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 3화. 에타에 뜬 애 엄마
[인문관에서 이태건 애 엄마 봄]
제목을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강의동 입구 앞에 선 채 휴대폰 화면만 내려다봤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아니겠지.
그냥 누가 장난으로 올린 거겠지.
사진도 없고, 이름도 없고, 정확한 내용도 없으니까 금방 묻히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댓글 수는 믿음보다 빨랐다.
방금 전까지 7개였던 댓글이 13개가 되고, 다시 21개가 됐다.
새로고침할 때마다 숫자가 늘었다.
[이태건 애 있어?]
[복학생 이태건 말하는 거 맞음?]
[나 아까 봄ㅋㅋ 애기 안고 있었음]
[여자도 같이 있던데?]
[애가 그 여자 손 잡고 안 놓던데 ㄹㅇ 엄마 같았음]
[근데 이태건 고딩 때부터 좀 유명하지 않았냐]
[헐 신입생이라던데?]
나는 숨을 들이켰다.
신입생.
그 단어 하나가 목에 걸렸다.
“민서야.”
하린이 강의실 문 앞에서 다시 뛰어나왔다.
얼굴이 심각했다. 아까 분식집에서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봤어?”
나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하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미친, 벌써 댓글 이렇게 달렸어?”
“사진은 없지?”
“내가 아는 한은 아직 없어. 근데 애들 말로 퍼지는 게 더 빨라. 방금 우리 과 단톡에도 링크 올라왔어.”
“…….”
“일단 들어가자. 여기 서 있으면 더 눈에 띄어.”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발이 안 떨어졌다.
강의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이 이상하게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안에 들어가면, 다들 나를 볼까?
혹시 벌써 알고 있을까?
내가 그 ‘애 엄마’라는 소문 속 여자인 걸?
“민서야.”
하린이 내 손목을 잡았다.
“야, 숨 쉬어.”
그제야 내가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억지로 숨을 삼켰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 있었다.
“나 그냥 오늘 빠질까?”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내가 더 놀랐다.
하린도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안 돼.”
“왜.”
“빠지면 더 이상해져.”
“그럼 어떡해.”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해. 네가 아무렇지 않아야 애들도 함부로 못 물어봐.”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을 못하면?”
하린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내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고 똑바로 봤다.
“그럼 내가 할게.”
“뭘.”
“네 옆에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말이 조금 웃기고, 조금 고마웠다.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린은 내 손목을 잡은 채 강의실 문을 열었다.
순간 안쪽의 시선 몇 개가 우리 쪽으로 꽂혔다.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처음엔 우연인 척했다.
고개를 돌리던 사람이 마침 문 쪽을 본 것처럼.
친구와 말하다가 잠깐 눈이 마주친 것처럼.
하지만 그 시선들은 오래 머물렀다.
내 얼굴, 내 손, 내 옷차림을 훑고 지나갔다. 마치 방금 게시글 속 ‘그 여자’와 눈앞의 나를 맞춰보려는 것처럼.
나는 하린이 잡은 손목에 힘을 줬다.
“뒤쪽 앉자.”
하린이 작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맨 뒤쪽 창가 자리로 향했다.
아침에 일부러 골랐던 중간 자리와는 달랐다. 지금은 그냥 숨고 싶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앞줄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쟤 아니야?”
“아까 인문관?”
“옆에 있던 애도 같이 있었나 봐.”
하린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뭐?”
앞줄 여자애 둘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하린은 웃고 있었다.
그런데 웃는 얼굴이 전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할 말 있으면 크게 해. 우리도 듣게.”
“아니, 그냥…….”
“그냥이면 조용히 해.”
와.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윤하린은 생각보다 강했다.
앞줄은 바로 조용해졌다.
“고마워.”
내가 작게 말하자 하린이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이런 거 진짜 싫어해. 지들이 본 것도 아니면서 주워들은 걸로 사람 만드는 거.”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놓았다.
더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손가락이 자꾸 휴대폰 쪽으로 갔다.
궁금했다.
무서운데 궁금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모른 채로 버티는 건 더 무서웠다.
결국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게시글은 인기글 직전까지 올라가 있었다.
댓글은 42개.
[애 엄마가 신입생이면 나이차 뭐임?]
[뭔 애 엄마야ㅋㅋ 그냥 애기가 따른 거겠지]
[근데 이태건 애 아빠인 건 맞음?]
[나 작년에 봤는데 애기 데리고 학교 온 적 있음]
[이태건이 애 아빠면 뭔가 납득됨]
[왜 납득돼ㅋㅋㅋ]
[분위기가 너무 애 딸린 남자 같음]
[근데 여자 예쁘던데?]
[누군지 알 것 같음 우리 과 신입생]
거기서 손이 멈췄다.
우리 과 신입생.
“하린아.”
“응?”
“나 그냥 휴학할까.”
“입학 첫날인데 무슨 휴학이야.”
“농담 아니야.”
“그럼 더 안 돼.”
하린은 내 휴대폰을 빼앗듯 가져가 화면을 껐다.
“지금은 보지 마. 보면 네가 더 흔들려.”
“이미 흔들렸는데.”
“더 흔들리지 말라고.”
교수님이 들어오면서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억지로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는 빈 문서가 떠 있었다.
강의 제목을 적어야 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교수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렸다.
출석을 부르고, 수업 계획서를 설명하고, 중간고사와 과제 비율을 말하는데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계속 같은 장면만 반복됐다.
도윤의 작은 손.
내 손가락을 붙잡던 온기.
이태건의 낮은 목소리.
우리 애가 너를 골랐어.
그 말은 분명 터무니없었다.
그런데 왜 자꾸 귀에 남는지 모르겠다.
나는 창밖을 봤다.
봄이라기엔 아직 차가운 햇빛이 건물 벽에 얇게 걸려 있었다. 운동장 쪽에는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그중 누군가는 아무 걱정 없이 웃고 있었다.
나도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그냥 강의 듣고, 친구랑 밥 먹고, 도서관 둘러보고, 집에 가서 오늘 대학 첫날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하루.
그런데 내 첫날은 이태건과 아이와 익명 게시판으로 엉망이 됐다.
“유민서 학생?”
교수님 목소리에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네?”
순간 강의실 안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심장이 철렁했다.
교수님은 출석부를 보며 말했다.
“간단히 자기소개 한 번 해볼까요? 첫 수업이니까.”
아.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끄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앞줄, 옆줄, 대각선 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나는 목이 바짝 마른 채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유민서입니다.”
평범한 자기소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뒤쪽에서 아주 작게 말했다.
“애 엄마?”
한순간 귀가 먹먹해졌다.
하린이 바로 몸을 돌렸다.
“누가 말했어?”
강의실이 얼어붙었다.
교수님도 분위기를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 있습니까?”
나는 손끝을 꽉 쥐었다.
이렇게 커지면 안 된다.
더 눈에 띄면 안 된다.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한다.
“아닙니다.”
내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말했다.
“계속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교수님을 봤다.
“아직 학교가 낯설어서 천천히 적응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말은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앉는 순간, 등 뒤가 뜨거웠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는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교수님 말도, 과제 설명도, 하린이 옆에서 걱정스럽게 건네는 쪽지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가방을 챙겼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가길 기다렸다. 그래야 덜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었다.
앞줄에 앉아 있던 남학생 하나가 내 자리 근처에서 서성였다.
아까 뒤에서 “애 엄마”라고 말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저기.”
그가 말을 걸었다.
하린이 바로 내 앞을 막았다.
“왜요.”
남학생은 하린이 아니라 나를 봤다.
“진짜 이태건 애 엄마예요?”
너무 직접적이라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나는 잠깐 멍해졌다.
하린이 먼저 터졌다.
“너 미쳤어?”
“아니,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그걸 왜 네가 궁금해해?”
“게시판에—”
“게시판이 엄마야? 게시판에 올라오면 다 물어봐도 돼?”
남학생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그냥 물어본 건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요?”
“네가 무례하니까.”
“무례까지는 아니지 않나.”
“맞아.”
갑자기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모두가 동시에 돌아봤다.
강의실 문가에 이태건이 서 있었다.
검은 후드 차림 그대로였다.
도윤은 없었다. 아이 가방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까보다 훨씬 더 본래의 이태건처럼 보였다.
차갑고, 위험하고, 가까이 가면 안 될 사람.
그가 천천히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학생은 대놓고 당황했다.
“아…….”
태건은 남학생 앞에서 멈췄다.
키 차이가 꽤 났다.
태건은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다가, 짧게 물었다.
“뭐가 궁금한데.”
남학생은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냥…….”
“방금은 잘 물어보던데.”
“오해가 있나 해서요.”
“누가 오해했는데.”
“게시판에…….”
“게시판 말고.”
태건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네가 뭘 봤는데.”
남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강의실에 남아 있던 몇몇 학생들이 숨죽여 우리 쪽을 봤다.
나는 심장이 뛰어서 미칠 것 같았다.
이러면 더 안 좋아진다.
더 큰 소문이 된다.
이태건이 강의실까지 찾아와 남학생을 몰아붙였다는 말이 붙을 것이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해요.”
태건의 시선이 나에게 왔다.
“왜.”
“됐어요.”
“안 됐는데.”
“저는 됐어요.”
“넌 매번 이런 식으로 넘어가?”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
태건은 계속 나를 봤다.
남학생이 아니라, 나를.
“누가 네 얘기 아무렇게나 하는데 그냥 둬?”
“여기서 싸우면 더 커져요.”
“그러니까 네가 참는 거고?”
“참는 게 아니라—”
“피하는 거잖아.”
말문이 막혔다.
정확해서 더 아팠다.
나는 피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문제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잃기만 기다리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태건은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3년 내내 나만 보면 도망가던 애.
그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피하면 안 돼요?”
내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피하면 안 되는 일도 있어.”
“그쪽이 뭘 알아요?”
말이 튀어나왔다.
순간 강의실이 더 조용해졌다.
하린이 내 팔을 붙잡으려다 멈췄다.
나는 이미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이태건 씨처럼 어디 가서 무섭게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조용해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난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고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싫고, 수군거리는 것도 싫고, 모르는 사람이 내 얘기하는 것도 싫어요.”
태건의 눈이 조금 가라앉았다.
“…….”
“근데 오늘 하루 종일 그쪽 때문에 다 망했어요.”
말하고 나서 숨이 막혔다.
너무 심했나.
도윤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태건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었다.
태건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불편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비웃거나, 날카롭게 받아쳤다면 나도 덜 미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냥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말했다.
“그래.”
“…….”
“망친 거 맞네.”
그 말이 더 당황스러웠다.
태건은 남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남학생이 움찔했다.
“얘는 아니래.”
“…….”
“내 애 엄마 아니라고.”
나는 숨을 삼켰다.
태건은 주변에 남아 있던 학생들까지 한 번 훑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사람들이 눈을 피했다.
“한 번 더 물어보면 그땐 나한테 물어봐.”
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나는 급히 그를 따라 나갔다.
“잠깐만요.”
복도에 나오자 바람이 서늘하게 지나갔다.
태건은 멈췄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해지잖아요.”
“뭐가.”
“내 애 엄마 아니라고만 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하죠.”
“그럼 뭐라고 해.”
“그냥 길 잃은 아이 도와준 거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 말은 네가 하면 돼.”
“아까는 내 방식대로 정리한다면서요.”
“내 방식은 네가 싫다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었다.
태건은 천천히 돌아섰다.
복도에는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우리 주변만 묘하게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도 우리를 힐끔거렸다.
태건은 그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유민서.”
“왜요.”
“네가 싫으면 안 엮일게.”
순간 가슴이 이상하게 내려앉았다.
분명 내가 원하던 말이었다.
제발 엮이지 말자.
서로 모르는 척하자.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
그런데 막상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도윤이도?”
내가 물었다.
태건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
“도윤이도 저랑 안 엮이게 할 거예요?”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떠올랐다.
내 손을 놓지 않던 작은 손.
“누나, 가지 마.” 하고 말하던 목소리.
졸린 얼굴로 손을 흔들던 아이.
태건은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면.”
이상했다.
그 말은 너무 담담했는데, 꼭 상처받은 사람처럼 들렸다.
아니, 상처받지 않으려고 미리 선을 긋는 사람처럼.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원하는 건…….”
그때 태건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표정이 달라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차가운 게 아니라, 긴장한 얼굴.
“왜.”
통화 연결과 동시에 태건이 낮게 물었다.
상대방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태건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건 보였다.
“언제부터.”
짧은 침묵.
“열은.”
또 침묵.
“울어?”
내 심장이 덜컥했다.
도윤이.
태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갈게.”
그는 통화를 끊자마자 몸을 돌렸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도윤이 무슨 일 있어요?”
태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계단 쪽으로 걸었다.
걸음이 빨랐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안 엮이기로 했으니까.
방금 전까지 오늘 하루가 망했다고 말했으니까.
이태건과 관련된 일에서 빠져나오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그런데 발이 움직였다.
“이태건 씨!”
태건이 멈췄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도윤이 아파요?”
그는 짧게 나를 봤다.
“상관하지 마.”
아까 내가 했어야 할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말을 들으니 속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열나요?”
“…….”
“어린이집이에요? 병원 가야 돼요?”
“유민서.”
“애가 아프다면서요.”
“너 방금 나 때문에 하루 망했다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태건은 나를 똑바로 봤다.
“그럼 여기서 그만해.”
그 말은 밀어내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부탁처럼 들렸다.
오지 마.
더 엮이지 마.
네 말대로 너까지 망치기 싫어.
그렇게 들려서, 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태건은 다시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계단 아래로 사라지려는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내 것이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낯선 여자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 혹시 유민서 학생 맞으세요?
“네, 맞는데요.”
― 여기 햇살어린이집인데요. 도윤이가 계속 학생 이름을 불러서요.
나는 숨이 멎었다.
― 보호자분께 연락드리긴 했는데, 아이가 너무 울어서…… 혹시 잠깐 통화라도 가능하실까요?
전화기 너머로 아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작고 젖은 목소리가 섞였다.
― 누나아…….
나는 계단 쪽을 돌아봤다.
이태건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을 쥔 손이 떨렸다.
도망가야 했다.
정말로, 이번엔 도망가야 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가방끈을 고쳐 메고 있었다.
“어린이집 주소 보내주세요.”
내 목소리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게 침착했다.
“지금 갈게요.”
# 특별외전 2화. 나를 선택한 사람- 태건시점 - 결혼 다음 날, 나는 민서가 도윤에게 차이는 모습을 보며 눈을 떴다.도윤의 발이 민서의 뺨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민서는 아이의 발목을 잡아 이불 안으로 밀어 넣었고, 도윤은 잠든 채 다시 다리를 뻗었다.“도윤아.”민서가 낮게 불렀다.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아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미안.”“네가 왜 사과해.”“내 아들이라며.”잠이 덜 깬 채 대답했지만 민서가 웃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이상한 아침이었다.도윤은 내 옆에서 자고 있었고, 민서는 같은 반지를 낀 채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우리 침대였다.나는 아직도 그 단어가 낯설었다.우리 집.우리 방.우리 침대.민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절대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들이었다.처음 본 유민서는 지나치게 태연했다.길을 잃은 도윤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울리지 않았고, 내가 나타났을 때 겁먹은 얼굴로 물러나지도 않았다.오히려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도윤이 아빠 맞아요?”확신하지 못하는 목소리였다.도윤이 나를 아빠라고 불렀는데도 의심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맞는데.”내가 대답하자 민서는 도윤을 바로 넘겨주지 않았다.“그럼 아이가 왜 혼자 있었어요?”첫 만남부터 따졌다.나는 그게 싫었다.도윤을 잃어버린 사람은 나였고, 아이를 찾을 때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내가 부족한 아빠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잠깐 놓친 거야.”“잠깐이어도 아이는 무서웠을 수 있잖아요.”민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그래서 더 싫었다.나는 틀린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화를 낼 수 있었다.맞는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부터 마주해야 했다.그런데 도윤은 민서의 손을 놓지 않았다.“누나도 가.”도윤이 말했다.나는 그 말이 불편했다.아이는 원래 낯선 사람을 쉽게 따르지 않았다.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처음 보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 특별외전 1화. 내가 먼저 고른 사람-민서 시점 - 결혼 다음 날 아침,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태건의 얼굴이 아니었다.도윤의 발바닥이었다.정확히는 내 뺨 옆에 놓인 작은 발이었다.나는 눈을 뜬 채 한동안 그 발을 바라봤다.어젯밤 분명 도윤을 가운데 눕혔다. 그런데 자는 동안 세로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아이의 머리는 태건의 옆구리에 붙어 있었고, 두 다리는 내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도윤아.”작게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발을 살짝 밀자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내 얼굴 쪽으로 가져왔다.결혼 첫날밤의 다음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나는 결국 도윤의 발을 붙잡아 이불 안으로 넣었다.그때 태건이 눈을 떴다.“왜.”“네 아들이 나 걷어찼어.”태건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도윤을 자기 쪽으로 끌었다.“미안.”“네가 왜 사과해.”“내 아들이라며.”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는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이런 아침을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이태건을 처음 봤을 때의 나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장면이었다.그날의 태건은 무서운 사람이었다.검은 옷.굳은 표정.사람을 믿지 않는 눈.그리고 처음 보는 아이가 그를 보자마자 달려가 안겼다.“아빠.”도윤이 그 한마디를 내뱉었을 때, 나는 내가 알던 세상의 규칙 하나가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저런 사람이 아빠라고?그것도 저렇게 작은 아이의?나는 처음부터 태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그가 도윤의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더 의심했다.아이는 왜 혼자 있었는지.태건은 왜 그렇게 늦게 나타났는지.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 것은 맞는지.지금 생각하면 태건 역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자기 아이 옆에 붙어 있으면서 계속 따지는 여자.그런데도 나는 떠나지 않았다.도윤이 내 손가락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때는 아이를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대단한
# 외전 5화. 우리 애가 다시 골랐다 [외전완결]결혼을 정한 다음 날.태건과 민서는 하연을 먼저 만났다.장소는 도윤이 자주 가는 어린이도서관 근처 카페였다. 도윤과 하연의 정기 만남이 없는 날이라 세 사람만 마주 앉았다.하연은 민서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발견했지만 먼저 묻지 않았다.태건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우리 결혼하기로 했어.”짧은 말이었다.하연의 시선이 태건에게서 민서에게로 옮겨 갔다.놀란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축하해.”“고마워.”민서가 대답했다.하연은 물잔을 만지며 잠시 생각했다.“도윤이한테는 말했어?”“아직.”태건이 말했다.“너한테 먼저 알리기로 했어.”하연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허락을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도윤보다 먼저 자신의 귀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결혼하면 바로 달라지는 게 있어?”하연이 물었다.“생활은 지금이랑 비슷해.”민서가 대답했다.“이미 같이 살고 있으니까.”“도윤이 돌봄은?”“지금처럼 태건이가 주로 맡고요.”민서는 준비해 온 말을 천천히 꺼냈다.“저도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만큼 제가 선택한 범위에서는 함께할 거예요. 하지만 중요한 결정이나 하연 씨와의 일정은 두 분이 계속 직접 조율해 주세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민서 씨한테 엄마 역할을 부탁할 생각은 없어요.”“알아요.”“도윤이가 결혼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하연은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엄마가 바뀐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그 부분부터 설명하려고.”태건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엄마는 그대로 너라고.”하연은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내렸다.도윤의 엄마라는 자리를 확인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자신이 그 자리를 온전히 지켜 온 사람도 아니었다.그런데 태건은 하연의 과거를 없던 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역할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었다.“가족식은 작게 하려고 해.”태건이 말했다.“가까운 사람들만 불러서 밥 먹는 정도로.
# 외전 4화. 이번에는 내가 고르는 약속토요일 오후.도윤은 준우네 집에서 열리는 생일 파티에 갔다.태건은 아침부터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했다.“네 시에 데리러 가는 거 맞지?”민서가 물었다.“응.”“그럼 세 시간밖에 없네.”“결혼 이야기하는 데 세 시간이 부족해?”태건은 소파에 앉아 민서를 바라봤다.민서는 식탁 위에 서류 몇 장을 펼쳐 두고 있었다.태건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게 뭐야.”“내가 준비한 말.”“결혼 이야기하는데 서류가 필요해?”“필요해.”민서는 종이를 태건 쪽으로 밀었다.가장 위에는 두 사람의 현재 생활이 적혀 있었다.태건의 센터 근무와 소득.민서의 학업과 프로젝트 일정.공동생활비 분담.도윤의 양육비와 돌봄 체계.하연과의 정기 만남.태건은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이거 우리 집 구할 때 다 이야기한 거잖아.”“결혼하면 달라지는 게 있으니까 다시 보는 거야.”“뭐가 달라져.”“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거.”민서는 옆에 놓인 자료를 펼쳤다.혼인신고 이후 달라지는 법적 관계와 재산 관리, 의료 상황에서의 보호자 지위, 주거 계약과 세금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이었다.태건은 예상하지 못한 얼굴로 민서를 바라봤다.“이걸 다 알아봤어?”“응.”“언제.”“네가 계속 결혼 이야기할 때부터.”태건은 서류를 다시 내려다봤다.결혼이라는 말을 꺼낸 사람은 자신이었다.그런데 정작 결혼이 두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깊이 알아보지 않았다.좋아하고, 함께 살고, 오래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민서는 마음이 부족해서 자료를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오래 함께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었다.“결혼하면 내 빚도 네가 책임져야 해?”민서가 물었다.태건의 표정이 굳었다.“빚 있어?”“없어.”“그럼 왜 물어.”“서로 모르는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민서는 질문 목록을 꺼냈다.학자금 대출.개인 채무.보험.저축.가족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는 돈.태건은
# 외전 3화. 졸업하는 아빠도윤의 유치원 발표회 날.태건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도윤의 흰 셔츠를 다리고, 바지 주름을 펴고, 유치원에서 보내 준 안내문을 세 번 확인했다.준비물은 없었다.보호자는 열 시까지 강당으로 오라는 내용뿐이었다.그런데도 태건은 도윤의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아빠.”잠옷 차림의 도윤이 방문에 기대 서 있었다.“왜.”“오늘 가방 안 가져가.”태건의 손이 멈췄다.“알아.”“그런데 왜 봐?”“혹시 필요한 게 있나 해서.”“없어.”도윤은 하품을 하며 욕실로 걸어갔다.“나 노래 안 틀리게 해야 돼.”“집에서 계속 불렀잖아.”“친구들이 틀리면 나도 틀릴 수 있어.”태건은 웃지 않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도 있지.”도윤이 욕실 앞에서 돌아봤다.“틀려도 돼?”“응.”“선생님 안 화내?”“발표회는 시험 아니야.”도윤은 안심한 얼굴로 욕실에 들어갔다.민서는 그때까지도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전날 프로젝트 회의가 늦게 끝난 탓이었다.태건은 침실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발표회 보호자는 자신과 하연이었다.민서는 집에서 쉬다가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도윤이 직접 정한 일이었고, 민서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그런데 태건은 괜히 침실 안을 한 번 더 바라봤다.민서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빠진 사람은 아니었다.이미 함께 돌아올 집에 있는 사람이었다.하연은 약속 시간보다 십 분 먼저 유치원 앞에 도착했다.짙은 남색 원피스 위에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손에는 작은 꽃다발도, 선물도 없었다.유치원에서 꽃과 장난감을 가져오지 말아 달라고 안내했기 때문이었다.“엄마.”도윤이 하연을 발견하고 뛰어갔다.태건은 따라가지 않았다.하연이 아이 앞에 몸을 낮췄다.“긴장돼?”“조금.”“엄마도 조금 긴장돼.”“엄마는 노래 안 하잖아.”“도윤이 보는 게 처음이니까.”도윤은 잠시 하연을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같이 들어가.”하연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강당에는
# 외전 2화. 엄마가 오는 토요일“엄마, 내 집 봐.”도윤이 하연의 손을 잡아당겼다.하연은 현관 안쪽을 한 번 더 바라봤다.거실 바닥에는 새 수납장이 놓여 있었고, 민서의 책상 옆에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조명이 기대어 있었다. 소파 위에는 태건의 겉옷과 도윤의 작은 가방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누군가의 집을 구경하는 일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것이 보였다.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누구의 물건이 어디에 놓이는지.자신이 없는 시간 동안 어떤 생활이 만들어졌는지.“잠깐 보고 가세요.”민서가 다시 말했다.하연은 그제야 신발을 벗었다.“실례할게요.”“엄마, 여기.”도윤은 하연이 신발을 정리할 틈도 주지 않고 작은방으로 데려갔다.방문 안쪽에는 자동차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창문 아래 낮은 침대에는 공룡 이불이 깔려 있었다.벽 한쪽 수납장에는 자동차와 기차가 줄을 맞춰 들어가 있었다.“이게 파란 자동차.”도윤이 가장 먼저 꺼낸 것은 민서의 이전 집에 두고 다니던 장난감이었다.“누나 집에 있던 거 기억나?”하연은 자동차를 받아 들지 않고 아이가 든 모습을 바라봤다.“응. 도윤이 자리라고 했던 거.”“이제 여기 있어.”“좋겠다.”“엄마 집에도 내 거 있어?”질문은 망설임 없이 나왔다.하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응.”태건이 그녀를 바라봤다.하연은 도윤에게 설명했다.“지난번에 같이 산 기차책이랑 도윤이 쓰는 컵 하나 있어.”“내 컵?”“초록색.”“왜 나한테 안 보여 줬어?”“도윤이가 엄마 집에 올 수 있게 되면 보여 주려고 했어.”도윤은 곧바로 물었다.“나 언제 가?”하연은 태건 쪽을 보지 않았다.도윤에게 묻고, 태건이 대신 답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피하지 않았다.“아직 날짜는 안 정했어.”“왜?”“엄마 집에서 도윤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 아빠랑 먼저 확인해야 해.”“침대 있어?”“도윤이가 낮잠 잘 수 있는 자리부터 만들려고.”도윤은 자신의 방을 돌아봤다.“내 침대는 여기 있는데.”“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