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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뭔가 조치가 필요할 듯!]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2 14:53:12

첫 번째 주인이 대체 얼마나 지독한 놈이었기에 이토록 상처를 입은 걸까.

하긴, 이리도 곱고 어여쁜 생명체니 나쁜 마음을 품은 사내라면 흉한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제 눈앞에 나타나 이렇게 인연이 닿다니. 아무래도 자신과 이 엘프는 보통 인연이 아닌 게 분명했다.

현생에 그 어떤 기대도 품지 않던 스틸이었지만, 주춤거리며 기죽어 있는 그녀를 보니 타인에게 정체를 드러내는 걸 극도로 꺼린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눈치채게 되었다.

“너, 사람들 앞에서는 차라리 그냥 인간인 척해야 하는 거 맞지?”

“······응. 마탑에 끌려가면······ 내 마력을 강제로 뽑아갈 거야. 첫 번째 주인님처럼······. 끔찍한 실험만 당할 것 같아서 그건 정말 싫어······.”

그녀의 미려하고 맑은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스틸의 팔을 잡은 작은 손에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과거에 지독하게 아픈 기억이 있는 게 분명했다. 비록 램프에서 나온 존재라 해도 인간처럼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고, 감정도 풍부하며 물리적으로 실체가 존재하는 생명체였다. 스틸에게 거짓말을 해서 얻을 이득도 없어 보였지만, 문득 호기심이 생겨 목에 걸린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라비안나이트라는 이야기 들어봤어? 거기 나오는 램프의 요정은 덩치 큰 파란색 남자에, 거처하는 램프도 이 펜던트보다 훨씬 크던데.”

“램프의 형태는 제각각이야. 엘프들도 외형이나 성향이 전부 다르고.”

소원을 들어주고 주인을 온전히 따르는 이런 강력한 존재가 내 편이라면. 어쩌면 이번 생의 가장 강력한 치트키는 이 엘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틸의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고동쳤다.

“너, 이름은······ 지니라고 하자.”

그 순간 엘프의 투명한 갈색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이름을 지어준 게 그렇게나 놀랄 일이었을까. 이게 그리 깜짝 놀랄 일인가 싶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번 생에는 자신도 아쳐에게 깔끔하게 복수를 완성하여 원한을 풀고, 제 곁에 선 이 불쌍하고 어여쁜 엘프도 구원해 주겠노라고 스틸은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이름을······ 지어주는 거야?”

“그래야 서로 조금 더 친해지지 않겠어?”

“너무 좋아! 고마워, 주인님!”

지니는 세상 전부를 얻은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스틸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게 그리 좋아할 일인가 싶어 스틸은 머릅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달콤한 분위기와는 달리, 옆에서 둘러싸고 가던 기사들의 표정은 점점 더 흉흉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어차피 닥쳐온 현실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즐기는 편이 나았다. 그리 결심한 스틸은 지니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다시 귓속말로 물었다.

“지니, 너 마구간에서 떨어진 목걸이 속에 있었으면 상황을 다 알고 있지?”

“뭐······ 대충은.”

“그럼 아까 거기에 진짜 불을 지른 놈이 누구야?”

지니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 긴 속눈썹을 까딱거리더니, 스틸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작게 속삭였다.

“타바를 피우려고 나타난 금발의 남자가······ 있었는데, 갑자기 불이 붙었어. 그 뒤로 주인님이 들어오자마자 불을 끄려다가 연기를 마시고 기절했고.”

‘타바’라는 단어는 문맥상 담배 같은 기호품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전생의 제국에는 없던 물건이었지만 말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것은 질색이었지만, 증인이 확실하니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싶어 스틸은 한결 당당해진 눈빛으로 주변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언젠가 진실을 해명할 기회는 오겠지, 뭐.”

스틸이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기사단은 그를 끌고 아카데미 외곽의 육중한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지나다니던 귀족 학생들이 스틸을 발견하고는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리며 흉흉한 반응을 쏟아냈다.

“윽, 저 망나니 스틸 대공 또 무슨 큰 사고를 저질렀나 봐.”

“왜 또 기사단에 끌려가는 걸까?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다. 입학하고 겨우 한 달 동안 대체 사고를 몇 번째 치는 거야?”

“3월 초부터 아주 제국 역사에 남을 기행을 써 내려가는군.”

“쯧쯧, 무슨 짓을 저질러도 뒷감당할 재산조차 없을 텐데. 망나니 스틸 대공, 진짜 귀족 가문의 수치라니까.”

명색이 대공가 가주인데 최소한의 존칭조차 쓰지 않고 스틸 대공, 스틸 대공이라며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꼴이 참으로 무엄하기 짝이 없었다. 전생보다 주변 평판과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 보였다.

턱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스틸은 입술을 꽉 다물고 순순히 지하 감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주변의 공기도 짓눌리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

지하 감옥에 도착하자, 지니가 주저 없이 스틸과 함께 가둬 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한 공간에 같이 갇히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는 고위 귀족의 신분을 감안하여 수발을 들 하녀나 시종을 동행시키는 것이 관례였던 모양인지, 기사들도 군말 없이 지니를 함께 지하 감옥에 넣어주었다.

감옥 내부는 차가운 습기가 감도는 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에는 그나마 푹신한 짚더미가 깔린 침대가 놓여 있었다. 녹슨 쇠창살 너머로는 간이 세면대와 낡은 목제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고위 귀족이라는 껍데기 덕분에 씻을 수 있는 시설과 테이블까지 제공받은 셈이니, 감지덕지 여겨야 할 판이었다.

어차피 죄가 없으니 조사가 끝나고 판결이 내려지면 무죄로 풀려날 터였다.

잠시 후 간수가 건네준 은쟁반 위에는 갓 구워낸 따스한 빵 두 덩이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 수프 그릇이 놓여 있었다. 지칠 대로 지쳐 허기가 진 탓에, 스틸과 지니는 의외로 근사한 식사를 말없이 깔끔하게 비워냈다.

음식 맛은 생각보다 훌륭했고, 식사를 마친 뒤 세면대에서 정갈하게 씻고 양치질까지 마친 두 사람은 테이블 의자에 서로 맞은편으로 붙어 앉아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철창 너머로 간수가 둘이나 감시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스틸의 대화나 안위에는 터럭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볼품없는 외모, 마이너스인 재정 상태, 바닥을 치는 인성과 평판. 거기에 이제는 건사해야 할 엘프까지 하나 늘어난 상황. 단시간 내에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하고 이 판국을 뒤집으려면, 무언가 극단의 조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스틸이 지니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외모부터 바꿔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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