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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찾았다

Author: 무취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7 03:22:40

언니에게 사인을 받아 든 하윤은 뛰지 못하는 다리가 안타까울 정도로 기뻐했다.

동생이 저토록 밝게 웃는 모습은 그녀가 다리를 잃은 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사인을 받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마냥 기뻐하던 하윤은 이내 언니를 향해 어찌 된 영문인지 캐 묻기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기엔 하늘은 지금 몹시 피곤했다.

좋아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나직이 웃던 하늘은 이내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하며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그냥 우연히 만났어. 동생이 팬이라고 하니까 사인해주더라."

동생은 그 자리에 내가 없었던 게 한이라며 안타까운 소리를 내다 가도

금 새 그의 사인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가슴 팍 에 소중하게 사인을 끌어안기를 반복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뒤로 한 채 하늘은 욕실로 들어서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을 온몸에 끼얹었다.

장거리 비행에 피곤함이 짓눌려 무거웠던 몸이 녹는 기분이다.

뜨거운 물로 몸 구석구석을 적시며, 하늘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한참 동안 이나 떨어지는 샤워기의 세찬 물을 고스란히 받아내었다.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은 하늘은 깨끗하게 다려진 잠옷을 입고, 채 다 말리지 못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감쌌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 한껏 지쳐 보이는 눈엔 생기 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때, 갑자기 거실에서 동생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놀란 하늘이 욕실 문을 열고 급하게 뛰쳐나갔다.

하윤은 자신의 스마트 폰을 쳐다보며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한 손으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감싸 쥐고 있었다.

"뭔데, 서하윤!"

놀란 맘을 쓸어 내릴 틈도 없이 하윤은 들고 있던 폰을 돌려 하늘에게 보여주었다.

여전히 놀란 토끼눈을 하고있다.

"언니..이거..진짠가? 이거 진짜 강우주 계정인가???"

그러곤 다시 폰을 쳐다보며 눈을 한 번 비빈 하윤은 다시 끔 폰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맞는데..진짜 우주계정인데??..나한테 디엠보냈어. 이거봐!! 언니이름이 서하늘 맞냐는데???"

침대에 무심히 기대 앉은 강우주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 위를 빠르게 미끄러졌다.

서하윤이라는 이름으로 검색 된 수많은 게시물 중, 유독 자신의 사진으로 도배 된 계정 하나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휠체어 사진과 함께 적힌 나를 향한 응원의 글귀 들을 확인하며, 그는 눈썹 한쪽을 흥미롭다는 듯 들어 올렸다.

그의 발은 또 다시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찾았다."

강우주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린 전형적인 팬계정이었다.

그는 평소에 쓰던 비밀계정으로 전환하려다, 곧 이내 손가락을 멈췄다.

왜 인지 모르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굳이 빙빙 둘러갈 필요가 있을까?

사생활 관리는 누구보다 철저한 그였지만, 공식 계정에 파란 뱃지가 달린 채 메세지를 보내는 편이 그 여자를 당황하게 만들기엔 제격이 될 터였다. 곧바로 다이렉트 메세지 창이 열렸다.

"자기 입으로 인스타 안한다고 했으니까. 그럼 당연히 동생 계정으로 물어보는 수 밖에.

도망 잘 가라고 얄밉게 굴더니, 이 타이밍에 이런 연락이 갈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그는 맹수처럼 화면을 주시하며 망설임 없이 짧은 문장을 타이핑했다.

전송버튼을 가볍게 누른 그는 휴대폰을 침대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반가움과 기대감이 섞인 듯, 그의 눈썹이 으쓱 거리며, 이내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어떤 반응이 올지, 궁금하네"

그는 짧게 웃음을 흘리며 어두운 방안에 홀로 지긋이 눈을 감았다.

까딱거리는 발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하늘은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당최 알 수 없었다.

동생 계정으로 연락이 와? 강우주가?

그것도 내 이름을 언급했다고?

옆에서 난리 법석을 떨며 몇 번이나 디엠을 확인하고 또 하는 하윤을 일단 진정 시켜야 했다.

하늘은 동생의 폰을 덥석 뺏어 들었다.

"답장 하지 마. 할 필요 없어"

말도 안된다며 당장 답장 해야 한다고 폰을 가져가려 하는 하윤에게서 멀리 떨어진 하늘은

그가 보낸 짧은 디엠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이거 진짜 강우주 그 사람 계정 맞아? 사칭, 이런 거 아니고?"

그런 하늘의 말에 하윤이 누구보다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내가 강우주 계정도 모르게?? 맞아, 진짜 강우주 계정! 회사에서 관리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본인이 관리 하는 거라고! 사진도 거의 안 올라오고 간간히 사적인 사진만 올리는 계정인데. 이 계정으로 연락 온 거면 진짜 강우주 맞다니까?"

잔뜩 흥분해서 말하는 하윤의 말을 들으며 하늘은 천천히 그의 계정을 살폈다.

게시물이 많지는 않았다. 화려한 무대 의상이 아니라 편안한 옷차림에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몇 개의 사진.

더 넘길 것도 없이 네 개 정도의 피드 였지만, 팔로워 수는 상상을 초월 한 숫자였다.

"언니. 강우주랑 무슨일 있었던거야?? 우연히 만난 거 맞아?"

계정을 잠시 둘러보던 하늘은 답장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져 들었다.

그냥 무시할까? 이상하잖아.

하지만 그냥 무시해버리기에는 하늘을 뚫어지게 보는 하윤의 눈빛이 당장이라도 언니가 답장하지 않으면 자기가 해 버릴 기세였다.

하윤이 괜한 소리를 할까 싶어 하늘은 답장을 보내야 겠다고 다짐하곤, 답장을 써 내려갔다.

'사인 잘 전달했는지 궁금해서 연락 하신건가요? 동생한텐 잘 전달했어요. 좋아 하더라구요.'

'근데 이렇게 까지 궁금해 한다는 게 도통 이해는 안 가네요'

하늘 다운 답장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 될 스케줄에 대비에 일찍 잠을 청하려던 그의 계획은 메세지 진동 하나에 틀어지고 있었다.

침대 위로 던져두었던 휴대폰 화면이 번쩍 빛나자 강우주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었다.

그의 입가에는 모든 것을 예측 했다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답장을 안하고는 못배겼겠지."

그러나 메세지 내용을 확인한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고맙다는 인사나 호들갑 스러운 반응 대신, 그의 의도를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질문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화면을 응시하더니, 이내 흥미롭다는 듯 나지막히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궁금하다마다. 동생분이 내 팬이라는데, 당연히 궁금하지. 근데 그것만 궁금할까?'

그는 상체를 일으켜 침대 헤드에 편안하게 기댔다.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오늘 낮에 느꼈던 묘한 패배감이 단번에 역전되는 기분이었다.

이제 이 게임의 주도권은 다시 자신에게 넘어 온 듯한 기분에 그는 일부러 한 자, 한 자 느긋하게 답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인 하나로 끝내면 재미 없잖아요? 택시비도 갚고 싶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쪽한테 내가 빚을 졌다는게 좀 찝찝해서'

문자를 전송한 강우주는 답장을 기다리듯 폰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어떤 답장이 올까, 기대감이 잔뜩 차지한 눈만이 남았다.

답장을 본 하늘은 짧은 문장에도 낮에 봤던 그의 말투가 떠올랐다.

능글거리던 그의 얼굴도 함께.

택시비? 사인으로 퉁치기로 했던 거 아닌가?

무슨 수작인지, 하늘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장을 써내려 갔다.

'빚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이렇게 동생 계정으로 연락하면 동생이 오해해요. 골치 아파지는거 싫은데. 바쁘신 분 아니었나요? 꽤나 심심해 보이시네요.'

피식 하고 터져 나온 웃음이 어두운 방 안에 나지막이 울렸다.

심심하냐니?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 속에서 쪼개고 쪼개어 겨우 얻은 휴식시간이었지만, 이여자와의 대화는 피곤함 마저 잊게 할 만큼 흥미로웠다.

강우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툭툭 건드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동생이 오해 한다라. 우주는 결국 자신에게 직접 연락하라는 뜻으로 멋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을 안한다는 핑계로 철벽을 치던 여자에게 다시 한 번 정면으로 돌파 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이제 와서 못이기는 척 알려줄지, 아니면 또 다른 핑계를 댈지. 그의 눈이 장난기 가득하게 반짝였다.

'빚이라고 생각 안 하면, 그럼 그냥 밥 한번 사주는 걸로 하죠. 동생이 오해 하는게 싫으면 더더욱 이렇게 연락하면 안되겠네.'

그의 손가락이 다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녀가 빠져나갈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오직 하나의 선택지 만을 남겨두는, 지독히도 강우주다운 제안이었다.

메세지를 보낸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다시 옆에 내려놓았다.

발끝을 까딱이는 움직임이 한층 경쾌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오해 살 일 없게 그 쪽 연락처나 알려줘요.'

그의 메세지를 받은 하늘은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잔뜩 흥미로운 눈빛을 뿜는 하윤이 부담스럽다는 듯 몸을 돌려 앉았다.

폰을 보여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하윤을 가뿐히 무시하고 하늘은 침착하게 답장을 이어갔다.

'연락처 주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유 없이 제 연락처를 맘대로 주는 건 내키지 않아서요. 그것도 유명인이랑 개인적인 연락처 를 주고 받으면서 골치 아프고 싶지 않아요. 이해하죠? 정 그렇게 빚을 갚아야 겠다면..그 때 제 회사 기억하죠? 거기로 와요. 오면 밥은 먹어줄게요. 더 이상 여기로 연락하지도 말고 동생 계정도 차단 부탁해요.'

답장을 금새 써내려 간 하늘은 모든 대화를 삭제한 후, 하윤에게 폰을 다시 건냈다.

별일 아니니 쓸데 없는 짓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도 함께 했다.

하윤은 텅 빈 메세지함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언니, 너무해!!!"

연락처를 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치만 내가 왜? 강우주가 내 번호를 왜?

그는 나와 별 상관 없는 사람이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내 구구절절한 사연을 얘기한 건 나 답지 않은 행동이긴 했지만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기에 크게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는 어느새 내 신경 한쪽을 건드리고 있었다. 골치 아픈 건 잔뜩 쌓인 회사 일로도 충분하다.

잘나가는 탑스타에게 우리 회사 앞으로 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으니, 그럴 듯하게 잘 넘어 간 것 같다.

황당해서 다신 연락 오지 않겠지.

여전히 황당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지만 작은 헤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하늘은 빠르게 그를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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