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극단의 조치!
“지니, 너는 요정이잖아? 소원 같은 거 당장 못 이뤄주나?”
이건 사심을 품고 물어 보게 되었다.
“당연히 마력이 높으면 주인님 원하는 것을 많이 들어줄 수 있지.”
어쨌든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든 천일야화 판타지든 간에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지니, 이왕이면 돈이나 외모를 어찌해 봐야겠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게 아니겠는가.
“어머, 드디어 주인님! 욕망이 생긴 거야?”
지니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스틸에게 더욱 바짝 의자를 붙였다. 보통 다들 그렇지 않나?
“그래. 너와 힘을 합쳐서 잘 살고 싶어. 아쳐라는 인간이 여기 있다면 이번 생애는 제대로 쓸어 버리고, 요정계로 널 보내 줄게.”
이왕 이렇게 되었다면 끝을 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인님! 시원시원하니 좋네!”
지니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벌떡 일어나 스틸의 허벅지에 턱- 하고 올라앉아 그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았다.
“으윽! 갑자기 왜 이래?”
“잠깐만, 있어 봐.”
지니는 몸을 숙여 스틸의 입술을 덮쳤다. 동시에 그녀의 손이 그의 가슴골을 스치며 옷깃을 헤집자, 금빛 연기가 그들의 주변을 휘감았다.
스틸은 그녀의 체온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어찌나 손길이 농밀하던지 스틸은 당장 저리 가라고 해야 했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순간 굳은 채 멍하니 있게 되었다.
말캉한 몸에 방금 씻어 그런지 향긋한 비누 향까지. 아랫도리는 그만 뻐근하게 반응이 일어 순간 몸에 열기가 돋우어갔다.
그때 지니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황금빛 안개가 스틸의 피부 위로 스며들었다.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감각에 혈관이 맥동치는 소리가 선명해졌다.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온몸이 간지럽다고 해야 하나. 따뜻한 기운이 폴폴 피어오르더니.
쨍그랑, 쨍그랑.
테이블 위에는 은화 5개가 생긴 동시에 지니는 후- 후- 하고 거친 숨을 뱉어 내었다.
“지 지 지금 뭐 한 거야?”
너무 대단한 일이 순식간이 일어나 스틸이 말을 더듬자, 지니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피식 웃으며 테이블을 가리켰다.
“주인님······ 미안, 돈 좀 만들었어. 그리고······.”
아니, 금 나와라! 뚝딱! 역시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건가.
지니는 조악하게나마 돈을 만들어 내고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지 헉헉거렸다.
“···여러 의미로 대단하군. 그냥, 일단 뭘 안 하는 게 낫겠다. 좀··· 쉬어.”
하긴 금 나와라 뚝딱!은 좋기는 하지만, 현재를 살아본 강철신의 입장에서 돈을 만든다는 것은 화폐 위조가 아니겠는가.
이건 갑자기 돈이 왕창 생겨도 찜찜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때 스틸은 식은땀을 흘리는 지니를 얼른 안아 올려 침상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스틸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고 다시 작게 속삭였다.
“힘들기는 하네···실은 돈도 돈이지만···.”
“······?”지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으로 스틸의 머리와 얼굴을 차례로 쓰다듬더니 조곤조곤 설명을 이었다.
“주인님의 키를 5cm 키우고······ 눈, 코, 입 좀 1mm씩 손 봐서 제자리에 갖다 놨어.”
어? 어?
스틸은 조금은 머쓱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키고는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사람이 참, 외모에 변화가 있다고 하니 확인하고 싶은 게 본능인 듯싶었다.
얼른 반은 뚫린 욕실로 들어가 제 얼굴과 제 몸 상태를 살펴보니.
“어? 그대로인데?”
얼마나 심각했으면 키 5cm와 얼굴 1mm 갖고는 어림도 없는 외모인가.
여전히 자유분방하고 민주적인 눈코입이었기에 엘프의 힘으로 손을 댄다고 하더라도 티도 나지 않았다.
“그래? 내 눈에는 좀 달라 보이는데?”
그건 기분 탓이라고 지니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스틸은 그냥 말을 삼켰다.
제법 아쉬움이 남았기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털썩 침상으로 돌아왔다.
좁디 좁은 그곳에 다시 벌렁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네가 고생은 했지만······ 보람이 없네.”
“뭐야, 그럼 다시 좀 안아줘.”
스틸은 그래도 애를 쓴 지니를 안아 주었다. 그러자 철창을 지키던 간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이곳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시선이 얽혀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엔 누워서 제 입을 맞추고 손으로 살금살금 스틸의 몸을 만지작만지작 쓰다듬기 시작했다.
으윽, 이건 좀. 참기 힘든데.
하지만 이래야 그녀가 회복된다면 날 잡아 잡슈 하듯 스틸은 두 눈을 감고 그녀를 놔두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그녀의 기운이 제 입가에 머물고, 이제는 혀도 살랑살랑 오가니 사람이 참 미칠 지경이었다.
알맹이 34세 순정남에다가 껍데기도 그리 절륜할 것 같지 않은 인생으로 보였는데.
바로 스틸의 몸에는 뭔가 따뜻하면서 포근한 금빛 기운이 감돌았다.
기특한 지니는 한껏 눈을 감고 힘을 주더니 스틸의 몸에 연기를 씌워 주었고, 이번에는 뭔가 반응이 일어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수 초가 흐른 뒤.
“주인님, 휴······. 끝났어. 한 번 더 했어. 외모 손 보기.”
“어? 진짜?”키스를 끝낸 스틸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푼 가슴을 안고 거울로 향했다. 그때 확실히 제 눈높이가 조금은 올라온 느낌을 받았다.
10cm의 위엄이 이렇다니. 제가 맛본 공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 그였다. 그리고 거울을 봤더니. 안타깝게도 눈, 코, 입은 여전했다.
“에? 하긴 이 얼굴이 2mm로는 안 되는 건가?”
다시 아쉬움을 품고 침상으로 돌아오자···, 이런···.
“지니?”
그녀는 그만 기절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큰 키에 흐트러짐 없는 체구, 활력이 넘치는 젊은 20대 후반의 겉모습을 한 마르바스를 마주하자 자드키엘은 저도 모르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그의 미형 얼굴 뒤에 감춰진 마력은 10년 전보다 얼마나 더 지독하고 강해졌을까.제논 폐하가 마르바스만큼은 가문의 가주이자 최고의 마탑주로서 제 오른팔이라 존중하며 막강한 권력을 내어준 이유를 자드키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도른 제국 전체를 뒤흔드는 그의 오만한 영향력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얼마만큼의 정보를 모았습니까?”8월의 한여름이었지만, 그가 닿은 공간에는 서늘하고 자극적인 냉기가 자드키엘의 폐부 깊숙이 밀려들었다.“일단······ 스틸 대공이 8월 15일에 제국의 귀족들을 전부 가르나르로 초청했습니다.”그녀는 가쁘게 심호흡을 했다. 겹겹이 둘러쳐진 결계 안이었지만, 누군가 제 목덜미를 노려보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저도 모르게 마르바스의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그건 이미 온 제국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상단 발족과 함께 길드 설립을 알리는 화려한 공개 행사를 연다는 것 말입니다.”“······참고로 아쳐 황태자가 비약적으로 마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그건 제법 흥미롭군요. 내가 모르는 마법사가 이 제국에 존재하다니.”자드키엘은 온몸의 살가죽이 따끔거릴 정도로 생소하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지독한 정신 지배라도 걸려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더 위험한 기운이었다. 대단한 아우라를 풍겨 대는 마
지니는 스틸의 짙어진 눈빛과 그 속에 감도는 진득한 분위기에 숨을 들이켜며, 그가 무엇을 전하려는지 기대와 호기심이 얽힌 눈으로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뜨거운 달콤함이 남은 숨결이 어지럽게 섞이는 짧은 찰나.스틸은 지니의 보드라운 손을 가져와 그 안에 가만히 무언가를 쥐여 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서툴지만, 너를 두고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말이지.”“주인님······.”그는 지니의 입술 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짙은 숨을 한 번 고르고는 말을 덧붙였다.“복수도 해야 하고, 대공으로서 헤쳐 나갈 길도 아득히 멀어. 하지만 네가 내 곁에서 사라졌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너 없는 내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똑똑히 깨달았어.”자신이 일궈낸 아름다운 가르나르의 영지도 소중했다. 그러나 그 어떤 찬란한 풍경보다도 스틸의 시선을 가득 채우는 것은 오직 제 품 안의 지니였다.앞으로 나아갈 길이 비록 피로 물든 험난한 가시밭길이라 해도, 이 여자만큼은 영원히 내 품에서 웃게 만들고 싶었다.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툰 스틸은 고개를 숙여 지니에게 우선 입부터 맞추었다.진득하게 이어진 입맞춤의 여운이 가라앉기도 전에, 스틸은 지니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지그시 누르며 자신의 가장 깊은 속내를 내보였다.“지니, 네가 살던 세상에 이런 보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던 곳에서는 이게 그 어떤 마정석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 네게 주
제논은 스스로를 돌이켜보아도 정말 꼴사납고 어이없다고 생각했다.황족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러움을 느껴서는 안 되는 법이건만, 빛의 요정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에 차오르는 것은 제 손으로 버려놓고 이제 와 다시 얽매이려는 한심하고 질척이는 아욕뿐이었다.버려버린 엘프 따위, 아무런 능력이 없더라도 다시 손에 쥐고 탐하는 것이 제 욕심이었고, 이제는 그 빛의 요정을 곁에 둔 스틸이라는 남자에게로 온 관심이 옮겨가고 있었다.그 남자는 도대체 어떤 대단한 천운을 타고났기에, 빛의 요정을 낚아채 간 것일까.제논의 눈앞으로 투명한 상태창이 자욱하게 떠올랐다. 테라스를 시꺼멓게 채우는 검은 연기 속에서, 요술 램프의 팔찌가 마치 해탈한 현자처럼 묵묵히 답을 일러주고 있었다. *************************★스틸 반 가드 캔도르는 차원을 넘나든 초월자임.* 기타 능력 : 580,000 * 4개월 전이 당시 레벨 5 / 현재 레벨 : 88★ 빛의 요정(Ljósálfr)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짐. ★ 물, 바람, 흙, 불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됨. ★ 봉인, 마법 탐지, 연금술, 순간이동, 인벤토리 보유, 치유, 정화, 소환, 건축, 결계, 투명화, 흑마법이 사용자. ★ 플로럴스피릿 (Floralspirit), 다른 이형의 존재에게 가호를 받게 됨. ★ 남은 수명이 45년임.************************* 제논은 시야에 허공처럼 떠오른 그 경이로운 수치들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깊은 숨을 집어삼켰다.스틸이 보통이 아닐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독보적인 능력을 품고 있어 결코 간과할 수가 없었다.“기타 능력치에······ 플로럴스피릿과 이름 모를 이형의 존재가 수호해 준다고?”
스틸 역시 지니와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레벨의 변화가 비로소 궁금했다.비록 몸은 멀어져 있었을지라도 마음만큼은 더욱 굳건하게 밀착되었던 시간들이었다.그 혹독한 시련을 거치며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달았던 두 사람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의 애틋함은 이전과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게다가 던전까지 완전히 폐쇄한 데다 축복받은 가르나르 땅에 오래 머물렀으니, 스틸의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리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간절한 바람을 품은 채, 스틸은 허공에 장엄하게 떠오른 마법 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리고 이내 드러난 결과는, 실로 충격적인 전율 그 자체였다.******************************- 기타 능력 : 580,000- 현재 레벨 : 88(S급 마력소유자, 소드 마스터)★ 물, 바람, 흙, 불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됨.★ 봉인의 능력이 발현됨.★ 플로럴스피릿 (Floralspirit)의 가호를 받게 됨.★ 추가 수명 45년을 획득하였음.★ 마법 탐지, 연금술, 순간이동, 인벤토리 보유, 치유, 정화, 소환, 건축, 결계, 투명화, 흑마법, 이 증폭됨.******************************“주인님! 수명이, 수명이 정말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지니는 커다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스테이터스 화면을 가리켰다. 이미 수명이 꽤 늘어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무시무시한 수치로 폭증했을 줄은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스틸 역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뜬눈으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45년이라니······.
도른 제국의 황성 한가운데 위치한 황궁 지하 깊숙한 곳.렘브란트와 레무르는 지금 딱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잊을 만하면 끌려가 마력을 뽑히고, 다시 회복하라고 이곳에 내동댕이쳐진 다음 조금이라도 마력이 회복되면 끌고 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니.이렇게 숨이 붙어있으면 다시 또 고문을 당하는 두려움에 떠는 것도 반복하는 중이다.“헉······ 으윽······. 이거 안 쑤신 곳이 없네. 다친 눈은······ 오늘따라 더 아파.” “오라버니······. 이러다 우리 죽지 싶어. 이제······ 희망도 없어.”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던 렘브란트는 제 동생만 없었으면 엉엉 울었을 것 같았다.평소 못 잡아먹어 안달인 여동생이지만 이리 옆에 있으니 큰 위로도 되고, 어쩌다 저 아이도 이리되었나 안쓰럽기도 하였다.다행히 제논 황제는 어제부터 렘브란트와 레무르를 찾지 않았다.해가 뜨고 밤이 오고 감각이 없어 그런지 며칠이 흘렀는지 감도 안 잡히는 그들이었다.그러나 둘에게는 이곳에 잡혀 온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는 없어도 죽음이 가까이 온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졌다.둘은 겨우 수프와 말라버린 빵이지만 그것을 먹으면서 버티고 버텨내며, 옆에 있는 마지션과 비슷한 사람에게도 억지로 먹을 것을 주었다.“저기, 마법사 양반······ 이거 먹고······ 힘내십시오.”사람 목숨이 하찮다면 매우 하찮지만, 또 하늘이 준 명이니 끈질기다면 끈질길 수가 있다.렘브란트는 자신이 측은지심이 대단한 기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죽을 날만 바라보고 있다 보니 지나간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그저 잘 좀 살 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딱 죽고 싶겠지만······ 누군가 복수할 대상이 있다면······ 떠올리면서 버티시기 바랍니다.”옆에 있는 사내는 허름하고 누덕누덕 낡은
지니는 혼자서 이 아까운 시간을 몇 날 며칠이나 잠으로 축냈다는 사실이 못내 속상한지, 귀여운 목소리로 중얼중얼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다.“주인님, 인간에게 시간은 금쪽같은 건데······. 빨리 아카데미에 가야지, 어쩌면 좋아. 미안해.”사실 스틸이 속으로 얼마나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는지는 지니로선 알 턱이 없었다.지니가 또다시 깨어나지 못할까 봐, 혹은 신기루처럼 투명해져 눈앞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까 봐 스틸은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오직 지니만을 살폈다.“방학이야. 그러니까 괜찮아.” “왜 나는 자꾸 주인님을 곤란하게 만들까. 혹시 나 때문에 주인님이 또 사교계의 망나니로 돌아가 버린 건 아니겠지?”시간 감각도, 날짜 감각도 완전히 붕괴해 버린 지니는 상황 분간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 때문에 폐급 운운하는 악명을 다시 뒤집어쓰고 무단결석생이 된 것은 아닐까 안절부절못하며 스틸의 아카데미 생활을 염려했다.스틸이 나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오히려 그 반대야.”그도 그럴 것이, 지금 레투카 제국의 사교계는 스틸 대공을 두고 국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느니, 제국의 국경선을 완벽히 방어해 냈다느니 하며 위대한 영웅담의 주인공으로 추앙하기 바빴다.지니는 눈을 감고 있어 스틸의 활약상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날 도른 제국이 침공해 왔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주인님, 정말 고생 많았어.” “네가 내 곁에 없는데, 아카데미 출석 따위가 관심도 없었어.”물론 아카데미 측에서도 대공의 결석 사유가 충분히 참작되어 파격적인 배려를 베푼 상태였다.제대로 된 수업을 채 받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방학이 찾아왔고, 스틸은 마침내 제 품으로 돌아온 지니와 함께 이 찬란한 여름을 오롯이 즐길 생각에 슬며시 마음이
마구간 아래, 공기가 무겁게 감도는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황태자의 은밀한 아지트인 침대 위에서, 아쳐는 억눌린 짐승 같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리나를 제 육체 아래로 뜨겁게 가두었다. 그는 옷가지가 채 다 벗겨지지도 않아 날것의 살결과 옷감이 뒤엉킨 그녀의 몸을 거칠게 뒤돌려 세웠다. 매끄러운 척추 라인이 쾌락의 예감으로 잘게 떨렸다.질척, 찌걱.밀폐된 정적을 깨는 노골적인 파찰음과 함께 리나의 하얀 둔덕이 아쳐의 손자국대로 붉게 달아올랐다. 아쳐의 뜨거운 손길에, 그녀의 가녀린 신음은 축축한 지하의 공기 중으로 애처롭게 흩어졌
스틸은 죽음과 동시에 이세계로 떨어졌다. 환생을 겪으면서 이렇게 기사들에게 끌려가 본 적은 없었는데 그 대단한 경험을 지금 하게 되었다. 스틸을 체포하러 왔을 때만 해도 살기등등하던 기사들은 그가 순순히 항복하자 머쓱한 듯 거리를 좁히며 따라붙었다.나름 고위 귀족이라 그런지 포박은 안 하고 수 미터 거리만 둔 채 걷는 수준이었다.전생에는 죄짓고 산적이 없어 이런 자들도 만난 기억이 없었다.스틸은 현재 자신이 마구간 방화범으로 몰려 있긴 하지만, 사실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초만 탄 정도지 어디가 무너져 내린
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
30대 중반의 노련한 호위 기사단장, 세도르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거칠게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이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뚫고 은발의 젊은 부하 기사가 다급하게 다가와 앞을 가로막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 “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이런 황당할 데가. 세도르는 황망함에 굵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황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아카데미 안에서 화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이버 경, 지금 뭐라고 했나?” “진화는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