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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체 뭐하는 여자야

Author: 무취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7 03:22:15

강남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강우주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서하늘이 마지막에 자신을 향해 던졌던 말과, 손목시계를 보고 허둥지둥 뛰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평범한 회사원 같지만 뭔가 묘하게 꼼꼼하고 선을 확실히 그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인스타도 안하고 연락처도 안주고.."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열정이나 집착과는 정 반대의 태도였기에, 그녀의 무심함이 도리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치 뜨거운 물에 익숙한 사람이 시원한 물을 마신 기분이었다.

그의 발이 또 다시 가볍게 까딱거렸다.

하늘은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회사로 복귀해 업무를 마무리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가 다 되어간다.

이제야 한숨 돌린 하늘은 주섬 주섬 가방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저 멀리 누군가가 하늘을 향해 웃으며 다가온다.

반듯한 정장 차림에 저녁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방금 씻고 나온 사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한 서하늘의 부서팀장 '지은우' 였다.

"이제 퇴근해요?"

하늘은 꾸벅 목인사를 한후, 네. 하고 짧은 대답을 건냈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온화한 생김새와 웃으면 눈이 반달 모양으로 찢어지는 그는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출장 다녀오자마자 야근이라니. 나 너무 악덕상사가 된 것 같네. 저녁 먹었어요?"

그의 말에 하늘은 잠시 고민한다.

일이 바빠 고프지도 않던 배는 이제 일이 끝났다는 걸 아는 건지, 배에서 작게 꼬르륵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적막하고 조용한 회사안에서 지팀장의 귀에 안들릴 리 없었다.

지은우는 작게 웃음 터트렸다.

"가요."

팀장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팀장의 뒤를 따라가던 하늘은 애꿎은 배만 손으로 문질렀다. 타이밍 하고는.

"국밥 좋아해요? 국밥에 소주 한 잔 하면 딱 좋겠는데."

팀장님이 잘 아는 식당이 있다고 했다.

더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는데 이 늦은 시간에 갈 만 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팀장님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10분쯤 옮겼을까.

으슥한 곳에 국밥집이 하나 나온다. 오래 된 식당 같지만 꽤나 정갈하고 깔끔하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가게안은 크게 붐비지도 않았다.

지은우는 능숙하게 자리에 앉아 국밥 두개와 소주 한 병, 잔 두개를 주문한다.

"단골이신가봐요?"

하늘의 말에 지은우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단골이죠. 여긴 아무나 안 알려줘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곳이거든."

그는 대답을 함과 동시에 자연스레 하늘의 수저와 물을 챙긴다.

그 시각. 강우주는 월드투어를 마치고 귀국한 당일 오후부터 이어진 스케줄에 지쳐 매니저가 운전하는 밴에 털썩 몸을 뉘였다.

하루종일 카메라 앞에서 완벽한 표정을 유지했던 탓인지, 지금 이순간 만큼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았다.

매니저 성민이 백미러로 강우주를 힐끗 바라봤다.

"배 안고파? 뭐라도 먹을래?"

매니저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그는 핸드폰 화면을 켰다.

지훈은 익숙하단 듯,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강우주는 오늘 하루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묘하게 그 끝자락에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짐이 잔뜩 든 가방을 아무렇지 않게 메고 허겁지겁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던 그녀의 모습.

"신기한 여자란 말이지."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하루종일 고단하게 움직여 고단함이 무겁게 몸을 짓눌러도 웃음이 새어 나오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매니저는 의아한 눈으로 백미러를 다시 흘겨봤지만,

우주는 그냥 시선을 창밖으로 돌릴 뿐이었다.

한쪽에 낀 이어폰에는 강우주의 솔로앨범 타이틀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몇분 쯤 갔을까.

차는 편의점 앞에 잠시 정차 했다.

"닭가슴살 이라도 사 올께. 너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매니저의 말에 우주는 말 없이 눈을 감았다.

매니저는 대답 없는 그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차에서 내려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닭가슴살. 생각만 해도 질린다.

다시 눈을 뜨니 창밖으로 즐비한 식당들의 화려한 네온 사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뜨끈한 국밥이나 한그릇 먹었으면 좋겠다."

마치 닿을 수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 같았다.

남들은 제일 흔하게 먹는 음식들을 우주는 데뷔한 이래로 단 한번도 맘 편히 먹어본 적 없었다.

늘 관리된 식단만 먹으며 철저한 관리가 몸에 배어 있었다.

특히 이렇게 스케줄이 많은 요즘은 더더욱, 염분기가 있는 음식은 가까이 할 수도 없다.

금방 차로 돌아온 매니저 성민은 편의점표 닭가슴살을 그에게 건내곤 또 다시 운전대를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우주는 그가 건낸 닭가슴살을 옆자리로 툭 던져 놓았다.

그러다 문득 다시금 머릿속에 그녀의 모습이 맴돌았다.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 검색창을 켠 그의 손가락이 '서하늘' 이라는 세 글자를 익숙하게 입력해 넣었다.

인스타그램을 안한다고 했으니, 혹시나 다른 정보가 있을까 싶었다.

"동명이인은 또 왜 이렇게 많아."

스크롤을 내려도 나오는 건 수많은 동명이인의 단편적인 정보 뿐이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이내 짜증이 섞인 듯 핸드폰 화면을 끄고 옆 좌석에 툭 던지고는 고개를 젖혀 눈을 감았다.

팀장님과 식사를 마친 하늘은 가게를 나서며 잘먹었습니다. 하고 짧은 인사를 건넸다.

국밥은 정말 맛있었다. 피곤함에 소주가 들어갈까 했는데, 어쩌다 보니 한병을 다 비웠다.

팀장은 딱히 다른 말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하늘의 빈 잔을 채워주고 흘리면 휴지를 챙겨주었다.

은우는 눈 앞에 택시를 잡아 하늘을 태웠다. 그리고 기사님께 현금을 넉넉히 쥐어주며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생했어요. 푹 쉬고 내일 봐요."

다정한 말투로 인사 한 그는 내가 탄 택시가 떠날 때 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하늘은 피곤한 몸을 택시 등받이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어디서 들어본 듯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 동생이 요즘 매일 틀어 놓는 노래라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다.

강우주의 노래였다. 귀 귀울여 들어본 적 없던 아이돌 노래에 하늘은 처음으로 집중했다.

맑은 목소리에 발라드였다. 완전 똑같진 않았지만, 아까 택시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문득 하늘은 폰을 집어 들어 인터넷에 강우주의 이름을 검색했다.

화려한 얼굴과 수많은 정보들이 쉴 새 없이 뜬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제일 잘나가는 가수 인건 확실해 보인다.

"꽤나 대단한 사람인가보네."

아까 무심하게 대한 날 보며 그가 왜 황당한 표정을 지었는지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가방을 뒤져 다이어리를 꺼냈다.

그가 사인을 해 둔 곳을 펼쳤다.

'서하윤에게 강우주.'

삐딱하고 거칠어 보이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글씨체가 정갈하다.

동생한테 가져다주면 어떤 반응일까? 간만에 언니노릇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하늘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강우주의 노래를 가만히 들으며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옮겼다.

우주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컴컴한 집안엔 냉기가 가득하다. 월드투어를 하느라 몇 일 간 집을 비워 놓는 바람에 안 그래도 적막한 집안에 작은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고 그는 곧장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몸을 걸터앉아 상체를 뒤로 젖혀 누웠다.

팔을 이마에 걸쳐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갑갑한 듯 셔츠의 앞 단추를 풀어헤쳤다.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한참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던 우주의 머릿속에 또 오늘의 작은 소동이 떠올랐다.

"..대체 뭐 하는 여자야."

강우주는 벌떡 일어나 앉아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다시 한번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입력했다.

결과는 아까와 똑같았다. 수많은 동명이인.

그는 문득 낮에 사인을 해주었던 다이어리를 떠올렸다.

'서하윤에게'

아, 동생이름이 서하윤이랬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인스타그램 앱으로 들어가 그녀의 동생 이름을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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