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30대 중반의 노련한 호위 기사단장, 세도르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거칠게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이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뚫고 은발의 젊은 부하 기사가 다급하게 다가와 앞을 가로막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
“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황당할 데가. 세도르는 황망함에 굵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황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아카데미 안에서 화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버 경, 지금 뭐라고 했나?”
“진화는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도 없고, 고가의 군마들도 모두 무사하다고 합니다.”그나마 천만다행이기는 했으나, 대체 어쩌다 이 엄격한 기사단의 감시망을 피해 불이 나고 구경거리가 되었단 말인지.
세도르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마구간지기들은!”
“그게······ 마침 그 시간에 단체로 배탈이 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고 합니다.”이토록 기막힌 우연은 대개 조작된 필연이기 마련이었다. 세도르가 가고 있던 방향이 마침 이스트 에어리어 강의동이었기에 화재 현장과 그리 멀지 않았다.
“일단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군! 다들 따라와라!”
레투카 제국의 고귀한 황족들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고위 귀족 가문의 영식들과 이 나라를 이끌어갈 천재 인재들이 바글거리는 황립 아카데미였다. 그런 곳에서 일어난 화재는 단순한 사고로 치부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카데미 호위 기사단장인 세도르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은 것은, 제국 황태자의 애마가 바로 그 이스트 마구간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장 조사를 비껴갈 수 없었다. 본래 마구간은 마찰이나 인화 물질이 없어 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었기에, 의구심은 더욱 짙어만 갔다.
*** 순찰 부대를 이끌고 한달음에 도착한 이스트 마구간은, 다행히 외관상으로는 크게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다.안에서 새어 나오는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구름을 들으니 말들은 무사해 보여 세도르는 간신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에서 내린 그는 매의 눈을 번뜩이며 검게 그을린 마구간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다행히 독한 연기만 자욱할 뿐 건초 더미 몇 개만 까맣게 타들어 갔을 뿐이었다. 황태자의 애마를 비롯해 다른 귀족들의 명마들도 가뿐 숨을 몰아쉴 뿐 다친 곳은 없었다.
“단장님, 일단 목격자가 있는지 주변 탐문부터 시작할까요?”
세도르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버 경, 당장 이 마구간 주변을 드나든 자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목격자들을 샅샅이 조사해!”
“넵! 알겠습니다!”이버가 대원들을 데리고 급히 나가고 나서도, 세도르는 텅 빈 마구간에 홀로 남아 미련 가득한 시선으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화재의 명확한 원인이 분명히 이 내부에 숨겨져 있을 터였다.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던 그는 짙은 재를 뒤집어쓴 채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건초 더미를 가죽 장갑 낀 손으로 거칠게 뒤지기 시작했다.
*** “아윽······!” “쉿, 리나. 조용히 해. 기사들이 바로 위까지 들이닥쳤잖아.”탄식과도 같은 신음이 새어 나오는 곳은 마구간 바로 아래, 은밀하게 숨겨진 지하의 비밀 아지트였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눈부신 금발을 흐트러뜨린 청년이 갈색 머리의 여인을 침상 위에 거꾸로 엎드려 놓은 채 뒤에서 뜨겁게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남자의 손길이 여인의 얇은 허리를 부서뜨릴 듯 단단히 붙잡고 짓누를 때마다, 여인은 쾌락에 몸을 잘게 떨었다.
“제국의 작은 태양······ 아쳐 가를리아 폰 레투카 황태자 전하······. 으읏!”
“쉿, 주인 전하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우는 종달새에게는······ 벌을 줘야겠네.”아쳐는 리나의 풍만하고 둔덕한 엉덩이를 한 손으로 꽉 쥐어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하얀 살덩이가 삐져나올 정도로 악력을 높여 쾌감을 키워갔다.
“아읏······! 전하, 그래도 불안해서 두렵습니다.”
“하긴, 그러기는 한데. 몸이 말을 안 듣네?”사실 오늘 온종일 레투카 제국의 황립 아카데미 이스트 에어리어 마구간은 지독하게도 어수선했다.
마구간지기들이 청소를 한답시고 먼지를 피우며 난리를 부린 데다가, 심지어 아카데미 호위 기사단까지 조사라는 명목 아래 머무르고 있었으니 사위가 온통 난장판이었다.
“그럼, 들키기 전에 빨리해 주세요······.”
“리나, 넌 몸 따로 말 따로 노는군. 예쁘게 구는 너이니 예뻐해 줘야겠지?”아쳐는 오늘 하루 쌓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교음은 언제 들어도 아쳐의 정복욕을 자극했다. 주근깨투성이인 못난 얼굴이지만 몸매는 아름다운 그녀였기에 아쳐는 만족스럽게 관계를 이어 나갔다.
게다가 제 남성을 뭉근하게 조여 오는 그녀의 여성은 심각할 정도로 뜨거웠고, 한 치의 틈도 없이 달라붙어 아찔하리만큼 짜릿한 극상의 쾌락을 안겨 주었다.
아쳐는 상체를 숙여 엎드려 있는 리나의 풍만한 가슴을 밑에서부터 지긋하게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터질 듯 흘러나오는 말랑한 살덩이가 손놀림을 더할 때마다 폭신하게 감겨와 그를 더욱 감질나도록 만들었다.
“후······ 리나. 오늘 고맙군. 내 마음을 풀어 주니 말이야.”
제 변덕스러운 취향대로 고분고분한 리나를 조금만 더 장난감처럼 곁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비밀리에 만나는 관계인 데다 아무도 모르는 비천한 신분이었고, 뒷배도 없는 것 같아 뒤탈 없이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황태자······ 전하, 며칠 동안은 조심하심이······.”
그는 들이칠 때마다 출렁이는 리나의 두 가슴을 움켜쥔 채 밭은 숨을 귓가에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난 너를 내일도 안고 싶은데?”
“영 불안해서······ 이번엔······ 안 올래요······.” “명령이야.”그는 붉게 부풀어 올라 열기를 뿜어내는 리나의 엉덩이 양쪽을 두 손 가득 잡아 쥐고 허리를 크게 돌렸다. 그리고 제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숨을 그녀의 목덜미에 크게 뱉어내었다.
“······ 내일은 금화 두 개를 주지.”
“······아윽, 그럼 그럴게요······.”저 멀리 지상 위 마구간에서는 불길에 놀란 말들의 투레질 소리와 발구름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쳐는 온몸의 신경을 타고 퍼지는 짜릿한 사정감에 취해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갑자기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워냈다.
“그나저나······ 여기 불은 어떻게 껐지? 내가 알기로 스틸 그 놈은 마법을 전혀 못 쓰는데······.”
그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척추를 타고 내리꽂히듯 천천히 읊조렸다.
수위가 조절되어 수정을 하였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잘 즐겨 주세요.
스틸이 손님맞이를 위해 정성껏 꾸며 둔 준의전실(Semi-State Room)의 소파 위에서는,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며 밀로투스와 메스메리아가 은밀하고 질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어머, 밀로투스 교수님. 무시무시한 가르나르 미궁을 바로 앞에 두고 목숨을 걸고 나눌 때의 이 열기가 너무 짜릿하네요.”“이곳은 더 이상 무시무시하지도,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하지도 않으니…… 내게만 집중하십시오, 메스메리아 교수님.”소파 위에서 서로의 뜨거운 숨결을 탐닉하던 두 사람은 은밀한 열기를 드레스 자락 속에 감춘 채 농염한 입맞춤을 이어 갔다.스틸의 초대석에서 펼쳐진 화려한 광경과 입안을 가득 채우던 와인의 그윽한 풍미를 떠올리자, 메스메리아의 붉은 입술 끝에 절로 유혹적인 미소가 번졌다.밀로투스의 손길이 그녀의 매끄러운 허리선을 따라 미끄러지며 드레스 아래로 은밀하게 파고들자, 메스메리아의 숨소리가 한층 가늘고 낮게 잦아들었다.격정이 고조될수록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치밀하고 대담해졌으며, 피부 위로 피어오른 열꽃은 은은한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하아…… 우리 스틸 대공은 참으로 멋진 제자가 아닐 수 없어요. 이번 학기 수학 시험에서도 무려 만점을 받았지 뭐예요. 심지어 제가 수식을 배워야 할 정도로 고차원적인 풀이 과정을 선보여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군사학 역시 만점이었습니다. 수업 시간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완벽히 외웠더군요. 게다가 방어술은 이미 전문 기사의 경지를 훌륭히 넘어섰습니다.”절정에 다다른 교밀의 순간에도 두 사람의 대화 속에는 스틸을 향한 찬사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메스메리아의 날카로운 손끝이 밀로투스의 턱선을 스치자, 둘 사이로 묘하고 팽팽
시간은 흘러 마침내 연회가 끝나고 귀족들이 하나둘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황족인 안젤루스가 먼저 자리를 터주자, 고위 귀족들 역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아쳐는 독기가 오른 술에 가득 취해 비틀거렸고, 결국 마지션 교수에게 끌려가듯 저택을 나섰다.“전하, 발을 디딤에 넘어지실까 두렵습니다. 천천히 걸으십시오.”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스틸의 영지는 정비가 어찌나 완벽한지, 아쳐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거슬리는 것뿐이었다.볼룸(Ballroom)을 나와 웅장한 복도를 지나치자, 귀족들이 쉬어 가도록 마련된 준의전실(Semi-State Room)이 눈에 들어왔다.“쳇,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제 주제에 황제라도 된 줄 아나?”“스틸 대공은…… 연금술이나 독자적인 건축 스킬을 터득한 듯합니다. 참으로 경탄스러운 양식이군요……”아쳐는 그 칭찬마저 듣기 싫어 홧김에 마력을 피워 올렸다. 순간이동으로 단번에 황궁 침실로 돌아갈 셈이었다. 하지만 마력이 지지직거리며 불꽃을 튀기더니 허무하게 사그라들고 말았다.“전하! 마력을 억지로 끌어쓰지 마십시오! 타바로 채운 흑마법이 정화되는 과정에서 전하의 잔여 마력까지 모조리 사라지는 수가 있습니다!”“뭐? 쳇, 번거롭긴!”아쳐는 마지션을 대동한 채 어수선하게 비틀거리며 성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상하게도 제 주변에 늘 늘어서 있던 호위 기사나 피닉스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회색 망토를 두른 호위대의 숫자가 부쩍 줄어든 것은 결코 기분 탓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충성심이 식어 버린 것 같았다.황태자인 자신이 이렇게 홀로 비틀거려도 신경 쓰는 자 하나 없다니.&
휘청휘청, 건들건들.추태를 부리며 비틀거리는 아쳐의 뒤를 따르는 것은 다름 아닌 마지션 교수였다.“다들 전하께서 취해 그러신 것이니 괘념치 마시고 즐겁게 연회를 즐기십시오. 하하, 그런데 이 성은 볼수록 훌륭하군요. 새로운 건축 양식이라 제국 역사에 유서 깊게 남을 듯합니다.”마지션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자, 사람들도 그제야 스틸이 구축한 이 화려한 저택으로 관심대를 옮겼다.아쳐는 마지션의 손에 이끌려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하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은 자존심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기 때문이다.귓가를 울리는 건 전부 스틸에 대한 찬사뿐이었다. 스틸이 대단하다, 그의 마력이 경이롭다, 등등. 하나같이 피가 거꾸로 솟구칠 만큼 듣기 싫은 소리뿐이었다.그때, 세도르가 귀족들에게 나누는 대화가 아쳐의 귀에 가시처럼 박혀 들었다.“전 실은 스틸 대공 전하 덕분에 시력을 거의 회복했습니다.”세도르의 말에 안젤루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스틸 대공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황궁에 드리웠던 저주까지 거두어 주신 덕에 어머니께서 지금은 기적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셨답니다.”아쳐의 발길이 오뚝 멈춰 섰다.저주를 거두고, 치유를 행하고. 아무도 고치지 못하는 자신의 이 비참한 몸을 고칠 수 있는 자가 오직 스틸뿐이라는 현실이 절망처럼 그를 짓눌렀다.이제는 마지션 교수마저 뛰어넘어 버린 것이 스틸이었다.제발 살려 달라고 그에게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참담함에 아쳐는 이를 악물었다.***살다 살다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괴수를 치료하러 가게 될 줄이야.죽
“오늘 가르나르가 사납게 요동치는구나.”황제 골타르는 황궁 제 침실의 은밀한 어둠 속에서 자드키엘을 품에 안은 채, 자못 흥미롭다는 듯 나지막하게 읊조렸다.조금 전, 통신 마도구를 통해 아쳐를 호위하던 피닉스로부터 그곳의 소식을 전해 들은 참이었다. 가르나르 한가운데 SS급 미궁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으며, 스틸이 직접 미궁 속으로 들어가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선언하며 연회가 정리되었다는 보고였다.골타르는 기분 좋은 만족감에 젖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하지만 오늘따라 품 안의 자드키엘이 유독 조급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도도하고 당당하던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태도였다. 흔들리는 눈동자, 가늘게 떨리는 밭은 숨결 속에는 기묘한 긴장감이 넘실거렸다.“그러게 말이에요. 전 오늘 이상할 정도로 겁이 나네요. 저 멀리서 거대하고 추악한 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져서요.”“겁은 무슨. 레투카의 품 안에서 네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다고.”골타르는 그저 느긋하게 응수할 뿐이었다.얼마 전, 황궁 의원에게 명령해 자드키엘의 상태를 진찰하게 했을 때 그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황홀함이 그를 사로잡았고, 여전히 자신이 건재하며 아쳐 따위가 아니더라도 제국을 이을 후계자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오만한 자부심이 솟구쳤다.그러니 도른의 마법사인 그녀가 미궁의 출현에 불안해하며 떠는 것도 그저 애교스럽게 보일 뿐이었다.“스틸 그 가엾은 자식은 곧 완벽한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 염려 마라. 너는 그저 내 씨앗이나 고이 품어 키우면 돼.”그 순간, 자드키엘은 골타르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창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스틸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되면 지니 네 안전이 위협받게 되는 거야.”램프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 사실을 안 이상 미궁에 안 갈 수가 없었다.“역시 주인님 말대로 플로럴 스피릿이 다 사라지는 중인가 봐. 하지만 주인님이 미궁에 가면 위험하잖아. 가지 마.”지니는 벌써 현신을 마친 뒤 스틸의 팔을 붙잡았다.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플로럴 스피릿은 전멸할 것 같았다. 제논으로부터 지니를 지켜 주는 존재가 플로럴 스피릿인데, 그것들이 사라지면 지니도 위험해지니 스틸은 머리가 아찔해졌다.심지어 죽음의 기사들이 영지로 흘러나온다고? 말 그대로 데스 나이트(Death Knight)가 아닌가.램프가 알려준 정보는 절망적이었기에 그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스펙터, 내가 알고 있는 ‘케르베로스’는 저승을 지키는 개가 맞지?”“그래. 조만간 죽음의 기사단이 영지 밖으로 나온다니, 이건 초대된 사람이 전부 죽게 된다는 의미다.”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를 어쩌나.이제야 미궁의 등장이 납득되었다. 그리고 이 영지의 인간이 0명이었던 이유도 다 밝혀진 셈이었다.저것이 나타나면 가르나르 영지의 인간들도 저승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게다가 병든 케르베로스의 마력이 떨어져 플로럴 스피릿을 흡수하고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겠는가.그렇다면 더 이상 치유의 꽃은 남아나지 않게 되고, 지니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함과 동시에 가르나르의 영험한 가치도 사라지게 된다.“케르베로스가 있다는 건 저기가 저승문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야. 이제 이해가 가. 누가 이 영지에 발이라도 들이고 싶었겠어? 내가 초
하늘도 무심했다.스틸의 인생에는 평온할 날이 없었다. 전생을 거치는 동안 평범한 일상조차 특별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사다난했다.그 결과 부모도 없이 고생만 하다가 결국 단명했다.어제 지니를 만났으니 이제 좀 사람다운 삶을 사나 했더니, 난데없이 공간이 뒤틀리며 미궁이 나타났다.행사가 한창 무르익어 사람들과 어울리며 가르나르 영지의 위대함과 캔도르 상단의 출범을 대대적으로 알리려던 찰나인데.“어떻게 이런 일이.”눈앞이 캄캄해졌다.하늘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쏟아지며 시야가 물에 젖은 종이처럼 일그러지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산이 공간 한가운데 우뚝 솟아올랐다.이어 무지갯빛 오색 광선이 미궁 입구로 빨려 들어가자, 주변은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미궁의 등장에 스틸의 가슴은 공포로 옥죄어 왔지만, 손님들은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몽환적인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천리장성의 위용, 각종 마도구의 신비, 가르나르 꽃밭의 화려함이 이미 그들의 시선을 완벽히 사로잡은 덕분이었다.다행히 미궁은 그들에게 단순한 눈요깃거리에 불과했다.공포는 오롯이 스틸만의 몫이었다. 그것만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조금 전까지 땅을 울리던 두려움은 화려한 빛의 춤사위 속에 녹아내린 덕에 금세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이것도 스틸 대공의 연출일까요? 너무 아름답네요.”“원래 가르나르 영지 자체가 미궁이라고 하니 이런 게 수시로 발생하나 봅니다.”“저렇게 빛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되니 참으로 장관입니다.”“매일 밤마다 영지 한가운데에서 이런 쇼가 펼쳐지는 게 아닐까요?”사람들은 아주 대단한 착각을
자신이 알고 있는 ‘소원을 말해 봐!’라고 하는 램프의 요정이 그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서 빨리 이 소녀를 전문가에게 보여줘야 하는데.“어이,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니 말은 좀 편히 할게. 엘프야, 일단 내가 눈 떠보니 다른 세상에 소환되어 환생한 것 같아서 얼른 적응해야 하거든? 그러니 그쪽도 정신 차려.”넋두리하듯 그리 스틸이 말을 내뱉고 몸을 돌리라 하자, 엘프는 제 두 어깨를 꼭 부여잡더니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어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초월자인가? 나 횡재했잖아? 초월자를 주인님으로 맞이하다니!”
주인님은 무슨. 불이 난 연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스틸은 우선 잠시 목걸이를 들여다보았다.3초 잠깐 고민한 그였다. 누가 봤나? 참 CCTV는 없는 세상이지? 하지만 목숨까지 내던지며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던 천하의 파일럿 강철신이 이런 목걸이 하나의 움찔하다니.게다가 망한 영지기는 해도 고위 귀족 대공 인생에 뭘 주워서 넙죽- 꿀꺽할 수 없는 법.일단 이 화재부터 진압하고 주인이나 찾아줘야겠다 싶어 주변을 훑었다.강철신은 일단 구유통이 아닌 우물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불길에 쫓겨 물을 찾던 그의 눈에 목걸이가 들어
한 달 전, 20XX년 4월 1일 오전. 인생 2번째라 공군 소령 강철신은 오늘이 당연히 올 줄 알았다. 그리고 당연히 적국기 등장으로 출격 명령을 받았다. 전생의 기억이 혈관 속을 맴돌았다. 오늘, 그는 죽을 각오로 전투기에 올라가야 하는 날이다. 분명 적국의 전투기에는 망할 아쳐가 타고 있을 터.정밀유도폭탄(SDB)까지 무장하고 스텔스 전투기로 출격 30분 만에, 지금 그는 사선을 넘나들게 되었다. 여전히 그는 대한민국 영공을 휘저어 놓았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 미사일을 터트릴 요량으로 북방 한계선을 넘었다. “이
잠깐, 이거 꿈이지?그녀의 숨결이 귓가를 스쳤다.“주인님, 아읏! 너무 좋아!”그리 곱고 고운 엘프가 눈부신 나신으로 제 밑에 이리 깔려있다니.오 신이시여, 강철신 인생이 너무 불쌍하여 회귀 포함 토털 5번 생애 처음으로 이런 선물을 주시는 겁니까. 그럼 넙죽 받을 수밖에요. 어차피 꿈인데 뭘 못하겠습니까.스틸은 떨리는 손끝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지니, 제대로 하는 거 맞겠지?” “응, 내 몸이 너무 뜨거워졌어. 나도 처음이라··· 흐흣! 뭐가 뭔지 모르겠어. 으윽!”두 몸이 얽히는 소리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