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 4화. 아이가 부른 이름
어린이집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학교 정문을 지나 골목 하나를 꺾고, 작은 문구점과 빵집 사이를 지나자 노란색 간판이 보였다.
햇살어린이집.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곳이었다.
아이들 그림이 붙은 유리문, 알록달록한 신발장이 보이는 현관, 창문 너머로 흔들리는 종이 모빌. 대학가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나는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이상했다.
나는 도윤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이태건의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뭣도 아니었다.
그냥 오늘 처음 도윤의 손을 잡아준 사람.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여기까지 와 있는 걸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어린이집 번호였다.
나는 망설일 틈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도착했어요.”
통화를 끊기도 전에 안쪽 문이 열렸다.
중년의 선생님 한 분이 급히 나왔다.
“유민서 학생 맞죠?”
“네.”
“아이고, 와줘서 고마워요. 보호자분도 오고 계신데 아이가 계속 학생 이름만 찾아서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나아.”
도윤이었다.
내 발이 먼저 움직였다.
실내로 들어서자 작은 교실 한쪽 매트 위에 도윤이 앉아 있었다. 얼굴은 울어서 벌겋고,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 붙어 있었다. 옆에는 체온계와 물컵, 작은 수건이 놓여 있었다.
도윤은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멈췄다.
정말로 또 그렇게.
숨이 딱 멈춘 듯, 울음이 끊겼다.
“누나.”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나는 신발을 벗는 것도 잊고 서 있다가, 선생님이 슬리퍼를 내밀어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도윤아.”
가까이 다가가자 도윤이 두 팔을 벌렸다.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잠깐 멈칫했다.
안아도 되는 걸까.
내가 안아도 되는 걸까.
하지만 도윤은 이미 울먹이는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올렸다.
작은 몸이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생각보다 뜨거웠다.
“열이 좀 있어요.”
선생님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도윤의 이마에 손등을 대보았다.
정말 뜨거웠다. 평범한 미열 정도가 아니라, 아이 몸 전체가 뜨끈하게 달아오른 느낌이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점심 먹고 낮잠 자려는데 갑자기 울기 시작했어요. 열 재보니까 38도 조금 넘고요. 보호자분께 바로 연락드렸어요.”
“병원은요?”
“보호자분 오시면 바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저희가 데리고 움직이기엔 어려워요.”
도윤은 내 목에 얼굴을 묻었다.
“누나, 가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쪽이 조여왔다.
오늘 몇 번이나 들은 말이었다.
가지 마.
처음엔 곤란했고, 그다음엔 난처했고, 이제는 이상하게 아팠다.
나는 도윤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안 가. 여기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도윤의 작은 손이 내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아빠는?”
“아빠 오고 있어.”
“아빠 화났어?”
“아니야. 도윤이 아파서 걱정하는 거야.”
“아빠 맨날 걱정해.”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도윤은 졸리고 아픈 얼굴로 웅얼거렸다.
“아빠 밤에 안 자.”
“왜?”
“나 잘 때 봐.”
아이가 하는 말이라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졌다.
아이가 잠든 뒤에도 불을 끄지 못하고, 혹시 열이 나는지, 숨은 잘 쉬는지, 이불은 걷어차지 않았는지 계속 확인하는 이태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 어울렸다.
나는 도윤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살짝 정리해주었다.
“아빠가 도윤이 많이 좋아하나 봐.”
“응.”
도윤이 작게 대답했다.
“아빠 나 좋아해.”
그 말이 너무 당연해서,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때 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
“도윤아.”
이태건이었다.
숨이 가쁘게 차 있었다.
학교에서부터 뛰어온 건지 후드 집업 앞섶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검은 머리카락도 이마 위로 내려와 있었다. 늘 무심하던 얼굴에는 처음 보는 초조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멈췄다.
정확히는, 내 품에 안긴 도윤을 보고 멈췄다.
“왜 네가.”
낮은 목소리였다.
고맙다는 말도, 놀랐다는 말도 아니었다.
처음 나온 말이 그것이라니.
나는 순간 기분이 상할 뻔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도윤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 걸 보고 참았다.
지금 이 남자는 나를 탓하는 게 아니었다.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연락 왔어요. 도윤이가 계속 제 이름 불렀다고.”
“내 번호로 연락했을 텐데.”
“했겠죠. 근데 저한테도 왔어요.”
태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번호를 어떻게 알고.”
선생님이 급히 끼어들었다.
“아이 손에 쥐고 있던 쪽지에 번호가 있었어요. 아까 학생이 적어주셨다고 해서요.”
나는 그제야 떠올렸다.
점심 먹고 헤어지기 전, 도윤이 내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해서 하린이 장난처럼 내 이름과 번호를 작은 메모지에 적어줬다. “누나 보고 싶으면 아빠한테 보여줘.” 하고.
그걸 도윤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태건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왔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날카롭지만, 화난 것만은 아니었다.
“왜 왔어.”
“아이가 불렀다잖아요.”
“네가 올 필요 없었어.”
“알아요.”
“그런데 왜.”
나는 도윤을 고쳐 안았다.
아이가 내 어깨에 얼굴을 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건 진심이었다.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윤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 대답에 태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도윤의 이마에 손을 댔다. 손끝이 닿자 도윤이 눈을 떴다.
“아빠.”
그 작은 목소리에 태건의 표정이 무너졌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나는 봤다.
그가 얼마나 겁먹었는지.
“어디 아파.”
태건이 물었다.
“머리.”
“또?”
또.
나는 그 단어를 놓치지 않았다.
태건은 바로 아이 가방을 열어 작은 약 봉투와 체온계를 꺼냈다. 손이 빠르긴 했지만, 약간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병원 가보시는 게 좋겠어요. 낮잠 전에는 괜찮았는데 열이 갑자기 올라서요.”
“갑니다.”
태건은 짧게 대답하고 도윤을 내 품에서 데려가려 했다.
그런데 도윤이 내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누나도.”
나는 당황해서 도윤을 봤다.
“도윤아, 병원은 아빠랑 가야지.”
“누나도.”
“누나는 수업이 있어.”
“가지 마.”
다시 그 말.
태건의 손이 멈췄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도윤아.”
목소리를 낮췄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울 힘도 없는 얼굴로 내 옷만 붙잡고 있었다.
태건은 한동안 아이를 보다가, 나를 봤다.
“안 와도 돼.”
그 말은 이상했다.
아까는 올 필요 없다고 했고, 지금은 안 와도 된다고 했다.
같은 말 같지만 달랐다.
첫 번째는 밀어내는 말이었고, 두 번째는 선택권을 주는 말이었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다음 강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의실에 들어간다고 해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에타에는 아직도 댓글이 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과 학생들은 나를 또 볼 것이다.
그리고 도윤은 지금 내 옷자락을 잡은 채 열이 나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선택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병원까지만 같이 갈게요.”
태건의 눈이 흔들렸다.
“유민서.”
“착각하지 마요. 도윤이 때문이에요.”
내가 급히 덧붙였다.
태건은 잠깐 나를 보다가 낮게 말했다.
“알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이상하게 조금 지친 얼굴로 웃었다.
아주 옅게.
마치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병원은 어린이집에서 택시로 십 분 거리였다.
택시 안에서 도윤은 태건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내 손가락을 놓지 않았다.
나는 뒷좌석 한쪽 끝에 앉아 있었고, 태건은 가운데, 도윤은 그의 무릎 위에 있었다. 좁은 차 안에서 세 사람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태건의 팔이 내 팔에 닿을 듯 말 듯했다.
나는 괜히 창밖을 봤다.
운전석 라디오에서는 낮은 음악이 흘렀고, 도로 위 차들은 느리게 밀렸다. 도윤은 열 때문인지 자꾸 칭얼거렸다.
“아빠, 더워.”
태건이 도윤의 겉옷을 조금 열어주었다.
“조금만 참아.”
“싫어.”
“병원 가서 선생님 볼 거야.”
“주사 싫어.”
“주사 안 맞을 수도 있어.”
“아빠 거짓말.”
나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태건이 나를 봤다.
“웃어?”
“아니요.”
“웃었잖아.”
“조금요.”
“애 아픈데.”
“도윤이가 귀여워서요.”
그 말에 태건의 시선이 묘하게 멈췄다.
“귀여워?”
“네.”
“도윤이가?”
“그럼 누가 귀엽겠어요.”
내 말에 태건이 잠깐 조용해졌다.
이상하게 공기가 어색해졌다.
나는 뒤늦게 내가 한 말을 곱씹었다.
그럼 누가 귀엽겠어요.
아니, 왜 이런 식으로 들리게 말을 했지.
나는 급히 창밖을 보는 척했다.
태건은 아무 말 없이 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아주 낮게 말했다.
“넌 안 무서워하네.”
“뭘요.”
“도윤이.”
“제가 왜 도윤이를 무서워해요?”
“보통은 귀찮아해.”
그 말이 또 가슴에 걸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누가 그래요?”
태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그냥.”
그의 그냥은 늘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태건은 능숙하게 접수를 했다. 소아과 대기실은 아이들 울음소리와 부모들의 낮은 목소리로 가득했다. 벽에는 동물 그림이 붙어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만화가 작게 나오고 있었다.
도윤은 대기 의자에 앉자마자 내 무릎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태건이 낮게 말했다.
“도윤아, 누나 힘들어.”
“안 힘들어요.”
내가 바로 말했다.
태건이 나를 봤다.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닌데.”
“제가 안 힘들다잖아요.”
“괜찮은 척하지 마.”
“괜찮은 척 아니에요.”
“너 그런 거 잘하잖아.”
나는 멈칫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정곡을 찔렀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눈에 띄지 않는 척.
상처받지 않은 척.
그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그쪽은 뭘 그렇게 잘 아는데요.”
내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태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윤이 내 무릎에 살짝 기대자, 자기 손을 도윤의 등 뒤에 받쳐주었다. 아이가 완전히 내게 무게를 싣지 않게.
그 조심스러운 행동 때문에 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태건 보호자분.”
간호사가 이름을 불렀다.
태건이 일어섰다. 도윤은 내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셋이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도윤의 목과 귀, 호흡을 확인하고 열을 다시 쟀다.
“감기 기운이 있네요. 열이 좀 올라가긴 했는데 지금 바로 큰 문제는 아니고요. 약 먹이고 오늘은 충분히 쉬게 하세요.”
태건이 물었다.
“머리 아프다고 했습니다.”
“열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혹시 구토하거나 축 처지면 다시 오시고요.”
“어제도 조금 열이 있었습니다.”
“자주 그러나요?”
그 질문에 태건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가끔.”
의사는 차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하면 자주 아파요. 보호자분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민하게.
나는 의사의 말이 나쁘게 들렸다.
태건도 그랬는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오자 태건은 약국 앞에서 처방전을 손에 쥐고 멈춰 섰다. 도윤은 내 품에 안긴 채 반쯤 잠들어 있었다.
“줘.”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도윤을 조심히 넘기려 했지만, 아이가 내 옷을 다시 붙잡았다.
태건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스쳤다.
“미안.”
그 말이 또 나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안 괜찮잖아.”
“괜찮아요. 진짜.”
태건은 나를 오래 봤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부담스러워서 나는 먼저 눈을 피했다.
“약 받아올게요.”
내가 처방전을 가져가려 하자, 태건이 손목을 잡았다.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실하게 붙잡았다.
나는 숨을 멈췄다.
손목을 감싼 그의 손은 뜨거웠다. 도윤의 열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내내 긴장하고 있어서인지 몰랐다.
“내가 가.”
“도윤이가 저한테 안겨 있잖아요.”
“그래서.”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네가 도망갈까 봐.”
나는 눈을 들었다.
태건은 농담처럼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협박처럼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듯 말했다.
나는 그게 더 이상했다.
“도망가면요?”
“찾아야지.”
“왜요?”
“도윤이가 찾으니까.”
또 도윤이 핑계.
그런데 그 말끝이 조금 낮아졌다.
“그리고.”
태건의 시선이 내 손목에서 내 얼굴로 올라왔다.
“나도 궁금해졌거든.”
숨이 얕아졌다.
“뭐가요.”
“너.”
그 한 글자가 너무 가까웠다.
약국 앞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대기실 아이들의 울음, 누군가의 통화 소리. 전부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손목을 빼냈다.
“도윤이 약부터 받아요.”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태건은 더 붙잡지 않았다.
그냥 느리게 손을 놓았다.
“기다려.”
“안 도망가요.”
“알아.”
“아는데 왜 말해요?”
그가 약국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듣고 싶어서.”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도윤은 내 품에서 작게 뒤척였다.
“누나.”
“응, 여기 있어.”
나는 아이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내 시선은 약국 안에 들어간 태건의 뒷모습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위험했다.
도윤보다, 소문보다, 게시판보다.
지금은 이태건이 더 위험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아직 도망가지 않고 있었다.
# 특별외전 2화. 나를 선택한 사람- 태건시점 - 결혼 다음 날, 나는 민서가 도윤에게 차이는 모습을 보며 눈을 떴다.도윤의 발이 민서의 뺨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민서는 아이의 발목을 잡아 이불 안으로 밀어 넣었고, 도윤은 잠든 채 다시 다리를 뻗었다.“도윤아.”민서가 낮게 불렀다.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아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미안.”“네가 왜 사과해.”“내 아들이라며.”잠이 덜 깬 채 대답했지만 민서가 웃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이상한 아침이었다.도윤은 내 옆에서 자고 있었고, 민서는 같은 반지를 낀 채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우리 침대였다.나는 아직도 그 단어가 낯설었다.우리 집.우리 방.우리 침대.민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절대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들이었다.처음 본 유민서는 지나치게 태연했다.길을 잃은 도윤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울리지 않았고, 내가 나타났을 때 겁먹은 얼굴로 물러나지도 않았다.오히려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도윤이 아빠 맞아요?”확신하지 못하는 목소리였다.도윤이 나를 아빠라고 불렀는데도 의심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맞는데.”내가 대답하자 민서는 도윤을 바로 넘겨주지 않았다.“그럼 아이가 왜 혼자 있었어요?”첫 만남부터 따졌다.나는 그게 싫었다.도윤을 잃어버린 사람은 나였고, 아이를 찾을 때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내가 부족한 아빠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잠깐 놓친 거야.”“잠깐이어도 아이는 무서웠을 수 있잖아요.”민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그래서 더 싫었다.나는 틀린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화를 낼 수 있었다.맞는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부터 마주해야 했다.그런데 도윤은 민서의 손을 놓지 않았다.“누나도 가.”도윤이 말했다.나는 그 말이 불편했다.아이는 원래 낯선 사람을 쉽게 따르지 않았다.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처음 보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 특별외전 1화. 내가 먼저 고른 사람-민서 시점 - 결혼 다음 날 아침,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태건의 얼굴이 아니었다.도윤의 발바닥이었다.정확히는 내 뺨 옆에 놓인 작은 발이었다.나는 눈을 뜬 채 한동안 그 발을 바라봤다.어젯밤 분명 도윤을 가운데 눕혔다. 그런데 자는 동안 세로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아이의 머리는 태건의 옆구리에 붙어 있었고, 두 다리는 내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도윤아.”작게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발을 살짝 밀자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내 얼굴 쪽으로 가져왔다.결혼 첫날밤의 다음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나는 결국 도윤의 발을 붙잡아 이불 안으로 넣었다.그때 태건이 눈을 떴다.“왜.”“네 아들이 나 걷어찼어.”태건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도윤을 자기 쪽으로 끌었다.“미안.”“네가 왜 사과해.”“내 아들이라며.”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는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이런 아침을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이태건을 처음 봤을 때의 나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장면이었다.그날의 태건은 무서운 사람이었다.검은 옷.굳은 표정.사람을 믿지 않는 눈.그리고 처음 보는 아이가 그를 보자마자 달려가 안겼다.“아빠.”도윤이 그 한마디를 내뱉었을 때, 나는 내가 알던 세상의 규칙 하나가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저런 사람이 아빠라고?그것도 저렇게 작은 아이의?나는 처음부터 태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그가 도윤의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더 의심했다.아이는 왜 혼자 있었는지.태건은 왜 그렇게 늦게 나타났는지.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 것은 맞는지.지금 생각하면 태건 역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자기 아이 옆에 붙어 있으면서 계속 따지는 여자.그런데도 나는 떠나지 않았다.도윤이 내 손가락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때는 아이를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대단한
# 외전 5화. 우리 애가 다시 골랐다 [외전완결]결혼을 정한 다음 날.태건과 민서는 하연을 먼저 만났다.장소는 도윤이 자주 가는 어린이도서관 근처 카페였다. 도윤과 하연의 정기 만남이 없는 날이라 세 사람만 마주 앉았다.하연은 민서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발견했지만 먼저 묻지 않았다.태건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우리 결혼하기로 했어.”짧은 말이었다.하연의 시선이 태건에게서 민서에게로 옮겨 갔다.놀란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축하해.”“고마워.”민서가 대답했다.하연은 물잔을 만지며 잠시 생각했다.“도윤이한테는 말했어?”“아직.”태건이 말했다.“너한테 먼저 알리기로 했어.”하연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허락을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도윤보다 먼저 자신의 귀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결혼하면 바로 달라지는 게 있어?”하연이 물었다.“생활은 지금이랑 비슷해.”민서가 대답했다.“이미 같이 살고 있으니까.”“도윤이 돌봄은?”“지금처럼 태건이가 주로 맡고요.”민서는 준비해 온 말을 천천히 꺼냈다.“저도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만큼 제가 선택한 범위에서는 함께할 거예요. 하지만 중요한 결정이나 하연 씨와의 일정은 두 분이 계속 직접 조율해 주세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민서 씨한테 엄마 역할을 부탁할 생각은 없어요.”“알아요.”“도윤이가 결혼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하연은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엄마가 바뀐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그 부분부터 설명하려고.”태건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엄마는 그대로 너라고.”하연은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내렸다.도윤의 엄마라는 자리를 확인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자신이 그 자리를 온전히 지켜 온 사람도 아니었다.그런데 태건은 하연의 과거를 없던 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역할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었다.“가족식은 작게 하려고 해.”태건이 말했다.“가까운 사람들만 불러서 밥 먹는 정도로.
# 외전 4화. 이번에는 내가 고르는 약속토요일 오후.도윤은 준우네 집에서 열리는 생일 파티에 갔다.태건은 아침부터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했다.“네 시에 데리러 가는 거 맞지?”민서가 물었다.“응.”“그럼 세 시간밖에 없네.”“결혼 이야기하는 데 세 시간이 부족해?”태건은 소파에 앉아 민서를 바라봤다.민서는 식탁 위에 서류 몇 장을 펼쳐 두고 있었다.태건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게 뭐야.”“내가 준비한 말.”“결혼 이야기하는데 서류가 필요해?”“필요해.”민서는 종이를 태건 쪽으로 밀었다.가장 위에는 두 사람의 현재 생활이 적혀 있었다.태건의 센터 근무와 소득.민서의 학업과 프로젝트 일정.공동생활비 분담.도윤의 양육비와 돌봄 체계.하연과의 정기 만남.태건은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이거 우리 집 구할 때 다 이야기한 거잖아.”“결혼하면 달라지는 게 있으니까 다시 보는 거야.”“뭐가 달라져.”“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거.”민서는 옆에 놓인 자료를 펼쳤다.혼인신고 이후 달라지는 법적 관계와 재산 관리, 의료 상황에서의 보호자 지위, 주거 계약과 세금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이었다.태건은 예상하지 못한 얼굴로 민서를 바라봤다.“이걸 다 알아봤어?”“응.”“언제.”“네가 계속 결혼 이야기할 때부터.”태건은 서류를 다시 내려다봤다.결혼이라는 말을 꺼낸 사람은 자신이었다.그런데 정작 결혼이 두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깊이 알아보지 않았다.좋아하고, 함께 살고, 오래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민서는 마음이 부족해서 자료를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오래 함께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었다.“결혼하면 내 빚도 네가 책임져야 해?”민서가 물었다.태건의 표정이 굳었다.“빚 있어?”“없어.”“그럼 왜 물어.”“서로 모르는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민서는 질문 목록을 꺼냈다.학자금 대출.개인 채무.보험.저축.가족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는 돈.태건은
# 외전 3화. 졸업하는 아빠도윤의 유치원 발표회 날.태건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도윤의 흰 셔츠를 다리고, 바지 주름을 펴고, 유치원에서 보내 준 안내문을 세 번 확인했다.준비물은 없었다.보호자는 열 시까지 강당으로 오라는 내용뿐이었다.그런데도 태건은 도윤의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아빠.”잠옷 차림의 도윤이 방문에 기대 서 있었다.“왜.”“오늘 가방 안 가져가.”태건의 손이 멈췄다.“알아.”“그런데 왜 봐?”“혹시 필요한 게 있나 해서.”“없어.”도윤은 하품을 하며 욕실로 걸어갔다.“나 노래 안 틀리게 해야 돼.”“집에서 계속 불렀잖아.”“친구들이 틀리면 나도 틀릴 수 있어.”태건은 웃지 않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도 있지.”도윤이 욕실 앞에서 돌아봤다.“틀려도 돼?”“응.”“선생님 안 화내?”“발표회는 시험 아니야.”도윤은 안심한 얼굴로 욕실에 들어갔다.민서는 그때까지도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전날 프로젝트 회의가 늦게 끝난 탓이었다.태건은 침실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발표회 보호자는 자신과 하연이었다.민서는 집에서 쉬다가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도윤이 직접 정한 일이었고, 민서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그런데 태건은 괜히 침실 안을 한 번 더 바라봤다.민서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빠진 사람은 아니었다.이미 함께 돌아올 집에 있는 사람이었다.하연은 약속 시간보다 십 분 먼저 유치원 앞에 도착했다.짙은 남색 원피스 위에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손에는 작은 꽃다발도, 선물도 없었다.유치원에서 꽃과 장난감을 가져오지 말아 달라고 안내했기 때문이었다.“엄마.”도윤이 하연을 발견하고 뛰어갔다.태건은 따라가지 않았다.하연이 아이 앞에 몸을 낮췄다.“긴장돼?”“조금.”“엄마도 조금 긴장돼.”“엄마는 노래 안 하잖아.”“도윤이 보는 게 처음이니까.”도윤은 잠시 하연을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같이 들어가.”하연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강당에는
# 외전 2화. 엄마가 오는 토요일“엄마, 내 집 봐.”도윤이 하연의 손을 잡아당겼다.하연은 현관 안쪽을 한 번 더 바라봤다.거실 바닥에는 새 수납장이 놓여 있었고, 민서의 책상 옆에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조명이 기대어 있었다. 소파 위에는 태건의 겉옷과 도윤의 작은 가방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누군가의 집을 구경하는 일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것이 보였다.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누구의 물건이 어디에 놓이는지.자신이 없는 시간 동안 어떤 생활이 만들어졌는지.“잠깐 보고 가세요.”민서가 다시 말했다.하연은 그제야 신발을 벗었다.“실례할게요.”“엄마, 여기.”도윤은 하연이 신발을 정리할 틈도 주지 않고 작은방으로 데려갔다.방문 안쪽에는 자동차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창문 아래 낮은 침대에는 공룡 이불이 깔려 있었다.벽 한쪽 수납장에는 자동차와 기차가 줄을 맞춰 들어가 있었다.“이게 파란 자동차.”도윤이 가장 먼저 꺼낸 것은 민서의 이전 집에 두고 다니던 장난감이었다.“누나 집에 있던 거 기억나?”하연은 자동차를 받아 들지 않고 아이가 든 모습을 바라봤다.“응. 도윤이 자리라고 했던 거.”“이제 여기 있어.”“좋겠다.”“엄마 집에도 내 거 있어?”질문은 망설임 없이 나왔다.하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응.”태건이 그녀를 바라봤다.하연은 도윤에게 설명했다.“지난번에 같이 산 기차책이랑 도윤이 쓰는 컵 하나 있어.”“내 컵?”“초록색.”“왜 나한테 안 보여 줬어?”“도윤이가 엄마 집에 올 수 있게 되면 보여 주려고 했어.”도윤은 곧바로 물었다.“나 언제 가?”하연은 태건 쪽을 보지 않았다.도윤에게 묻고, 태건이 대신 답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피하지 않았다.“아직 날짜는 안 정했어.”“왜?”“엄마 집에서 도윤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 아빠랑 먼저 확인해야 해.”“침대 있어?”“도윤이가 낮잠 잘 수 있는 자리부터 만들려고.”도윤은 자신의 방을 돌아봤다.“내 침대는 여기 있는데.”“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