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럴 리가 없었다. 어서 빨리 이 여인을 전문가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어이,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니 말은 좀 편히 할게. 엘프야, 일단 내가 눈 떠보니 다른 세상에 소환되어 환생한 것 같아서 얼른 적응해야 하거든? 그러니 그쪽도 정신 차려.”
넋두리하듯 스틸이 말을 내뱉고 몸을 돌리려 하자, 엘프는 그의 두 어깨를 꽉 부여잡더니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초월자야? 나 완전 횡재했네! 대단한 인간을 주인님으로 맞이하다니!”
“······초월자?” “우리 주인님이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봐! 하하!”자칭 엘프라 주장하는 그녀는 신이 나서 한껏 들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스틸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긴, 나라를 구하긴 구했다. 이번 생은 무언가 좀 다르려나. 못생긴 외모 빼고는 엄청난 특혜라도 얻은 것인지.
아쳐에게 복수하고, 망해가는 영지만 살릴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그 엘프는 흥분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놓아주지 않은 채, 요리조리 스틸의 코앞까지 다가와 그를 뜯어보았다.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도자기 같은 피부에, 조각품보다 아름답고 우아한 선을 지닌 완벽한 존재. 그 신비로운 눈동자가 스틸의 얼굴을 빤히 담고 있었다.
“난 주인님의 소원들을 들어주고 엘프력을 키워서 내 소망을 이루는 게 목표야. 아무래도 주인님은 대단한 마력을 부리게 될 초월자가 틀림없어. 조만간 마법 능력이 개화할 거야!”
엘프는 호기심을 잔뜩 품은 미소로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넸다.
대단한 마법력을 구현할 초월자가 누구? 나?
어쩐지 그래서 조금 전에 손에서 폭포수 같은 물이 뿜어져 나왔던 걸까. 스틸은 얼떨떨한 마음으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본래 캔도르 대공가는 마법력이 대단한 핏줄이라는 칭송이 자자했다지만, 정작 자신은 단 한 번도 마법을 써본 적이 없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덕에 가능해진 일이라면, 한층 흥미진진하게 이 사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엘프가 찰싹 붙어오더니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주인님, 잠깐 확인 좀 할게.”
“무슨 확인? 어?”쪽-!
그녀는 갑자기 스틸의 뺨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온기 어린 감촉이 닿는 순간, 스틸의 사고가 완전히 정지했다. 아무리 엘프라고 해도, 명색이 전생에 아련하게 품었던 짝사랑을 가슴에 품은 순정남인데 이런 기습 스킨십이라니.
황당함에 입을 벌리기도 전에, 시야 전체가 번쩍하고 피어올랐다.
“어······?”
허공에 투명하고 눈부신 불꽃이 일더니, 선명한 반투명 창이 떠올랐다.
**************************[기타 능력 : 200,000]
[현재 레벨 : 5 (E급 마력 소유자)]★ 특수 효과 : 고대 종족 '빛의 요정' 소유권 획득.
★ 추가 보상 : 수명 +1년.**************************
다섯 번의 인생을 거치는 동안 이토록 괴상하고 높은 수치의 상태창은 본 적이 없었다. 스틸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제 옆의 엘프를 바라보았다.“너 진짜 엘프야?”
“응! 내가 주인님의 소원이 이뤄지도록 팍팍 도와줄게.”앞으로 마력도 쓰고 엘프까지 곁에 둔 채 복수를 이뤄낼 수 있다는 뜻일까.
눈앞에 명확한 수치로 등장하니 이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근데 레벨 5에 E급이면 완전 보잘것없다는 뜻 아니야?”
“하지만 주인님은 이제 점점 성장해 나갈 거잖아? 나랑 몸도 마음도 교류해 나가면 능력치가 금방 높아질 거야.” “몸도 마음도 뭐?”초면에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엘프를 보며 스틸은 머리를 짚었다.
이 엘프야말로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닐지, 혹은 자신이 과부하로 환각을 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건 그렇고, 기타 능력 200,000은 뭐야?”
엘프 역시 스틸의 상태창에 떠오른 숫자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좀 의문이야. 기타 능력 200,000이라니······ 난 알 수가 없네. 여태까지 인간계에 와서 만난 다른 주인들한테선 본 적 없었거든.”
알 수는 없었지만, 수치가 높으면 어떻게든 써먹을 구석이 있을 터였다.
어쨌든 빛의 요정을 소유할 권리를 얻어 그녀의 주인이 되었고, 당장 죽을 위기에서 수명이 1년 늘어났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아카데미 제복을 입은 몇몇 학생들이 스틸이 앉아 있는 벤치 옆을 지나치며 대놓고 눈총을 주었다. 참으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눈빛이었다.
“윽, 저 귀족은 설마 그 유명한 못난이 대공? 아카데미 수업을 오늘도 빼먹었나 봐.”
“상종하지 말아야 해. 엮여서 좋을 리 없어.” “외모도 하는 짓도 참······ 귀족 망신은 혼자 다 시키지. 옆에 저 여자애는 뭐야?” “신분 상승이라도 해보려고 귀족한테 붙어먹는 건가? 쯧쯧, 줄 한참 잘못 섰네.”지나쳐 가는 이들이 내뱉는 소리가 아주 가관이었다.
상종하지 말아야 할 귀족의 망신이라니!
스틸이 차지한 이 몸은 이번 생에서도 외모와 인성, 평판 모두 최하를 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하나둘 모여드는 학생들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졌다. 계속 앉아 있기 민망해진 스틸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생각 좀 정리해야겠다.”
스틸이 조용한 곳을 찾아 걸음을 옮기자, 엘프 역시 신이 난 얼굴로 그의 뒤를 사뿐사뿐 따라붙었다.
“주인님! 같이 가!”
황실 동관 깊숙이 자리한 황태자의 침실.마지리안은 제 오라버니인 마지션의 감시를 피해 은밀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이제 은발 여인의 모습으로 드레스를 입고 대리석 바닥에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마저 죽인 채 방문했다.아쳐는 창가에 기대어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리노가 공개한 영상으로 인해 궁정 안팎이 떠들썩했지만, 그의 표정은 놀랍도록 차분했다.황제 골타르의 비호가 그를 보호막처럼 감싸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했다.황제와 황태자가 핏줄이라는 마르바스의 증언은 대단했다.그 뒤로 아쳐는 더 많은 호위 기사를 거느리게 되었고, 정무 대신들도 아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아쳐가 마지리안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마지리안, 내가 황제의 핏줄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문이 살짝 삐걱거리자 마지리안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호위 기사들이 문 앞에 도열해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당연히 황태자 전하는 황제가 되셔야죠. 제가 새로운 포션을 만들어 갖고 왔습니다. 전하께 발라 드리고 싶네요.”아쳐의 손이 그녀의 팔목을 잡는 순간, 침실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고맙습니다.”황태자는 그리 말하며 사양 없이 가면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 잘난 얼굴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치유 포션을 퍼붓고 또 퍼부어 주었다.마지리안은 자신이 왜 이리 바보처럼 구는지 알 수가 없었다.아쳐는 자신에게 마음 따위는 주지 않고 이용만 하는데, 첫정이 이리 무섭나. 자신은 마지션에게 들키면 호통을 들을 각오로 이곳에 오게 된 것이었다.아쳐의 몸은 실로 지독했다.타바뿐만이 아니라 흑마법의
목요일 오후, 치르수 교수의 강의가 진행 중이다.주말을 앞둔 학생들의 얼굴에는 가벼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고, 강의실은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와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치르수 교수는 차분한 어조로 인간의 사랑에 대한 세계를 해부하듯 설명하며, 청중을 몰입시키는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었다.그러나 스틸에게는 지금 수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쫓기고 있는 리노가 연락을 하다니.지니는 은밀하게 통신 마도구에 귀를 기울였다. 황실의 추격 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리노와의 연락을 유지해야 했지만, 외부로 나가는 것은 위험했기에 조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그녀는 학생들의 시선을 피해 조심스레 통화를 이어갔다. 치르수 교수의 목소리와 리노의 긴장된 대답이 교차하며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흠흠······.”헛기침을 한번 하고 주변에 강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마도구의 성능을 줄인 뒤 입을 열었다.“···아, 흠흠.”-안녕, 지니 양.지금 리노는 안전하게 잘 있는 건지 일단 염려가 밀려왔다.스틸은 오감을 집중하고 특히 공간 지배 스킬을 세워 지니의 마도구 너머에서 들리는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지금 치르수 교수님 수업 중인가 보네. 스틸 대공 전하께 난 괜찮다고 전해 줘.“흠흠······.”역시 이건 다행이었다. 지니가 헛기침을 하니 리노도 눈치 있게 알아듣는 것 같았다.-이번 주 일요일 오스카 대공과 약속을 잡았어.지금 황실로부터
레투카 제국 서쪽 도르타니 영지의 후작가 별장.은은한 촛불이 테이블을 비추는 가운데, 안젤루스와 세밀레아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저녁 식사를 이어갔다.포도주 잔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듯, 두 사람의 긴장감도 공기 중에 서렸다.“어머니, 상황이 예상보다 복잡해지네요.”안젤루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동자엔 초조한 빛이 스쳤다. 그녀는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으며 덧붙였다.“마르바스는 정말로 제논의 첩자가 분명한데······.”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하대하던 아쳐에 대한 증오가 안젤루스에게는 쌓여 있었다. 이제 황위를 계승해 그에게 똑같은 고통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르바스의 존재가 모든 계획을 뒤흔들고 있었다.안젤루스의 손이 테이블 가장자리를 짚으며 살짝 떨렸다. 세밀레아는 딸의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며 묵묵히 잔을 들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별장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마치 경고처럼 귓가를 스쳤다.도르트 후작가의 보호가 없으면 제국 어디 몸 둘 곳도 없는 요즘이었다.세밀레아의 외가 쪽 세력은 힘이 미약하고, 그렇다고 스틸은 자신에게 철벽을 치고 있으니 힘을 구할 데가 마땅치 않아 고민만 늘어갔다.“어머니, 이 후작가는 저랑 연을 맺으려 할까요?”세밀레아는 식사를 하다 잘 넘어가지 않는지 물을 마시며 잠시 먹던 것을 멈추었다.“우리가 산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았으면 싶기도 해. 후작가를 꼭 잡아야 한다.”황가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은 아니었던 세밀레아였다.누구보다 안젤루스는 어머니가 고통 속에 결혼생활을 했다는
자드키엘이 흠칫 놀라며 잠시 몸을 굳히는 것이 골타르의 눈에 들어왔다.그녀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긴 했지만, 골타르는 모른 체하며 마르바스에게 명령을 내렸다.“마르바스 경, 내가 그대를 아직 100% 믿는 건 아니네. 나를 믿게 만들어 보게.”그러자 마르바스는 환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마력을 활활 피워 올렸다.그리고 갈색 연기가 골타르와 아쳐의 주변을 감싸게 하더니 묘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자유와 생명의 여신이시여, 그 이름을 빌려 씨앗의 본래 그릇인 시초를 찾고자 하니 응답해 주소서.”그 영창을 수회 반복하던 그는 골타르의 손에서 톡! 하고 피 한 방울을 받아내더니, 아쳐의 손에서도 다시 톡! 하고 핏방울을 거두어 갔다.그 핏방울들은 실처럼 가늘게 늘어나더니, 각각 사람 얼굴만 한 크기의 마법진을 그려 내었다.붉은 불꽃 같은 기운이 활활 타오르더니 두 마법진이 서로 천천히 맞물려 갔다.그러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겹쳐 들었다.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을 확인시킨 그는 골타르에게 말을 건넸다.“두 분은 핏줄로 연결된 부자지간이 확실하십니다. 노여움을 푸시고, 황태자 전하를 거두어 주십시오. 리노는 악랄한 흑마법사일 뿐입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아쳐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골타르 역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아쳐를 바라보며 밭은숨을 내뱉었다.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 없지만, 어쨌든 신하들 앞에서 화풀이를 마쳤기에 골타르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몸을 돌렸다.“그래? 그렇다면 리노를 숨겨 준 자들까지 모두 반역으로 몰아붙여라!”마르바스는 환하게 웃으며 아쳐를 바라보았다.아
리노는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는 의연하게 굴었다.“저도 S급 모험가입니다. 제 몸 하나쯤은 충분히 건사할 수 있습니다.”“리노 사장님, 그냥 여기 머무세요. 가르나르는 그들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니까요.”스틸은 리노가 뛰어난 마법적 능력을 갖춘 자라는 사실을 믿었지만, 그래도 이 제국의 황위 계승 1위는 아쳐였기에 그리 만만하게 당해 줄 것 같지 않아 염려스러웠다.“하지만 저 때문에 괜히 이곳까지 위험해지면 안 됩니다. 종종 연락을 올리겠습니다. 당분간은 잠시 떠나 있겠습니다.”“아, 잠시만요.”그때 인벤토리 안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스펙터와 케르베로스들을 떠올린 스틸은 긴급하게 머리를 맞댔다.“너희들, 무슨 좋은 생각 없어?”그러자 인벤토리 안에서 껄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별 시답잖은 일로 걱정한다는 듯 한마디씩 터져 나왔다.-하데스 님의 기사들을 좀 붙여 줘야겠군.-저 모험가는 제법 강하다.-정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점점 흥미진진해지는군.뭐 그리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난 것인지 아주 여유만만이었다.스펙터 역시 크게 동요하지 않은 채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았다.-하데스의 데스 나이트와 나의 듀라한이 주변을 호위해 주면 좋겠군.하긴 요즘 스펙터의 듀라한이 스틸의 곁에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자리를 지켜 주어 든든하긴 했다.그래도 리노 혼자 도망치는 것보다는 데스 나이트나 듀라한들이 밀착 호위해 주는 편이 정보 수집에도 유용하고 여러모로 좋아 보였다.“그래. 괜찮은 방법이야.”“주인님, 그거 진짜 좋네!
스틸이 결계 안의 은밀한 공간으로 리노를 초대하자, 잠시 뒤, 초록색 연기가 피어났다.“리노 사장, 식사부터 하세요.”결계 속으로 불러들인 탓에 스틸은 바로 연금술로 식탁을 가득 채웠다.리노는 이 상황에서 민망하게 웃더니 자리를 잡았다.“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틸 대공 전하.”지니가 그의 앞으로 그릇을 밀어 주며 음식을 권해도 여유롭게 웃었다.“오셨어요? 이건 제가 만든 디저트예요. 나중에 팔아도 좋고요.”“감사합니다. 전하, 그리고 지니 양. 대단하군요. 하하! 다가올 레스토랑 오픈이 기대됩니다.”그때 지니는 방긋 웃으며 종이 상자를 꺼내 들었다.“리나 선배님과 마티어스 선배님께도 선물로 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이거 다른 분 들하고 나눠 드세요. 쿠키예요.”“하하, 고맙습니다. 계속 굶었더니 배가 고프군요.”스틸은 그의 잔에 와인을 채워주며 본격적으로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 대화를 이끌었다.“한잔 하면서 식사부터 하십시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일을 벌일 수가 있습니까?”그러자 리노는 느긋하게 굴며 와인으로 목을 축이더니 대답을 건넸다.“최근에 계속 황태자에게 시달려 벼랑 끝에 몰려 있었습니다. 어차피 타바도 안 팔고 협조도 안 하면 죽음이 가까울 거라는 협박도 받고 있었기에 터트린 겁니다.”역시 리노가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연유를 또 아쳐가 제공한 것 같았다.사람이 궁지에 몰리니 그럴 수밖에 없으니 다 이해가 되었다.“
마구간 아래, 공기가 무겁게 감도는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황태자의 은밀한 아지트인 침대 위에서, 아쳐는 억눌린 짐승 같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리나를 제 육체 아래로 뜨겁게 가두었다. 그는 옷가지가 채 다 벗겨지지도 않아 날것의 살결과 옷감이 뒤엉킨 그녀의 몸을 거칠게 뒤돌려 세웠다. 매끄러운 척추 라인이 쾌락의 예감으로 잘게 떨렸다.질척, 찌걱.밀폐된 정적을 깨는 노골적인 파찰음과 함께 리나의 하얀 둔덕이 아쳐의 손자국대로 붉게 달아올랐다. 아쳐의 뜨거운 손길에, 그녀의 가녀린 신음은 축축한 지하의 공기 중으로 애처롭게 흩어졌
극단의 조치!“지니, 너는 요정이잖아? 소원 같은 거 당장 못 이뤄주나?”이건 사심을 품고 물어 보게 되었다.“당연히 마력이 높으면 주인님 원하는 것을 많이 들어줄 수 있지.”어쨌든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든 천일야화 판타지든 간에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지니, 이왕이면 돈이나 외모를 어찌해 봐야겠어.”인간에게 가장 필요한게 아니겠는가.“어머, 드디어 주인님! 욕망이 생긴 거야?”지니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스틸에게 더욱 바짝 의자를 붙였다. 보통 다들 그렇지 않나? “그래. 너와 힘을
스틸은 죽음과 동시에 이세계로 떨어졌다. 환생을 겪으면서 이렇게 기사들에게 끌려가 본 적은 없었는데 그 대단한 경험을 지금 하게 되었다. 스틸을 체포하러 왔을 때만 해도 살기등등하던 기사들은 그가 순순히 항복하자 머쓱한 듯 거리를 좁히며 따라붙었다.나름 고위 귀족이라 그런지 포박은 안 하고 수 미터 거리만 둔 채 걷는 수준이었다.전생에는 죄짓고 산적이 없어 이런 자들도 만난 기억이 없었다.스틸은 현재 자신이 마구간 방화범으로 몰려 있긴 하지만, 사실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초만 탄 정도지 어디가 무너져 내린
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