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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빈말과 진담사이

Author: 무취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7 03:24:30

당황할 틈도 없이 강우주는 나와 팀장님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진짜 그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꿈에도.

이미 내 머릿속에 그와의 소동은 지워져 있었고, 다신 볼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내 앞에 서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늘은 그를 쳐다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정말 나랑 밥을 먹으려고 온 사람처럼 굴었다.

옆에 서있는 팀장에게 묘하게 까칠한 태도를 보이며, 은근슬쩍 팀장님을 대화에서 배제 시키는 듯 한 모습에

하늘은 도대체 이 사람 뭐지. 하는 생각과 더 이상 이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삐딱하게 서서 발을 연신 까딱거리는 그를 향해 말했다.

"오라고 한 건 사실이지만, 언제라고 약속했나요 우리?"

내 말에 그의 눈썹이 한껏 꿈틀거렸다.

마스크 위로 드러나 있는 그의 눈이 한껏 짜증스러웠다.

"디엠 못봤나? 오늘 오겠다고 말 했는데?"

그가 다시 답장을 보내리 라곤 생각하지 못한 채, 하늘은 동생에게 폰을 돌려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차 싶었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이 상황이 왜 이렇게 난감해진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길거리엔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그가 누군지 궁금하다는 듯 힐끔 거리는 시선까지 느껴져 그녀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돌려 보내고 싶지만, 그는 추호도 이 자리에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늘은 짧은 한숨과 함께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떴다.

지은우는 이 상황을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꽤 나 흥미롭다는 듯,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말이다.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누가 봐도 일반인은 아니었다. 키는 나만큼 큰 편에 나를 보는 짜증 스런 눈동자는 유난히 진하고 깊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거침없는 행동과 짜증 스런 눈조차 유치하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능숙한 척 그녀의 이름을 불러 대어도 그의 눈에는 눈 앞의 솜사탕을 사 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았기 때문.

그저 작은 걸림돌의 존재도 되지 않는 것처럼 은우는 그를 그저 흥미롭게 쳐다볼 뿐이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은우는 거침없는 그를 좀 더 도발할 생각에 한쪽 입꼬리를 보란 듯 올리며

하늘이 들고 있던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자연스레 빼내 손에 쥐었다.

"하늘씨가 그쪽과 저녁을 먹는 게, 편하지 않은 가 본 데요. 오늘은 제가 하늘씨에게 밥을 얻어먹기로 했는데.

약속은 다음으로 하시죠?"

그의 말에는 조금도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유롭고 느슨했다.

그녀의 가방을 자연스럽게 들어주는 모습은 강우주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마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지지 못한 걸,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나의 묘한 승부욕을 자극시켰다.

우주는 이를 꽉 깨물고, 바닥으로 고개를 잠시 떨구며 짧게 코로 숨을 내쉬었다.

짧은 침묵이었지만 그의 행동에는 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내가 원해서 가지지 못한 건 없었다.

작은 것 하나부터 노력만 조금 한다면 꽤 큰 무언가도. 그가 가질 수 없는 것은 없다.

나의 작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몇 억, 아니 많게는 몇십 억이 움직인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은 대중들에 관심을 받고 그의 손 짓 하나면 그 모든 건 그의 손아귀에 쥐어진다.

늘 그런 삶이 익숙했고 그게 당연한 거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엔 우주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이 상황 자체는 우주의 멘탈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팀장님. 밥은 다음에 꼭 사드릴게요. 제가 먼저 오라고 한 건 사실이라서요."

묘한 패배감에 휩싸여 자리를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갈 듯 했던 우주는

예상 치 못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지은우를 향해 정중하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주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실망한 표정도, 화가 난 표정도 아니다.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다.

그녀의 말에 조금도 개의 치 않는 듯, 입을 꾹 다문 채 웃으며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그래요. 우린 어짜피 매일 보니까. 밥이야 언제든 먹을 수 있고."

그는 너보다 나와 그녀가 훨씬 가까운 사이라는 걸 강우주에게 상기 시켜 주듯 말했다.

"그럼 내일 봐요."

그는 들고 있던 그녀의 가방을 그녀의 손에 다시 쥐어주고는 우주를 향해 잠깐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짧은 목례를 한 후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하늘은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주는 그런 그녀의 눈길을 막기 위해 자연스레 그녀의 앞에 섰다.

"하. 그쪽이랑 밥 한번 먹기 드럽게 힘드네."

그의 말에 하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와 눈을 마주했다.

"누가 진짜 오랬냐구요. 빈말이랑 진담도 구분 못해요?"

그녀의 말에 우주는 여태 껏 참았던 굴욕과 알 수 없는 묘한 배패감을 토해내 듯 말했다.

"하. 밥 한 끼 먹자는데 온갖 핑계로 거절하더니, 회사 앞까지 찾아 온 사람한테 그게 할소립니까??"

그가 버럭 소리를 내자, 그들을 쳐다보던 주변의 시선들이 더욱 짙어졌다.

이젠 힐끔힐끔이 아니라 대 놓고 서서 그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올라오는 화를 짧은 한숨으로 토해 낸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모자의 챙을 잡고 더 깊이 고쳐 썼다.

"일단 여기 좀 벗어나죠."

그는 나지막이 말을 내뱉고는 그녀의 팔꿈치를 잡아 끈다.

눈 앞에 보이는 구석 지고 어두워 보이는 쪽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며 그는 마스크를 한 번 더 고쳐 썼다.

그가 나를 잡고 이끄는 행동에 인상을 잠시 찌푸린 그녀는 이내,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관심 있게 쳐다보는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누군 가가 그를 알아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가 쓴 검정 모자와 검정 마스크는 그가 정확히 누군지 모를 정도는 감춰지더라도

그가 뿜어내는 화려한 아우라를 숨겨주진 못했다.

이 바글 거리는 곳에서 그와 함께 밥을?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잘못 하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다 이내 한 곳을 떠올렸다.

어제 팀장님이 데려간 국밥집. 거기라면 괜찮을 지도 모른다.

으슥한 골목 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식당 안에 구석 지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자리도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그의 손에서 팔을 빼낸 뒤, 그의 소매 끝을 잡았다.

"따라와요."

하늘은 모자의 앞 챙을 잡고 꾹 눌러 쓴 그의 눈을 마주치며 말하곤

빠른 발걸음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우주는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가 끄는 대로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이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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