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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스무 살 먹은 친구는 안 버려진다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03:59:30

“야! 한로로!”

곱창집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로로가 고개를 돌렸다.

구석 테이블에서 박승철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장혁이 앉아 있었다.

“왜 소리를 질러. 쪽팔리게.”

로로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승철 옆에 앉았다.

장혁이 인상을 썼다.

“왜 거기 앉아.”

“왜?”

“좁잖아.”

“안 좁은데?”

승철이 황당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봤다.

“씨발, 그럼 내가 옮길게.”

승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혁 옆으로 갔다.

로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쟤 왜 저래?”

“몰라. 갱년기인가.”

“둘 다 죽는다.”

장혁이 집게를 들었다.

치익—

노릇하게 익은 곱창을 뒤집자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로로의 시선이 즉시 불판으로 향했다.

“와.”

“눈깔 돌아갔네.”

“말 걸지 마.”

“아직 안 익었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로로가 젓가락을 뻗었다.

탁.

장혁의 집게가 젓가락을 막았다.

“기다려.”

“익었어.”

“안 익었다고.”

“내가 먹고 판단할게.”

“그러다 배탈 나.”

“내 배야.”

“아, 씨발.”

장혁이 결국 가장 잘 익은 곱창 하나를 골라 로로 앞접시에 놓았다.

“그거나 처먹어.”

로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장 사장.”

승철이 기가 막힌다는 듯 소주잔을 들었다.

“나는?”

“네 손 없어?”

“한로로는 손 있잖아.”

“쟤는 놔두면 생으로 처먹잖아.”

“차별 존나 자연스럽네.”

로로는 이미 곱창을 씹느라 듣지도 않았다.

승철이 그런 로로를 보다가 장혁을 봤다.

“근데 너.”

“왜.”

“진짜 괜찮냐?”

장혁이 소주를 따르던 손을 멈췄다.

로로도 씹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누구 이야기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장서운.

5년을 만난 여자였다.

헤어진 여자.

장혁은 자기 잔을 채웠다.

“뭐가.”

“뭐긴 뭐야. 서운 씨.”

“괜찮아.”

“진짜?”

“어.”

너무 간단했다.

로로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야.”

“왜.”

“너 안 슬퍼?”

장혁이 그녀를 봤다.

“슬퍼해야 돼?”

“5년 만났잖아.”

“5년 만나면 울어야 되냐?”

“그건 아닌데…….”

로로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너무 멀쩡하니까 이상해.”

“그럼 처울까?”

장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시늉을 했다.

“서운아아아. 가지 마아아.”

“미친 새끼.”

로로가 냅킨을 던졌다.

승철이 낄낄거렸다.

“연기 존나 못하네.”

장혁도 웃었다.

로로만 웃지 않았다.

잠시 장혁의 얼굴을 살피던 로로가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이번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장혁도 그걸 알아챘다.

“괜찮아.”

“술 처먹고 새벽에 전화하지 마.”

“안 해.”

“울면서 나와달라고 해도 안 나갈 거야.”

“누가 너한테 해.”

“너 중학교 때 기억 안 나?”

승철이 눈을 번쩍 떴다.

“아, 씨발. 김수진!”

장혁의 얼굴이 굳었다.

“닥쳐.”

로로가 깔깔 웃었다.

“중3 때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새벽 두 시에 우리한테 전화했잖아.”

“내가 언제.”

“나갔더니 놀이터에서 혼자 소주도 아니고 포도주스 처마시고 있었어.”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

“사진도 있는데?”

“지워.”

“싫어.”

“한로로.”

“평생 간직할 거야.”

장혁이 집게를 내려놓았다.

“휴대폰 내놔.”

“싫어!”

로로가 몸을 뒤로 뺐다.

장혁이 팔을 뻗자 로로는 승철 뒤로 숨었다.

“박승철! 막아!”

“왜 내가!”

“우리 셋의 추억을 지켜!”

“그딴 추억 필요 없어!”

곱창집 한구석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결국 직원이 힐끗 쳐다보자 세 사람은 동시에 얌전해졌다.

“……쪽팔려.”

승철이 중얼거렸다.

“장혁 때문이야.”

“네가 시작했어.”

“박승철이 김수진 얘기했어.”

“왜 내 탓인데, 씨발.”

셋이 서로를 노려보다 동시에 웃었다.

스무 해가 지나도 똑같았다.

“볶음밥 두 개.”

로로가 말했다.

장혁이 바로 정정했다.

“세 개요.”

“야. 나 배불러.”

“지랄.”

“진짜야.”

승철도 코웃음을 쳤다.

“네 배부르다는 말을 믿느니 민원인이랑 대화가 통한다는 걸 믿겠다.”

“오늘은 진짜라고.”

십 분 뒤.

로로는 볶음밥을 가장 많이 먹고 있었다.

장혁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배부르다며.”

“볶음밥 배는 따로야.”

“내가 돼지를 키우지.”

“누가 키워달랬어?”

“중학교 때부터 먹인 게 얼만데.”

“계산해. 줄게.”

“한 20년 치 되는데?”

로로가 잠시 고민했다.

“그럼 그냥 계속 키워.”

승철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둘이 결혼해라 그냥.”

로로와 장혁이 동시에 말했다.

“미쳤냐?”

“싫어.”

승철이 둘을 번갈아 봤다.

“합도 존나 잘 맞아요.”

로로가 장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얘랑 왜 결혼해?”

장혁도 로로를 가리켰다.

“나도 얘 싫어.”

“내가 더 싫어.”

“내가 더.”

“난 죽어도 싫어.”

“누가 해준대?”

승철이 소주를 들이켰다.

“그래. 둘 다 평생 혼자 처살아라.”

로로가 웃었다.

“나는 혼자 아닌데?”

순간 장혁의 숟가락이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다.

승철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 맞다. 넌 남친 있지.”

“응.”

로로가 태연하게 볶음밥을 먹었다.

장혁도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남친이 뭐래.”

“뭘?”

“오늘 나오는 거.”

“뭘 뭐래. 늦지 말래.”

“몇 시까지?”

“몰라.”

“전화 안 와?”

“왜 네가 기다려?”

로로가 장혁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장혁이 물을 마셨다.

“그냥 물어본 거야.”

승철의 눈이 슬쩍 장혁에게 향했다.

또.

그냥.

식당을 나왔을 때는 밤 열 시가 넘었다.

“2차?”

승철이 묻자 로로가 고개를 저었다.

“나 오늘은 가야 돼.”

“왜?”

“아까 약속 까먹었다고 했잖아. 기…….”

로로의 입이 멈췄다.

장혁이 쳐다봤다.

“기?”

“기다린다고.”

로로가 자연스럽게 말을 바꿨다.

“남친이.”

승철이 혀를 찼다.

“가라. 가. 남친 있는 년 붙잡아서 뭐 하냐.”

로로가 택시 앱을 켰다.

장혁이 물었다.

“데리러 안 온대?”

“내가 오지 말랬어.”

“왜?”

“여기까지 뭐 하러 와. 택시 타면 되는데.”

잠시 후 택시가 잡혔다.

로로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간다.”

“도착하면 연락해.”

장혁이었다.

“싫어.”

“해.”

“엄마야?”

“처맞기 싫으면 해.”

“네에, 장 여사님.”

로로가 웃으며 택시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했다.

장혁은 차가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승철이 옆에서 담배를 꺼냈다.

“야.”

“왜.”

“너 아까 왜 물어봤냐?”

“뭘.”

“로로 남친이 데리러 안 오냐고.”

“그냥.”

승철이 라이터를 켜다 말고 장혁을 쳐다봤다.

“장혁.”

“왜.”

“너 그놈의 그냥 좀 그만해.”

장혁이 피식 웃었다.

“지랄.”

그리고 먼저 걸어갔다.

승철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중학생 때부터였다.

한로로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도.

고백 편지를 버렸을 때도.

축구부 주장에게 찾아갔을 때도.

이유를 물으면 언제나 똑같았다.

그냥.

스무 해가 지났는데도 그 말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날 밤 열 시 사십칠 분.

장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로로]

― 도착.

그리고 곧이어 사진 한 장.

현관에 벗어 던진 구두 두 짝이었다.

― 인증 완료. 장여사님 주무세요.

장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씻고 자 돼지야.

곧바로 답장이 왔다.

― ㅗ

장혁이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몰랐다.

사진의 구석.

현관 한쪽에는 남자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구두의 주인이,

머지않아 자신의 앞에 서게 될 거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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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125화. 이렇게 사는 거라면

    일요일 저녁. “혁아.” “응.” “배고파.” “알아.” “얼마나 남았어?” “십 분.” “아까도 십 분이라며.” “그때부터 삼 분 지났어.” “그럼 칠 분이라고 해야지.” “귀찮아.” 로로는 소파에 엎드려 입을 삐죽였다. “남의 집 와서 사람 굶기네.” “네 집이야.” “아.” 주방에서는 토마토소스가 끓었고 혁은 소매를 걷은 채 프라이팬을 흔들었다. 요즘은 특별한 데를 가지 않아도 됐다. 서로의 집을 오가고, 배고프면 같이 먹었다. 혁의 티셔츠는 자기 집에, 자기 칫솔은 혁의 욕실에 있었다. 혁의 집 옷장에는 여전히 자기 몫의 반 칸이 있었다. 그래도 합치지는 않았다.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는 돌아갔고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었다. 이상하게 그게 편했다. “한로로.” “응?” “왜 그렇게 봐.” “그냥.” “부담스럽게.” “뒤통수 보는데 뭐가 부담스러워.” 로로는 자기 집 주방에 자연스럽게 선 혁을 보다가 말했다. “이렇게 살면 결혼도 나쁘지 않겠다.” 달그락. 혁의 손이 멈췄다. “…….” “…….” 혁이 천천히 돌아봤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어. 결혼.” “아.” 로로가 몸을 일으켰다. “그냥 한 말이야.” “알아.” “왜 그렇게 봐.” “결혼 싫다던 사람이니까.” “싫지.” 로로가 멈췄다. “……아니. 나도 모르겠어.” “뭘.” “그냥 네가 저기서 밥하는 거 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떤 생각.” “이런 게 계속되는 거면 결혼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닌가.” 혁은 장난치지 않았다. “근데 진짜 그냥 생각이야. 나 결혼하자는 거 아니다?” “알았어.” “표정은 왜 그래.” “내 표정이 뭔데.” “좋아 죽겠다는 표정.” 혁이 입꼬리를 눌렀다. “티 나?” “존나.” “그럼 어쩔 수 없네.” 로로가 쿠션을 던지자 혁이 한 손으로 받았다. “좋아하지 마. 부담스러워.” “이미 좋아했는데.” “뭘.” “나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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