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주군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요.”
“다만 아카데미 외부에서 주둔하고 있었을 터인데, 이곳까지 곧바로 순간이동을 해 올 정도라니 상당한 실력자들이군요.”세도르와 이버의 나직한 말에 주변에 둘러선 이들 사이에서 가벼운 탄성과 함께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 순간 스틸은 허공에 주둔한 군대를 향해 손짓하며 덤덤히 명령을 내렸다.
“그렇습니다. 다만 계속 머물러 있으면 분위기가 흉흉해질 테니, 이들은 다시 영지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스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많던 무장한 기사단은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겉보기에는 완벽히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션은 그들이 그저 은밀하게 투명화 마법을 뒤집어썼을 뿐임을 똑똑히 느낄 수
옆에 있던 세도르 역시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받았다.“주군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요.”“다만 아카데미 외부에서 주둔하고 있었을 터인데, 이곳까지 곧바로 순간이동을 해 올 정도라니 상당한 실력자들이군요.”세도르와 이버의 나직한 말에 주변에 둘러선 이들 사이에서 가벼운 탄성과 함께 웅성거림이 일었다.그 순간 스틸은 허공에 주둔한 군대를 향해 손짓하며 덤덤히 명령을 내렸다.“그렇습니다. 다만 계속 머물러 있으면 분위기가 흉흉해질 테니, 이들은 다시 영지로 돌려보내겠습니다.”스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많던 무장한 기사단은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겉보기에는 완벽히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션은 그들이 그저 은밀하게 투명화 마법을 뒤집어썼을 뿐임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전력보다 안 보이는 존재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 온몸의 털이 서늘하게 일어서는 순간이었다.“멀리서 모시는 주군의 마력 파동만 감지하고도 이처럼 정확하게 좌표를 찍고 찾아오다니, 나중에 군사 훈련에 관한 조언은 스틸 대공에게 꼭 들어야겠습니다.”세도르는 연신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스틸을 높이 추켜세웠다.“별말씀을요. 다른 학생들에게 괜한 공포심을 주었을 수도 있으니 자중시키겠습니다.”스틸이 여유로우면서도 겸손하게 굴자, 옆에서 지켜보던 아쳐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물들인 채 콧바람을 씩씩 내뿜었다.상황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스틸은 세도르와 이버에게 수고 많았다며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곧이어 소란이 정리되고 다시 수업이 재개되었다.학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평범하게 마도구를 제작하는 실습에 들어갔다.
스틸은 밀려오는 황당함을 가라앉히며 상황을 정리했다.가짜 마지션은 대놓고 사직을 선언하고, 지니는 저자가 과거 자신을 고문했던 자라고 말한다.어쨌든 이 난장판 속에서 숨겨진 진실 하나만큼은 명확히 드러날 기세였다.게다가 조금 전부터 주변 공기를 감도는 서늘한 위화감은 거슬렸다.스틸은 아카데미의 치안을 책임지는 기사단장 세도르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세도르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다친 사람도 없고, 황태자 전하를 위해할 의도도 없었으니 연행할 까닭이 없습니다. 마지션 교수님께서 직을 내려놓으실 이유도 전혀 없고요.”세도르가 가볍게 손을 저어 상황을 일단락짓자, 옆에 있던 황태자 아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무슨 수를 써서든 스틸을 물어뜯고 싶었을 황태자로서는 속이 뒤틀릴 일이었다.‘그건 그렇고, 이 기묘한 감각은 뭐지?’스틸은 주변을 탐색하기 위해 마력을 얇고 날카롭게 펼쳤다.아니나 다를까, 공터 구석 진영에 누군가 은밀히 숨어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익숙한 마력 파동. 알고 있는 마력의 향기였다.‘행색을 숨긴 마지리안인가?’은밀하게 투명 마법을 뒤집어쓴 채 벌벌 떨며 상황을 지켜보는 마지리안과 정확히 시선이 마주쳤다.[저 여자, 제법 흥미롭군.]스펙터 역시 헛웃음을 흘렸다. 스틸의 옆에 선 지니 역시 그쪽을 포착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존재감을 완벽히 숨겼다고 믿었던 마지리안은 스틸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황급히 몸을 말아 웅크렸다.***한편, 마지션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데스가 널 항상 지켜보는 모양이군. 재미있어. 명계의 신이 인간 죽을까 봐 호위까지 붙이다니.]스펙터의 묵직한 음성에 스틸은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인간의 목숨을 거두며 저승으로 불러들이는 명계의 주인이 제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니. 하데스 녀석, 보기보다 엄청나게 끈끈한 의리가 있었다.“주인님! 내 인벤토리도 난리야. 하마터면 레드 드래곤까지 원래 모습으로 등장할 뻔했다니까?”“다들 날 못 지켜서 안달이군.”스틸이 살짝 의식을 집중하자, 묘하게 인벤토리 안에서 케르베로스가 웅성대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저 마법사, 기운이 이상하다.― 저 데스나이트는 이성이 있다. 스틸 널 앞으로도 계속 지켜 줄 거다.― 평소에는 투명화로 아기 엘프와 너를 지키던 놈들이다.이 얼마나 든든한 아군인가. 스틸은 이형의 존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심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아낼 정도였다.[저쪽 듀라한들은 하데스 명령보다 자발적으로 널 지킨 것 같다. 물론 하데스가 널 돌보라고 한 게 원인이겠지.]스펙터의 설명에 케르베로스들이 왈왈거리며 덧붙였다.― 인간 주제에 운 하나는 더럽게 좋군.― 하데스 님의 군사 1만이 널 지켜줄 거다.― 널 통해서 세상을 구경하고 싶으신 게 그분의 의지다.케르베로스의 설명에 스틸은 기가 찼다.하데스가 군사를 보낸 이유가 스토커 수준으로 주변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니,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하데스가 어지간히 심심했나 보군.’일상이 지루해 유독 재미를 추구하는 하데스였기에 조금은 납득이 가기도 했다.― 가르나르에서는 우리 맘대로 돌아다녔다.― 아카데
속삭이듯 내뱉은 밀로투스의 말에 메스메리아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렷다.그녀도 스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지 고개를 끄덕였다.사건을 몰고 다니는 유별 스틸은 과거 망나니 모습을 벗어던지고 제국 내의 온갖 시선을 한몸에 받는 능력자로 거듭나 있었다.밀로투스의 손길이 허리선을 지나 굴곡진 엉덩이에 머물렀을 때, 그녀는 살짝 몸을 떨며 그의 품 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밀로투스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안아 들고 창가로 이끌었다.혹여나 창문 밖에서 학생들이 교수동을 올려다볼까 싶어 투명화 마법을 가볍게 펼쳐 놓은 뒤, 두 사람은 한층 더 대담하게 서로의 몸을 비벼댔다.“정말 오랜만에 교수님을 뵙다니 신이 나네요.”“지난주 황실과의 협의 때문에 개강을 놓쳤는데, 이리 메스메리아 교수님을 안고 있으니 방학이 다 지나간 게 비로소 실감이 나는군요. 후후.”두 사람은 깊은 관계까지 나아가지 않은 채, 야릇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의 손길과 온기를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저는 연구실에 파묻혀 지내느라 바빴는데, 교수님은 왜 이리 학교에 안 계셨던 건가요?”밀로투스는 옷 위로 볼록하게 솟아오른 메스메리아의 풍만한 흉부를 주물럭거리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루카스크 대공가 부근이 저희 가문의 영지와 가까워서, 요즘은 서로 군사력을 공유하며 전선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도른이 자꾸 도발을 해서 말입니다.”“제국의 국경을 이리 지켜 주시니······ 저희 같은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거네요. 감사해요, 교수님.”생각지도 못한 칭송에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 밀로투스는 머쓱함을 달래려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
점심 식사를 마친 스틸은 지니와 함께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마법학 개론』 강의를 듣기 위해 웨스트 에어리어 공터로 향했다.오늘도 날씨는 쾌청했다.야외 수업이 열리는 공터는 햇살이 찬란히 내리쬐고 잔디밭이 펼쳐져 초록빛 향연을 이루는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스틸에게는 날씨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이럴 수가. 황가보다 더 대단한 게 루카스크 가문이었다니.”스틸은 충격으로 입술을 깨물었다.“그러게. 주인님, 몰랐어. 그 루카스크 가문이 그리 대단한지.”광증으로 사교계에도 못 나가고 정치에도 관여하지 못하는 대공이라 얕본 것일까.전생의 짝사랑 상대와 닮은 대공비의 외모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 가문을 외면한 탓일지도 몰랐다.그러나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광증으로 폐인처럼 산다던 대공이 어떻게 영지를 풍요롭게 유지하고, 하필이면 군수 산업까지 발전시켰을까.“원래 그 대공가가 마정석이 많이 난다고 해도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전쟁도 없는 시대에 무기가 무슨 소용이지? 어쩌면 현대처럼 미리 방어를 하려고 하는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걸까.무기를 많이 생산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주인님, 알고 보면 그 영지도 습격을 많이 받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역시 지니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그 대공이 광증 탓에 전면전에 나설 수 없어도 가신이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원래 평화를 외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싸우지 않겠소- 그리 선포하려면 싸울 능력이 있고 함부로 안 해야 다들 인정하게 된다.스틸은 루카스크 대공가가 제국에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군사력이라도 갖춰 숨어 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애써
수업이 끝난 직후, 스틸과 지니는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한 온기를 만끽하며 학부 식당으로 향했다.아카데미 검술 대회도 기대가 되고, 합법적으로 아쳐에게 철퇴를 내릴 수 있는 앞날도 기대가 되는 그였다.그리고 무엇보다 등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우군들의 존재 덕분일까.가슴 속 깊이 퍼지는 여유는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만들었다.다만 그로 인해 얻은 소소한 번뇌가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뇌리를 울리는 차원 인벤토리 속 전력들과 '마음의 소리'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행복한 비명뿐이었다.스틸의 공간에는 칠흑 같은 오라를 품은 듀라한 기사단과 스펙터, 그리고 덤으로 깃든 플로럴스피릿의 왕이 자리 잡고 있었고, 지니의 공간에는 가르나르의 마정석 꽃밭 수만 송이와 수백 체의 밴시, 심지어 웅크린 레드 드래곤까지 깃들어 있었다.— 인간들의 학문이란 참으로 기이하군.—정치라니, 굳이 머리를 썩혀 배운들 저 실상과 어찌 같겠는가.— 전하, 저편에 불온한 저주의 기운을 품은 무리가 서성입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귓가를 잔잔하게 울리는 정령들과 마물들의 와글거리는 음성은 스틸에게 색다른 즐거움이자, 그 어떤 첩보망보다 완벽한 이중 방어선이 되어 주고 있었다.“주인님, 정말 우리 주변에 많은 존재가 있어 그런지 하나도 심심하지가 않아.”스틸이 능력이 많아질수록 지니 역시도 함께 성장하고 있으니 느낀 바는 똑같은 것 같았다.“그러게. 어수선해도 즐겁군.”그리고 이제 주변 인간들도 스틸에게는 웃으며 다가오는 존재가 많았다.인사하는 사람, 눈을 마주쳐도 찡그리지 않는 학생, 그리고 동경하듯 바라보는 사람들까지.지난봄과 많은 변화를 겪은 그였다.&ldq
30대 중반의 노련한 호위 기사단장, 세도르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거칠게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이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뚫고 은발의 젊은 부하 기사가 다급하게 다가와 앞을 가로막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 “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이런 황당할 데가. 세도르는 황망함에 굵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황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아카데미 안에서 화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이버 경, 지금 뭐라고 했나?” “진화는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
자신이 알고 있는 ‘소원을 말해 봐!’라고 하는 램프의 요정이 그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서 빨리 이 소녀를 전문가에게 보여줘야 하는데.“어이,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니 말은 좀 편히 할게. 엘프야, 일단 내가 눈 떠보니 다른 세상에 소환되어 환생한 것 같아서 얼른 적응해야 하거든? 그러니 그쪽도 정신 차려.”넋두리하듯 그리 스틸이 말을 내뱉고 몸을 돌리라 하자, 엘프는 제 두 어깨를 꼭 부여잡더니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어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초월자인가? 나 횡재했잖아? 초월자를 주인님으로 맞이하다니!”
주인님은 무슨. 불이 난 연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스틸은 우선 잠시 목걸이를 들여다보았다.3초 잠깐 고민한 그였다. 누가 봤나? 참 CCTV는 없는 세상이지? 하지만 목숨까지 내던지며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던 천하의 파일럿 강철신이 이런 목걸이 하나의 움찔하다니.게다가 망한 영지기는 해도 고위 귀족 대공 인생에 뭘 주워서 넙죽- 꿀꺽할 수 없는 법.일단 이 화재부터 진압하고 주인이나 찾아줘야겠다 싶어 주변을 훑었다.강철신은 일단 구유통이 아닌 우물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불길에 쫓겨 물을 찾던 그의 눈에 목걸이가 들어
한 달 전, 20XX년 4월 1일 오전. 인생 2번째라 공군 소령 강철신은 오늘이 당연히 올 줄 알았다. 그리고 당연히 적국기 등장으로 출격 명령을 받았다. 전생의 기억이 혈관 속을 맴돌았다. 오늘, 그는 죽을 각오로 전투기에 올라가야 하는 날이다. 분명 적국의 전투기에는 망할 아쳐가 타고 있을 터.정밀유도폭탄(SDB)까지 무장하고 스텔스 전투기로 출격 30분 만에, 지금 그는 사선을 넘나들게 되었다. 여전히 그는 대한민국 영공을 휘저어 놓았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 미사일을 터트릴 요량으로 북방 한계선을 넘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