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진짜 끝난 거야?”
“어.”“하진 씨랑?”“어.”승철은 혁을 바라봤다.
“로로한테는 말했냐?”
“내가 헤어진 걸 걔한테 왜 보고해.”“그럼 이제 어떡할 건데. 로로.”“아무것도 안 해.”“왜.”“나도 아직 모르겠다고 했잖아. 그리고 헤어지자마자 로로한테 가는 건 하진이한테도 할 짓 아니야.”혁이 로로를 좋아했던 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로로가 축구부 주장 잘생겼다고 했을 때 그놈을 욕하던 혁도 봤다.혹시 그 마음이 끝난 적이 없었던 건가.
“간다.”
며칠 뒤. 토요일 저녁. 혁은 하루 종일 이상했다. 로로가 샵에 들어온 뒤부터 괜히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장혁.” “왜.” “너 사고 쳤어?” “아니.” “근데 왜 눈을 피해.” “안 피하는데.” “수상해.” 혁은 대답 대신 셔터를 내렸다. “밥 먹으러 가자.” “어디?” “가면 알아.” 혁이 데려간 곳은 레스토랑도 호텔도 아니었다. 둘이 오래전부터 걷던 강변이었다. 해가 완전히 내려앉은 뒤였다. 강 건너 불빛이 검은 수면 위로 길게 번졌고, 바람에는 낮의 열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로로의 머리카락이 뺨에 붙었다 떨어졌다. “여기?” “응.” “밥은?” “조금 이따.” “나 배고픈데.” “잠깐만 참아.” 둘은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근데 왜 여기 왔어?” “잠깐 걸으려고.” “너 산책 좋아하는 인간 아니잖아.” “오늘은 좋아해.” “수상하다니까.” 혁이 난간 앞에서 멈췄다. 바람이 불었다. 로로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로로야.” “응.”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혁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원래 내가 먼저 하려고 했거든.”
그날 밤. 로로는 기태의 말을 떠올렸다. 네가 돌아갈 사람이 나였으면 했어. 그때는 왜 그 말이 무거웠을까. 기태는 자신을 가두려던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로로는 그 이름 안에서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 자? 혁이었다. - 아니. - 뭐 해. 로로는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야.” “그냥.” “뭔 일 있어?” “없어.” “목소리가 있는데.” 로로가 피식 웃었다. “너 진짜 나 잘 안다.” “이십 년이 장난이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혁아.” “응.” “어제 말한 거 생각해봤어?” “결혼?” “응.” “조금.” “무슨 생각 했는데?” “네가 괜히 부담 느끼는 건 아닌가.” 로로는 눈을 감았다. 역시 장혁이었다. 자기는 자기 마음부터 봤는데, 혁은 먼저 로로가 부담스러울까 생각했다. “넌?” “생각했어.” “그래서?” “아직 생각 중.” “그럼 생각해.” 재촉도 확인도 없었다. 그 말에 마음이 편해졌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로로는 욕실의 칫솔 두 개를 봤다. 혁의 티셔츠는 건조대에, 그가 두고 간 슬리퍼는 현관에 있었다. 결혼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니. 무엇이 달라질지는 둘이 정하면 되는 거 아닐까.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면 지키고.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혼자 있고. 일도 계속하고. 그러다 보고 싶으면 만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늙어가고. 문득 웃음이 났다. “나 하고 싶은가 봐.” 말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회사에서도 생각은 같았다. 기태가 했던 말도 이해됐다. 계속되는 관계에 결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는 것. 로로도 장혁과 계속되고 싶었다. 예전이라면 그 마음을 결혼이라 부르는 순간 겁부터 냈다. 지금은 아니었다. 결혼이 자신을 바꾸는 건 아니었다. 둘이 그 이름의 모양을 정하면 됐다. 혁과 결혼을 생각하는 건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누군가
다음 날. 로로는 출근해서도 전날 대화를 떠올렸다. 결혼. 기태와 헤어지게 만든 말이었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말. 그런데 혁과 이야기할 때는 숨이 막히지 않았다. 같이 살지 않아도, 각자 일하고 혼자 있을 시간을 가지면서도 부부일 수 있을까. 정한 건 없는데 생각은 자꾸 그다음으로 갔다. 로로는 자료를 들고 2팀으로 갔다. “한 팀장.” 기태가 모니터에서 눈을 들었다. “왜.” “이거 수정본.” “놔둬.” 파일을 내려놓은 로로는 돌아서려다 멈췄다. “뭐 할 말 있어?” “……어.” “뭔데.” “기태야.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로로가 입술을 눌렀다. “너, 왜 나랑 결혼하려고 했어?” 기태의 표정이 굳었다. “갑자기?” “응. 그냥 알고 싶어서.” 기태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장혁이랑 결혼 얘기 나왔어?” 로로는 피하지 않았다. “어.” “그래서 나한테 묻는 거야?” “기분 나쁘면 대답 안 해도 돼.” “기분이 안 나쁠 수는 없지.” “……미안.” “근데 됐어.” 기태는 펜을 내려놨다. “나도 이제 네가 그 새끼랑 무슨 미래를 생각하든 그걸 막을 사람은 아니니까.” 창밖을 보던 기태가 말했다. “너랑 계속 살고 싶었어.” “그게 다인 거야?” “그게 별거 아닌 것 같냐?” “아니.” “아침에 일어나면 네가 있고, 퇴근하면 네가 있고. 같이 밥 먹고 싸우고 다시 풀고.” 기태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계속됐으면 했어.” “…….” “난 그 계속되는 관계에 결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 거고.” 로로가 조용히 물었다. “왜 이름이 필요했어?” “나는 필요했으니까.” 기태는 잠시 말을 골랐다. “네가 내 여자친구인 것도 좋았는데, 난 그다음도 갖고 싶었어. 가족이 되고 싶었고.” “가족.” “어.” 기태가 로로를 똑바로 봤다. “네가 돌
일요일 저녁. “혁아.” “응.” “배고파.” “알아.” “얼마나 남았어?” “십 분.” “아까도 십 분이라며.” “그때부터 삼 분 지났어.” “그럼 칠 분이라고 해야지.” “귀찮아.” 로로는 소파에 엎드려 입을 삐죽였다. “남의 집 와서 사람 굶기네.” “네 집이야.” “아.” 주방에서는 토마토소스가 끓었고 혁은 소매를 걷은 채 프라이팬을 흔들었다. 요즘은 특별한 데를 가지 않아도 됐다. 서로의 집을 오가고, 배고프면 같이 먹었다. 혁의 티셔츠는 자기 집에, 자기 칫솔은 혁의 욕실에 있었다. 혁의 집 옷장에는 여전히 자기 몫의 반 칸이 있었다. 그래도 합치지는 않았다.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는 돌아갔고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었다. 이상하게 그게 편했다. “한로로.” “응?” “왜 그렇게 봐.” “그냥.” “부담스럽게.” “뒤통수 보는데 뭐가 부담스러워.” 로로는 자기 집 주방에 자연스럽게 선 혁을 보다가 말했다. “이렇게 살면 결혼도 나쁘지 않겠다.” 달그락. 혁의 손이 멈췄다. “…….” “…….” 혁이 천천히 돌아봤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어. 결혼.” “아.” 로로가 몸을 일으켰다. “그냥 한 말이야.” “알아.” “왜 그렇게 봐.” “결혼 싫다던 사람이니까.” “싫지.” 로로가 멈췄다. “……아니. 나도 모르겠어.” “뭘.” “그냥 네가 저기서 밥하는 거 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떤 생각.” “이런 게 계속되는 거면 결혼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닌가.” 혁은 장난치지 않았다. “근데 진짜 그냥 생각이야. 나 결혼하자는 거 아니다?” “알았어.” “표정은 왜 그래.” “내 표정이 뭔데.” “좋아 죽겠다는 표정.” 혁이 입꼬리를 눌렀다. “티 나?” “존나.” “그럼 어쩔 수 없네.” 로로가 쿠션을 던지자 혁이 한 손으로 받았다. “좋아하지 마. 부담스러워.” “이미 좋아했는데.” “뭘.” “나도 생각
금요일 저녁. 기태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집에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습관처럼 나온 말. 대답은 없었다. 로로가 떠난 지도 꽤 됐는데 아직 가끔 이랬다. 퇴근하면 인사하고, 마트에 가면 탄산수를 집으려다 멈추고, 배달 음식을 고르다 두 가지 메뉴를 봤다. 기태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소파에 앉았다. 로로의 물건은 하나도 없었지만 흔적은 남아 있었다. “하…….” 오늘도 길었다.특히— ‘팀장님!’ 머릿속에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하랑. “이하랑 씨. 샘플 어디 있습니까?” “여기요!” 하랑이 자신 있게 상자를 내밀었다. 기태가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없는데요.” “네? 어?” “샘플 어디 있습니까.” “분명히 넣었는데…… 잠시만요!” 십 분 뒤 샘플은 탕비실에서 발견됐다. “이게 왜 여기 있습니까?” “아까 커피 마시면서 확인하고…… 커피만 들고 왔나 봐요.” “…….” “죄송합니다.”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울 일 아닙니다.” “안 울어요.” “울잖아요.” “아직 안 떨어졌어요.” 눈물이 뚝 떨어졌다. “떨어졌는데요.” 하랑이 손등으로 닦더니 웃었다. “이제 안 울어요! 샘플 찾았으니까 다행이네요!” 그런데 잠시 뒤 하랑은 샘플의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팀장님, 이 부분 곡률 조금만 바꾸면 빛 받을 때 훨씬 예쁠 것 같은데요.” “곡률을요?” “네. 여기요.” 맞았다. 덜렁거리는데 디자인을 볼 때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정확했다. 기태는 맥주를 마시다 멈췄다. 텅 빈 상자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얼굴이 떠올랐다. ‘어?’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기태가 그대로 굳었다. “……미친 건가.” 혼자 있는 거실에서 신입사원 생각을 하다 웃었다. 그러나 다시 조용한 집을 바라보자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아직 이 집에는 지우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캠핑장 한복판에서 로로가 소리쳤다. “장혁! 이거 왜 안 펴져!” “거꾸로 들었잖아.
일주일 뒤. 오전 열 시. 회의실에는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디자인 1팀 한로로 팀장과 얼마 전 주임으로 승진한 민지. 맞은편에는 2팀 한기태 팀장, 한정훈 주임. 그리고 입사 일주일 차 이하랑. “우와.” 하랑은 첫 프로젝트 회의에 신나 있었다. 노트를 펼친 채 눈을 반짝였다. 로로가 기태를 힐끗 봤다. “잘 키웠네.” “일주일 됐습니다.” “일주일 치고 멀쩡해 보여.” “회의 시작하시죠.” 뭔가 있었구나. 로로는 더 묻지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 라인보다 금속 비중을 높이는 방향입니다.” 민지가 태블릿을 넘겼다. “1팀에서 잡은 메인 디자인은 여기까지예요.” 회의가 시작되자 하랑의 표정도 달라졌다. 소재, 두께, 세공 방식, 원가를 빠르게 적었다. 질문의 포인트도 정확했다. 문제는— 툭. 펜이 떨어져 테이블 아래를 굴렀다. 기태의 구두 앞이었다. 하랑은 의자에서 내려가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못 봤다. “여기 체결 부분은 2팀 수정안이 낫겠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태가 발밑 인기척에 고개를 내렸다. “…….” 하랑이 구두 옆에서 펜을 줍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해맑게 웃었다. “이하랑 씨.” “네!” 하랑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기태와 테이블 사이로 쑥 올라왔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팀장님?” “……왜 거기서 나옵니까.” “펜 주웠는데요?” 하랑이 펜을 보여줬다. 민지와 로로, 한정훈이 고개를 돌렸다. “저 어디로 나가요?” “…….” 푸흡. 민지가 먼저 터졌다. “죄, 죄송합니다!” 로로와 한정훈까지 웃기 시작했다. 하랑은 그제야 상황을 알아채고 같이 웃었다. “아하하! 저 왜 여기로 나왔지?” 기태만 웃지 않았다. “제발…….” “네?” “다음부터는 의자 쪽으로 나오세요. 펜 하나 떨어졌다고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지 말고요.” “근데 팀장님 발 앞에 있어서요.” “저한테 주워달라고 하면 되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