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야, 노신의의 전화를 받은 뒤, 줄곧 널 기다리고 있었어. 드디어 이렇게 만나는구나... 헌데 문 앞에서 뭐 하는 거냐?”임 씨 어르신은 그가 온다는 소식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참을 기다려도 그가 들어오지 않자, 직접 입구로 나온 것이다.그러자 예천우가 재빨리 웃으며 외쳤다.“할아버지!”“둘이 아는 사이야?” 임 씨 할아버지는 옆에 서 있는 손녀를 쳐다보고 궁금해하며 물었다.임완유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낮에 만난 적이 있어요.”그러자 예천우가 재빨리 둘러대며 말했다.“그래, 정말 우연이구나. 어쩌면 이것이 하늘이 정해준 좋은 인연일지도 모르겠구나! 마침 오늘 결혼하기에도 알맞은 날이니, 점심 먹고 바로 가서 혼인신고를 하거라.”임 씨 할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노신의의 의술이 신통하니, 그의 제자도 우수한 인물일거라 생각했다.예천우는 어리둥절했다. 이 여자가 자신의 약혼녀 임완유였다니.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특히 중요 부위를 말이다.임완유 역시 예천우의 굶주린 늑대 같은 눈빛을 알아차린 듯, 머릿속에 어젯밤 일이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이 자식, 어젯밤 일만으로도 역겨운데. 이런 놈이 미래의 약혼자라니.그녀는 언제가 꼭 어젯밤 일과 오늘 일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임 씨 할아버지는 매우 기뻐했지만, 할아버지 옆에 서 있는 중년 남녀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매우 불만스러워했다.그들은 임완유의 아빠, 엄마다. 그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외모에, 회사 대표이기도 한데다 수많은 재벌의 사랑을 받는 자기 딸을, 이런 촌놈에게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임완유의 엄마 유은수가 나서서 말했다.“아버님, 정말 완유를 이런 놈한테 시집보낼 생각은 아니시죠?”“이 옷차림을 봐요, 촌뜨기가 따로 없잖아요.”“우리 딸이 이런 놈에게 시집가면, 제가 얼굴을 들고 나가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어요?”“그러게요. 이건 우리 임씨 집안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라고요.”그녀의
“꿈도 꾸지 마! 내가 돼지 한 마리를 좋아해도 널 좋아할 일은 없어!”임완유는 어이가 없었다. 너보다 잘나고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널 좋아하겠어?“완유야!”그때, 화끈한 옷차림의 아름다운 여자가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숏팬츠, 타이트한 크롭티, 가녀린 다리, 날씬한 허리를 그대로 드러낸, 눈에 띄는 차림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예천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그녀의 눈에 예천우는 평범한 옷차림에, 얼굴은 꽤 봐줄 만한, 산속에서 온, 완유와 어울리지도 않는 촌놈이었다. 그야말로 두꺼비가 백조고기를 먹으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라 생각했다.헛된 망상에 빠진 놈이라 생각했다.“왔어?”임완유는 가볍게 인사하고, 예천우에게 소개해 주며 말했다.“여긴 내 절친 소정이야.”그러자 예천우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그러나 소정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임완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가자, 유걸이랑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임완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천우에게 손짓하며 말했다.“너도 따라 와!”소정을 부른 이유도 그를 한바탕 정신 차리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스스로 어려움을 알고 물러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다시는 곁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세 사람은 임완유의 차에 앉아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이곳은 펜싱 클럽이다. 시설이 호화로워서 많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놀러 오기를 좋아한다.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잇달아 그녀들에게 인사했다.“오~ 이쁜이들 드디어 왔네. 유걸은 이미 경기하러 올라갔어.”그들은 옆에 있는 예천우는 아예 보는 체도 하지 않았다.예천우는 그거에 대해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편한 느낌이었다.경기를 하고 있는 유걸의 동작은 멋지고 자유로워 보였다. 검을 다루는 그의 모습이 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멋있어. 동작이 너무 완벽해!”소정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러게, 말이야, 펜싱은 유걸을 절대 못 따라가.”그녀들이 말하는 사
그가 정말로 올라가자, 모든 사람이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하하, 웃겨 죽겠네. 당신 같은 촌놈이 뭘 믿고 큰소리야.”“......”예천우는 그들을 상대하기도 귀찮아서, 아무 검이나 들고 재촉했다.“빨리 안 합니까?”유걸은 어리둥절했다.“마스크 안 써요?”“필요 없어요.”그러자 유걸이 비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이따가 다치면 내 탓하지 마요.”유걸은 심지어 이 기회에 제대로 그를 혼내주고 싶었다.“쓸데없는 소리가 정말 많네요.”예천우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의 태도에 유걸은 제대로 화가 났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도 예천우를 어이없게 생각했다.검을 든 자세만 봐도 아마추어임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러면서 큰소리를 치다니, 아주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 아닌가.임완유도 덩달아 긴장됐다. 비록 예천우가 너무 싫고, 그를 당장이라도 내쳐버리고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다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소정이 그런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완유야, 걱정하지 마. 괜찮아. 유걸은 프로야. 알아서 잘할 거니까 큰일 안 날 거야.”임완유도 그렇게 생각했다.순간, 유걸은 이미 발을 들고 빠른 속도로 예천우를 향해 돌진해, 그를 향해 찔렀다.“멋있어, 아주 깔끔한 동작이었어. 진짜 프로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근데 저 촌뜨기 자세 좀 봐, 완전 힘이 하나도 없어 보여.”“계속 이 방법으로 하면, 쟤는 끝이야.”“하하, 저런 주제에 큰소리는, 어떻게 당하나 지켜나 보자....”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걸의 비참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손에 쥐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어?이럴 수가!이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모두 멍해졌다.눈앞에 일어난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로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임완유는 경악하며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사실 좀 전에 예천우가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란 거지만.예천우는 손에 든 장검을 내려놓고 담담히 걸어 내려왔다.“말도 안 돼. 분명히 무슨 꼼
“응?”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너희들 모르지? 오늘 밤 용등상회 양 회장이 직접 파티를 열어 거물급 인사를 대접할 거야.” “그래? 어떤 인물이길래 양 회장이 직접 나서?”“당연히 고위층 인물이지. 아마 상회에 가입한 명문 가문들만 초대받았을거야.”유걸이 웃으며 말했다.“완유야, 너희 집안에서 그동안 계속 용등상회 가입을 신청하고 있었잖아. 오늘 밤이 그 기회야.”“뭐라고?”임완유는 마음이 흔들렸다.비록 이미 지원해서 명단에 오르는 것까지 성공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인원수가 3개 정도로 제한적이어서,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간단해. 오늘 나랑 같이 그 파티에 가. 나랑 같이 들어가면 내가 상회 고위층들 소개해 줄게. 그러면 상회에 가입하는 건 시간문제지.”“그렇긴 하네, 그러면,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겠어.”임완유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한참 얘기를 듣고 있던 예천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준비할 필요 없어. 오늘, 이 파티는 개최되지 않을 거야.”그의 말에 모든 사람이 그를 쳐다봤다. 임완유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예천우,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는 알기나 해?”“정말이야. 양대복이 오늘 환영회를 열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어.”예천우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피식.....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하나같이 바보를 쳐다보는 눈으로 예천우를 쳐다봤다. 자기가 승낙하지 않았다고?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임완유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창피한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양대복의 이름 석 자를 당당히 입에 올리다니, 만일 소문이라도 나면 무슨 봉변을 당할 줄 알고.양대복이 어떤 인물인데, 그에 비하면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개미에 불과했다.그러니, 지금 예천우의 모습이 정말 무지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유걸은 더욱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이 봐, 당신이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충격을 받았다.임완유도 놀라서 멍해졌다. 설마 이 촌스러운 놈이, 그 어마어마한 인물이라고?그런데 이때, 유걸이 또 다른 소식을 받았다.“양씨 가문 딸이 갑자기 심각한 병에 걸렸대.”“뭐야, 이거 큰일이야!”“그래, 양 회장이 손녀를 그렇게 아끼는데, 심지어 친척이나 친구들 외에는 그 손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잖아.”“그러니까. 난 진짜 엄청 아름답다는 얘기밖에 못 들었어.”“아, 알겠다!”이때, 유걸이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이번 파티를 취소한 건 분명히 손녀 때문일 거야.”“맞아, 맞아. 양 회장이 손녀를 그렇게 아끼는데, 틀림없이 그래서일 거야!’“그러니까, 이 놈이 어떻게 양 회장의 파티를 취소해.”“그러게, 말이야, 우연일 뿐이야.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정말 뻔뻔하네.”예천우도 이때 전화를 받았는데, 양대복이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다.그는 주소를 물어보고는 바로 갈 준비를 했다.임완유는 예천우같은 사람이 어떻게 양대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가, 유걸의 말을 듣고서야 모든 퍼즐이 맞혀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자신이 하마터면 그의 허튼소리를 믿을 뻔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예천우를 노려보았다.“남자는 능력이 조금 떨어져도 괜찮아. 하지만 현실적이어야 해. 그러니까 거짓말이나 하고, 허풍이나 불면서 살지 마.”예천우는 그녀를 상대할 틈도 없었다.“나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가긴 어딜가, 한마디 했다고 그걸 못 견뎌? 완유가 뭐 틀린 말 했어?”소정이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정말 일이 있어서 그래.”“거짓말, 이제 막 천해 시에 왔으면서 무슨 볼일이 있다는 거야. 괜히 창피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창피한 거 알면 완유한테서 떨어져.”“됐어, 혼자 놀러 가게 내버려둬.”임완유는 말하면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냈다.“이 카드에 한 200만 원 정도 있을 거야. 놀고먹고, 지낼 데를 찾는 데는 충분할 거야.”“필요 없어. 나 지낼 곳 있어.”예천우도
“네.”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를 꺼내 앉아 침술을 시행할 준비를 했다.“잠깐만요, 뭐 하는 겁니까?”양운철이 호통을 쳤다.“치료요!”“누가 당신더러 치료하라고 했어? 분명히 말하는데, 난 이미 경성의 명의인 이대선 신의를 청했어. 그분이 곧 도착할 거니까. 빨리 비켜.”양운철이 호통을 치다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버지가 착각하셨나? 이런 애송이를 신의라고 데려오다니, 사기꾼같이 생겼구만.”지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예천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그때 문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중 한 명은 희끗희끗하고 약상자를 들고 있는 노인이었다.양운철은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이 신의 맞으시죠? 드디어 오셨군요. 빨리 제 여동생 좀 봐주세요.”“그래!”이 신의가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빨리 비키지 않고 뭐해? 내 여동생의 치료를 방해한다면, 너 같은 놈 10명의 목숨으로도 보상할 수 없어!”양운철은 예천우에게 대놓고 욕을 퍼부었다.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옆으로 걸어갔다.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었다면, 그는 바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이 신의가 앞으로 나와 그녀의 맥을 짚어 보더니 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단지 한독이 침입했을 뿐이야. 침 몇 번 맞고, 약 몇 번 바르면 반드시 나을 거야.”양운철은 자기가 무슨 큰 공이라도 세운 듯 기뻐하며 말했다. “봤어? 이게 진정한 신의야!”이 신의의 은침이 그녀의 손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 예천우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이 이 바늘로 찌르면, 목숨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목숨을 앗아갈 겁니다.”그의 말에 이 신의가 살짝 멈칫했다, 도대체 무슨 신분이길래, 자신의 실력에 의문을 품는 건지, 기분이 언짢아졌다.그러자 또다시 양운철이 나서서 말했다.“이봐, 이 신의가 계신데,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너도 이 신의가 어떤 사람인지 알 거야. 의사협회의 부회장님이라고!”더 이상 헛소리하
“아이씨,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신의 라면서요.”양운철은 자기가 큰일을 해결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니 화가 치밀었다.만약 양체은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정말 끝장이다.양체은은 점점 힘이 빠져 떨지도 못하고 있었다. 점점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양운철의 얼굴도 점점 더 굳어졌다. 방금 예천우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말할 줄 몰랐다. 순간, 자신이 진짜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바로 후회할 것이란는 예천우의 말이 생각났다.그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정말 후회하고 있다.이때 양대복이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예천우를 보며 다급히 물었다.“예 선생님, 우리 체은이는 좀 어떤가요?”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양운철을 쳐다보았다.“저 사람한테 물어봐!”양대복은 다들 왜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지 의아했다. 그러다 옆에 침을 들고 있는 이신의를 보고, 대략 짐작한 듯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양운철, 어떻게 된 거야!”양대복의 분노에 찬 호통에, 양운철은 그대로 멍해졌다.이 신의는 창백한 얼굴로 씁쓸해하며 말했다.“양 회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세요. 따님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뭐야!”양대복은 창백해진 얼굴로 휘청거렸다.아!지연수는 결국 못 참고 통곡했다. 그녀도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예천우가 손을 썼다면, 양체은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양운철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너, 너, 멍청한 놈!”양대복은 화가 나서 양운철을 발로 걷어차고는 애걸하는 눈빛으로 예천우를 쳐다봤다.“걱정 마, 아직 살아있으니까.”예천우가 말했다.“네?”양대복은 황급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용왕께서 손 쓰셔서 우리 체은이를 살려주세요!”조급해서, 호칭을 바꿔 부르는 것도 잊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다들 그저 어이가 없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예천우가
마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양체은 몸의 한기가 보통이 아니어서 적지 않은 힘을 썼다.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양대복도 격동하여 소리쳤다.“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자기 딸의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명의들이 속수무책으로 있었던 문제를 용왕은 쉽게 해결했다.“예 신의의 의술은 정말 놀랍습니다.”“방금 이 늙은이가 눈이 멀어서 이렇게 귀한 분을 알아보지 못했네요. 양해해 주세요.”이 신의도 놀라서 지켜보다가, 이어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습니다!”예천우도 이 신의를 인정하는 듯 예의를 차려 말했다.“그럼,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줄 수 있으실까요? 제가 의술을 잘 닦을 수 있도록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이 신의는 흥분한 목소리로 허리를 굽혀 부탁했다.당장이라도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었다.양운철은 멍하니 그 상황을 지켜봤다. 이 신의는 중의학계에서도 손꼽히고, 명성과 지위가 높은 신의인데, 지금 이 젊은이를 스승으로 모시겠다니.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그럴 시간이 없습니다.”이 신의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끈질기게 말했다.“그럼, 카톡이라도 추가할 수 있을까요?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 제가 물어볼 수 있게요.”양운철은 완전히 멍해졌다. 심지어 방금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잊어버릴 정도였다.예천우가 이 신의를 상대하려 하지 않는 걸 보고 양대복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양운철, 너 이 개자식! 거기 서서 뭐 해! 선생님께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고!”양운철은 머리가 하얘졌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끔찍이 아끼셨는데, 지금 이 어린 애송이에게 무릎을 꿇으라니.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란 말인가!“왜, 내 말이 말 같지 않냐?”“아니면 네가 양씨 집안에서 나갈래?”양대복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 질렀다.자신도 용왕님께 공손히 대하는데, 그런 큰 잘못을 저질러
예천우는 단호하게 말했다.“신향 씨는... 정말로 제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길 바라는 거예요?”“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그럼 됐어요. 정말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올 거예요.”예천우는 그렇게 말하며 이미 팔을 놓고 있는 이신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말을 들은 이신향은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었고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전부 천우 씨 뜻대로 할게요.”예천우는 더 미련 두지 않고 호텔 로비를 빠져나갔다.그런데 막 호텔을 나서자마자 눈에 띄는 광경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출입구 옆에 세워진 빨간 페라리 한대가 있었다.그 안에는 마치 현실감 없는 미모를 지닌 여자가 앉아 있었고 지나는 사람마다 시선을 빼앗겨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그녀의 매혹적인 자태는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는 자석 같았다.남자들은 저런 여자를 가질 수 있다면 뭐든 내놓을 수 있다는 표정들이었다.그런데 그 여자가 예천우를 보자마자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도련님!”예천우는 살짝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선우서림?’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바로 차량으로 다가가 탑승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눈엔 그저 부러움 그 자체였다.차에 오르자마자 선우서림이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났네?”“무슨 말이야.”예천우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선우서림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다 파악했을 터였다.“글쎄. 도련님이 뭘 했는지... 자신은 모를 리가 없겠지. 근데... 혹시 아까 그 여자랑... 안 잤어?”선우서림은 다소 실망스러운 듯 말했지만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예천우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야만 자신도 예천우의 애인이 될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예천우와 임완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근데 나를 왜 찾아왔어? 무슨
이신향은 예천우의 말을 듣자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천우 씨는 진짜 너무 좋은 사람이야...’“고마워요. 천우 씨, 사과도 해야 하지만... 오늘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천우 씨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전 제 인생 자체가 끝장났을 거예요.”그때 그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만약 그때 예천우가 없었다면 자신은 분명 조신우에게 끌려갔을 테고 그런 사람에게 붙잡혀 살게 된다면 인생은 고통뿐이었을 것이다.예천우는 담담하게 웃었다. “우린 친구잖아요. 서로 도우며 사는 거죠. 그리고 지금은 신향 씨도 저를 돕고 있잖아요.”“제가... 도와주고 있다고요?”이신향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백성 그룹을 저 대신 이끌고 있잖아요.”“그건 제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천우 씨가 기회를 주신 거죠.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고맙잖아요.”이신향은 눈이 반짝이며 진심을 담아 말했고 예천우는 손을 들어서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알겠어요. 고맙다는 말은 여기까지 해요. 더는 안 돼요.”예천우는 속으로 제발 대화가 빨리 끝났으면 하고 있었다.솔직히 지금 이 상황은... 너무 위험했다.마음은 잘 다잡고 있어도 몸은 솔직했기 때문이다.“알겠어요. 안 할게요. 대신 제가 몸으로 감사해도 된다면... 그럼 다시는 말 안 할게요.”이신향은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가득한 채로 그의 목을 감아 안으며 입을 맞췄다.그녀는 몸을 예천우에게 바짝 기대며 천천히 스치기 시작했다.예천우는 순간 멍해졌고 평소 같았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했을 텐데 이번엔... 늦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런 감각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하지만 머릿속에는 신념이 확고했다.책임감이라는 단어가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서로의 체온이 뜨겁게 오르던 그 순간 예천우는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신향 씨, 잠깐만요... 제 말 좀 들어봐요.”이신향은 그의 눈빛이 진지하다는 걸 알아채고 조용히 멈췄
원래는 분명히 말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예천우는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재동의 행동은 분명 호감 가는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했고 일부는 분노를 자아낼 정도였다.하지만 예천우는 이제동도 아주 나쁘거나 악의적인 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단지 그도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위험을 피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무엇보다도 이신향은 아버지를 꽤 존경하고 있다는 걸 예천우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재동도 딸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헤어지자고 말해버리면 이신향이 분명 상처받을 거라는 걸 그는 잘 알았다.‘그래. 그냥 나중에 신향 씨가 직접 아버지에게 말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그렇게 하면 서로 감정 상할 일도 없고 훨씬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어차피 예천우는 또다시 가짜 남자 친구 역할을 하며 불려 다닐 여유 따윈 없었다.조신우 건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뒤 모두가 홀가분한 기분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하나같이 훌륭했다. 보기만 해도 고급스럽고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그리고 그건 당연했다.오늘 올라온 요리들은 하나같이 고가의 재료로 만든 귀한 음식들이었고 식당에서도 상위 몇 퍼센트만을 위한 최고급 요리였다.이재동 가족에게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고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으니 입에 넣는 순간부터 반응이 달랐다. 그야말로 행복한 표정들이었다.그중에서도 이신향은 가장 들떠 있었고 기분도 최고였다.특히나 부모님이 오랜만에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그녀는 아버지와 그리고 예천우와 연거푸 술잔을 주고받았다.그런데 놀랍게도 이재동의 주량은 꽤 대단했다.마오타이를 한 병 비운 뒤엔 더는 예천우의 귀한 술을 손대지 않았다.그 대신 이런 좋은 술은 아껴야 한다며 종업원에게 일반 백주를 가져오라고 시켰다.하지만 예천우가 그런 걸 올리게 둘 리가 없었다.결국 종업원은 또 다른 비싼 술인 페이톈 마오타이를 내왔다.그렇게 술잔
“아!”도민현은 예천우의 말에 깜짝 놀라 얼굴에 놀라움이 그대로 드러났다.“용왕님, 그게...”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시켜 움직이겠습니다!”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아무리 상상해도 그는 믿기 어려웠다.‘용문을 이끄는 용왕님에게 또 다른... 그것도 이렇게 무서운 신분이 있었다니…’예천우가 용문 용왕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예천우가 바로 용도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니... 이건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용도 예씨 가문이라면... 수십 년 역사에 빛나는 용도에서 손꼽히는 네 개의 최고 명문 중 하나...’그 존재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도민현이 자리를 뜨자 남아 있던 이재동과 그의 가족들 또한 속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또 뭐야... 그건 또 얼마나 무서운 신분이야?’예씨 가문이 정확히 어떤 가문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만 봐도 대단한 집안이라는 건 확실했다.특히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응대하던 걸 보면 그 위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이재동은 감히 따져 묻지 못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저... 천우야.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 내가 눈이 어두워서 네 진짜 실력을 알아보지 못했어. 괜한 말을 했고 또 멍청한 짓까지 해서 널 곤란하게 했구나... 그... 사과의 뜻으로 내가 술 석 잔 자진해서 마시겠으니 부디 용서해다오.”이재동은 급히 잔을 들고 술을 따르며 말했다.특히 아까 딸을 절대 예천우에게 줄 수는 없다면서 오직 조신우만이 이신향의 가장 적합한 혼처라는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만약 예천우가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기라도 했다면 이신향의... 인생을 망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그 생각이 드는 순간 이재동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가 잘못 판단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이 바로 그 인생의 갈림길이었을지도 모른다.그는 절실했다.‘이건 우리 가족 운명을 바꿀
사실 이 모든 소문은 애초에 예웅남이 일부러 퍼뜨린 것이었다.예관희는 이미 예천우의 뜻에 따라 모든 사실을 예웅남에게 전했고 그중에는 예천우가 자신의 용왕 신분을 외부에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는 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심지어 그가 종사급 고수라는 사실조차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이유는 단 하나였다.예씨 가문 사람들의 진심과 충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예웅남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기회를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그는 그 정보를 슬쩍 흘리면서 예관희를 헐뜯고 예천우의 이미지를 흔들어 놓으려 했다.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뒤 예관희가 병사한 것으로 꾸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주 자리에 오를 명분을 만들고자 했다.그 후에야 예천우를 제거한다면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할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4대 가문 중 하나인 남궁 가문에게 자리를 넘긴다 한들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의 예씨 가문이라면 예웅남은 그 자리를 지킬 능력도 없었다.이러한 소문 덕분에 전태민 역시 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돌아와 가주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여기서 진짜로 그 예씨 가문 큰 도련님을 마주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 모든 진위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전해 듣기로 큰 도련님은 예정환과 똑 닮았다고 했다.전태민은 다시 예천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신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 사람들 모두 눈을 크게 떴다.“예씨 가문의... 도련님?”이재동을 비롯한 일행은 뭔가 헷갈린다는 듯 당황한 표정이었고 심지어 이신향조차도 눈을 깜박이며 당황했다.‘천우 씨는 용왕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거지?’곁에서 듣고 있던 도민현은 잠시 찡그린 뒤 고개를 저으며 정색했다.“전 시장님, 착각하신 겁니다. 이분은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 아니라 용왕님이십니다.”“뭐라고요?”전태민을 포함한 일행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
이재동과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충격에 마비된 상태였고 심지어 이신향조차도 속으로 깊이 흔들렸다.그녀는 예천우가 대단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까지 이 정도로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지금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은 누가 봐도 하나같이 고위직 인사들이었다.그중에서도 앞장선 인물은 동성시의 중심 권력층에 있는 인물인데 그런 사람이 예천우의 부하에게조차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들이 그렇게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도민현 역시 더는 강하게 나가지 않았다.그는 곧장 이유를 알아차렸다.‘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나한테 공손하게 대하는 이유는 분명 용왕님의 체면 때문이겠지.’그래서 도민현은 바로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말씀 잘하셨습니다. 오해가 풀렸으니 방금 일은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좀 흥분해서 예의가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중히 사과드립니다.”“아...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경솔했습니다.”전태민과 그 일행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협력이든 뭐든 제대로 되지.’“그러면 우리 사업 이야기 말인데요...”전태민이 빠르게 화제를 돌리며 묻자 도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물론 계속 진행할 겁니다. 다만 지금은 조씨 가문을 정리하는 일이 급하니 조금 여유를 주세요. 며칠 뒤에 다시 보죠.”“그건 당연하죠. 아무래도 강흥시에서 오신 거라 좀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남강 지역이지 않습니까. 도 대표님 같은 정의로운 기업가께 우리가 도움 드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전태민은 부드러운 미소로 덧붙였다.“좋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시장님.”도민현은 그 속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더 말은 하지 않았다.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조혁진은 점점 더 절망에
도민현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몸을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용왕님, 그럼... 조신우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예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조씨 가문 전체도 네가 알아서 처리해. 받아야 할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해. 그리고 조씨 가문이 보유한 자산 중 쓸 수 있는 건 모두 꺼내서 필요한 이들에게 기부해. 물론 억울한 사람은 건드릴 필요 없어. 죄 없는 자에게까지 책임을 묻진 말아야지.”예천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죄가 있는 자라면... 절대로 봐주는 일은 없어야 해.”“용왕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도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조신우는 아주 잠깐 희망의 빛을 본 듯했지만 곧바로 그 빛은 산산이 부서졌다.‘안 돼... 우리 집안은 죄 없는 쪽이 아니잖아.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밑에 있던 놈들도 하나같이...’조신우는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재동 가족의 마음도 서늘하게 얼어붙었다.‘천우... 아니, 용왕님의 말 한마디가 조씨 가문의 운명이 정해졌네.’바로 그때, 문이 하고 열리며 몇 명의 인물이 들어섰다.강흥시의 시장 전태민과 그 일행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도민현과 예천우가 있는 자리를 찾아낸 것이다.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방 안을 둘러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은 도민현이었다.그러나 정작 벽 구석에 구겨져 있는 조신우는 눈에 띄지 않았다.이재동과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며 주변을 살폈고 그중에서도 눈에 띈 이는 조신우의 둘째 삼촌인 조혁진이었다.그는 맨 뒤에 있었고 손발이 묶인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에 억제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조혁진은 들어오자마자 조신우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사실 그도 처음엔 어떤 이유로 자신이 붙잡힌 건지 알지 못했다.하지만 도민현이 이 자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설마... 신우가? 용왕님의 지인을 건드리기라도 한 건가?’그는 그런 상상까지만 했을 뿐
이신향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그녀는 처음부터 예천우를 믿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든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고 나서야 진짜로 안심할 수 있었다.‘역시... 천우 씨는 너무 멋있어.’예천우는 정말 강하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하고도 냉철했다.‘단지 안타까운 건... 천우 씨는 나의 진정한 남자 친구가 아니야... 진짜 내 남자였으면... 나 아마 매일 웃음꽃이 피겠지.’그녀는 슬며시 아버지를 쳐다봤다.‘아빠, 이제 좀 알겠지? 천우 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하지만 이내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아까 말했던 거 생각하면 나중에 천우 씨한테 제대로 사과는 해야겠어.’그때 도민현은 조태영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예천우를 바라보았다.예천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도민현은 바닥에 떨어진 조신우의 휴대폰을 주워 들고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입니까. 말씀하시죠.”“네, 네... 도 대표님, 제가... 제가 신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저 부탁드립니다. 우리 협력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용왕님께 잘 말씀 좀 들려주십시오. 제가 어떤 대가든 치르겠습니다. 우리 신우만 살 수 있다면... 제 전부 재산이라도 내놓겠습니다.”조태영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조신우는 그의 유일한 아들이자 조씨 가문의 후계자였다. 지금 그가 위기에 처해 있고 잘못 건드린 사람은 단순히 도민현이 아니라... 도민현조차 고개를 숙이는 존재였다.‘이대로라면 우리 집안은 끝장이야.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야 해.’하지만 도민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조 대표님, 상대가 만약 저였다면... 한번쯤 기회를 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신우가 건드린 건 용왕님이십니다.”그 말은 곧 조신우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용왕님의 권위는 결코 범할 수 없습니다.”“제발... 도 대표님, 한 번만... 용왕님께 말씀드릴 기회를 주십시오. 조씨 가문 전 재산을 바치겠습니다. 신우만 살 수 있다면 다 드리겠습니다!”조태영은 절박하게 매달렸
그런데도 조태영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그리고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인지한 순간 그는 깜짝 놀라 외쳤다.“도 대표님, 도민현 대표님, 저는 조태영입니다! 잠깐만요. 전화 좀 받아주세요.”스피커폰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들렸다.조신우는 그 말을 듣자 그대로 얼어붙었다.‘지금... 지금 방금 아버지가 뭐라고 부른 거야? 도 대표님?’조태영은 도민현의 목소리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설마... 설마 저 사람이...’기억의 조각이 퍼즐처럼 맞춰지자 조신우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예전에 TV에서 본 적 있는 바로 그 인물 강흥시를 뒤에서 조율하는 진짜 실력자... 그가 바로 도민현이었다.‘방금 날 걷어찬 바로 사람이 도 대표님이었어. 말도 안 돼. 내가 도 대표님한테...’듣는 말에 의하면 도민현도 엄청나게 흉악무도한 사람이라고 했고 지금 용왕도 저런 태도로 조시우를 혼내고 있었다.그러자 조신우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고 두 볼은 이미 부어올랐으며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다.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재동 가족 시 말을 잃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난 체하며 거들먹거리던 조신우가 지금은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은 터지고 얼굴은 퉁퉁 부은 채 온몸으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그 모습은 과거의 오만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단지 용왕이라는 말에 조신우는 오줌을 싸고 그의 아버지 조태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도민현에게 빌듯이 전화를 걸고 있다니... 이제동은 예천우가 어쩌면 아주 무서운 배경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조신우의 아버지는 아주 다급한 어조였고 심지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도 대표님을 불렀어. 잠깐만, 도 대표님이라고?’이재동과 그의 가족들은 지금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그들은 도민현이라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이름만큼은 익히 알고 있었다. 강흥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