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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카데미가 난리 난 상황]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2 14:44:24

레투카 제국 아카데미의 중앙 관통로. 말발굽 소리가 정갈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기사단을 이끄는 30대 중반의 단장이 말머리를 다잡았다.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착용한 채 매서운 위엄을 뿜어내는 사내, 세도르였다.

그가 이끄는 기사단이 교정 외곽을 유유히 순찰하던 중, 은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젊은 부하 기사 하나가 급박한 기색으로 말을 몰아 다가왔다.

“세도르 단장님! 조금 전 이스트 에어리어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버 경, 상황은?”

“다행히 진압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인명 피해도 없으며, 안에 있던 말들도 모두 무사하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마구간을 관리하는 자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기에 불이 나도록 방치했단 말이냐!”

“그게······ 마구간지기들이 하필 그 시각에 단체로 심한 배탈이 나는 바람에,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세도르의 이마에 짙은 주름이 패었다.

레투카 제국의 황족과 고위 귀족 가문의 영식, 영애들이 모여드는 최고의 학당이자 장차 제국을 짊어질 인재들의 요람인 아카데미에서 화재라니.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어서는 안 될 곳이었다.

마침 그들이 향하던 순찰로가 이스트 에어리어 강의동 근처였기에, 세도르는 망설임 없이 말고삐를 잡아채며 기마대를 돌렸다.

“일단 내 눈으로 현장을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전 대원, 나를 따르라!”

아카데미 호위 기사단장인 세도르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강렬하게 스쳤다. 그 이스트 마구간에는 다른 귀족들의 명마뿐만 아니라, 황태자가 지극히 아끼시는 애마가 계류되어 있었다.

만약 불길이 조금만 더 번졌더라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비극이 벌어졌을 터. 아카데미의 안위를 책임지는 기사단장으로서 결코 유야무야 넘어가서 될 일이 아니었다.

세도르는 눈빛을 더욱 차갑게 빛내며 마구간을 향해 말을 내달렸다.

***

같은 시각, 아카데미 중앙 카페테리아는 오후의 나른하고 부드러운 햇살로 눈부시게 물들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아래, 고급스러운 은제 찻잔과 찻받침이 부딪히며 내는 정갈하고 우아한 소리만 울렸다.

그 한가운데에는 아카데미 모든 학생들의 우상이자 모범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빛을 머금은 듯 매끄럽게 넘긴 찬란한 금발, 일반 학생들의 복식과 다른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는 화려한 제복과 어깨 위로 웅장하게 늘어뜨린 황금빛 망토를 입은 이 사내는 다름 아닌 레투카 제국의 황태자, 아쳐 가를리아 폰 레투카였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귀족인 밀레 백작가 영애가 고혹적이고 수줍은 미소를 띤 채 앉아 있었다.

“제국의 작은 태양, 아쳐 전하. 오늘도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전하와 함께하는 이 차회가 꿈만 같군요.”

“레무르 영애와 함께 나누는 차 한 잔이 제게는 더없는 휴식이지요.”

아쳐는 속으로 고루한 귀족 영애들의 사교적 언사에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완벽한 각도와 다정한 눈빛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도도하면서도 한없이 신사적인 그의 눈빛이 닿자, 레무르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찻잔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가슴 설레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전하, 얼마 전에도 도른 국경 지역의 위험한 마물 토벌에 직접 나서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국과 백성들을 향한 전하의 숭고한 애국심에 매번 감복할 따름이에요.”

“과찬이십니다. 그곳에는 영애의 오라버니이신 렘브란트 경도 함께 있었지요. 황제 폐하께서 내린 임무를 수행했을 뿐입니다.”

아쳐의 낮고 매혹적인 음성이 카페테리아 안에 깔리자, 주변 테이블에 가득 차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

귀족 영애들은 숨을 죽인 채 황태자의 잘생긴 측면 라인을 바라보며 낮게 탄성을 질렀고, 남학생들 역시 깊은 경외심이 담긴 속삭임을 주고받았다.

“역시 황태자 전하는 위엄부터가 다르다니까.”

“맞아, 귀족으로서의 품위와 제국을 향한 저 투철한 사명감은 감히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진정한 고위 귀족의 귀감이 되는 분이야. 저 기숙사 지하에 처박혀 있는 캔도르 대공하고는 차원이 달어도 한참 다르지.”

“아, 그 망나니 거지 대공? 말만 대공이지, 가르나르 영지만 포기하면 이제 스틸 대공도 비참한 자유민 신세가 되는 거 아니야?”

학부생들의 존경 어린 찬사와 칭송이 쏟아지는 와중에, 못난 스틸 대공의 이름이 언급되자 아쳐의 아름다운 입꼬리가 찰나의 순간 슬쩍 올라갔다. 아쳐는 여전히 고고하고 품격 있는 태도를 유지한 채, 우아한 손짓으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오늘따라 차 향이 참으로 깊고 우아하군요.”

“전하, 바쁘신 국정 업무와 아카데미 일정 와중에도 이렇게 사사로이 시간을 내어주셔서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아쳐는 달콤한 미소로 대답을 건네며, 시선을 카페테리아 창밖으로 한가롭게 돌렸다. 푸르른 봄 하늘 아래 펼쳐진 아카데미의 장엄한 전경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타인이 보기엔 더없이 차분하고 다정해 보였다.

그때, 레무르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손수건으로 입가를 살짝 가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전하, 오늘 아카데미 이스트 에어리어 쪽에 소란스러운 화재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마구간 쪽이라던데······ 전하의 소중한 명마는 무사한지 걱정입니다.”

그 순간.

창밖의 풍경을 유유히 관망하던 아쳐의 짙은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툭 꿈틀거렸다.

하지만 찰나의 동요조차 외부로 누설하지 않겠다는 듯, 그는 즉시 완벽하게 정돈된 무결점의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저런, 큰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요. 불길에 마구간지기들이나 학생들이 다치지 않았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서는군요.”

“다행히 불은 금방 꺼졌고 다친 사람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입가에는 여전히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성군의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가 쥐고 있는 잔의 찻물만이 미세하게 파동을 그리며 떨리고 있었다.

“······아, 참으로 다행이군요.”

아쳐의 표정에 다정함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오직 서늘한 한기만이 깊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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