니. 쳇, 그 말은 좀 거슬리네.’이번 생의 이 몸이 대체 어떤 악명을 떨쳤기에 이러나. 스틸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이 와중에 엘프는 한결같이 스틸 옆에 꼭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엘프, 넌 날 따라와 봐야 좋은 꼴 못 볼 거야.”그때 그녀는 스틸의 귀에 대고 누가 들을세라 아주 작게 속삭였다.“쉿! 이제 겨우 주인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계속 몸이 붙어 있어야 마력이 커져.”엘프의 숨결이 목덜미를 간질이자 스틸은 흠칫 몸을 떨었다. 간지러운 목소리도 그렇고 그 내용도 꽤 자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쭉 같이 있어야 한다고?”스틸은 엘프에게 나지막이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주변 눈치를 보더니 더욱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맞아. 함께 지내면서 난 인간을 도와줘야 요정력이 커지거든. 그럼 난 엘프들이 사는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환생을 거듭하는 동안 엘프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이번 생은 뭐가 많이 뒤틀렸나?“혹시 너 말고 다른 엘프도 많아?”“1000년 동안 77번만 엘프와 인간이 계약한 게 끝인 것 같아. 나도 엘프 치고는 어려서 세상 물정은 잘 몰라. 첫 번째 주인한테 좀··· 무섭게 당한 게 끝이라···.”그녀의 눈
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했다. 전생의 기억과 비교하여 경제적 물가 가치는 비슷했다.1쿠퍼가 밀빵 한 개 값인 2실링, 100쿠퍼가 은화 1실버, 100실버가 금화 1골드라는 설명을 들었다. 실링은 거의 부르지 않고 대부분 쿠퍼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고 하였다.인적이 드문 한적한 운동장 공터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나서야 스틸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한숨 돌리게 되었다.미소녀 엘프는 당연하다는 듯 제 옆에 앉아서 생글생글 미소만 지어댔다.‘이게 새 인생이라니.’스틸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복수나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현재 레벨이 5라니까 앞으로 노력을 해서 올릴 거야. 새로 주어진 삶이니 최선을 다해 살아 봐야겠어.”“주인님. 잘 생각했어. 레벨을 빨리 올리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변화는 생길 거야.”“이 세계에서 온 초월자 버프 그런 것은 없나?”“글쎄. 두고 봐야지. 그래도 난 주인님이 목걸이를 주워줘서 너무 좋아. 램프 안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거든. 빨리 나도 요정계로 가고 싶어.”스틸은 현재 아무것도 아닌 이런 자신이 누군가를 건사할 수나 있을지 엘프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사람들의 평판도 그렇고 구유통에 비친 제 심각하게 민주적으로 자유분방한 얼굴도 그렇고.앞으로의 삶도 밑바닥부터 출발이라 걱정만 되었다.“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마 넌 주인 잘 못 만난 것일 수도
30대 중반의 세도르 단장은 안대를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 은발의 젊은 부하가 급히 달려오자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이런 황당할 때가. 세도르는 놀라 어깨를 움찔거렸다.“이버 경, 뭐라고?”“진화는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인명 피해도 없고 말들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그나마 다행이기는 한데,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마구간지기들은 뭘 하고!”“뭐 모두 배탈이 나서 하필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합니다.”마침 가고 있던 방향이 이스트 에어리어 강의동이었기에 그곳과 멀지 않아 세도르는 말머리를 그곳으로 향했다.“일단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군! 다들 따라와!”레투카 제국 황족을 비롯한 고위 귀족들과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가 다니는 이 아카데미에 불이라니.아카데미 호위 기사단장인 세도르는 황태자의 애마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거슬렸다.자칫 잘못했으면 큰일이 날 뻔했을 터. 책임감에 현장 조사를 안 할 수가 없었다.마구간은 본래 불과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인데,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한달음에 순찰 부대를 데리고 도착한 이스트 마구간은 다행히 밖에서 보니 말은 모두 무사해 보여 가슴을 쓸어내렸다.말에서 내려 매의 눈으로 마구간 안을 살피자 다행히 건초 더미만 불에 탔지, 황태자의 애마를 비롯한 다른 말도 무사하여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그러나 이건 엄연히 범죄였다. 말들은 무사한데 마구간지기들이 갑자기 단체로 자리를 비운 것도 수상했다.“누가 불을 질렀거나, 이곳에서 불을 가지고 뭔가를 한 것 아닌가?”“일단 주변 탐문을 해볼까요?”“이버 경, 마구간을 드나든 목격자들을 조사해!”“넵!”세도르는 이버가 나가고 나서도 마구간을 살폈다. ‘화재의 원인이 분명 있을 거야.’그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건초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아윽! 아흣!”“쉿, 리나. 조용히.”마구간 지하 은밀한 공간, 금발의 청년이 갈색 머리 여인을 엎드려 놓은 채 뒤에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