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한로로가 전학 온 지 한 달.
장혁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장혁.” “왜.” “내 사물함 앞에서 뭐 해?” “아무것도.” 로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왜 내 사물함 열고 있는데?” “열려 있길래.” “내 사물함이?” “어.” “비밀번호 걸려 있는데?” “…….망할” 장혁의 손에는 분홍색 편지 한 통이 들려 있었다. 로로의 시선이 편지로 내려갔다. “그거 뭐야?” “쓰레기.” “쓰레기가 왜 내 사물함에 있어?” “누가 버렸나 보지.” “미친놈인가. 남의 사물함에 쓰레기를 왜 버려?” 장혁이 대충 편지를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버려줄게.” “오.” 로로가 감탄했다. “장혁.” “왜.” “너 진짜 착하다?” “닥쳐.” 장혁은 그대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 끝 쓰레기통 앞에 도착한 그는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한로로에게.] 글씨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장혁은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에 편지를 처박았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박승철이었다. “야.” 장혁의 어깨가 움찔했다. “뭐.” 승철이 쓰레기통을 내려다봤다. “그거 고백 편지 아니냐?” “아닌데.” “분홍색 봉투에 하트까지 그려져 있던데?” “요즘 쓰레기는 예쁘게 나오나 보지.” 승철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미친 새끼야?” “왜.” “남의 고백 편지를 왜 버려?” “쓸데없는 거니까.” “그걸 왜 네가 결정해?” 장혁이 승철을 노려봤다. “시끄러워.” 그대로 돌아서는 장혁의 뒤를 승철이 따라붙었다. “몇 번째야?” 장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가.” “버린 거.” “처음인데.” “구라 치지 마.” “…….” “내가 지난주에도 봤어.” 장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승철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초콜릿.” “무슨 초콜릿.” “로로 책상 서랍에 있던 거 네가 먹었잖아.” “배고파서.” “편지는?” “쓰레기라서.” “그럼 그저께 사탕은?” “그건 맛없어서 버렸어.” 승철의 입이 벌어졌다. “와, 이 미친 새끼.” “욕하지 마.” “네가 할 말이냐?” 승철이 장혁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너 한로로 좋아하냐?” “미쳤냐?” 대답은 지나치게 빨랐다. 승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상한데.” “뭐가.” “내가 아직 좋아하냐고 끝까지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발작하잖아.” “안 좋아하니까.” “그럼 고백 편지는 왜 버려?” “…….” 장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왜 버렸을까. 자기도 몰랐다. 그냥 싫었다. 모르는 새끼가 로로에게 편지를 주는 것도. 로로가 그걸 읽는 것도. 혹시나 읽고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전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냥.” “그냥 뭐.” “병신 같은 새끼들이 귀찮게 할까 봐.” 승철이 헛웃음을 쳤다. “로로가 알아서 하겠지.” “쟤가 뭘 알아.” “너보다 똑똑해.” “닥쳐.” 문제는 장혁이 버리는 속도보다 고백이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점심시간. “로로야.” 옆 반 남학생 급식실 문 앞에서 로로를 불렀다. “응?” “잠깐 나올래?” 장혁의 젓가락이 멈췄다. 승철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근데 왜 쪼개.” “그냥.” 로로가 남학생을 따라 복도로 나갔다. 장혁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야.” 승철이 불렀다. “왜.” “밥 먹어.” “먹고 있어.” “눈깔은 복도에서 먹고 있는데?” “뒤질래?” 잠시 후 로로가 돌아왔다. 손에는 초콜릿 상자가 들려 있었다. 장혁의 표정이 대번에 구겨졌다. “뭐냐.” 로로가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초콜릿.” “그걸 몰라서 묻냐?” “그럼 왜 물어?” “누가 줬는데.” “옆 반.” “왜.” “나 좋아한대.” 장혁의 젓가락이 탁 소리를 내며 식판에 떨어졌다. 승철이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게 분명했다. 로로가 초콜릿 상자를 열었다. “먹을래?” “안 먹어.” “승철이는?” “난 먹지.” 승철이 손을 뻗는 순간 장혁이 상자를 낚아챘다. “야!” 로로가 눈을 크게 떴다. “뭐 해?” “이거 유통기한 지났어.” “뭔 개소리야. 방금 받은 건데.” “방금 샀다는 보장 있어?” “내놔.” “싫어.” “장혁.” “배 아프면 어쩌려고.” “내 배가 아프든 말든!” 둘이 초콜릿 상자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로로가 장혁의 팔에 매달렸다. “내놔!” “안 돼.” “왜!” “몸에 안 좋아.” “아까 매점에서 초코우유 사준 새끼가 할 말이야?” “그거랑 다르지.” “뭐가 다른데!” 승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책상에 얼굴을 묻은 채 웃었다. “미친 새끼들…….” “박승철, 웃지 말고 얘 좀 잡아!” “싫어. 난 오래 살 거야.” “배신자!” 결국 장혁은 초콜릿을 돌려줬다. 대신 로로가 하나를 입에 넣을 때마다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봤다. “진짜 맛있는데?” “안 궁금해.” “하나 먹어봐.” “싫다고.” 로로가 초콜릿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장혁의 입 앞에 내밀었다. “아.” “뭐 하냐.” “먹어봐.” “싫어.” “아아.” “한로로.” “빨리.” 장혁은 한참 로로를 노려보다 결국 입을 벌렸다. 초콜릿이 쏙 들어왔다. 로로가 웃었다. “맛있지?” “별론데.” “하나 더 먹을래?” “……줘봐.” “맛없다며?” “확인해보게.” 승철이 한숨을 쉬었다. “지랄들을 한다.” 며칠 뒤. 체육시간이 끝난 운동장. 세 사람은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들고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로로는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랐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잊은 채 한쪽만 빤히 보고 있었다. 장혁이 물었다. “뭐 봐?” “축구.” “축구 싫어하잖아.” “오늘부터 좋아해.” “갑자기?” 로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응.” 승철이 로로의 시선을 따라갔다. 축구부가 연습 중이었다. 그중 한 남학생이 공을 몰고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키도 크고 얼굴도 제법 잘생긴 축구부 주장이었다. 승철이 눈치를 챘다. “설마.” 로로가 배시시 웃었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장혁의 기분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뭔데.” 로로가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물고 말했다.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장혁의 손이 멈췄다. 승철이 천천히 옆을 바라봤다. 장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누군데?” 로로가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저기.축구부주장.” 장혁의 시선이 남학생에게 꽂혔다. “잘생겼지?” “……별론데.” “뭐가 별로야. 존나 잘생겼는데.” “눈이 이상한가.” “네 눈이 이상한 거겠지.” 로로는 다시 운동장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 여태 장혁이 본 적 없는 수줍은 미소가 걸렸다. 장혁은 말없이 아이스크림 막대를 깨물었다. 빠직. 승철이 옆에서 흠칫했다. “야. 그거 나무야.” “알아.” “근데 왜 씹어.” “시끄러워.” 승철은 장혁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고는 확신했다. 이 새끼 한로로 좋아한다. 그것도 본인만 모르게 제대로. 승철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앞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로로가 축구부 주장을 보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나 고백해볼까?” 장혁이 즉시 대답했다. “하지 마.” 로로가 돌아봤다. “왜?” “그냥.” “이유가 뭔데?” 장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 승철이 물었다. 장혁은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정확히는 축구부 주장을. “화장실.” “화장실은 반대쪽인데?” “……매점 갔다가.” 장혁이 계단을 내려갔다. 승철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새끼 사고 치겠네.”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다음 날. 축구부 주장은 갑자기 한로로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로로는 이유를 몰랐다. 박승철은 대충 짐작했다. 그리고 장혁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로로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물론, 그 전날 장혁이 축구부 주장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은 채였다.― 1년 후 ― “언니, 잠깐만요. 움직이지 마요.” 하랑이 로로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작은 보석이 박힌 은빛 티아라. 직접 디자인하고 세공한 결혼 선물이었다. “됐다!” 거울을 본 로로의 눈이 커졌다. “우와. 존나 예쁜데?” “진짜요?” “응. 완전 내 거 같아.” “다행이다. 저 이거 만들면서 세 번이나 울었어요.” 뒤에서 기태가 끼어들었다. “다섯 번.” “오빠. 세 번이거든?” “보석 떨어뜨려서 한 번, 납땜 잘못해서 한 번, 디자인 마음에 안 든다고 두 번. 완성하고 예쁘다고 울어서 한 번.” 하랑이 세더니 입술을 삐죽였다. “……다섯 번 맞네.” 로로가 웃다가 두 사람의 같은 반지를 발견했다. “야. 너희 그거 뭐냐?” 하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커플링이요!” 기태가 그 손을 잡아 내렸다. “그만 좀 자랑해.” “오빠도 좋아했으면서. 받자마자 사진도 찍었잖아.” “…….” 로로가 웃다가 기태를 불렀다. “기태야.” “응?” “너가 가지고 싶던
한 주 뒤. 일요일 저녁. 오후 네 시, 혁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로로야, 저녁 먹으러 와. 엄마가 갈비찜 해놨어.’ “엄마, 나 그거 좋아하는데.” ‘알지. 혁이 데리고 일찍 와.’ 저녁 여섯 시 반. 엘리베이터 안에서 로로가 코를 킁킁거렸다. “벌써 음식 냄새 나는 것 같아.” “엄마가 아까 세 번 전화했어.” 띵. 안에서 발소리가 났다. “우리 로로 왔어?” “엄마!” 현관문을 활짝 연 어머니가 로로부터 끌어안았다. “아이고, 우리 막내딸. 오랜만이야.” “지난주에도 봤잖아.” “일주일이면 오래지.” 거실에서 아버지도 나왔다. “로로 왔냐?” “아빠, 나 왔어.” “얼른 들어와. 배고프지?” 뒤에 서 있던 혁이 말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제야 혁을 봤다. “너도 왔냐?” “내가 운전해서 데려왔거든.” “수고했다.” “끝?” 로로가 웃었다. 연애를 시작했다고 알렸던 날에도 어머니는 진짜 막내딸이 생겼다며 좋아했었다. 식탁에는 갈비찜, 잡채, 전, 된장찌개까지 네 사람이 먹기엔 넘칠 만큼 차려져 있었다. “엄마, 이걸 다 했어?” “네가 온다는데 해야지.” “나 맨날 와도 돼?
며칠 뒤. 토요일 저녁. 혁은 하루 종일 이상했다. 로로가 샵에 들어온 뒤부터 괜히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장혁.” “왜.” “너 사고 쳤어?” “아니.” “근데 왜 눈을 피해.” “안 피하는데.” “수상해.” 혁은 대답 대신 셔터를 내렸다. “밥 먹으러 가자.” “어디?” “가면 알아.” 혁이 데려간 곳은 레스토랑도 호텔도 아니었다. 둘이 오래전부터 걷던 강변이었다. 해가 완전히 내려앉은 뒤였다. 강 건너 불빛이 검은 수면 위로 길게 번졌고, 바람에는 낮의 열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로로의 머리카락이 뺨에 붙었다 떨어졌다. “여기?” “응.” “밥은?” “조금 이따.” “나 배고픈데.” “잠깐만 참아.” 둘은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근데 왜 여기 왔어?” “잠깐 걸으려고.” “너 산책 좋아하는 인간 아니잖아.” “오늘은 좋아해.” “수상하다니까.” 혁이 난간 앞에서 멈췄다. 바람이 불었다. 로로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로로야.” “응.”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혁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원래 내가 먼저 하려고 했거든.”
그날 밤. 로로는 기태의 말을 떠올렸다. 네가 돌아갈 사람이 나였으면 했어. 그때는 왜 그 말이 무거웠을까. 기태는 자신을 가두려던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로로는 그 이름 안에서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 자? 혁이었다. - 아니. - 뭐 해. 로로는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야.” “그냥.” “뭔 일 있어?” “없어.” “목소리가 있는데.” 로로가 피식 웃었다. “너 진짜 나 잘 안다.” “이십 년이 장난이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혁아.” “응.” “어제 말한 거 생각해봤어?” “결혼?” “응.” “조금.” “무슨 생각 했는데?” “네가 괜히 부담 느끼는 건 아닌가.” 로로는 눈을 감았다. 역시 장혁이었다. 자기는 자기 마음부터 봤는데, 혁은 먼저 로로가 부담스러울까 생각했다. “넌?” “생각했어.” “그래서?” “아직 생각 중.” “그럼 생각해.” 재촉도 확인도 없었다. 그 말에 마음이 편해졌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로로는 욕실의 칫솔 두 개를 봤다. 혁의 티셔츠는 건조대에, 그가 두고 간 슬리퍼는 현관에 있었다. 결혼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니. 무엇이 달라질지는 둘이 정하면 되는 거 아닐까.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면 지키고.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혼자 있고. 일도 계속하고. 그러다 보고 싶으면 만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늙어가고. 문득 웃음이 났다. “나 하고 싶은가 봐.” 말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회사에서도 생각은 같았다. 기태가 했던 말도 이해됐다. 계속되는 관계에 결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는 것. 로로도 장혁과 계속되고 싶었다. 예전이라면 그 마음을 결혼이라 부르는 순간 겁부터 냈다. 지금은 아니었다. 결혼이 자신을 바꾸는 건 아니었다. 둘이 그 이름의 모양을 정하면 됐다. 혁과 결혼을 생각하는 건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누군가
다음 날. 로로는 출근해서도 전날 대화를 떠올렸다. 결혼. 기태와 헤어지게 만든 말이었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말. 그런데 혁과 이야기할 때는 숨이 막히지 않았다. 같이 살지 않아도, 각자 일하고 혼자 있을 시간을 가지면서도 부부일 수 있을까. 정한 건 없는데 생각은 자꾸 그다음으로 갔다. 로로는 자료를 들고 2팀으로 갔다. “한 팀장.” 기태가 모니터에서 눈을 들었다. “왜.” “이거 수정본.” “놔둬.” 파일을 내려놓은 로로는 돌아서려다 멈췄다. “뭐 할 말 있어?” “……어.” “뭔데.” “기태야.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로로가 입술을 눌렀다. “너, 왜 나랑 결혼하려고 했어?” 기태의 표정이 굳었다. “갑자기?” “응. 그냥 알고 싶어서.” 기태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장혁이랑 결혼 얘기 나왔어?” 로로는 피하지 않았다. “어.” “그래서 나한테 묻는 거야?” “기분 나쁘면 대답 안 해도 돼.” “기분이 안 나쁠 수는 없지.” “……미안.” “근데 됐어.” 기태는 펜을 내려놨다. “나도 이제 네가 그 새끼랑 무슨 미래를 생각하든 그걸 막을 사람은 아니니까.” 창밖을 보던 기태가 말했다. “너랑 계속 살고 싶었어.” “그게 다인 거야?” “그게 별거 아닌 것 같냐?” “아니.” “아침에 일어나면 네가 있고, 퇴근하면 네가 있고. 같이 밥 먹고 싸우고 다시 풀고.” 기태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계속됐으면 했어.” “…….” “난 그 계속되는 관계에 결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 거고.” 로로가 조용히 물었다. “왜 이름이 필요했어?” “나는 필요했으니까.” 기태는 잠시 말을 골랐다. “네가 내 여자친구인 것도 좋았는데, 난 그다음도 갖고 싶었어. 가족이 되고 싶었고.” “가족.” “어.” 기태가 로로를 똑바로 봤다. “네가 돌
일요일 저녁. “혁아.” “응.” “배고파.” “알아.” “얼마나 남았어?” “십 분.” “아까도 십 분이라며.” “그때부터 삼 분 지났어.” “그럼 칠 분이라고 해야지.” “귀찮아.” 로로는 소파에 엎드려 입을 삐죽였다. “남의 집 와서 사람 굶기네.” “네 집이야.” “아.” 주방에서는 토마토소스가 끓었고 혁은 소매를 걷은 채 프라이팬을 흔들었다. 요즘은 특별한 데를 가지 않아도 됐다. 서로의 집을 오가고, 배고프면 같이 먹었다. 혁의 티셔츠는 자기 집에, 자기 칫솔은 혁의 욕실에 있었다. 혁의 집 옷장에는 여전히 자기 몫의 반 칸이 있었다. 그래도 합치지는 않았다.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는 돌아갔고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었다. 이상하게 그게 편했다. “한로로.” “응?” “왜 그렇게 봐.” “그냥.” “부담스럽게.” “뒤통수 보는데 뭐가 부담스러워.” 로로는 자기 집 주방에 자연스럽게 선 혁을 보다가 말했다. “이렇게 살면 결혼도 나쁘지 않겠다.” 달그락. 혁의 손이 멈췄다. “…….” “…….” 혁이 천천히 돌아봤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어. 결혼.” “아.” 로로가 몸을 일으켰다. “그냥 한 말이야.” “알아.” “왜 그렇게 봐.” “결혼 싫다던 사람이니까.” “싫지.” 로로가 멈췄다. “……아니. 나도 모르겠어.” “뭘.” “그냥 네가 저기서 밥하는 거 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떤 생각.” “이런 게 계속되는 거면 결혼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닌가.” 혁은 장난치지 않았다. “근데 진짜 그냥 생각이야. 나 결혼하자는 거 아니다?” “알았어.” “표정은 왜 그래.” “내 표정이 뭔데.” “좋아 죽겠다는 표정.” 혁이 입꼬리를 눌렀다. “티 나?” “존나.” “그럼 어쩔 수 없네.” 로로가 쿠션을 던지자 혁이 한 손으로 받았다. “좋아하지 마. 부담스러워.” “이미 좋아했는데.” “뭘.” “나도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