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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전학생 한로로

작가: 서담
last update 게시일: 2026-09-06 22:13:56

20년 전.

중학교 2학년, 2학기.

“야, 장혁.”

“왜.”

“오늘 전학생 온대.”

장혁은 책상에 엎드린 채 눈도 뜨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래.”

“그래서.”

박승철의 미간이 구겨졌다.

“새끼가 대화할 의지가 없네.”

“잠이나 자.”

“성격 존나 더러워.”

“알면 꺼져.”

승철은 익숙하다는 듯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장혁과 박승철은 어릴 때부터 붙어 다녔다.

부모들끼리도 알고 지냈고 집도 가까웠다.

학교가 바뀌어도 이상하게 같은 학교였고, 중학교까지 같은 반이 되면서 이제는 서로에게 질릴 대로 질린 사이였다.

드르륵.

앞문이 열렸다.

담임이 들어오자 시끄럽던 교실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그리고 선생님 뒤로 작은 여자애 하나가 따라 들어왔다.

장혁은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오늘부터 우리 반에서 같이 생활할 친구다.”

칠판에 이름 세 글자가 적혔다.

한로로.

“자, 인사해.”

“안녕하세요.”

그제야 장혁이 눈을 떴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로로를 봤다.

작았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또래 여자애들 사이에 세워놔도 유난히 작을 것 같은 체구.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그런데 눈이 특이했다.

푸른빛이 돌았다.

교실 여기저기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눈 봐.”

“렌즈인가?”

“예쁘다.”

로로에게도 들렸을 텐데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생긋 웃었다.

"한로로야. 잘 부탁해.”

겁먹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담임이 빈자리를 찾았다.

“저기 창가 자리 비었지?”

하필 장혁의 바로 앞이었다.

로로가 가방을 들고 걸어왔다.

장혁의 책상 옆을 지나는 순간.

툭.

가방에 달려 있던 작은 인형이 장혁의 책상 위로 떨어졌다.

로로가 멈췄다.

장혁도 인형을 내려다봤다.

낡은 토끼였다.

한쪽 귀가 반쯤 뜯어져 있었다.

장혁이 집어 들었다.

“내놔.”

첫마디가 그거였다.

장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주워줬는데?”

“그러니까 줘.”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로로가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줘.”

“성질 봐라.”

“너도 만만치 않아 보여.”

뒤에서 지켜보던 승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장혁이 고개를 돌렸다.

“뭘 쪼개.”

“아니. 너 첫날부터 여자애랑 싸우는 게 웃겨서.”

로로가 토끼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았다.

장혁은 황당했다.

보통 전학생이면 눈치라도 좀 보는 법인데.

저건 전혀 아니었다.

점심시간.

장혁과 승철은 늘 그렇듯 급식실로 향했다.

“야, 오늘 돈가스.”

“어.”

“두 개 받을 수 있으려나?”

“돼지냐?”

“성장기거든.”

둘이 복도를 내려가다 승철이 갑자기 멈췄다.

“어?”

“왜.”

“쟤 안 가는데?”

교실 안.

로로가 혼자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대부분 급식실로 내려간 뒤였다.

장혁이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가자.”

“냅둬?”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그렇게 계단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장혁이 멈췄다.

승철이 뒤에서 부딪칠 뻔했다.

“아, 씨. 왜!”

“먼저 가.”

"너는?”

“금방 감.”

“어디 가는데?”

장혁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도 로로는 그대로였다.

창밖만 보고 있었다.

장혁이 문에 기대어 물었다.

“야.”

로로가 돌아봤다.

“왜?”

“밥 안 먹어?”

“응.”

“왜.”

“별로 안 고파.”

그 순간이었다.

꼬르륵.

교실이 너무 조용해서 소리가 선명했다.

로로의 얼굴이 굳었다.

장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웃으면 죽인다.”

“안 웃었는데.”

“지금 웃었잖아.”

“안 웃었다니까.”

“입꼬리 내려.”

결국 장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로로가 책상 위 필통을 집어 던졌다.

장혁이 피하며 웃었다.

“배 존나 솔직하네.”

“꺼져.”

“밥 먹으러 가.”

“싫어.”

“왜.”

로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혼자 가기 싫어.”

장혁의 웃음이 멎었다.

아무것도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걸렸다.

장혁이 문밖으로 턱짓했다.

“그럼 같이 가.”

“너랑?”

“싫으면 말고.”

장혁이 돌아서자 뒤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같이 가!”

그가 돌아봤다.

로로가 어느새 가방에서 지갑까지 챙겨 뛰어오고 있었다.

“급식 먹는데 지갑은 왜 가져와?”

“매점 갈 수도 있잖아.”

“밥 안 고프다며.”

“생각이 바뀌었어.”

장혁이 피식 웃었다.

“이상한 년.”

“너 이름 뭐야?”

“장혁.”

“장혁.”

로로가 한번 따라 불렀다.

그러고는 씩 웃었다.

“너 생각보다 착하다?”

장혁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

“헛소리하지 마.”

“왜?”

“나 안 착해.”

“밥 같이 먹으러 가주잖아.”

“시끄러워.”

둘이 급식실에 도착했을 때 승철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승철이 장혁 뒤에 붙어 온 로로를 발견했다.

“뭐야?”

“같이 먹는대.”

“누가?”

“쟤가.”

로로가 바로 반박했다.

“네가 같이 가자고 했잖아.”

승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장혁은 로로를 노려봤다.

“그냥 가자고 했지.”

“그게 같이 먹자는 거지.”

“아닌데.”

“맞는데.”

승철이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빈 의자를 빼줬다.

“일단 앉아. 난 박승철.”

“한로로.”

“알아. 아까 들었어.”

로로가 환하게 웃었다.

“잘 부탁해, 박승철.”

“어.”

그날 세 사람은 처음으로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장혁은 또 하나를 알게 됐다.

“야.”

“왜?”

“너 안 고프다며.”

“응.”

“근데 왜 내 돈가스까지 먹어?”

로로의 볼이 빵빵했다.

“너 안 먹는 줄 알았지.”

“내가 아껴 먹고 있었거든?”

“이미 먹었는데 어떡해.”

“뱉어.”

“미친놈아!”

승철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장혁, 그냥 포기해.”

“내 돈가스잖아.”

“전학생한테 하나 줘라.”

“넌 왜 안 줘?”

“난 다 먹었어.”

“개새끼.”

“욕하지 마.”

“네가 할 말이냐?”

로로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웃었다.

처음에는 작게.

그러다 결국 소리 내 웃었다.

장혁은 투덜거리면서도 남은 반쪽까지 로로의 식판에 던져줬다.

“먹어.”

“진짜?”

“대신 조용히 좀 해.”

“장혁.”

“왜.”

“너 진짜 착하네.”

“아니라고.”

“맞는데?”

“아, 씨.”

승철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때까지만 해도 승철 역시 몰랐다.

저 조그만 전학생 하나가 자신과 장혁 사이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세 사람이 함께 보내는 계절이 스무 번이나 반복될 줄은.

그리고 그중 누구보다 먼저,

장혁이 한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될 줄은.

며칠 뒤.

장혁은 자기 사물함 앞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로로.”

처음 보는 남학생 하나가 로로를 불러 세웠다.

손에는 접힌 편지가 들려 있었다.

“이거 받아.”

“뭔데?”

“읽어봐.”

남학생의 귀가 새빨갰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장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옆에 있던 승철이 중얼거렸다.

“야.”

“왜.”

“저거 아무래도 고백 같은데?”

“…….”

“전학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받냐.”

장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편지를 받아드는 로로의 손을 빤히 바라봤다.

승철이 그런 장혁을 한번 쳐다봤다.

“장혁.”

“왜.”

“너 표정 왜 그래?”

“내 표정이 뭔데.”

“존나 마음에 안 드는 표정.”

장혁이 승철을 노려봤다.

“닥쳐.”

그날 장혁은 아직 몰랐다.

자신이 앞으로 한로로에게 오는 편지를 몇 통이나 가로채게 될지.

초콜릿을 몇 개나 버리게 될지.

그리고 언젠가,

로로가 좋아한다는 축구부 주장 앞을 직접 막아서게 될지도.

그저 하나만 확실했다.

전학생 한로로.

쟤가 자꾸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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